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3화 >
# 103화
본래라면, 정호가 톨비아 시스템을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쏟아 부은 코인이 몇인데.’
정호는 아직 톨비아가 게임이었을 시절에도 같은 이유로 아스텔로 넘어가지 못했다.
사용한 코인은 막대하고, 거기에 매몰 비용도 상당하다.
쌓아올린 공든 탑을 버리고서, 새로운 탑을 세운다는 것은 막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런데...’
한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스텔은 정호에게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200레벨과 함께 레전드리 클래스의 유지.
10만의 코인과 더불어, 유니크 장비의 존재까지.
아스텔이 보장해주겠다는 탑은, 최상위 랭커들조차도 쉬이 도달하기 어려운.
지금껏 바라던 일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면.’
본래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하나도 없었던 정호조차도 혹 할 정도다.
거기에는 톨비아가 종말의 주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아스텔이 이토록 톨비아를 배척하는 걸 보면, 정말로 그럴 지도 모르지.’
정호가 아스텔에 대해서 상당히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는 있었으나.
세계는 아스텔 덕분에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침공만 하더라도, 경비병 NPC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멸망당했을 나라가 속출 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라면, 톨비아보다는 미래가 밝을 텐데.’
정호는 매번 다음 침공에서 이루어질 던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던가.
톨비아의 시스템만으로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코인의 수를 생각해본다면.
조금 모자란 감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아스텔로 넘어가는 게 좋은 판단일 것이다.
‘이번에 안 뜨면 접지 뭐.’
게임에서는 반 진심, 반 농담으로 꺼내었던 말이나 다름없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농담의 낌새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낌새를 톨비아 또한 느낀 것일까.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15프로의 합성.
단 한 번 밖에 남지 않은 그 기회가 정말이지 쉽게 성공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와서?”
평소라면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얻어낸 화신이 무엇인지 확인하는데 급급했을 것이 분명했으나.
정호의 얼굴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어차피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어.’
분명 오 성 등급의 화신, 하나가 추가된다는 것은 파티의 안정성을 크게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에 국한되어진 일.
‘육 성 등급을 얻을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니까.’
제아무리 정호가 멀린과 같이, 최상위 던전에서도 환영받는 화신을 손에 쥔다하더라도.
톨비아 시스템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육 성 등급.
즉, ‘신’이라 불리는 신화 속에나 등장하는 화신들을 손에 넣어야만 하지 않은가.
그 기회비용은 지금껏 사용한 코인 정도는 애교로 보일 정도로 막대하여,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지간한 걸로는 마음을 돌리기엔 어려울 거야.”
정호는 괜히 비웃음을 흘리면서, 그리 입을 열고는 나타난 화신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큰 기대 따위는 없었다.
완전한 랜덤성을 가지는 뽑기와는 달리, 합성은 정직한 녀석이다.
사 성 등급의 화신 셋을 합성하여 나타나는 것은 고작해야 오 성 등급에 불과할 터.
-☆☆☆☆☆
눈앞에 떠오른 별의 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
그 화신의 정체까지 확인한 정호의 얼굴은 변함없이 침착하기만 했다.
타악-.
이윽고, 스마트폰에 올려 두었던 손을 치우고서 귀를 가져다대자.
-마음의 결정은 마치셨습니까? 정호님과 같은 특혜는 지금껏 없었던 사례입니다.
마치 정호가 아스텔을 택하는 것이 확실시 되었다는 듯, 자신만만한 남성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거절하지.”
한데, 정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네?
당연히 수락할 줄 알았다는 듯, 대답을 이어나가던 남성의 의문 가득한 되물음이 돌아왔다.
-어, 어째서입니까? 혹여나, 아스텔님을 상대로 협상을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스텔님도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고...
도저히 정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일까.
남성은 쉬지 않고, 정호를 설득하려 애썼다.
“...”
하나, 그것조차 정호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을 받아내지 못하자.
-알겠습니다. 정호님에게 있어서 이번 혜택이 모자라다는 거겠지요. 아스텔님에게 새로운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지 보고를 드려보겠습니다. 이정호님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더한 보상을 약속하기까지 했다.
‘더 줄 수도 있었다는 거지.’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정호의 마음을 더욱 단단히 할 뿐이었다.
보는 사람도 없을 진데, 정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거절하겠어.”
쐐기를 박아버렸다.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는 겁니까?
“그래.”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스텔로 기울어지던 갈대 같던 정호의 마음이 철근과도 같다.
그 사실을 수화기 너머의 녀석도 알아챈 것일까.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이제는 태도를 바꾸어,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호는 오히려 녀석에게 되묻고 싶었다.
‘여기서 어떻게 넘어 가라는 거야?’
차라리 자신의 입장이 되어보았으면 했다.
단순한 오 성 등급의 화신이라면, 정말로 아스텔의 제안에 넘어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는 그것을 간단히 뒤집을 정도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헤라클레스☆☆☆☆☆
반신. 제우스의 아들. 그리스 영웅의 정점. 세상에서 가장 힘이 쎈 사나이.
수많은 수식어가 붙기는 했으나.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녀석이 오 성 등급임에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게 전부라면 말이지.’
미소를 내짓는 정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후회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뚝.
재차 경고하는 남자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끊어버린다.
“뭐라 하는 거야 이 놈은.”
이제 아스텔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
그도 그럴 게 헤라클레스는 오 성 중 으뜸을 자랑하는 존재이면서도.
‘성장형.’
확정적인 육 성 등급의 화신이었으니까.
* * *
헤라클레스.
그리스 로마 신화 내에서.
