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8화 >
# 98화
아스텔 신전과 함께 나타난 레전드리 클래스의 존재.
그것을 한 번이라도 도전해보기 위해 찾아왔던 이들은 그 난이도를 보고서 도망치듯 신전에서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레전드리 클래스라는 이름의 마력은 상당했다.
다음 날의 태양이 떠오르자, 그 수가 제법 줄기는 했으나 상당수의 인원이 다시금 신전을 찾았다.
“오늘은 무언가 힌트를 주지 않을까?”
“헌금이라는 거에 얼마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들 나름대로의 분석을 가지고서 말이다.
한데,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실로 의외의 소식이었다.
“...죄송합니다. 신도님. 이제는 용을 만나보실 수는 없으십니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기를 꺼리는 듯, 돌려 말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벌써 전직한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용기사가 떴다!”
레전드리 클래스 중 하나인, 용기사로 전직한 이가 이미 있다는 말이었다.
“말도 안 돼!”
“그 드래곤한테서 어떻게?”
스스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던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이미 레전드리 클래스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려웠다.
그것도 단 하룻밤 만에 이루어진 일.
웅성웅성.
사람들의 혼란은 말을 할 것도 없었다.
이 소식을 널리 알리려,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두들기며 알리기도 했다.
[레전드리 클래스의 탄생]
[용기사를 소유한 나라는 어디인가?]
순식간에 알려지는 그 소식들은 곧장 기사가 만들어졌다.
-레전드리 클래스가 도대체 얼마나 좋은 거임? 난리도 아니네.
┖어지간한 히든 클래스만 하더라도, 랭커에 들 수 있는 수준이니까.
┖유니크 클래스 중에서 ‘제왕’이 있는데, 이거 하나로 뉴비가 최상위 랭커 찍은 전적이 있음. 왕국에 보유한 기사들로 폭업 했다고 하던데. 레전드리면...
-와, 그럼 드래곤으로 폭업할 수 있는 거임? 진짜 미쳤네.
┖그거야 까봐야 아는 일이지만, 랭커들도 상당히 긴장해야 될 걸.
그저 직업 하나로 랭커가 될 수 있는 힘.
그것을 거머 쥔 이가 어떤 방식으로 얻었는지는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레전드리 클래스의 등장은 곧, 새로운 랭커의 등장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까.
-그럼, 과망플은 어떰?
┖과망플이 여기서 왜 나와?
-아니, 랭커들이 긴장해야 되는 수준이면 과망플까지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 아니야?
그런 와중에 떠오르는 하나의 의문.
부동의 랭킹 1위이며, 그저 영상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던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존재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그래도 레전드리 클래스면.
┖┖시간이 흐르면 분명 넘어설 거임.
전제 조건이 붙기는 했으나.
무려 지난 침공에서 바다를 가르는 위용을 보여준 이를 넘어설 수 있다.
그것이 아스텔 유저들 대부분의 의견이기도 했다.
-와, 그 정도였다고? 아, 나도 계속 도전해볼 걸.
하나, 그렇기에 예측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용기사가 된 게 아닐까?
┖이미 유니크 직업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한데 뭘.
┖마검사 종류라고 생각해봄.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사실은 직업을 가지지 않고 있었고.
“나, 나를 어떻게 할 셈이냐.”
이미 포획한 드래곤을 집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 * *
정호는 레드 드래곤, 이그나투스가 기절한 틈을 타, 철저하게 몸을 속박시켰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지.’
이그나투스가 비록 자신에게 패배를 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직 퀘스트에 의한, 약체화가 걸려 있었던 탓일 뿐이다.
‘더군다나, 로드니까.’
애당초 드래곤이라면, 정호가 모든 화신을 꺼내놓고도 승기를 장담하기 어려운 녀석이다.
이그나투스는 그런 드래곤들의 수장, 로드.
용기사로 인정을 하겠다고는 했으나, 손아귀로 들어온 녀석이 송곳으로 찌르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자아를 지니고 있다면, 화신과 같은 취급일 터.’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포획을 한 처지였기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으음...음.”
이윽고, 이그나투스가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음...헉! 뭐, 뭐냐. 여기는 어디냐.”
이그나투스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보이는 정호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절그럭.
하나, 온 몸에 잔뜩 휘감겨 있는 사슬.
단순한 임시방편에 불과한 수준의 속박이었으나, 적어도 이그나투스에게 상황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일이었다.
정호는 쪼그려 앉아, 이그나투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는 입을 열었다.
“일어났나?”
“그, 그렇군... 나는 패배했던가.”
안도의 한숨을 흘리는 녀석에게 정호는 히죽 입술을 들어올렸다.
“십 만 코인이 걸린 일인데, 그리 쉽게 죽일 수는 없지.”
완전히 힘을 되찾은 이그나투스가 이곳에서 날뛴다면, 큰 사단이 나고야 만다.
분명 어르고, 달래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나, 정호는 그리 하지는 않았다.
‘이미 한 번 꺾인 녀석에게 자존심을 되찾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오히려 지금 해야 할 것은, 패배감에 절어 있는 녀석을 향해 강경하게 나가는 일이다.
