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화 >
# 102화
모든 확률성 뽑기에서 가장 악랄한 것.
그것은 채 1프로도 되지 않는, 극악한 확률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아니다.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가장 악랄하고, 극악한 것은 누구나 시도해볼 법한 확률을 가진 놈들이다.
“아니...!”
본래 톨비아에서 합성이란 뽑기와는 달리 상당히 합리적인 수단이었다.
제아무리 현금을 투자한다 하더라도, 얻어낼지 확신을 할 수 없는.
소수점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는 뽑기와는 달리, 합성은 30프로, 20프로.
그야말로 톨비아에서 몇 안 되는 확실한 스펙 업 수단.
정호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프리미엄 뽑기’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 아닌가.
“이게 왜 실패해?”
다만, 아무리 확률이 높다고 한들.
그것도 일단 성공을 해야 하는 법이다.
“20프로잖아...!”
삼 성 등급의 합성 성공 확률은 10프로.
VIP 보너스로 얻은 합성 확률 증가의 버프로 10프로.
총합 20프로나 됨에도 불구하고, 초장부터 억장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이 상황을 정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최소한 여섯 번은 성공해야 한다고.’
정호가 보유한 삼 성 등급의 중복 화신은 도합 서른.
합성에 셋의 화신이 포함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고작해야 그것으로 사 성 등급의 화신을 여섯이나 얻으려는 정호의 심보는 실로 고약하기 그지없었으나.
‘사 성 등급의 화신은 중복이 몇 없는데.’
오 성 등급의, 전설 화신을 뽑으려는 정호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간절함이었다.
‘이 흐름은 도전해보라는 거잖아.’
하필이면 코인을 다 썼을 때, 나타난 VVIP의 보너스인 ‘상위 화신 합성 확률 증가’.
그저 우연으로 치부해도 무방한 상황이었지만.
그 따위 것은 정호에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연이니까. 우연으로 나타났으니까.’
확률이란 언제나 우연의 연속이다.
아무 감흥 없이 돌린 뽑기에서 ‘우연히’ 상위 화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정호에게 있어서 우연이란 곧, 필연.
세상의 운이 자신에게 몰리고 있다는 증거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여기선, 당연한 듯이 성공을 했어야 했는데.’
기회는 고작해야 열 번 남짓.
비록 합성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셋 중 하나는 남는 법이니 조금 더 시도해볼 수는 있었으나.
까득-.
엄지손톱을 깨무는 정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깃들었다.
‘어쩔 수 없지.’
정호는 그 초조함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플래티넘 뽑기를 통해 이미 목표치는 달성하지 않았던가.
“...이건 보너스야. 보너스. 그저 한 번 기회를 준 것 뿐이라고.”
의미 없는 자위질임을 알고 있음에도, 정호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평소의 정호였다면 단순한 징크스를 위함이었을 터.
한데, 정호의 낌새가 이상했다.
“합성. 합성. 합성.”
계속되는 확률의 늪에 정신을 놓아 버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포기해버린 것인지.
패닉에 빠진 이처럼, 정호는 틈을 주지도 않은 채 합성을 내뱉었다.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분명 이십 프로라던 확률은 정호의 믿음을 완전히 배신한 채.
계속해서 실패만을 떠들어대고 있었으나.
“합성.”
정호의 얼굴에는 단 한 줌의 표정 변화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듯.
미래를 완전히 져버리는 듯한 행동.
하지만 확률이란 것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지 않듯.
화아아아악-.
뿜어져 나오는 빛과 동시에.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기어코 다섯 번째 합성에서 성공을 이루어냈다.
다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기회의 절반 가까이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형가☆☆☆☆을 획득하셨습니다.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한 전설적인 자객 형가.
녀석은 정호가 이미 보유하지 못한 화신.
즉, 중복 화신조차 아니었다.
목표로 했던 오 성 등급으로의 합성은 불가능해진 정말이지 절망적인 상황.
그 상황 속에서.
“지금...!”
지금껏 무표정을 고수하던 정호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그 눈동자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생기가 맴돌아 있었다.
“...합성...합성...합성.”
이어지는 합성의 행렬은 실로 기묘했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쉬지 않기보다, 오히려 약간의 시간을 지체하며 일정한 속도로 합성을 하기 시작했다.
한데, 기묘한 일이었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합성을 하는 족족, 성공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흐름이란 게 있다니까?’
