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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92화 (93/144)

< # 92화 >

# 92화

자그마한 착각과 오해.

그것으로부터 출발한 아스텔 유저들의 적대는 정호에게 있어서 달갑지는 않았다.

내버려두었다간 몬스터들을 향한 공세를 이어나갈 수 없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설명을 하려 다가서면 오히려 수많은 몬스터들에게 뒤통수를 맞는 격.

다만, 그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기만 한다면.

보다 강해진 아스텔 유저들로부터 더 없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정호는 굳이 그들에게 이 오해를 풀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발론의 성역’을 사용하여, 저인족들에게 강력한 버프를 주기까지 했다.

그것은 오해를 증폭시키는 일이다.

정말로 아스텔 유저 전체. 즉,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

후우우웅-.

하지만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멀린의 필사 스킬, ‘메테오 폴’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그 따위 걱정은 없었다.

‘아군인 것만 알려주면 되는 일이잖아.’

정호는 그들의 오해를 풀어낼 수단으로써 상당히 단순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쿠우우우웅-!

적들의 한복판에 떨어지는 메테오 폴.

“키야아아아악!”

“으아아악!”

바다가 움푹 들어가나 싶더니, 해일이 일어난 것처럼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당장이라도 침몰할 듯, 심각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정호는 미소를 내지었다.

“어, 어어...”

“저게 뭐야?”

의도한 바대로.

아스텔 유저들은 메테오 폴이 만들어낸 참상을 멍하니 바라보며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호를 향한 적의 따위는 남아 있지도 않았다.

다만, 그 덕분에 아군으로써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렇게 되면 내가 곤란하지.’

정호는 그들과 보상, 즉 코인을 사이좋게 나누어먹을 생각 따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꿀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코인의 요구치가 다를 테니까.’

정호가 가진 톨비아 시스템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태였다.

오 성 등급의 주력 화신 둘.

적재적소에 사용할 다수의 사 성 등급과 삼 성 등급의 화신들.

과금으로 점철되어 있는 도감작까지도 탄탄한 마당.

톨비아에서도 이 정도의 유저라면, 상위권에 속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성장이 멈춘다.’

남은 것이라고는 고 등급 화신들의 ‘전용 무구’.

새롭게 업데이트 된, ‘초월’ 시스템을 이용한 스스로의 성장.

또는, 가장 중요한 상위 화신의 뽑기.

하나 같이 어마어마한 코인이 들어가는 일이나 다름없다.

‘벽이야.’

모든 과금 게임이 그렇듯.

최상위권 유저들과 상위권 유저들의 차이는 거대한 벽을 맞대고 있다.

상위권 유저가 백 명이 모여도, 최상위권 유저 한 명을 이기지 못하는.

그야말로 누구의 통장이 더 강력한 가의 싸움이란 말이다.

‘나누어 먹어서 될 리가 없지.’

1만 코인으로 성장하던 일이, 10만 코인을 들이고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정호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

그것은 아스텔 유저들의 오해를 풀어내어, 안전하게 이 침공을 막아서는 게 아니라.

스르르릉-.

설령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공격!”

이 수많은 몬스터들의 코인을 독식하는 일이었다.

* * *

쉐에에에엑-!

쉐엑-!

정호는 손아귀에 걸린 검으로 적들을 향해 쉬지 않고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초월과 각성으로 이룬, 스스로의 스탯.

그것에 더불어 오 성 등급의 아틸라가 가진 힘이 더해지자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쿠르르릉-!

“캬하아악!”

거대한 클레이모어가 휘둘러질 때마다 울려 퍼지는 굉음과 파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저급 몬스터는 쓰러질 정도.

다만,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캬학!”

찌이이익-.

놓친 녀석이 있었던 것일까.

갑작스레 나타난 스팅어의 전기 충격이 정호의 늑대가죽 코트를 한 차례 찢어낸다.

피해는 없었으나, 미간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많긴 많군.’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도 아니건만.

끝없이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웅님의 도움이 되어라!”

“우리의 은혜를 되갚아 주어라!”

저인족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적들의 수에는 턱 없이 모자라는 일.

“씨 블라스트!”

후우우우웅-!

콰아앙-!

“캬아아악!”

“으아아악!”

그나마 멀린의 광역 스킬, 씨 블라스트가 큰 도움이 되고 있었으나.

도대체 얼마 안 되는 포탈에서 어떻게 이런 양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새파랗던 바다는 녀석들의 새까만 그림자로 가득 차 있었다.

“쯧.”

정호는 짙은 아쉬움에 혀를 차냈다.

