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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04화 (105/144)

< # 104화 >

# 104화

상대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서, 믿을만한 이인지 아는데 꽤 오랜 시간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은가.

사람 하나, 하나를 모두 신중하게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0.1초’.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그 짧은 시간은 타인을 인지하고, 판단을 내리는 시간이다.

흔히들, 첫인상이라고 하는 그 모습은 쉽게 수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화아아아악-.

“...”

뿜어지는 빛무리를 바라보면서도, 정호가 무표정을 고수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호는 이미 헤라클레스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워낙에 유명한 녀석이라, 모른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줘야지.’

분명 헤라클레스는 전설적인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 성 등급의 화신이다.

심지어는 ‘불사’라는 힘을 지닌, 신들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는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헤라클레스가 가지는 잠재능력에 불과하지 않은가.

정호는 그 사실을 확실히 알려줄 생각이었다.

‘...오.’

하지만 그 점을 단단히 새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호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헤라클레스의 몸을 바라보고서 감탄을 흘릴 뻔 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대흉근.

떡 벌어진 등 위에 피어오르는 광배근.

실전 압축 근육으로 가득한 전완근.

심지어 상체만 부풀리는 머저리들과는 달리, 기초가 되는 하체, 대퇴사두근도 완벽하기 그지없는 모습.

분명 저 몸뚱아리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기했을 것이 분명했다.

“...작군.”

하지만 그 감탄을 속으로 삼켜낸 정호가 꺼낸 첫 마디는 정반대의 감상이다.

물론 그것은 녀석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꺼낸 말이었겠으나···.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헤라클레스는 작았으니까.

엄청난 근육을 가지고 있는 것치고는, 한참은 아래에 있는 눈높이.

고작 열 셋은 되었을까.

아직 2차 성징도 오지 않았을 것 같은, 새파랗게 피도 마르지 않은 꼬마가 무지막지한 근육을 지니고 있으니 비정상적으로만 보였다.

“...”

그런 정호의 말을 들은 탓일까.

말 한 마디,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헤라클레스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갔다.

들려지는 전완근.

핏줄이 단단히 서 있는 손가락이 정호를 정확히 가리켰다.

“자네가 나의 주인인가?”

그리 말하면서 정호와 그 주변에 서 있는 화신들과 이그나투스를 훑어본다.

상당히 어린 모습인 탓일까.

그것이 참으로 버릇없어 보이기는 했으나.

“굉장하군. 분명 주인이라는 자들은 하나 같이 노력조차 하지 않는 머저리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스스로의 힘은 물론이고 이토록 강인한 영웅들과 함께 하다니.”

“...음?”

“자네 정도라면 신의 자식인 내가 힘이 되어줄 수도 있네.”

헤라클레스의 반응이 정호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분명 오만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다르지 않은가.

‘뭐지?’

헤라클레스라면, 정호도 몇 번이고 공격대에서 만난 적이 있는 화신이다.

그런 녀석은 제아무리 교육이 되어 있다고 한들.

‘결국 불리할 때는 나의 힘인가?’

‘조금은 네가 직접 해보는 게 어떤가?’

‘이런 게 나의 주인이라니.’

라는 둥의, 반항기 어린 말만을 내뱉는 화신이었다.

한데 그런 녀석이 제아무리 등장부터 삿대질을 했다고는 하나, 첫 마디가 ‘감탄’이라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설마, 내가 화신이라서?’

예상되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헤라클레스 정도의 영웅이라면.

상대의 역량을 알아보는 것도 가능할 터다.

‘삼 성.’

정호는 스스로도 삼 성의 위치에 올랐다.

그것에 더해, ‘용기사’라는 레전드리 클래스의 직업마저 손에 쥐고 있는 마당.

단순히 능력치만으로 계산했을 때에는 헤라클레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녀석이 인정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지 않은가.

‘이 정도라면...’