거기에는 다음 합성에도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마저 비추고 있었다.
* * *
정호는 모든 확률에 관련된 일에는 하나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두 가지의 색이 존재하는 막대기.
그곳을 일정한 속도로 왔다-갔다-하는, 하나의 짧은 바늘이 있고.
그 멈춘 곳의 색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는 생각.
단 한 번이라도 그 색이 도사리는 위치를 알아내기만 한다면, 언제든 당첨을 노릴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
‘망상이지.’
그것이 실로 시답잖은 망상이라는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조인☆☆☆☆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만 좋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한 순간, 한 순간의 우연으로 결정되어진다면.
이 결과 또한, 우연의 일부일 뿐이다.
‘일곱.’
실패한 화신을 포함하여, 도합 열 한 번의 기회.
그것으로 일곱이라는, 원했던 결과물보다 더한 화신을 얻어낸 정호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떠올랐다.
“딱 한 번이라...”
조인 둘과 서서 하나로 이루어진, 중복 화신.
누가 맞춘 것도 아닐 진데, 단 한 번 오 성 등급에 도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누가 뽑힐 지가 문제군.”
이미 일곱 번 연속 성공이라는 맛을 맛본 정호에게 실패라는 불안감은 떠오르지 않았다.
‘달칵. 달칵. 달칵.’
지금 이 순간에도, 정호의 머릿속에는 막대기 위를 항해하는 바늘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15프로.’
사 성 등급의 합성 확률은 분명 5프로 밖에 되지 않았으나, VVIP 보너스 중 하나인 ‘상위 화신 합성 확률 증가’로 10프로가 더해진 마당.
정호는 자신만의 막대기에서 양 쪽을 살짝 덜어내고서 계속해서 망상을 이어나갔다.
‘조금 더 중앙에 맞추자. 확실하게.’
달칵. 달칵. 달칵.
정호는 아예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회는 단 한 번 뿐.
지금까지의 뽑기와 합성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다.
실수, 실패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조금 더. 조금 더.”
달칵. 달칵. 달칵.
이윽고, 바늘이 완전히 그 중심점에 도달했을 때.
번쩍-.
정호의 눈이 번쩍 뜨이며, 입을 열었다.
“합...!”
아니, 열려고 했다는 것이 정확했다.
따르르릉-.
갑작스레 산통을 깨는 전화기만 없었다면 말이다.
“아, 깜짝이야.”
정호는 크게 놀라며, 슬쩍 스마트폰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070-0000-0000
“하필이면 이럴 때 이딴 전화가 오고 난리야.”
070이라면, 인터넷 전화 전용의 번호.
굳이 받지 않아도 스팸 전화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정호는 그 전화를 받지도 않은 채, 곧장 종료버튼을 눌렀다.
‘하마터면, 잊을 뻔 했네.’
달칵. 달칵. 달칵.
정말이지 초인적인 망상!
정호는 자신의 머릿속에 움직이는 바늘에 주의하며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것도 모두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따르르르릉-.
-070-0000-0000
완전히 집중할 때 즈음, 다시금 걸려오는 070의 전화.
그것은 한, 두 번에 그치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걸려오는 것이 아닌가.
“미치겠군...어떤 녀석이야.”
삑-.
정호는 차단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기까지 했다.
스팸 전화 하나에 자신의 인생 전부가 걸린 합성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후우...!”
이제는 정말로 방해할 것이 없어졌다.
정호가 안심을 하고서, 합성을 위한 망상에 완전히 빠져들려는 그 때.
-따르르르릉.
“...뭐?”
정호는 온몸에 솟아오르는 닭살과 공포로 하마터면 욕지거리를 내뱉을 뻔 했다.
그도 그럴 게.
-070-0000-0000
분명 꺼놓았을 전화가 울려대고 있었으니까.
“...”
이제는 막대기가 무엇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 * *
한참이나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정호는 결국 그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반갑습니다. 이정호님.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것은 처음 듣는 남성의 목소리.
정호는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다.
꺼놓은 전화에서 울려 퍼지는 전화는 그야말로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누구지?”
하지만 정호는 침착하게 그 말을 받았다.
분명 비현실적이기는 했으나.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게임이 현실이 되는 마당에, 꺼진 전화에 통화가 걸려오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지.’
