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1화 >
# 91화
목숨을 위협하는 전장 속에서, 가장 두려운 것.
그것은 적이 뛰어난 전략 지식을 지닌 군사나 강력한 무력을 지닌 장군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이는 상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그 애매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쉐에에엑-!
“영웅님을 지켜라!”
“은혜를 갚을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스텔 유저에게 있어서 적의를 품고서 삼지창을 내찌르는 저인족들의 존재는 분명 적임에 틀림이 없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텔 유저들은 저인족들을 향해 공격을 쉬이 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바다 아래에서 내찌르는 저인족들의 공격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점도 있었으나.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어떻게 알아? 랭커들도 공격을 안 하고 있는데.”
유저들은 하나 같이 저인족들이 아군인지, 적인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바다 위에서 떠올랐던 하나의 석상.
그것이 문제였다.
-저인족들의 걸작! ‘행운의 여신상’을 목격했습니다.
-하루 간,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 ‘10’의 버프는, 톨비아보다는 아스텔 유저들에게 그 의미가 컸다.
아스텔은 톨비아와는 달리, 운까지 포함하여 다섯 개의 스탯을 가지고 있다.
총합 능력치 ‘50’의 증가.
단순 능력치로만 본다면, ‘10레벨’이나 껑충 뛴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다.
“아군...이 아닐까?”
“하지만 공격을 하는데?”
아스텔 유저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런 놀라운 버프 효과를 주는 상대가 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저인족들이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모양인데?”
“진짜네.”
항구로 절반.
몰려오는 몬스터들에게 절반.
저인족들은 제각기 나뉘어,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아군인지 적인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버틸 만 하니까 내버려두면 되지 않을까?”
결국 아스텔 유저들의 판단은 ‘보류’였다.
지난 시간, 시련과 던전으로 충분히 레벨 업을 한 유저들에게 있어서.
저인족들의 공격은 까다롭기는 했으나, 위협적이지는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글쎄요.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간간히 네임드 저인족도 끼어있는 모양이라...”
항구에 모여든 랭커들도 다를 바는 없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곤란함을 표했다.
“공격하세요. 제아무리 아군일 수도 있는 상대라도, 사람들이 다치는 것만은 안 되니까.”
결국 레이나가 나서고 나서야.
“제아무리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칼을 들이미는 저인족이 아니에요.”
“확실히. 그게 정답이죠.”
랭커들이 하나 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도 이 같은 상황에서 레이나의 의견이 확실한 정답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어 나서는 순간.
그 뒤에 이루어질 책임은 스스로의 몫이 되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그저, 만일 잘못되었을 때 총대를 대신 메어 줄 존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공격!”
“저인족들을 모조리 죽입시다!”
결국 랭커들이 발벗고 나서자, 일반 유저들도 덩달아 검을 빼어들었다.
“그래, 어차피 저인족들일 뿐이잖아.”
“던전에서 지겹도록 본 녀석들이야.”
채앵-! 파앙-!
병장기와 병장기가 맞물리고.
마법이 날아올라, 저인족들이 있는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정호의 입장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멈출 수는 없나?”
“가능은 하겠지만,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멈춘다하더라도, 정호님을 향한 공격은 멈추지 않을 거에요.”
이제와 항구로 향한 저인족들의 공세가 멈춘다 하더라도.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한 아스텔 유저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유일하게 저인족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은 자신에게 더 큰 적대감을 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
“하하, 개판이네.”
정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손가락을 들어 코를 한 번 문지르며, 이 상황을 타파할 방도를 찾으려 애썼다.
‘유저들 수준은 높고, 저인족들은 금방 떨어져 나가겠지.’
네임드 급의 저인족인 지켈과 같은 심해경비대는 항구가 아닌 바다 위의 해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저인족들이 랭커를 포함해, 성장한 아스텔 유저들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을 향한 공격을 재개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후, 됐어.”
정호는 거기까지 고민을 하고서는,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멀린.”
“예. 마스터.”
정호가 입을 열어, 조용히 멀린을 부르자.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것인지 멀린 또한 진지하게 답했다.
“스킬, 아발론의 성역.”
“...괜찮겠습니까?”
곧장 돌아오는 대답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다.
아발론의 성역에 대상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군’인 저인족들만 해당하는 부분이다.
톨비아 시스템은 아스텔 유저를 적으로 대하고 있었으니까.
아발론의 성역이 지닌 놀라운 버프 효과를 생각해본다면.
어지간한 랭커들조차도 일반적인 저인족들에게 쓰러질 수 있는 힘을 쥐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호는 담담히 답했다.
‘죽일 생각 따위는 없어.’
아무리 생각하기를 포기했다고 한들.
정호가 아무 대책도 없이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 속에서.
해결책이란 괜히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써서 고민하다 시기를 놓쳐버리는 것이 비일비재하니까.
“이럴 때는 막 나가는 게 좋아.”
어지러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는 오히려 단순무식한 방법이 최고인 법이다.
정호의 확신어린 대답을 받고나서야,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발론의 성역.”
멀린이 스킬을 발동하는 외침과 함께.
대앵-, 대앵-.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죽음과 늙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던 낙원의 섬, 아발론.
화아아아악-.
그 환상의 성역이 바다 위에서 펼쳐졌다.
* * *
정호가 예상했던 것처럼.
저인족들의 열세는 상당했다.
“파이어 웨이브!”
“심판의 낫!”
“트리플 에로우!”
아스텔 유저들이 전개하는 스킬들은 포탈이 나타나기 전부터 착실히 숙련도를 쌓아온 것들.
“크, 크흑...”
“이, 인간 녀석들...!”