‘차라리 크라켄이 앞으로 나와 주었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오던 크라켄‘들’은 그 거대한 몸집 탓에 몬스터들에 뒤처진 모양인 듯,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다.

필사 스킬인 ‘군신의 검’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상당한 반동과 함께 단 한 발 밖에 쓰지 못한다는 리스크가 있는 녀석이었다.

이 따위 몬스터들에게 사용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나쁘지는 않지만, 애매해.’

체력은 충분히 남아돌았다.

아틸라의 스킬, ‘전투광’의 효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스탯이 하늘을 뚫을 듯이 올라가고 있다.

전투 자체의 난이도는 낮아지고 있었다.

“...도와주어야 되지 않을까?”

“우리가 오해를 한 것 같아.”

다만 메테오 폴에 의한 충격요법은 전투가 길어지면서 이미 그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아스텔 유저들이 지원이라는 이름의 스틸이 찾아오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런 정호의 곤란함을 알아차린 것일까.

갑작스레 손을 번쩍 들며, 정호를 향해 찾아오는 녀석.

“네가?”

자신만만하게 나타난 녀석은 다름 아닌 적들에게서도 간간히 그 모습이 보이는 보스 몬스터, ‘벨라미’였다.

“저런 녀석들이라면 제가 가능합니다! 넵! 맡겨주십쇼.”

어느새 신입사원이라도 된 양,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 나서는 모습은 실로 흐뭇하기 짝이 없었지만.

‘...파이렛 어셈블이었던가?’

정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파이렛 어셈블’은 벨라미를 손에 넣으면서 생겨난, 보유한 모든 해적들을 소환하는 스킬.

소환 개체 수에 제한이 있는 톨비아의 시스템 특성상, 굉장한 메리트가 있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나.

‘해적들의 등급은 아무리 높아도 삼 성 등급.’

그것도 아직 각성을 채 이루지 못한 녀석들이 대다수다.

상위 화신은 이미 소환되어 있는 벨라미와 에드워드 티치가 전부인 마당이다.

뽑기를 진행해, 더 많은 해적을 뽑았다면 모를까.

여기서 삼 성 등급의 화신이 몇 더 추가된다 하여 그리 다를 바는 없어보였다.

“할 수 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거, 시방 사람이 바뀌었나? 그 벨라미 맞으이?”

검은 수염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벨라미의 얼굴은 흔들림이 없었다.

“...뭐, 알았다.”

정호는 그런 녀석의 제안을 수용했다.

애당초 벨라미는 적들의 수장이나 다름없었던 존재.

그런 녀석이 아무 생각도 없이 저런 의견을 낼 이유가 없으리라.

“파이렛 어셈블.”

전투 그 자체에 위험은 없지 않은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연 정호였으나, 그 직후 이어진 일에 대해서는 솔직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퍼어엉- 퍼엉- 퍼엉-!

멀리서부터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포탄들.

그것이 적들의 측면을 완전히 후려쳐 내버린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저를 불러주지 않으셔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지휘하는 이들은 분명 정호가 보유한 ‘앤서니 셜리’와 ‘윌리엄 키드’를 비롯한 삼 성 등급의 화신임에 틀림이 없었다.

다만.

부우우우웅-!

족히 서른 척은 될 법한 선박의 수.

““와아아아아아아!””

거기에 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숫자의 해적들은 정호의 기억에는 없는 존재들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른 채, 벨라미를 바라보자 녀석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답했다.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히든 업적 : 대선단의 주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런 게 있었나?’

전혀 모르는 업적이 튀어 나왔다.

* * *

해적과 해적 간의 싸움은 빈번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해적이란 약탈을 일삼는 이들.

그것에 아군과 적군이라는 경계는 매우 가냘픈 것이라, 이득만 된다면 서로의 등을 찌르는 것은 쉽게 일어나니까.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익’을 위한 일.

그저 상대를 완전히 박살내어버리는, 파국으로 내달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퍼어엉-!

퍼엉-!

“캬하하하하! 아호이!”

“아호이다 이것들아!”

“우리가 인사를 하는데 왜 답이 없는 거야? 죽고 싶어?”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적들과 해적의 싸움이 아닌, 오로지 한 쪽이 전멸을 해야만 끝나는 전쟁.

그것에는 일말의 자비조차 없었다.

“하.”

정호는 그런 해적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새롭게 달성한 업적, ‘대선단의 주인’ 탓이었다.

[히든 업적 : 대선단의 주인]

: 해적들이 자신의 해적단을 소환합니다.

-달성 조건 : 보유한 ‘해적’ 삼성 등급 이상의 화신이 다섯 이상이고, 이를 모두 소환했을 때.

