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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01화 (102/144)

< # 101화 >

# 101화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입장에서 볼 때.

특히나 RPG 종류의 게임을 선택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재미가 있는가- 라는 점을 최우선적으로 둔다.

하지만 아무리 취향에 맞고, 흥미를 느낀다고 한들.

그 게임에 진입 장벽이 있다면, 쉬이 달려들기 어렵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톨비아는 끝도 없이 펼쳐진 만리장성과도 같은 게임이었다.

과금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지루한 반복 노가다만이 기다리고 있고.

그렇다고 어중간한 과금으로는 상위 던전으로 향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톨비아로 향하는 유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요소가 있었다.

‘VIP 시스템.’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냄새가 풀풀 난다.

유저들을 게임사가 자신들만의 기준. 즉, 과금의 총량으로 등급을 나누는 시스템.

발걸음을 채 내딛기도 전에, 화들짝 도망가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VIP나 프리미엄 서비스처럼 일정 이상의 과금을 한 유저들에게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은 게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게임사의 입장에서는 무, 소과금 유저 백 명보다도, 과금 유저 단 한 명.

특히나 ‘고래’라고 불리는 유저 하나가 수입에는 훨씬 도움이 많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해는 해. 이해는 하는데.’

그것은 유저들이라고 할지라도, 이해는 하고 있는 대목이다.

게임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수입이 발생해야 한다.

자신이 지르지 않은 만큼, 누군가가 대신해서 서버비를 내야 게임이 굴러가지 않겠는가.

어느 정도의 편의성 제공 정도라면 감수할 생각은 있었다.

‘너무 나가긴 했지.’

하지만 톨비아는 이 시스템을 너무도 악랄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VIP 시스템을 게임의 필수요소로 집어넣은 탓이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서, ‘소환 개체 수 증가’.

인게임에서도 얻어내기 어려운 그것을 그저 과금을 많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얻어낸다.

그것으로 인한 유저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호는 자신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 이것 참.”

[VVIP]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일 뿐일진데 금빛이 감돌고 있다.

물론 정호는 이 VVIP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금우라니.’

그 금빛의 칭호는 톨비아에서는 금우(金牛)라고 불리는, 최상위권 유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벌써 그렇게나 질렀다고?’

정호는 톨비아에서도 최상위권 랭커에 진입한 유저였다.

거기에는 무려 1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유저들의 입장에서 거금일 뿐이다.

최상위권 유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정호가 비정상적인 수준이다.

무려 1억에서, 겨우 1억.

그 정도로 랭커에 도달한, 운이 억세게 좋은 놈이 바로 톨비아에서 정호의 위치였다.

‘운이 좋기는 했지...’

내심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정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첫 과금에 육 성 등급의 포세이돈을 뽑았지 않은가.

그 이후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최상위권 유저들의 금빛 칭호에 비해서는 한참 못 미치는 노력이다.

‘...나를 볼 때마다, 이상한 표정을 짓던 이유가 있었군.’

당시 정호로써는 그들의 그 시선을 단순한 시기와 질투라고 생각했건만.

금우의 칭호를 얻고 나서야, 그들이 어째서 묘한 눈빛을 보내었는지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얻으려고 해서 얻은 게 아니었어.’

VIP 칭호를 달기 위해서 필요한 과금액은 1천만원.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칭호이니 조금 높은 가격에도 노리고서 달려들었지만.

VVIP는 전혀 다른 녀석이다.

곧장 억대로 진입하고, 조건마저 챙겨야 하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칭호.

고작해야 칭호밖에 되지 않는 그 목표를 위해 억 대를 쉬이 내던지는 이들은 없다.

어디까지나 VVIP란, 게임을 즐기다보면.

아니.

과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가적인 요소였다.

“참나...”

정호의 얼굴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듯 일그러졌다.

최상위 랭커까지 도달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금우의 칭호를 아직 그 반도 도달하지 못했으면서 얻었지 않은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자신에게 있어서는 큰 금액을 투자해서 쟁취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실제로는 단순히 자신의 운이 억세게 좋았기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지 않은가.

