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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95화 (96/144)

< # 95화 >

# 95화

“헌금을 하기 위해 찾아오셨다고요.”

수녀의 안내를 받아, 꽤나 호화로운 방 안으로 안내를 받은 정호는 여유로운 미소를 내짓고 있는 주교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안 드네.’

그런 감상이 흘러나올 뻔 한 것을 삼켜냈다.

솔직히 말해, 헌금을 요구하는 성직자의 모습이란 뒤룩뒤룩 찐 돼지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는가.

한데 그런 예상과는 달리 멀쩡한 허우대를 가진, 상당한 미남이 튀어나오니 절로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다.

“그래.”

그런 탓일까.

정호의 대답이 상당히 짧았다.

“혹여, 어떤 목적을 지니고서 그토록 많은 헌금을 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스텔...을 위해서지.”

쯧.

속으로나마 혀를 차냈다.

‘당연히 레전드리 클래스의 전직 때문이지.’

그 외에 목적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설마하니, 톨비아가 그런 제안을 해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정호는 톨비아한테서 새로운 형태의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기대했다.

아스텔은 ‘레전드리 클래스’를 내걸었으니.

그에 준하는 것 정도는 자신이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톨비아가 제안한 것은 정호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어이가 없네.’

허공에 떠올라 있는 하나의 반투명한 메시지를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떠올랐다.

[돌발 임무 : 강탈]

-아스텔의 신전에 방문하여, 레전드리 클래스의 직업을 얻으십시오.

‘물론 얻고 싶기는 했지만.’

자신은 아스텔의 시스템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다.

그렇기에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건만, 톨비아가 직접 퀘스트를 내려준 것이 아닌가.

‘강도도 아니고, 강탈이라니.’

그렇다면 직접 내려주면 될 것이지, 퀘스트의 부제부터 아주 악랄하기 그지없다.

하나,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입수 조건 : 아스텔 신전에 헌금 100,000 코인.

아직 아스텔 유저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입수 정보.

그것을 톨비아가 직접 제공해주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액수를 확인 했을 때, 정호는 입을 벌렸다.

‘무언가 잘 못된 거 아니야?’

0이 하나가 더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액수.

‘아스텔도 갈 데까지 갔군.’

정호로써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광고 대행을 하며, 아스텔을 칭송하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써내지 않았던가.

제 2의 인생이라느니.

단 한 푼도 지르지 않고서, 즐길 수 있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들.

‘결국 게임은 다 똑같아.’

하지만 그런 이상향과 같은 게임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스텔 내에서 최상위권과 상위권, 그리고 평범한 유저까지.

그들을 나누는 기준은 결국 돈을 투자하거나, 어마어마한 시간을 녹여 내거나.

그 두 가지 밖에 없다.

‘10만이라, 하!’

10만 코인.

그것은 레전드리 클래스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현재 코인의 시세를 생각한다면, 수백 억을 호가하는 수준이다.

‘이거면 뽑기가 몇 번인데.’

제아무리 전 세계에 단 세 명만 얻을 수 있는 레전드리 클래스였으나.

10만 코인이라면, 5성 등급의 화신을 저격할 만한 수치이지 않은가.

거기에.

‘아스텔의 스킬 시스템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레벨에 따라 해금되는 방식일 텐데.’

그것을 톨비아의 시스템으로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정호가 10만이라는 거금을 투자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다름 아닌, 그 보상에 있었다.

“신앙심이 높으신 신도분이시군요. 하지만 정말 그 많은 양의 코인을 가지고 계십니까?”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는 정호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는 주교.

그에 정호는 상당한 크기의 주머니를 탁자 위에 올려두며 입을 열었다.

“이봐, 내 신앙심을 시험하려 들지마.”

-주의 사항 : 아스텔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을 것

주의 사항마저 꼼꼼히 지키는 정호.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완료 보상 : 프리미엄 뽑기 활성화.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 때문이었다.

* * *

레전드리 클래스를 얻기 위해, 수녀를 따라갔던 아스텔 유저들.

“이걸 어떻게 깨라고 하는 거야!”

그들이 당도한 곳은 아스텔이 제공하던 ‘시련’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시련이라면.

목숨의 위협이 없다는 것만은 참으로 안심이 되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나.

