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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93화 (94/144)

< # 93화 >

# 93화

아스텔 유저들의 대부분은 크라켄이란 존재를 자세히 알지 못했었다.

애당초 톨비아는 마니악한 게임에 해당하는 게임이었고, 악독한 과금 시스템으로 인해 플레이해본 유저들조차 적었으니까.

다만 그것이 현실로, 종말이라는 이름의 침공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낸 마당.

아스텔 유저들은 이제 그 크라켄의 강력함을 몸소 느끼고 난 이후다.

녀석이 얼마나 단단하고, 악독한 패턴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저, 저게 말이 되는 일이야?”

누군가의 중얼거림.

그것은 아스텔 유저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과 같았다.

콰르르릉-!

콰르릉-!

하늘이 노한 것일까.

만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이불을 뒤집어쓰는 이들이 속출할 것만 같은 거대한 천둥이 울려 퍼진다.

화아아아아아-.

그런 천둥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기묘한 일이다.

굉음에 가까운 소리가 바람을 타고서 적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묘한 일이 이루어낸 일은 결코 상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콰아아아앙-!

교통사고라도 일어난 것일까.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한 크라켄의 몸이 두부라도 된 것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단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콰아앙-!

콰앙-!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며, 크라켄들의 온몸을 두들긴다.

거기에는 약점을 노린다는, 그런 얄팍한 수작질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 파괴.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소용돌이가 크라켄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구우우우웅-.

구우웅-.

그 충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단단함을 지니고 있었던 그 크라켄이 몸을 기우뚱 기울이며 고통을 호소한다.

“이...이거, 비슷한 거 나는 본 적 있어.”

“나, 나도...”

유저들은 하나의 장면을 상기했다.

그것은 바로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 당시, 단 한 명에 의해 이루어졌던 대학살극.

보스와 더불어 구울들을 한 번에 휩쓸어버리던 늑대 코트를 입은 사내의 뒷모습.

“...죽은 게 아니었어.”

제아무리 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던 해적선을 타고 나타났다고는 하나.

그 안에 있는 이가 이미 죽은 것으로 확정이 나버린 사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구우우우우웅-.

점차 쓰러지기 시작하는 크라켄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저들은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 무언가 잘못한 것 같지 않아?”

“그, 그러게.”

저 사내를 향해 선제공격을 가했던 것은 자신들이었으니까.

콰르르르르르릉-!

쉐에에에에엑-!

세찬 바람과 함께 휘날리는 우레의 굉음 속 임에도 불구하고.

“...”

혹시나 자신들에게 저 공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항구에는 묘한 침묵이 가득했다.

본래라면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한 일이었겠으나.

쉐에엑-.

이번에는 정말로 달랐다.

“으악!”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그것은 유저들의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 * *

정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덜덜덜덜덜-.

‘이, 이런...미친!’

몸이 사정없이 떨려온다.

손아귀에 걸린 클레이모어를 놓칠 것만 같은 저릿저릿함이 밀려왔다.

출렁이는 파도에 의해 너울거리는 선박에 선 다리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예상외의 사태야. 주인. 정신 차려.

가끔 농담이나 던져오던 아틸라조차도 걱정스러운 말을 내걸 정도로.

정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 원인을 찾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다.

‘스탯 500...!’

정호는 이를 갈았다.

그렇지 않아도 정호의 화신화로 인해 추가된 능력치는 아틸라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한데, 거기에서 ‘5%’씩 한정없이 강해지는 아틸라의 스킬, 전투광이 더해진 마당이다.

스탯은 이미 400을 완전히 돌파하고 500에 달해 있었다.

‘신...’

스탯 ‘100’이 인외의 영역이라면.

스탯 ‘500’은 신의 영역이다.

육 성 등급의 화신이나 가질 수 있는 힘.

그런 힘을 오 성 등급의 화신이 지니고서, 자신의 최대 장기 중 하나인 필사(必死) 스킬을 사용했다.

