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7화 >
# 97화
모든 생물은 성체가 된 이후, 나이를 먹음에 따라 기력이 쇠퇴한다.
그것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다를 바가 없어, 제아무리 달인이라 불리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월의 무게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는 법이다.
다만 드래곤이라는 생물체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타 생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내는 존재들.
성체가 되었음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드래곤들은 나이가 곧, 힘이 되는 기묘한 녀석들이다.
레드 드래곤인 이그나투스는 그런 존재들의 왕, 로드다.
그 말인 즉, 녀석은 드래곤 중에서 가장 오래 산 드래곤이라는 의미이며.
꽈아아아악-!
가장 강한 드래곤이라는 뜻과 같았다.
‘음...’
정호는 자신이 휘두른 검이 간단히 막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묘한 얼굴을 내지었다.
‘로드라더니, 생각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놀란 것이 맞았다.
이그나투스는 아스텔에 의해 약체화되어 있을 터다.
녀석이 인간의 형태로 바꾼 것은 힘 대 힘을 맞서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으나.
-괴력난신.
그 부족한 힘을 용언 마법으로 맞서는 녀석의 임기응변은 정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흥, 놀라기는 이르지.”
타아아악-.
그런 정호의 모습이 당황한 것으로 보인 탓일까.
-업화.
화아악-!
곧장 의기양양해진 이그나투스는 정호의 검을 옆으로 처내고서는 공세를 이어나갔다.
과연 레드 드래곤이라고 할까.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파란 화염은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르륵-!
고개를 젖히고서, 그 화염을 피해내자 애꿎은 공기 중의 산소만을 태워내는 업화.
정호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반격을 이어나가려 했으나.
이미 공격권을 쥔 녀석이 쉬이 허용할 리가 만무했다.
터업-.
업화와 함께 내뻗었던 손을 회수함과 동시에, 정호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어깻죽지를 단단히 붙잡았다.
이어지는 것은 실로 격투기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깔끔한 하단 차기.
파아악-!
그 연계 동작이 어찌나 재빨랐던지, 반응을 할 새도 없이 들어맞고 말았다.
하나, 그것으로 끝나지도 않은 채.
휘우우우웅-.
순식간에 시야가 완전히 뒤집혔다.
털썩-.
이그나투스가 정호의 가슴팍과 어깨를 붙잡고 바닥으로 시원한 업어치기를 한 것이다.
“...하?”
순식간에 동굴의 천장을 바라보게 된 정호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 흡사 킥복싱이나 유도처럼 스포츠 기술.
아니, MMA 선수들이나 쓸 법한 격투술이다.
드래곤이 펼칠 만한 기술들이 아니지 않은가.
“흥, 인간들의 격투술 정도야 훤히 알고 있어.”
아무래도 이그나투스는 나이만 허투루 먹은, 그저 그런 타입의 드래곤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터업.
곧장 정호의 배 위에 올라타는 이그나투스.
거기에.
-무게 증폭. 중력 강화. 강철.
꾸우우웅-.
적재적소에 사용되어지는 이그나투스의 용언 마법이 더해지자, 그야말로 완벽하기 짝이 없는 마운트 포지션이 이루어진다.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정호를 아래에 두게 된 이그나투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내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만만하던 그 모습은 어디 갔지?”
적을 코앞에 두고서 사뭇 방심을 하는 모습이나 다름없었으나.
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도 그럴 게.
고대에서부터 종합 격투기까지.
아니, 어린 아이들의 개싸움에서조차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마운트 포지션이다.
제대로 걸리기만 한다면, 상대는 도망갈 길이 없다.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 애를 써, 손으로 가드하거나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피해내기에 급급해 하는 것이 전부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라면 승률 99프로를 자랑하는 기술이 아니던가.
“알았어. 알았다니까.”
실제로 정호는 손을 들어 올리고서, 완전히 항복을 하는 듯,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흥, 이제와 후회한들 늦었다.”
이그나투스는 자비가 없었다.
곧장 주먹을 불끈 쥐고서, 이 싸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내뻗었다.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후우우웅-.
다만 그것은 채 내뻗어지지 못한 채, ‘우뚝’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그만 일어나면 되는 거지.”
터업-.
분명 무력화되어 있어야 할 정호가 갑작스레 상체를 들어 올리고서, 막 내뻗어지려던 이그나투스의 주먹을 덥석 붙잡았으니까.
“멍청하긴!”
이그나투스는 반격을 가하려는 정호를 향해 비웃음을 머금었다.
정호는 지금 자신에게 힘 대 힘의 대결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었다.