‘처 망할 만 했네.’

톨비아는 망할 만 했지만, 아스텔 때문에 급속도로 망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정호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흔드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뭐, 좋아.”

정호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듯, 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메시지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결국은.

빙글- 미소를 내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지.”

지금 이 절박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VVIP는.

[VVIP특전 사항]

[상위 화신 합성 성공률 증가]

[상위 장비 강화 성공률 증가]

[상위 장비 합성 성공률 증가]

[매달마다 플래티넘 확정 뽑기 1회 가능]

“플래티넘 뽑기!”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으니까.

* * *

“후우, 후우...!”

정호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플래티넘 뽑기.

[VVIP 플래티넘 뽑기]

[4성 이상의 화신이 등장합니다]

마지막 뽑기까지 실패한 끝에,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

그것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인간을 초월한 성인으로 칭송받아 마땅했다.

더군다나 4성 이상의 화신이라면, 즉각적인 투입이 가능할 정도이지 않은가.

하지만 정호가 원하는 바는 전혀 달랐다.

‘무조건 오 성 이상. 그것도 상위의 화신으로!’

게임이든, 현실이든.

정호는 수많은 뽑기를 해보았다.

모든 뽑기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정호의 흐름은 그야말로 최악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건 주겠다는 이야기지.’

금우의 칭호는 코인을 완전히 소모함과 동시에 나타났다.

이토록 딱 알맞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필연! 운명! 팔자! 이미 그렇게 되기로 결정되어 있는 거야.”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는 정호로써는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VVIP 플래티넘 뽑기 1회 가능]

[한 달에 한 번만 뽑기가 가능합니다]

-소환하시겠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런 굳은 믿음이 있기에 비로소.

팽그르르르-.

룰렛이 돌아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정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되어 있었다.

‘화려하군.’

매와 같은 눈으로 룰렛 안에 들어 있는 화신들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 성이 셋이나 보이다니.’

비록, 육 성 등급이 없다는 것은 아쉬웠으나.

제아무리 플래티넘 뽑기라 할지라도 사 성 등급 이외의, 그 이상의 등급에 대해서는 확률이 늘어나지 않았음이 분명했기에.

셋이나 룰렛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마땅했다.

‘저 녀석만 안 나타나면 되겠어.’

하지만 정호는 결코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룰렛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화신들은 아직 손아귀에 들어온 녀석들이 아니다.

마치 완전한 랜덤처럼 보여지는 룰렛이었으나.

실상은 그저 보여주기 식인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저 녀석만 아니면 돼.’

한참이나 돌아가는 룰렛을 바라보는 정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

별이 넷 밖에 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보다는 그 이름이 정호의 평정심을 뒤흔들었다.

-벤자민 호르니골드☆☆☆☆

‘저 놈이 왜 끼어 있는 거야.’

벤자민 호르니골드라면, 물론 정호가 필요로 하는 녀석이기는 했다.

삼 성 등급의 화신을 모두 모은 입장에서.

벤자민만 소유한다면, 해적 도감을 완전 수집을 얻어낼 수 있었으니까.

‘아니야.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을 마지막의 기회.

플래티넘 뽑기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녀석이었다.

‘넣어둬. 넣어둬.’

티디디딕-.

서서히 그 속도를 줄여나가는 룰렛.

그것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벤자민이 룰렛의 앞면에 들어갔을 때에는 울상을 지었고.

휘리리릭-.

“휴우...!”

다시금 속도를 내어 뒤로 물러났을 때에는 안도의 한숨을 흘린다.

티딕. 티딕. 티딕.

하나, 이제는 그 룰렛의 속도가 완전히 멈추어서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정호의 급박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분명 아직까지는 벤자민의 이름이 올라오지는 않았으나.

이 속도라면 분명···.

-베자미 호르니고드

서서히 나타나는 악몽.

아직까지는 그 아래의 자음까지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세 번.

단 세 번만 룰렛이 힘을 내어버린다면, 완전히 벤자민에서 멈추어 설 흐름이었다.