운명의 세 여신이 ‘기간테스의 침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인간 영웅이 필요하다’라는 말에 제우스가 알크메네와 결합하여 낳은 아이다.
헤라클레스는 탄생부터가 신들의 아들이며, ‘위대한 인간 영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목적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는 오 성급의 화신이 대부분이 ‘인간’에서 전설이 되어 진 영웅들과 비교해, 그 뿌리부터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5성의 화신 중에서 그 성능은 상위권을 달린다.
-헤라클레스☆☆☆☆☆
-힘 : 240 체력 : 50 민첩 : 45 지능 : 12
-[+]
순수한 힘이 200이나 넘어서는 기염을 토해내는 스탯.
대단하기 짝이 없는 능력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분명 결함도 존재했다.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총합 능력치.
무력형 화신, 그 중에서도 으뜸을 내달린다던 헤라클레스였으나.
힘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삼 성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묘한 스탯을 가지고 있었다.
“스킬 확인.”
[힘의 권능]
-스탯 : 힘을 일시적으로 강하게 만듭니다.
(현재 최대 3배)
심플하지만 대단하기 짝이 없는 스킬.
다만.
‘하나뿐.’
본디 5성 화신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3가지의 스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래서야 오 성급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한 일.’
헤라클레스의 전체 스탯은 타 화신들에 비해 낮은 편에 속했다.
다만, 그럼에도 인기가 있는 까닭.
그것은 특정 화신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특성 때문이었다.
[고유 특성]
-12과업 : 12년간의 봉사.
헤라클레스가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 걸었던 길을 의미하는 12과업.
전투적인 요소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 고유 특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정호는 알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과업을 통과하면 할수록 성장하고, 강해지는.
‘성장형.’
이러니저러니 해도 뽑기, 수집형 게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등급의 화신이다.
당장 오 성급의 화신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육 성급의 화신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언제고 놓아주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달랐다.
‘12과업을 모두 통과하면, 헤라클레스는 6성이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키워주기만 하면, 이 확률에 미친 게임에서 확정적으로 6성이 된다.
6성 화신이 뽑기에서 나올 확률 0.00012프로.
5성 화신을 합성한다 하더라도, 최소 셋 이상의 중복 화신을 소모한다.
그런 팍팍한 확률 속에서.
‘확정.’
확정.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이던가.
그 사실은 이 코인에 미친 게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 헤라클레스를 뽑았으니, 아스텔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정호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는 했다.
헤라클레스는 분명 ‘확정 육 성 등급’이라는, 놀라운 효과 덕분에 많은 유저들이 키우는 주력 화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전 내에서 트롤짓으로 많은 피해를 주기도 하는 녀석이기도 했다는 것이 문제다.
‘기다려라고 할 정도니.’
화신이 개도 아니고, 녀석을 향해 ‘기다려’라는 키워드로 던전 입장 전에 확인하는 과정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였다.
‘키드 때와는 차원이 다르지.’
키드는 단순히 장난기가 많은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명실상부, 신을 아비로 둔 녀석.
그 자존감과 오만함을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교육이 어려운 녀석 중 하나니까.’
실제로 헤라클레스를 뽑아놓고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유저들이 대다수였다.
제아무리 성장형이라고는 하나, 그 근본부터가 오 성 등급인 녀석이다.
운이 좋게 헤라클레스를 손에 넣었다고 한들.
녀석을 교육하려면, 그만한 힘을 지닌 화신이 존재해야만 했다.
“뭐,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정호는 그에 대해서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정호는 이미 녀석을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화신을 보유한 상태였으니까.
“아틸라, 이그나.”
처음으로 부르는 것은, 한편에서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아틸라와 이그나투스.
“뭐해? 주인이 부르잖아.”
“흐, 흥...! 내 이름은 이그나투스야. 이그나가 아니라. 아야. 갈게. 간다고.”
분명 이 두 명만으로도 충분히 헤라클레스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호는 무엇이든지,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었다.
“멀린 소환.”
두 번째로 소환하는 것은 대마법사 멀린이다.
“마스터. 이 어여쁜 아가씨는 누구입니까? 지금이야 작지만, 성장하면 꽤 볼만 하겠군요.”
“으, 이 변태는 뭐야.”
그리고 마지막.
그 존재를 부르기 전, 정호는 미소를 내지었다.
‘설마 헤라클레스가 나타난 게, 이것 때문이었나?’
분명 정호가 보유한 오 성 등급 화신 중 하나는 이번에 ‘플래티넘 뽑기’를 통해 얻은 녀석이다.
전천후 만능.
완벽한 육각형을 그리는 스탯과 함께, 서포팅 능력도 출중한 화신.
“잔다르크 소환.”
구국의 성녀라 불리며, 프랑스의 전설적인 영웅.
따악, 따악.
“불렀어? 이단이라도 있나 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풍선껌을 소리 내어 씹으며 나타나는 잔다르크.
상당히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정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마도, 교육이 필요한 녀석이 있을 것 같아서.”
“앙? 그거 좋지. 이단 녀석이란 말이네.”
그녀는 저렇게 보여도, 톨비아에서 또 다른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니까.
절그럭.
정호의 말에 곧장 손에 든, 철퇴를 손아귀에서 바짝 당긴다.
그녀의 또 다른 별칭.
그것은 바로.
‘심판자.’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녀석에게 철퇴를 내리는, 육성의 스페셜리스트였으니 말이다.
“맡겨만 줘 봐.”
짜악. 짜악.
잔다르크의 믿음직스러운 껌 씹는 소리와 함께.
“헤라클레스 소환.”
정호의 담담한 한 마디의 말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