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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94화 (95/144)

< # 94화 >

# 94화

-축하합니다! 크라켄이 퇴각하기 시작합니다.

-크라켄의 역습이 침공을 멈춥니다.

-앞으로의 침공 속에서도 분발하시길 바랍니다.

이전에도 들려왔던, 아스텔의 목소리.

하지만 그 소식을 듣는 유저들의 반응은 이전과는 달랐다.

“...살았다.”

“다음이... 있어?”

그림자 지하 성채와는 전혀 다른 난이도를 지닌 던전의 출현.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서.

침공을 개시한 크라켄의 역습은 상당한 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남기고 떠나갔다.

“...”

“...”

그런 그들에게 환호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오히려 다음이 있다는 절망감이 그들의 몸을 옥죄어 올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이번 두 번째 침공 방어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는 일.

각 나라마다 다르겠으나.

아예 대패를 해버린 국가도 존재하는 마당이다.

그것을 구원해주는 것은 타국의 지원도 아니었고.

위기 때에 등장하는 새로운 영웅의 출현도 아니었다.

[위기! 지구에 대한 침공 달성도가 10%를 넘어섭니다]

[라스레시아 왕국의 경비병이 침공 방어를 시작합니다]

경비병 NPC.

그것은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을 막아선 것으로 지구에 전 지역에 배치된 이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처럼.

경비병은 아스텔이 준비한 최종 방어선이었다.

도저히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적들의 공세가 고작 경비병의 힘에 의해 무릎을 꿇었다.

“...두 번째.”

“보상, 보상이 필요해.”

첫 침공과 두 번째 침공의 난이도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비교 할 대상이 적기는 했으나,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다.

다음은 더욱 강한 적들이 찾아오리라.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스텔의 보상에 주목을 했다.

[아스텔의 두 번째 보상]

-전 유저들의 레벨이 소폭 상승합니다.

다만, 그 내용이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다.

더더욱 올려주어도 모자랄 판에 소폭 상승이라는 보상.

그것은 물론 전 유저들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에 불과하겠으나.

그럼에도 애매하기 짝이 없는 보상에 불과했다.

-전 유저에게 3,000코인을 지급합니다.

-용병 NPC가 찾아옵니다.

“이게 뭐야.”

“겨우?”

보상에 대한 코인이 비록 높아지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만 그런 유저들의 바람을 들은 것일까.

이어지는 말.

-아스텔의 신전이 들어섭니다.

-‘레전드리 클래스 : 용기사’가 추가됩니다.

-‘레전드리 클래스 : 성녀’가 추가됩니다.

-‘레전드리 클래스 : 현자’가 추가됩니다.

-레전드리 클래스는 신전의 시련 퀘스트를 이용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어...?”

“레전드리 클래스?”

그것에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스텔은 지금껏 침공에 대비하여, 모두를 끌어올리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한데, 이런 단 하나를 위한.

모두가 아닌, 단 한 명의 영웅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은 아스텔의 방침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찌본다면.

다수의 사람들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움직임.

하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내, 내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야?”

“레전드리 클래스 정도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회에 찌들고.

세월에 깎여나가며.

타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어째서 종말이 찾아온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열광했었던가.

게임 속에서의 자신은 언제나 주인공이기 마련이다.

모두가 새로운 출발선.

자신이 주인공으로 발돋움을 할 수 있다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스텔 유저들은 이미 두 번의 침공에서 자신의 분수를 깨달았다.

이미 늦어버린 스타트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따라잡지 못한다.

타협하고, 타협한다.

직접 강해지기 보다는, 손쉬운 보상에 손을 뻗고.

위험한 길보다는 누군가가 깔아둔 안전한 길을 택한다.

‘크라켄의 역습’의 침공에서 피해를 입은 가장 큰 원인이다.

이래서야, 다음 침공을 맞설 수가 없다.

“...가보기나 할까.”

“용기사는 내가 할 거야.”

속속들이 사람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아스텔의 신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는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라,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을 이루었다.