레전드리 클래스, 용기사를 얻기 위한 조건은 그들이 예상을 완전히 넘어서 있었다.

크르르르르르-.

동공(洞空) 속에서 울려 퍼지는 기괴한 음성.

작은 불씨에 의지한 채, 그 형태를 확인한 유저들은 하나 같이 경악에 찬 눈빛을 보냈다.

‘드, 드래곤!’

용기사.

드래곤 나이트라고 했던가.

아니나 다를까.

그 전직의 첫 조건은.

-인간 따위가 나를 길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군.

새빨간 비늘을 뽐내며, 입에서 불을 쏘아 보내는 레드 드래곤과 만나는 일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시련의 빛이란.

시련 속에서 피어나는 거대한 불꽃을 의미했다.

그런 레드 드래곤을 만난 유저들은 단 한순간에 숯덩이가 되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깨라는 거야.”

“애초에 드래곤이랑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목숨을 잃기는 했으나, 시련이라는 특수한 공간인 덕분일까.

신전에서 곧장 정신을 차린 이들은 수녀들을 붙잡고 불만을 토로했다.

“드래곤이 화가 많은 모양이군요. 화를 잠재울 방법이 필요하겠습니다.”

하나, 돌아오는 답은 무언가 실마리가 될 법한 이야기를 할 뿐.

그 이상의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 다시 한 번 들어갈 수 있습니까?”

걔 중에는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다는 듯, 재진입을 원하는 유저가 있기는 했으나.

“죄송합니다. 신도님. 재진입을 위해서는 작은 정성이 필요합니다.”

처음과는 달리 손바닥을 내미는 수녀들.

“어, 얼마입니까?”

“음... 제한은 없지만 100코인 정도의 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허, 허억...!”

단 한 번의 시도에 백 코인이라는 어마어마한 양.

“에이 씨. 그럼 그렇지. 레전드리 클래스가 그리 쉽게 얻어 질 리가 없지.”

“저 이야기 먼저 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에 많은 유저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이들도 고작해야 두어 번의 도전만을 할 뿐이다.

휘이이잉-.

인산인해를 이루던 신전이 어느새 썰렁하기 그지없다.

“생각보다.”

“예.”

그제야 수녀들은 저마다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으며, 수다를 떨어댔다.

“이곳 유저들은 두 번째 침공을 막아낸 것 치고는...”

“네. 형편없네요.”

다만,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비해 상당한 독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네요. 이번에 경비병이 나섰다고도 알고 있는데.”

“예. 아스텔님에 대한 신앙심이 그리 없어 보이네요.”

그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텔은 종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게임이라는 익숙한 형태로, 그들에게 전투의 기본을 새겨 넣었고.

침공이 끝난 뒤에는 상당한 양의 코인과 보상을 쥐어주었다.

한데도.

“아무리 그래도,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정성을 보이는 이가 없다는 게 신기하네요.”

정성.

즉, 헌금이 아예 모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일 뿐.

정말로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봉헌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그 양은 정말이지 쥐꼬리만 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단 한 명... 신앙심이 아주 두터운 분이 오셨어요.”

“어머, 정말요? 저는 못봤는데?”

그런 와중에 한 명의 수녀가 독특한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의 주목이 그녀에게 이끌렸다.

“상당히 특이한 분이셨어요. 아스텔님을 위해 큰 헌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더라니까요.”

“도대체 어느 정도의 돈... 아니 정성을 보였기에 그래요?”

“무려 10만이라니까요?”

“네에?”

“그, 그 정도를 아무렇지도 않게요?”

수녀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십 만 코인은 겨우 두 번째 침공을 막아 선 유저가 가질 수 있는 한도의 양을 벗어나 있는 양이 아닌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첫 헌금부터 내던지는 이가 있다니.

“정말 신앙심이 두터우신 분이군요!”

“그렇다면, 그 분도 이미 시련의 빛... 그러니까 드래곤과의 만남이 주선되었겠네요!”

“용기사가 나타날 수도 있겠어요.”

“벌써...”

수녀들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말로 종말을 막을 수 있을 지도...”

“드래곤의 주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고작 하루 만에 레전드리 클래스 중 하나인 용기사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뒤이어질 침공에 분명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 정도의 코인을 헌금했다고 해도.”