정호는 화신들의 ‘자유의사’를 꽤나 중요한 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었다.

명령대로 움직여준다는 것은 분명, 이상적인 화신에 가까웠으나.

그래서야 편리한 도구에 불과하다.

예상 불허의 사태가 발생되었을 때, 그 상황에 대처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 명령만 기다리는 꼭두각시.

정호는 그런 존재를 원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주인으로써 인정하고 있다면, 조금은 오만할 지라도 수없이 많은 화신들의 성격 중 하나로 받아들일 생각도 있었다.

따악, 딱.

한데, 그런 정호의 귓가에 들려오는 하나의 섬뜩한 소리가 있었다.

시선을 오른편으로 옮기자.

그곳에는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잔다르크의 일그러진 얼굴이 있었다.

“따라 줄 수도 있다? 어린놈의 자식이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네.”

아니나 다를까.

‘구국의 성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음, 말이 불편했나? 이런 상황을 맞이한 적이 없어서 말이네.”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말이네?”

오히려 헤라클레스의 반응이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잔다르크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정호는 속으로 혀를 차냈다.

헤라클레스와 달리, 잔다르크를 손에 넣었을 때 정호는 ‘교육’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잔다르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 어떤 화신보다도 투철한 충성심을 가지는 화신으로 유명했던 까닭이다.

‘육성의 스페셜리스트라고...’

심판자.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도 바로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화신들에게도 그 충심을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멈춰야 하나?’

그토록 충심이 강한 잔다르크라면, 정호의 말을 무시하고 덤벼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헤라클레스에 대한 교육을 부탁한 것은 자신이 아닌가.

정호는 이 상황을 막아야 하나, 막지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런 그 때.

“그 말은 조금 심한 것이 아닌가. 자네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필시 ‘인간으로써’는 대단한 업적일 터. 그에 대해 나는 충분히 존중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네.”

정말이지 다행스럽게도.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결코 경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아, 저건 안 되겠군.’

분명 특별한 악의를 지니고서, 떠들어댄 이야기는 아닐 터였다.

헤라클레스는 어디까지나, 신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화신.

녀석의 입장에서 볼 때, 순수한 인간이라는 점은 디메리트. 즉, 불리한 조건이라는 의미일 터다.

다만.

“허? 하? 하? 뭐?”

당연하게도 그런 사실을 잔다르크가 이해해줄 리 만무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한참이나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헤라클레스가 서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지어는.

“그건 이 누님도 듣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조금은 말조심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아틸라와 멀린도 한 마디씩 거들며 헤라클레스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모양새가 조금 그렇군.’

말투가 워낙에 늙어보여서 그렇지, 헤라클레스는 어디까지나 13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이를 둘러싸려는 세 명의 성인이란, 보기에는 참으로 좋지 않았다.

“여기는 나에게 맡겨줘.”

그런 정호의 마음을 알아차리라고 한 듯, 잔다르크는 손을 뻗어 말리고선 헤라클레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새싹인 줄 알았더니 음흉한 버섯이고. 노란 줄 알았더니, 새빨간 놈이었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이제 알게 될 거야.”

따악. 딱. 툿-.

씹고 있던 껌을 뱉어 버리는 잔다르크의 얼굴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미소.

하나, 그것이 어찌나 섬뜩한지 바라만 보는 것으로 한기가 느껴졌다.

‘그럼, 어디 심판자라고 정평 난 솜씨라도 볼까.’

정호는 그에 방관하기로 했다.

애초에 헤라클레스는 교육하려 했지 않은가.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잠깐 주춤하기는 했으나 한 번 꺾어둘 필요는 있어 보였다.

다만, 완전한 방관자의 입장에서도.

이어지는 잔다르크의 말에는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 메이든.”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나타나는 중세 시대의 고문 기구.

철의 처녀가 등장했으니까.