그것을 심해의 몬스터들 수준에 불과한, 일반 저인족들이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야, 별 것도 아닌 게.”
“저 놈 도망간다!”
애초에 해저 루트로 공략을 이어나가던 아스텔 유저들이다.
저인족들은 해저 루트에서 까다로운 적으로 정평이 난 녀석들.
그것이 몬스터와 대립하는 모습에 의해 잠시 멈칫하기는 했으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니 언제 망설였냐는 듯, 한 치의 자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아니, 오히려 도망가는 저인족들을 향해 확인 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바다로 달려드려 하지 않는가.
“멈추세요.”
하나, 그것은 레이나에 의해 멈춰 세워졌다.
‘이상해.’
레이나는 저인족들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제, 젠장...나는 영웅님과 함께 제물의 날에서 살아남은 전사라고.”
“그 축복만 있었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고서, 거리를 벌리고 있는 저인족들이 이따금씩 내뱉는 말들.
“꿈이라도 꿨나 봐.”
“몬스터도 꿈을 꿔?”
“그거야 모르지. 말도 하는 놈들인데.”
아스텔 유저들은 그것을 단순한 허세나 꿈과 같은 망상으로 치부하기는 했으나.
레이나는 전혀 그리 생각지 않았다.
‘영웅...’
그들의 입에서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명칭.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스윽-.
유일하게 바다 위에서 저인족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있는 선박 한 척.
과금망겜플레이어의 브리깃선이 있었으니까.
‘축복...’
어떤 종류의 버프 형태를 말하는 것이겠으나.
적어도 저인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보아, 비장의 수단임에 분명해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레이나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대앵- 대앵-.
아직까지 아침 해가 떠오르지도 않을 시간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지평선 너머가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종소리야?”
“뭐야?”
당황하는 아스텔 유저들과는 달리.
“와, 왔다!”
“영웅님의 축복이다. 하하! 이거라고!”
저인족들의 얼굴에는 환호가 터져나온다.
아예 상당한 피해를 입은 녀석도 도망을 치다말고, 항구 방향으로 몸을 되돌리는 것이 아닌가.
“다들 경계하세요!”
레이나가 재빨리 외쳤으나,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으니까.
아니, 예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 어어...”
“뭐, 뭐야!”
아스텔 유저들에게서 동요가 터져나왔다.
그도 그럴 게.
화아아아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빈사 상태까지 갔던 저인족의 몸이 완전히 치유되고 있었다.
그 뿐인가.
드드득-! 드드드득-!
저인족들의 몸이 돌변하고 있었다.
육체가 커지는가 하면.
새로운 팔이 돋아나는 이도 있었고.
아예 해저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오르는 이도 존재했다.
““영웅을 위하여!””
일제히 일갈을 내지르며, 항구에 쏜살같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
레이나는 말을 잃었다.
‘하나, 하나가 준 랭커...!’
비록 랭커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니었으나.
저인족들의 수는 무려 수천을 넘어서고 있다.
‘도대체...!’
머리에서 경종이 쉬지 않고 울려댔다.
“상급 마법 준비!”
레이나의 판단은 재빨랐다.
“아름다운 하늘에 피어나는...”
“강렬한 수호자의 기운이...”
다급한 레이나의 외침에 길드, ‘대마법사’에서도 셋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급 마법사들이 주문을 시작하자.
“내가 원하는 것은 홍련의 화살.”
레이나도 자신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상급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모든 마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는 법이다.
백마법사의 특성상, 높은 등급의 마법일수록 그 주문의 길이가 상당하다는 점.
콰아아앙-!
“으, 으윽!”
“이, 이 녀석들 대체 뭐야!”
그 덕분에 항구의 전투 양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조, 조금만 더 버텨!”
“레이나님이 상급 마법을 시전 한다!”
“여기다! 여기라고! 으아아악!”
이번에 도망치는 것은 아스텔 유저들이었다.
최대한 마법의 시간을 끌려는 듯, 저인족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고작해야 2분 정도에 불과했으나.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 그런 유저들의 노력은 결실을 발했다.
“대지균열!"
“만뢰격멸!”
두 명의 상급 마법사가 먼저, 그 마법을 완성시키고서.
“붉은 신성!”
뒤이어 레이나의 상급 마법도 동시에 터져나왔다.
콰드드드득-.
콰르르릉-.
화아아아악-!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상급 마법의 향연.
“와...”
“저게 상급 마법이야?”
그 보기 드문 마법의 화려함에 유저들은 전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멍하니 그 마법을 바라만 보았다.
하지만 저인족들은 달랐다.
“끝났다! 복귀! 복귀!”
“빠져야 해!”
마법이 채 떨어지기도 직전에, 갑작스레 후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저인족들에게도 피해는 상당했으나.
상급 마법이 연거푸 떨어진 것치고는 얼토당토않은 효과만을 주고 끝나버렸다.
‘이런...!’
어째서 녀석들의 어그로가 멋대로 빠진 것인지 모르는 레이나의 입장으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찾는 것은 매우 쉬웠다.
화끈-!
“어...왜인지 조금...덥지 않아?”
“그, 그렇네. 아니 그보다 좀 밝은데.”
밤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이 떠올라 있는 것처럼 환한 것은 물론.
후끈한 더위가 몰려왔으니까.
“...저, 저거!”
이내, 그 더위의 정체를 찾아낸 유저 하나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
레이나는 이미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하나,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화아아아아아악-.
‘저, 저게... 가능한 마법이야?’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랭킹 3위의.
아니, 마법사 랭킹 1위의 레이나로써는 믿을 수 없는 장면.
조금 전에 자신이 펼쳐낸 상급 마법이 아이들의 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운석...”
거대한 운석이 바다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