“하, 하하. 설마 인간에게 패배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아니나 다를까.
그 자존심 강한 드래곤이 패배를 인정하고서,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절그럭.
“이건 이제 필요 없겠지.”
정호는 여유로운 태도로, 이그나투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사슬을 풀어내었다.
“어째서 내가 이 시점에 불려왔는지 몰랐지만... 너를 보니 이해가 되는군. 이미 인간으로써의 한계를 넘어섰어.”
“과한 칭찬이군.”
“아니, 너는 스스로의 힘에 대해 제대로 깨닫는 편이 좋다. 아마도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침공에서도 너와 같은 자는 없었을 테니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서, 칭찬을 남발하는 이그나투스.
하나, 정호는 녀석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모든 침공?”
“음? 그렇군.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겠어.”
과연 반신이라 불리는 녀석인 탓일까.
이그나투스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이곳... 그러니까 지구라고 했던가. 침공은 이곳에서만 이루어졌던 일이 아니다. 이미 숱한 세계가 패배하고 사라졌지.”
“세계라니, 다른 세계도 있었나?”
“왜 없겠어. 이곳에는 드래곤도 없을 텐데.”
그러고 보니, 아스텔이 처음 나타났을 때.
-행성, 지구의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녀석은 굳이 행성, 지구라는 표현을 이용했었다.
그 말인 즉, 특정 지역에 대해 한정을 지을 필요가 있었단 말이다.
침공이 처음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필요 없는 표현이었다.
다만, 그렇다면 궁금한 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종말이 이 곳에서만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면, 다른 세계는 어떻게 되었지?”
아스텔은 침공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였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익숙한 게임의 형태부터 시작한 튜토리얼부터 시련까지.
상당히 공을 들이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
다만 그런 준비를 했다는 것은 즉.
“물론 패배했지.”
실패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역시나. 그럼, 녀석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지?”
“두 번째 침공이라면, 이미 만나본 기억이 있을 텐데?”
“음?”
“라크레시아.”
갑작스레 하나의 지역을 꺼내는 이그나투스의 말에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아.”
이윽고 떠올리는 것은 던전, ‘크라켄의 역습’이 침공하며 나타난 쥐꼬리를 가진 상인들.
-라크레시아 지역의 걸작. 80톤 급 갤리온 선, A1 하인츠 호네.
그들은 선박을 대여하는 조건으로, 코인을 받아가는 꽤나 물욕이 강한 녀석들이었다.
“라크레시아의 녀석들은 상당한 손재주를 가지고 있어. 침공도 생각보다 오랫동안 버틴 녀석들로 알고 있으니까.”
“상인이 된 이유는 그럼.”
“코인을 얻어, 자신들의 세계를 다시 되살리기 위함이지.”
지금까지 얽히고설켰던 실타래가 풀려나가자,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코인으로 세계를 되살릴 수도 있다라.”
정호에게 있어서 코인의 중요성은 말을 할 것도 없었으나.
그것을 이미 멸망해버린 세계를 구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아스텔이 노예로 부릴 뿐이지만.”
다만, 덧붙여진 이야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세계 하나에 십 억 코인이야. 그것으로 아스텔이 힘을 빌려주는 거지.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야. 그 전까지는 목숨을 담보로 멋대로 이용해먹을 뿐이고.”
“뭐? 십 억?”
정호는 눈썹을 들어올렸다.
세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기회나 다름없었으나.
그것으로 무려 십억이라는 코인을 요구한다니.
입술이 절로 비틀렸다.
‘십 억 코인이면. 뽑기가 몇 번이야?’
그 이유가 참으로 보잘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나도 이 꼴이 된 거고.”
“...뭐?”
마치 참지 못할 정도의 분노를 느낀 것처럼.
이를 갈아대는 이그나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그렇다면.”
“그래, 우리도 패배했다.”
조금 전, 라크레시아의 멸망을 들었던 것과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녀석들은 분명 대단한 선박을 팔고 있기는 했으나, 결국은 장인에 해당하는 녀석들.
하나, 드래곤은 아니지 않은가.
‘드래곤이 있는 세계가 막아내지 못했다고?’
직접 맞붙어보았기에 더욱 잘 알았다.
약체화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그나투스라면 정호의 전력을 완전히 상회하는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을 터.
그런 이가 도사리는 곳이 패배하여,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은 쉬이 넘겨볼 일이 아니었다.
“너도 세계의 부활이 목적인가?”
“물론이다. 나는 드래곤의 로드로써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결국은 녀석도 라크레시아의 상인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는 인생, 아니 용생을 살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다만, 녀석의 목적은 좀 더 다른 곳에 있는 듯 했지만 말이다.
“복수는 해야 하지 않겠어?”
실없이 웃음을 짓는 이그나투스의 얼굴이 사뭇, 쓸쓸해 보이는 것은 착각은 아니었다.
정호는 녀석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녀석의 목적이 복수라면.
레전드리 클래스라는 ‘용기사’는 단순히 이그나투스의 마음에 든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의 기준에서, 침공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이.
“나는 합격인가?”