꽈아아악-.
“이미 안 된다는 것을 한 번 확인했을 텐데!”
이그나투스는 이미 정호가 힘껏 휘두른 검을 막아내지 않았던가.
-괴력난신.
거기에 지금은 완전히 이그나투스가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위치.
용언 마법인 중력 강화와 무게 증폭도 덩달아 붙어 있는 마당에, 이그나투스가 밀릴 건수 따위는 없었다.
“...어?”
한데, 이상한 일이다.
분명 어쩌지도 못한 채, 다시금 바닥에 눕혀져야 할 정호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꾸웅-, 꾸웅-.
힘을 더 하면 더 할수록, 동굴의 바닥만이 움푹 파일 뿐.
트드드득-. 트득-.
정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천천히 몸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확인해본 거라니까 그러네.”
당최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탈출할 수 있기도 하고.”
그 중얼거림이 이어질 때마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가 싶더니.
“이렇게 가까이 왔으면 힘 조절하기도 편하니까.”
터얼썩-!
마지막에 들어서는 완전히 상황이 역전되고야 말았다.
주먹을 붙들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은 이그나투스의 쪽이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벌써.”
이그나투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호를 올려다보았다.
‘아스텔, 이 미친년이 무슨 괴물을 만들어낸 거야.’
진심으로 펼쳐낸 용언이다.
제아무리 아스텔이 약체화를 자신에게 걸었다 한들.
이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게 고작해야 두 번의 침공을 막아낸 인간이라고?’
이그나투스의 생각에는 아무리 적어도 네 번째 침공이다.
수없이 많은 희생과 시련을 겪은 영웅 정도는 되어야 겨우 도달할 수 있을 만한 힘.
그것을 고작해야 두 번의 침공으로 손에 넣은 이.
아니, 악마가 눈앞에 있었다.
스르르릉-.
정호의 손에 쥐어지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검.
그것을 바라본 이그나투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자, 잠깐만.”
이미 아스텔이 만들어낸 시련의 생명은 스스로가 파괴한 마당이다.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저 검이 휘둘러진다면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죽음. 사(死).
무려 수천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그 사신이 코앞에 있었다.
“십 만! 십 만 코인이나 내고 왔다 하지 않았어?”
스스로 내뱉었다고는 믿을 수가 없는 구차하기 짝이 없는 목숨구걸.
“이, 인정할게. 너라면 용의 기사로 인정할 수 있어.”
스스로가 무슨 말을 내뱉는 지도 모르는 채, 이그나투스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있는 녀석은 너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그게 무슨?”
돌아오는 대답은 이그나투스의 얼굴을 사색에 물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친놈이다! 제대로 미친놈이야!’
인간 영웅들이란 나사가 하나, 둘 빠져있다고는 알고 있었으나.
하필이면 자신이 만난 녀석은 나사가 수십 개가 빠져 있는 인물이었다.
후우우우웅-.
가차없이 휘둘러지는 클레이모어.
콰르르르르릉-!
‘아, 안 돼.’
울려 퍼지는 천둥과 함께, 이그나투스의 정신이 ‘뚜욱-’ 멈추었다.
터얼썩-.
쓰러지는 이그나투스의 신형.
그것을 가만히 서, 바라보는 정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감히 주인의 배 위에 올라타?
단단히 심통이 난 아틸라의 투덜거림이 아직 멈추지 않았으니까.
* * *
새벽.
네온사인이 가득한, 왁자지껄한 도시의 거리와는 달리, 도심과는 꽤나 멀리 떨어진 아스텔 신전에는 적막함이 깔려 있었다.
“성녀가 될 재목은 있었습니까?”
조용한 실내.
그곳에서 주교가 입을 열자, 각자 한 자리를 꿰찬 수녀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요. 아스텔 님을 향한 경외심은 물론, 한 줌의 기도를 올리는 이도 없었어요.”
“오히려 현자가 될 재목이 있기는 했지만. 아시다시피 현자 또한, 지금의 지구에서는 나타나기 어려우니까요.”
상당히 부정적인 대답이 튀어나오자, 주교의 눈이 수심에라도 빠진 듯 깊어졌다.
“아스텔님께서는 어째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들을 보낸 것인지...”
“그러게 말이에요.”
수녀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한다.
‘아직 이곳, 지구에는 이르다.’
주교가 판단하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레전드리 클래스를 얻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침공이 두 번, 이루어진 것에 비해서 그 피해가 경미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기에 조금은 기대했었으나.
‘유저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가끔 보이는 랭커라 불리는 이들 중에는 확실히 눈에 띄는 존재가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 유저들은 다음 침공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려워 보이지 않은가.