-업적 보너스 : 해적들의 모든 스탯이 50증가 합니다.

‘처음 보는 이유가 있었군.’

달성 조건을 본 정호는 하마터면, 스스로 이마를 때릴 뻔 했다.

해적들만 모아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를 찾는 것도 어려울 진데.

‘게임에서는 달성할 수도 없었어.’

애당초 톨비아는 강신용의 화신 하나와, 소환할 화신 하나.

이렇게 두 명의 화신을 이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VIP 보너스로 한 명의 화신을 추가한다 하더라도 셋.

보기 드문 레어 몬스터에서 ‘오라클’을 얻어도 넷.

소환된 화신이라는 것은 강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다섯의 소환이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것이 보스 몬스터 도감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건가?’

아무래도, 이 업적은 후일에 추가될 ‘소환 수 개체 증가’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아니, 정말 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믿을 수 없으니 그런 추측 따위는 무용지물이다.

‘뭐, 좋아.’

다만, 이 상황 속에서 이 업적이 발현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야, 이게 얼마 만입니까. 선장.”

“여전히 그 사투리 쓰고 있습니까?”

나타나는 해적은 결코 삼 성 등급의 ‘앤서니 셜리’나, ‘윌리엄 키드’만이 아니었다.

히든 업적, 대선단의 주인이 가진 효과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해적단의 소환’.

“너, 너희들...! 이게 얼마 만이당가.”

“아하하! 여전하시네요.”

그것은 사 성 등급의, ‘검은 수염’과 ‘해적왕’의 해적단을 소환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까.

부우우우우웅-.

적들의 수는 아득하기만 했으나.

수천을 아득하게 넘기는 아군 해적들의 등장은 그것만으로도 대세를 뒤집어엎었다.

“공격!”

타앙! 타앙!

“보니 누님은 여전히 화끈합니다!”

“헛소리 하지 말고, 도움이나 되라고. 뒤처지면 내버리고 간다.”

정호의 화신들은 오래 간만에 재회한 스스로의 해적단에 의해 사기가 치솟아 올라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기에서 멈추지 않고서.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가 해적단을 이끕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스킬, 포탄 세례의 쿨타임이 대폭 감소합니다.

“오랜만에 가볼 까? 적들을 향해 포탄 세례!”

“예이 - 선장!”

퍼엉- 퍼엉- 퍼엉-!

각각의 해적 화신들의 능력치가 제멋대로 치솟아, 그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캬하아아아악!”

“이런, 젠장! 저런 녀석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갑작스런 대선단의 출현은 적들의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로지 압도적인 수만이 장점이었던 그들에게 저인족들과 해적단의 합공은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패색 짙은 전투에 서서히 그 배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만 침공을 가하는 그들이 온전히 후퇴를 할 리가 만무했다.

“얼른 선장님께 돌아간다!”

“크라켄을 불러!”

적어도 녀석들에게는 비장의 수가 숨어 있었으니까.

놈들은 그저 마냥 뒤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양 쪽으로 갈라져, 길을 터주고 있었다.

구우우우우우웅-.

구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수 마리의 문어들.

“하, 하하. 내가 문어를 참 좋아하기는 하는데.”

“저건 좀.”

그에 아군 해적들이 잠시간 동요를 하기는 했으나.

“무슨 소릴 하는 것이여.”

그런 아군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수많은 해적들을 이끌어 본 검은 수염과 벨라미의 몫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잔당 처리다!”

“녀석들을 쓰러뜨려!”

화아아아아악-.

정호 측에서도 선박들이 활짝 펼쳐지며, 검은 수염의 앤 여왕의 복수 호 만이 크라켄들과 마주한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꺼?”

“어떻습니까?”

검은 수염과 벨라미의 말이 들려오자, 정호는 답하지 않은 채 미소를 내지었다.

정말이지 어쩜 이리도, 딱 좋은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녀석들의 충심에 코인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다.

‘아니, 진짜로 주지는 않을 거지만.’

스르르릉-.

시답잖은 생각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을 흘린 정호가 검을 빼어들었다.

터업-!

거대하기 짝이 없는 클레이모어을 일직선으로 내뻗었다.

“스읍...”

정호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다수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적의 크기는 이루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빗나갈 이유 따위는 없다.

굳이 약점을 맞추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 육체에 맞추는 것으로, 녀석들이 쓰러지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

준비를 마친 정호가 자그마하게 입을 열었다.

“...군신의 검.”

화아아아아악-.

곧장 휘몰아치는 세찬 바람.

그와 함께.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지금껏 본 적 없는, 우레의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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