“뭐, 뭐야. 쟤가 그렇게 잘못한 거야? 마, 맞잖아? 이, 인간으로는 대단한 업적 맞잖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드래곤, 이그나투스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아이언 메이든은 중세 고문 기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사용했다는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애당초 아이언 메이든은 고문 기구로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녀석이다.

그저 활짝 열어, 고문할 대상을 집어넣고서.

자백하지 않으면, 닫아버리겠다고 엄포만을 놓는 게 할 수 있는 전부.

물론, 수틀리면 정말로 닫아버리기야 하겠지만.

그래서야 고문의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고문이란, 상대의 자백을 받아내야만 비로소 성립하는 것.

죽어버리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걸 교육에 써먹는다고...?’

[아이언 메이든]

-단 하나의 적을 ‘철의 처녀’에 넣어, 상당한 피해를 준다.

-아이언 메이든에 갇힌 상대는 일정 확률로 상태 이상 ‘속박’과 ‘과다출혈’, ‘공포’, ‘암흑’, ‘침묵’이 부여된다.

정말이지 수도 없이 많은 상태 이상.

어째서 잔다르크가 유저들에게서 사랑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으나.

“으읍..! 읍! 읍!”

쿠당탕, 쿠당, 쿠당탕.

안타까운 일은 그 아이언 메이든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사실이다.

활짝-.

“자기가 이단인 건 깨달았고?”

“이단이라니 무, 무슨 소리냐. 이, 이것 쯤.”

“아직 멀었네.”

쿠웅-.

알 수 없는 질답과 함께, 곧장 아이언 메이든의 문을 닫아버리는 잔다르크의 모습.

바라보는 만으로 몸에 구멍이 뚫리는 느낌이었기에, 절로 식은땀이 흐르기는 했다.

만약 보통 인간이었다면 금세 의지가 꺾이고 말았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냥 죽었겠군.’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나는 신의 아들...!”

“이단이네.”

쿵.

“지금 나의 아버지, 제우스를 모욕하려 드는...”

“이단.”

쿵.

제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수많은 상태 이상 효과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 녀석이 나를 굴복시키려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태생부터가 너희들과는 다르다.”

“이단.”

쿵.

그만한 피해를 입고서도 그 의지가 꺾이려 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하, 이놈 참.”

잔다르크가 고개를 휙 돌려, 정호를 향해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괜히 뜨끔한 얼굴로 잔다르크에게 되묻자, 다행스럽게도.

“주인, 다른 녀석들이랑 함께 조금만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얼마 걸리진 않을 거야.”

“그러지.”

잔다르크의 요구는 실로 정호가 바라던 일이나 다름없다.

달칵.

화신들과, 이그나투스와 함께 방을 나오자.

“저 동생도 꽤 화끈하네.”

“아무리 미인이라도, 저 분은 조금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쟤가 뭘 잘못 한 거야?”

저마다 감상을 늘어놓는 와중.

‘대단하긴 하군.’

정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잔다르크와 헤라클레스는 분명 같은 오 성 등급의 화신일 터.

제아무리 헤라클레스가 성장형 화신임을 감안하더라도, 저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홀딩 능력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어.’

단 하나라고는 하나, 강력한 적을 완전히 묶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서포트 능력이지 않은가.

‘적당히 힘 조절도 하고 있고.’

아이언 메이든은 분명 과격한 수단이다.

하나, 그 피해를 입은 헤라클레스의 상태로 보았을 때.

실제로 입은 피해는 그리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잔다르크가 헤라클래스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달칵-.

“아, 주인 끝났어.”

다만, 그 평가는 단 한 순간에 사라지고야 말았다.

“아, 오랜만에 힘 좀 쓰니까 목이 마르네.”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리를 비운 단 몇 분 만에.

“제가 가져 올까요? 누나.”

“그래 줄래?”

헤라클레스가 그녀의 심부름꾼이 되어 있었으니까.

“아, 주인도 필요해요?”

그녀의 이명에는 거짓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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