“...”
“...”
조금은 침울해진 분위기.
그것을 어떻게든 해소해보려는 듯, 하나의 수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 분 정도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아, 그 신앙심이 두터우신 분 말이죠.”
갑작스레 나타나 10만이라는, 어마어마하기 짝이 없는 코인을 투척한 사내.
그의 신앙심에 의심을 품는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용기사’가 되기 위한 퀘스트를 발주받기 위해 찾아온 이가 분명했다.
“하지만...”
“한 번으로는.”
“예.”
하나, 부정적인 수녀들의 반응만큼이나 주교의 얼굴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불가능해.’
주교는 ‘시련의 빛’으로 주어진 드래곤의 존재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스텔님의 힘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해.’
그렇기에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레드 드래곤.
그 중에서도 이그나투스는 ‘드래곤 로드’다.
그런 그녀에게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한 번의 대화로는 부족함이 따른다.
“그래도 두 번, 세 번... 갈 수 있다면 모를까.”
“네... 그러기 위한 신앙심이 그에게 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신앙심이란 곧 코인이다.
제아무리 이그나투스라고 할지라도, 몇 번이고 찾아오는 사내를 거부할 수는 없을 터.
한데, 그조차도 자그마한 희망이나 불과할 진데.
한 번에 십 만이라는 헌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지간한 신앙심으로는 힘든 일이나 다름없다.
“생각보다 오래 있으시네요.”
“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의문이 있다면.
바로 그 사내가 좀처럼 시련의 동굴 속에서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혹시나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상형이라던가?”
“어머, 어머.”
꿈같은 이야기를 지껄이는 수녀들을 뒤로 한 채.
‘그럴 리가 없지.’
주교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종족이 다르지 않은가.
드래곤의 눈에는 미남이든, 추남이든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심기를 건드려서, 그녀가 생명 보호 장치를 파괴했을 수도 있어.’
이그나투스가 금기시하는 일을 사내가 잘못 건들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오히려 이 방향이 신빙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군.’
주교가 보았을 때.
사내는 아스텔님이 아끼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십 만이라는 코인을 가지고 있기 위해서는 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 한은 절대 소유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다.
신이 직접 관여하는 만큼.
어떠한 방식으로 그에게 조언을 던져 줄 수도 있는 노릇일 테니까.
따앙. 따앙.
주교가 그런 자그마한 희망을 품고 있을 때.
신전 내부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귓가를 파고드는 하나의 목소리.
[세상을 구원할 하나의 빛]
[레전드리 클래스 : 용기사가 탄생했습니다]
“아. 아아...! 아스텔 님!”
그 목소리에 수녀들이 하나 같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주교 또한 두 손을 붙잡고 눈을 감기는 했다.
하지만.
‘어떻게?’
속에서 떠오르는 의문만은 지워낼 수 없었다.
정말로 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인간 하나에 그렇게까지?’
그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그 분인 것 같군요. 새로운 빛을 환영하러 가봅시다.”
드르륵-.
주교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말한 것과는 달리.
환영이라기보다는, 도대체 어떤 수로 그 포악한 드래곤을 설득했는지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끼이이익-.
타박, 타박, 타다닥, 타다닥.
주교실을 빠져나와 대신전으로 향하는 주교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주, 주교님!”
“너무 빨라요.”
대신전이 가까워지자, 뒤따라오는 수녀들이 따라오기 벅찰 정도로 내달린다.
이윽고.
타닥.
시련의 빛을 끝낸 사내가 도착해 있을 대신전에 도달한 주교와 수녀들.
“용기사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
“네...?”
그들은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사내를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네다 멈췄다.
아니.
멈추어 세울 수밖에 없었다.
질질질질-.
발걸음을 옮겨 자신들을 스쳐지나가는 사내의 손에 무언가가 걸려, 끌려가고 있었다.
“저게 뭐지...?”
“사람...?”
등 뒤의 옷자락에 끌려 가고 있는 정체불명의 여성.
그것을 바라본 수녀들이 고개를 기울였으나.
그 존재의 얼굴을 확인한 주교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 아아. 아.”
주교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타오르는 듯한 새빨간 머리칼부터, 머리 위로 솟아오른 두 개의 뿔.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외모까지.
그 모든 생김새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같았으니까.
“드, 드래곤.”
레드 드래곤이자, 오래 산 고룡.
그러면서도 모든 드래곤의 수장인 로드의 직위에 있는 괴물.
“이, 이그나투스.”
이그나투스.
그녀가 인간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