“무력과 재력은 비례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다른 유저들의 성장을 늦출 수도 있어요.”

하나, 수녀들은 걱정을 가지기도 했다.

“드래곤을 길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들은 ‘시련의 빛’의 퀘스트를 받은 그 성실한 신도가 단 한 번 만에 이루어 내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드래곤은 자존심이 강한 생물이다.

그들은 신이 빚어낸 가장 강력한 생물.

그런 드래곤이 고작 두 번의 침공을 막았을 뿐인 유저 한 명에게 굴복할 리가 없다.

“두 번...아니, 세 번. 그 정도만 되어도 좋을 텐데.”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다음 침공을 막아선 이후라면 가능할 지도 몰라요!”

“신앙심이 두터우신 분이니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하지는 않을 거에요.”

다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점이 있었다.

-아스텔이 보낸 모양이군.

“그런 녀석, 알게 뭐야.”

정호에게는 아스텔에 대한 신앙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것은 물론.

-힘이 잔뜩 빠지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양의 코인을 준 모양이군. 하지만 착각하지마라. 인간 따위에게 굴복할 것 같으냐.

“비슷한 일을 많이 하긴 했어.”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데에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사실을.

* * *

콰아아아아아-.

상당히 넓은 동공 안이라고는 하나.

거대한 형체의 드래곤의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은 피할 구석조차 없었다.

“확실히... 드래곤이라고 할만은 하네.”

그 불길을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정호에게서 감상이 흘러나왔다.

삼 성 등급이나 되는 늑대 코트조차도 버티지 못한 듯,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지지 않았는가.

‘약체화 된 게 이 정도면.’

톨비아에서도 드래곤은 그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그 중 으뜸이라고 하는 블랙 드래곤은, 톨비아에서도 최종 던전의 보스로 군림하던 녀석.

그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레드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현 시점 정호가 쓰러뜨릴 수는 없는 존재였다.

-생각보다는 튼튼하군.

10만 코인이라는 어마어마한 조건은 바로 그런 레드 드래곤과의 대화를 이어나가게 할 수 있는 매개체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림없다.

그 대화라는 것이 몸의 대화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지만 말이다.

후우우우웅-.

브레스가 생각보다 통하지 않자, 곧장 자신의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공격을 가하는 드래곤.

약체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강렬한 일격인지, 들려오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평소대로라면 피해야 하겠지만.’

거대한 형체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한 속도로 날아오고는 있었으나.

이미 아틸라를 강신시킨 상태인 정호는 민첩만 하더라도 400이 넘어서고 있는 마당이다.

피하는 것은 간단한 일.

하나, 정호는 신형을 움직이지 않은 채.

콰아아아앙-!

그 꼬리를 정면에서 받았다.

-멍청한 인간! 제 아무리 몸이 튼튼하다고는 해도, 내가 인간 하나 뭉게지 못할 거라 생각했느냐?

의기양양한 드래곤의 목소리가 동공 안에 울려 퍼졌다.

-으음?

한데, 드래곤은 곧 이어 이상함을 느끼고서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인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꼬리를 되돌리려했으나.

이상하게도 꼬리가 꿈쩍도 하지 않은 탓이다.

-주인 이런 녀석은.

‘알고 있어.’

정호는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해서는 안 된다.

-이, 이것 놓아라. 나약한 인간이.

꽈아아아악.

정호는 안간힘을 쓰며 꼬리를 빼려는 드래곤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톨비아의 화신 중에도 이런 녀석이 있었지.’

아니, 생각보다 많은 축에 속했다.

톨비아의 화신들은 제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는 녀석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기보다 약한 녀석의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

그것을 해결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스르르르릉-.

어느새 등 뒤에 있는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빼어든 정호가 드래곤을 향해 히죽 미소를 내지었다.

-무, 무슨 짓을...!

당황한 드래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 녀석도 스스로가 중요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겠지.’

용기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저 레드 드래곤을 굴복시키는 일이다.

다만 그 사실은 드래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약체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여유로운 태도로 있을 수 있을 터.

아무리 강한 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 수 없다.

그런 생각이 전제로 깔려 있으니.

“드래곤도 도마뱀과면, 분명 다시 자라겠지.”

그 전제 조건부터 없애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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