자신이 쥐고 있는 톨비아의 시스템이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어진 아스텔의 시스템이든 그것은 모두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이 아닌가.
그런 것에 비하면, 꺼진 전화에서 걸려오는 통화 정도는 애교에 불과한 수준이다.
‘가능해 보이는 녀석도 있고 말이지.’
그런 정호의 생각처럼.
-물론, 아스텔님의 전갈입니다.
걸려온 전화는 아스텔과 관련되어 있었다.
“아스텔이 나한테는 무슨 볼 일이지?”
다만, 정호는 퉁명스럽게 그 말을 받았다.
아스텔은 분명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대상이 될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정호에게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제는 종말과 관련된 소식도 주지 않는 주제에?’
본래 정호는 아스텔로부터 상태창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그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을 지언데.
‘크라켄의 역습’의 침공에서는 아예 그 소식을 일방적으로 끊은 이가 바로 아스텔이지 않은가.
그런 이가 갑작스레 연락을 취해온다 하여 정호가 두 팔을 벌려 환영할 이유는 없었다.
“연락을 취할 거라면, 전갈이 아니라 직접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알려드릴 수 없지만, 아스텔님께서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상황 정도로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였으나, 지금 따져봐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정호도 잘 알고 있었다.
“뭐, 그런 걸로 하지. 그래서?”
정호는 지금 당장 본론을 원했다.
‘중요한 시점이었는데.’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될 합성.
그것을 한 통의 전화가 완전히 망쳐버리지 않았던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바람에, 머릿속의 막대기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다.
‘시답잖은 일이라면.’
까득-.
이를 가는 정호의 얼굴에 악귀가 떠올랐다.
통화의 상대가 누구이던, 아스텔이 누구이던 간에 정말로 한 판 붙을 자신도 있었다.
한데, 이어지는 말.
-정호님에게 아스텔의 권한을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그에 정호는 눈을 흘길 수 밖에 없었다.
“아스텔의 권한이라면?”
-물론, 시스템입니다.
“...어?”
정호는 눈을 크게 떴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상태창을 주겠다는 이야기가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내가 레벨 업이 가능하게 하도록 한다는 건가?”
혹시나 싶어, 되묻는 말에도.
-물론입니다.
시원한 대답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분명 좋은데.’
지금껏 바라고, 부러워했던 시스템.
하지만 절대로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 바로 아스텔의 시스템이지 않은가.
한데, 그 이야기를 들은 정호의 얼굴은 좀처럼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스텔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시스템을 쥐어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전갈을 보내어, 자신의 의사를 확인한다는 의미.
“조건은?”
꿍꿍이가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예상가는 바가 있었다.
-톨비아 시스템의 완전 철폐입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정호의 예상과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았다.
“그건 곤란한데.”
종말의 주체인 톨비아를 아스텔이 적대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정호는 톨비아의 시스템으로 지금껏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것을 지금 완전히 저버리는 것으로 새롭게 아스텔의 시스템을 얻을 수 있다 한들.
톨비아 시스템으로 이루어낸 성장을 지금 이 시점에서 따라가기엔 무리가 따랐다.
-알고 있습니다. 정호님은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아스텔님께서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할 생각이십니다.
“편의?”
-상태창이 부여됨과 동시에 레벨 200. 레전드리 클래스의 유지. 코인 10만과 유니크 등급의 장비도 제공할 겁니다.
이어지는 말에 정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10만의 코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정말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르겠어.’
레벨 200이라면, 현재 최상위 랭커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러 있지 않은가.
“만약 톨비아 시스템을 져버린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단순히 수락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스텔님의 권한이 깃들면, 톨비아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퇴출당할 테니 말입니다.
생각보다 간단하기 짝이 없는 절차에 점차 마음이 끌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고민 좀 하지. 잠시 기다려.”
정호는 그렇게 말을 하고선, 더 이상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휴대폰을 덮었다.
“...그렇다는데?”
말을 내거는 곳은 천장.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톨비아를 향해서다.
“제대로 된 걸 안 주면 넘어갈 법 한데?”
정호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는 외쳤다.
외쳐야 할 것은 당연하게도.
갑작스레 걸려온 통화에 의해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합성.”
화아아아아아악-.
물론, 그 결과는.
-합성이 성공하였습니다.
실패했더라도, 성공이라고 내보낼 수밖에 없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