콰르르릉-!

그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인데.

‘천둥의 드래곤 슬레이어’의 스킬, 우레의 일격까지 발현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해내야 하는 정호의 입장은 아주 죽을 맛이나 다름없었다.

-후~하~, 후~하. 이거야. 주인.

‘...임산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반동이 찾아온다는 것은 즉, 스킬의 파괴력을 의미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콰드드드드드득-.

구우우웅-.

구우우우웅-.

‘하나...둘.’

그 많은 크라켄이 단 한 순간에 두 번의 목숨을 잃을 정도였으니 말을 더 할 것도 없었다.

녀석들은 너무도 강렬한 공세에 바다 속으로 도망칠 수도 없는 듯, 모든 공격을 제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조금. 조금만 더.’

이를 악 물고서, 버텨내기를 몇 분이나 지속했던가.

콰르르르릉-!

이윽고, 단 한 번의 거대한 우레가 울려 퍼지며.

콰아아아-.

족히 여덟이나 되는 크라켄들의 거대한 형체들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것은 녀석들이 체력의 비축을 위해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녀석들의 목숨이 끝이 났기 때문이다.

-끄, 끝났어. 주인! 이제 회수만 하면 돼!

그에 아틸라가 신이 난 목소리로 정호를 향해 말을 내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진맥진한 몸.

당장이라도 검을 회수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으나.

‘...아직이야.’

정호는 그런 아틸라의 조언을 조금은 미루어 두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게.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높아진 스탯 덕분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크라켄이 너무 빨리 쓰러진 탓일까.

아직 군신의 검은 끝이 나질 않은 채, 천둥과 세찬 바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스으으윽-.

시선을 좌우로 넓게 펼쳐진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저인족과 해적들이 적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쓰러질 거라면.’

스킬의 발동조차도 이리 힘에 부친다면, 그 이후에 이어질 반동은 말을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림자 지하 성채 때의 반동을 생각해본다면.

예상컨대, 이번 한 번의 전투로 자신은 완전히 이탈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확실히 하고 가야지.’

빠득.

어금니가 부러질 듯이, 꽉 깨문 정호가 검을 서서히 높게 들어 올렸다.

휘이이이잉-.

그러자 검을 중심으로 세찬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클레이모어의 무게.

한데 바람이 모여든 것만으로 그것이 족히 열 배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다.

후우웅, 후우웅.

이윽고 그것이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루어, 허리케인을 만들어냈을 때.

쉐에에에에엑-!

정호의 검이 크라켄이 쓰러진,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에 내리꽂혔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솟구치는 물줄기를 바라보자마자, 힘이 풀려버린 정호가 쓰러졌다.

검은 수염, 티치가 바로 옆에 있었던 탓에 볼썽사납게 바닥에 쓰러지는 것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괘, 괜찮아유? 주인장?”

걱정스러운 얼굴로 정호를 부축하는 티치를 향해.

정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투가 끝나면.”

손가락을 들어, 티치의 이마를 향한다.

“반드시.”

“주인장. 알겠어유. 반드시 지킬 테니까 말해보슈.”

결연한 얼굴로 정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검은 수염.

다만, 이어지는 말.

그에 검은 수염의 얼굴이 벙 쪘다.

그 말은 티치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반드시 모든 코인을 회수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아버리는 정호.

“...허? 이거 참.”

사뭇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린 티치.

하지만 거기에 비웃음은 없었다.

“해적왕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벨라미.”

“아, 동감이다.”

벨라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그것은 코인, 약탈에 집착하는 정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솨아아아아아아-.

아직까지 하늘 위에서 쏟아지고 있는 소나기.

거기서 짠 맛이 나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주인으로 모시길 잘했어.”

벨라미의 시선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촤아아악-.

촤아아악-.

크라켄들이 존재했던 자리.

그것을 중심으로 파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저 꼴이 났을 테니까.”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져,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그림자 지하 성채 때와는 달리.