휘적- 휘적-.

정호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어, 잡히지 않는 룰렛을 붙잡으려 애썼다.

“멈춰. 멈추라고.”

달칵. 달칵.

두 번의 움직임.

벤자민까지는 단 한 번만을 남겨둔 룰렛.

그것에 정호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다-알칵.

결국 룰렛이 한 번 더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빰빠람-!

축하를 알리는 빵파레가 울려 퍼졌다.

“아.”

두 눈을 감았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그것을 너의 미래라고 말하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군대 선임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그 새끼를 확 족쳤어야 되는데.’

이 재수 없는 결과가 마치 그 녀석이 원인인 것만 같아 욕지거리를 내뱉기는 했으나.

그것이 의미 없는 화풀이일 뿐임을 알고 있는 정호는 그 존재를 기억 속에서 지웠다.

지금은 그런 녀석을 떠올리기보다 먼저.

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맞이해야 했으니까.

“하아... 그래도 벤자민이면 도감이라도 하나 제대로 완성시키니까.”

정말이지 의미 없는 자위질을 하며, 서서히 눈을 뜨는 정호.

“허, 허허. 하하. 하하하.”

그 결과를 바라보는 정호의 입에서 실성이라도 한 듯, 웃음이 터져 나온다.

당연하게도 눈앞에 있는 것은 ‘벤자민 호르니골드’의 이름.

하지만 그럼에도.

꽈악-.

정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달칵이 아니라.”

그도 그럴게.

녀석의 이름은 존재했으나, 그것이 있어야 할 위치가 조금 어긋나 있었다.

“다알칵이었어!”

당첨 칸의 바로 윗 칸에 존재하는 사 성 등급의 화신, 벤자민 호르니골드.

고작 한 칸 차이에 불과했지만.

그 말인 즉.

전혀 다른, 새로운 화신이 뽑혔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요안나 아르크(Ioanna Arcensis)”

룰렛이 멈춰선 곳은 사뭇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름.

하지만 정호는 그 정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세상 모든 이들이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르크의 잔.

아르크의 성녀.

성녀 요안나 아르크.

그 모든 이름은.

[구국의 성녀, 잔다르크☆☆☆☆☆]

프랑스의 전설적인 영웅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니까.

* * *

잔다르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녀인 그녀는 실로 믿어지지 않을 업적을 남긴 영웅이다.

고작해야 17세의 나이.

그것도 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문맹이었던 그녀가 단숨에 프랑스 왕국의 총사령관이 되는가 하면.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전쟁을 열흘 만에 끝내버리는가하면.

백년이 넘게 지속되었던 전쟁을 단숨에 끝을 보게 한.

그야말로 검증 불가능한 신화를 제외하고서야 그녀와 비견될 만한 영웅이 없을 정도이지 않은가.

‘톨비아에서도.’

그것은 비단 역사적인 관점만이 아니다.

톨비아에서 또한 그 평가는 다르지가 않아서.

잔다르크라 한다면.

‘만능 화신.’

무엇이든지 가능한 만능의 화신.

단순한 스탯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힐러, 근거리 딜러, 원거리 딜러, 버퍼, 탱커.’

분명 스킬은 세 개에 불과할 지언데.

잔다르크는 다섯 개의 클래스가 가지는 모든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어느 한 쪽에 특화되지 않은.

그저 그런 화신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으나.

그녀만은 달랐다.

개인적인 무력뿐만이 아니라, 아군을 서포팅하는 능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

육 성 등급의 화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다르크를 선호하는 자가 있을 정도다.

“으, 으으으...!”

정호는 잔다르크를 당장이라도 소환해보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아직...아직이야.’

애당초 정호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프리미엄 뽑기’를 진행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껏 뽑아왔던 화신들은 비단 처음 보는, 새로운 화신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합성.”

무려 수십 번은 합성을 시도할 정도의 중복화신.

그것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흐름은 멈추지 않았어.’

[상위 화신 합성 성공률 증가]

VVIP 특전은 ‘플래티넘 뽑기’만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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