“혹시나 용기사 되면, 모른 척하면 안 된다.”

“그래. 그래. 알았다니까.”

모두가 하하호호 웃음을 지으며, 신전으로 향하는 그 순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갈아대고 있는 이가 있었다.

“이런 젠장...! 무슨 레전드리 클래스야.”

분명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울분을 터뜨린다.

“지들끼리 다 해 먹으라 그래. 아오, 진짜. 누군 몸이 망가지기까지 하는데.”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

현 시점, 전 세계 그 누구보다도 주인공에 가까운 사내.

“확 내가 가질 순 없나?”

이정호였다.

* * *

비록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라고는 하나.

바다를 갈라버린 일에 대한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망할...!”

정호가 기절한 뒤,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사흘이라는 시간은 길다.

침공이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간에.

모든 일이 끝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내 코인은!’

정호는 일어나자마자 온 몸에 밀려오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가장 중요한 코인 수급을 적게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나쁘진...않지만. 그래도...’

물론 정호가 기절한 덕분에 코인을 전혀 수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국의 포탈은 고작해야 서른도 되지 않는 수.

그 중에서도 이미 공략을 완료한 것까지 계산하면 고작해야 열다섯의 포탈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열 셋...’

절반 이상의 적들을 몰살시키고서 얻어낸 코인의 양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

‘30만...’

그 어마어마하기 짝이 없는 코인은 하나하나 세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조금 더 얻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레전드리 클래스까지 뜬 마당에.’

특히나 아스텔이 내놓은 보상.

그것을 떠올리는 정호의 얼굴은 잔뜩 비틀어졌다.

‘어지간히도 힘든 던전인가 본데.’

그림자 지하 성채에 이어 나타난 크라켄의 역습.

난이도의 격차를 생각해본다면.

그 다음은, ‘드레이크의 둥지’나 ‘요정의 숲’일 것이 분명할 터.

하나, 그런 생각은 아스텔의 새로운 비책에 완전히 지워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라도 두 단계를 뛴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미 성장의 여지가 그리 크지 않은 정호에게 있어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탁, 탁, 탁, 탁.

책상을 연신 두들기는 정호의 얼굴에는 심란함이 담겼다.

‘각성과 초월, 아니. 그 정도도 되진 않겠어.’

물론 그 기준은 ‘솔로 플레잉’과 ‘공략의 여부’ 따위가 아니다.

‘확실하게 가능하려면...’

어디까지나 지금처럼 압도적인 무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가정이 붙어야만 했다.

그것은 ‘반드시’라고 지켜야만 할 정호만의 기준선이었다.

‘후일을 생각한다면 무조건이야.’

정호는 톨비아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침공의 정체도 톨비아의 던전임을 상기해본다면.

상위의 던전이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제아무리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더라도 솔로 플레이는커녕 일인분도 못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검은 용의 둥지 때처럼... 공략 자체가 불가능해 질 수도 있으니까.’

톨비아의 서버 종료 직전.

당시 최종 던전에 해당하는 ‘검은 용의 둥지’는 정호 또한 몇 번이고 클리어 한 던전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격대의 일원으로써 이루어진 일이다.

‘독식을 해도, 도달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벌써부터 막히면 곤란해.’

비단 솔로 공략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공격대의 일원이라는 위치에 있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정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그렇고.”

잘그락, 잘그락.

손아귀에 쥔 코인을 이리저리 굴리며, 입을 열었다.

“나, 기다리고 있는데.”

화신들도 모두 역소환 시켜둔 상태.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정호는 천장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스텔은 레전드리 클래스라던데.”

정호는 말을 내거는 상대에게 닿는지, 닿지 않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입을 열었다.

“조금 실수하기는 했지만, 결국 막아내기는 했어. 네가 침공하는 거라면 미안한 일이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종말의 주체라 불리고 있는 톨비아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첫 침공에서 축복을 줬다는 건. 침공을 막는다는 아스텔과 같은 의견인 것 같거든.”

어차피 톨비아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이는 정호뿐이다.