갑작스럽게 찾아온 ‘크라켄의 역습’의 침공.

그것은 지난 방어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이어졌다.

전혀 대비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밀려오는 적들의 공세는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 전선, 침공에 맞서 합동 방어선 결속]

한 나라에서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그 공세에 합동 전선을 펼치는 나라들도 있었다.

[일본 대패(大敗)!]

그 중에서도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일본이었다.

사면이 바다인, 섬 나라 일본의 특성상, 바다로부터의 공격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일격이나 다름없었다.

제아무리 랭커들이 막아선다 하더라도, 그 수가 모자랄 수밖에 없는 형태였으니까.

다만, 그런 와중에서도 한국은 꽤나 적은 피해로 침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포탈에서 침공해올 줄은 몰랐던 거지.

-과망플이 잠깐 사라진 걸로 지원 와장창 보내더니...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사망 소식.

그것으로 인해 보내온 수많은 나라에서의 지원은 제 살을 갉아먹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나, 그것만으로 막아낸 것만은 아니었다.

[P2WP의 재림]

이제는 과금망겜플레이어라기보다는, 전 세계에서 페이투윈 플레이어로 유명해진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중에서도 그가 나타났던 것은 제 1차 방어선, 남해.

-죽었다고 하던 녀석들 어디 갔냐?

┖그거야 아스텔 홈페이지에서 랭킹이 사라졌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죽였다는 사람도 있는데.

죽은 줄만 알았던 이의 출현.

그것이 가지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이런 미친. 남해 쪽은 포탈만 12개가 넘었잖아?

┖거의 대부분 이잖아.

특히나 한국에 남아 있던 포탈은 도합 15개.

그 중에서도 12개나 되는 포탈이 남아 있던 남해 쪽의 공격을 피해 없이 막아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어차피 거기에는 레이나도 있었다며.

┖랭커들 대부분이 그 쪽에 몰려 있었으니까. 피해가 있는게 이상하지.

사람들은 그 침공의 방어에 대해서, 그리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뿐이었다.

다만.

-무슨 소릴 하는 거임? 거기 침공 혼자 막았는데.

그것은 직접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 이들의 단순한 망상에 불과했다.

┖아무리 과망플이라도, 그림자 지하 성채면 모를까. 크라켄의 역습은 에바지. 톨비아 해본 녀석들이면 다 알걸?

-진짜라니까. 믿지를 않네. 바다가 갈라졌다니까?

┖이야.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더니 이제는 바다도 갈랐어?

┖무슨 예수로 만들 생각이야? 아무리 강해도 우리랑 같은 유저라고. 정신차려라 진짜.

-미치겠네. 진짜.

직접 보지 않는다면, 결단코 믿을 수 없는 목격자들의 댓글은 허무맹랑한 소리 취급받기 일수였다.

하지만.

[단독 입수! 과망플의 전투!]

도대체 누가 구했는지는 모를 동영상이 하나.

이전과는 다른, 깨끗한 화질의 그 영상 하나가 완전히 여론을 뒤바꾸었다.

콰아아아아앙-!

영상 초반부터 굉음이 울려 퍼진다.

바다 위로 떨어진 거대한 운석 탓이다.

┖운석 소환인 것 같은데...?

┖지금 레이나가 상급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저건...

┖┖최상급 마법임.

┖애초에, 과망플이 마법사였었나?

시작부터 압도적인 모습이 보여지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듯 수없이 많은 댓글들이 쏟아졌다.

다만, 그 영상이 후반부로 내달리면 내달릴수록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휘두름.

고작 그것으로 바다가 갈라진다.

잔당들마저 그 여파로 휩쓸어 버리는 그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이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고작해야 몇 분 남짓.

그것으로 모든 몬스터들을 처리한 과망플이 유유히 대해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으로 영상이 끝이 나자.

┖미, 미친...

그 하나의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댓글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조용한 부활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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