“차고 넘치는 수준이야.”
그런 녀석의 기준에 정호는 부합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그런 이그나투스가 모르는 일이 존재했다.
‘후회나 하지 말고.’
정호는 아스텔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녀석이 가장 증오하는 침공의 주체, 톨비아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직업이라면 레벨에 따를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레벨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 * *
서둘러 용기사로의 전직을 준비하고 있는 이그나투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이곳은 레벨이라는 시스템으로 성장한다고 했던가?’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호가 가진 무력은 이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을 넘어섰다.
‘평균적으로는 떨어지는 수준이었어.’
이그나투스는 굳이 십만 코인이라는 거금을 내고 오지 않은 이들이라 할지라도.
수없이 밀려오는 아스텔 유저들을 단 한 번이라도 허투루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이가 있다면 이용해 먹었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이그나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했다.
고작해야 두 번의 침공이라고는 하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 아닌가.
‘아마도 이 자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겠지.’
그러던 와중에 한 사내가 찾아왔다.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 이정호는 그야말로 이그나투스의 조건에 완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들어맞았다.
그렇기에 더욱 까다롭게 보며, 몰아쳤다.
침공은 손쉽게 볼 대상이 아니다.
단순한 육체적인 힘뿐만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굴하지 않으며, 묵묵히 적을 향해 칼을 내지를 수 있는 정신적인 강함도 지니고 있어야만 했으니까.
‘설마 질 줄은 몰랐지만.’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떠올릴 정도의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기는 했으나.
이그나투스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경험했기에 더욱 믿음이 가는 이가 아닌가.
‘저 정도의 무력이라면.’
이그나투스는 게임이라는 시스템을 모르기에, ‘용기사’라는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곧, 하나의 인간에게 종속되어지는 일.
자신의 힘을 완전히 내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라면.’
다만, 저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 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힘을 완전히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더욱 강한 힘을 손에 쥘 수도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타악.
이그나투스는 준비가 끝나마자마자 잔뜩 기대감을 품고서, 입을 열었다.
“나의 용언주는 ‘이그나투스’.”
펼치는 것은 용언 마법.
“계약 이행의 대상은 눈앞에 선 사내, 이정호.”
“...”
인간, 정호는 담담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의 주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 저 정도는 되어야, 내가 인정한 인간이지.’
퍽이나 마음에 드는 모습에 미소를 내지은 이그나투스가 계약을 이어나갔다.
“나, 이그나투스는 이정호에게 종속되기를 희망한다.”
-종속 계약.
계약의 용언이 끝이 나자마자.
화아아아아악-.
이그나투스의 몸에서 불꽃이 타오르며, 서서히 그 형태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작아지는 몸.
‘모두 담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정호가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아직 두 번째 침공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의 강자다.
이미 수천년을 살아오며, 그 힘을 품은 드래곤의 힘을 모두 담아내기란 어려운 일.
하나, 그것이 모두 돌아오기까지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더 작아지는 군.’
점차 어려지는 자신의 몸에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그나투스의 얼굴이 살짝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화아아아아악-.
한참이 지나도, 아직까지 작아지고 있는 자신의 몸을 본 이후였다.
“자, 잠깐만 뭐야?”
화아아아아악-.
불길이 멈추질 않는다.
“이봐.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스러움이 잔뜩 묻어나오던 이그나투스의 목소리가 앳되었다.
화아아아아-.
사그라드는 불길 속에서 튀어나오는 이그나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타박.
나타나는 것은 고작해야 열다섯은 되었을까.
소녀의 형체를 지니고 있는 인간 형태의 드래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따지고드는 이그나투스를 바라보는 정호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작해야 이 성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전혀 게 의치 않는 표정.
그에 이그나투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눈을 부릅떴다.
“자, 잠깐만 너!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인지 반드시 알아야하겠다는 듯, 곧장 정호에게로 달려드는 이그나투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스으으윽-.
달려 나가던 모습 그대로, 몸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뭐, 뭐야?”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거대한 형체를 지닌 인간이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올리고 있었다.
“요 꼬마가 아까 그 요망한 여우라는 거지.”
“놔, 놓으라고.”
안간힘을 써도, 좀처럼 풀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힘을 지닌 여성.
“이, 이 오우거 같은 녀석은 또 뭐야?”
“...주인, 이거.”
“아, 부탁하지.”
마치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짧은 단답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
그에 이그나투스의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이, 이게 뭐야?’
노예 상인에 붙잡힌 인간이 이런 감정일 것인가.
수많은 유희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이 이그나투스의 온 몸을 타고 올랐다.
“교육의 시간이야. 꼬맹아.”
질질질-.
이그나투스는 여성의 손에 끌려 나가며, 손가락을 덜덜 떨며 정호를 가리켰다.
“사, 사기꾼!”
그야말로 마지막 발버둥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나.
그 목소리가 정호의 귀에 닿는 일은 없었다.
정호의 정신은 이미 다른 곳에 팔려 있었으니까.
‘레전드리 클래스라... 이름값은 확실히 하는군.’
수없이 떠오르는 메시지의 향연을 바라보는 정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