만약에라도 녀석이 신과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주시할 존재는 정호, 자신 밖에 없으리라.

“그러니까...”

을의 입장이면서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의미다.

“줄 거면 얼른 줘. 뽑기 해야 하니까.”

태도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 * *

전 세계 각국에 등장한 아스텔의 신전.

도대체 언제 건축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생겨난 신전은 생각보다 더 본격적이었다.

고대 그리스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원형 형태의 메가론 형식이 외부를 감싸고.

그 안의 건축물은 발할라 신전과도 같이 높게 솟아오른 기둥들이 가득했다.

“여신, 아스텔님의 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도자님.”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새하얀 신복을 입고 있는 수녀들.

“아, 네. 바, 반갑습니...아야야!”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마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듯한, 에메랄드 빛의 눈동자를 가진 그들은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찾은 목적은 봉헌이신가요? 아니면, 시련의 빛을 찾으러 오셨나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까닭일까.

이리저리 정신이 없을 것이 분명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녀들은 여유로운 말투로 사람들에게 말을 내걸었다.

“헌금이라면...”

“헌금을 통해 아스텔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일이랍니다.”

다만, 그 내용은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다짜고짜 찾아온 이들에게 헌금을 요구하는 것은 포교를 하는 입장에서는 완전한 아웃이었으니까.

“아, 아뇨. 됐습니다. 시련의 빛이 그, 레전드리 클래스의 퀘스트가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괘, 괜찮습니다. 시련의 빛을 찾고 싶습니다.”

대다수의 아스텔 유저들이 이곳, 아스텔의 신전은 찾은 까닭은 헌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레전드리 클래스’.

그 하나의 미끼를 바라보고 찾아오지 않았던가.

“안내 해드리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수녀들은 그런 유저들의 답에 미소를 내지으며, 유저들을 안내하기 시작한다.

“너무 쉬운 것 아니야?”

“퀘스트가 그렇게 어려운가?”

“사실 선착순이었다던가... 그런게 아닐까?”

너무 손쉬운 일인 탓일까.

아스텔 유저들은 고개를 기울이며 따라나서기는 했으나.

일단 퀘스트를 완료하기만 한다면, 레전드리 클래스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는 마당이다.

“조, 조금 빨리 갈 수는 없을까요?”

오히려 안내하는 수녀의 여유로운 걸음걸이에 답답해 할 정도로 조급함을 느끼는 마당.

그 따위 일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안내를 받아, 속속들이 떠나가기 시작하는 아스텔 유저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어디로 간 것인지, 신전 내부가 서서히 비어가고 있었다.

“여신, 아스텔님의 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도자님.”

그런 와중에도 다음 상대를 찾은 수녀가 사내를 향해 말을 내걸었다.

“...”

사내는 답이 없었으나.

투철한 서비스 정신이라도 있는 양, 성직자는 미소를 내지으며 입을 열었다.

“찾으신 목적은 봉헌이신가요? 아니면, 시련의 빛을 찾으러 오셨나요?”

수녀는 스스로 말을 내걸면서도, 큰 기대를 가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을 찾는 이들의 99프로.

아니,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후자를 택했으니까.

“헌금.”

사내가 봉헌을 하고 싶다 전했으나.

그조차도 그리 큰 기대를 가지지는 않았다.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흥미로 봉헌을 택하는 이들도 아주 없지는 않았으니까.

“네. 봉헌 감사합니다. 아스텔님을 위해, 어느 정도의 마음을 바치실 예정이신가요.”

고작해야 10코인.

아니 조금 많이 나온다 하더라도 100코인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내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10만.”

“네?”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는 수녀.

하지만 대답은 변한 것이 없었다.

“다시 말하게 하지마라. 10만 코인이다.”

“어, 어어...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수녀는 그에 화들짝 놀라며, 곧장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어, 얼른 주교님께...!’

그도 그럴 게.

봉헌금 10만이라는 수치는.

‘시련의 빛에 도전하는 인간이 벌써...!’

퀘스트의 발주 조건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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