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0화 >
# 90화
-‘크라켄의 역습’의 침공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갑작스레 울려 퍼진 목소리였다.
준비할 시간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채.
제멋대로 포탈 속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
“어, 어어.”
“침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스텔 유저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얼른 항구 쪽으로 빠져!”
일반 유저들도 그럴 진데, 랭커들이라 할지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 침공의 시작이 늦은 밤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시간까지 던전을 공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기에, 속속들이 항구 쪽으로 유저들이 모여들었다.
“...저게 다 뭐야.”
다만 제아무리 많은 유저들이 알림을 받고 찾아왔다고 한들.
하나에 ‘20인 공격대’가 참가되어야 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몬스터를 품고 있는 포탈이다.
“...해, 해적이잖아.”
물 밑에서 첨벙거리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의 존재만으로도 벅찰 지경이건만.
그 바다의 위에는 해골 모양의 해적기가 잔뜩 꽂힌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지 않은가.
퍼엉-! 퍼엉-!
“캬하하하-!”
“아호이!”
마치 자신을 과시하듯이, 포탄을 쏴 갈기며 다가오는 해적들.
“이래서는 도저히 막아낼 수가...”
“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얼른 준비 해! 녀석들이 육지를 밟지 못하게 하라고!”
아직은 멀리서 보이는 정도에 불과했으나, 그 바글바글한 수는 도저히 모여들고 있는 아스텔 유저들의 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째서 아스텔은 이런 사태를 알려주지 않은 거야.”
가끔씩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은 모두가 가지는 감상이었다.
침공을 막아 세우기 위해서 시련까지 내주었던 아스텔이었으나.
결국 그 침공 시기를 너무 늦게 알려주는 바람에 몰살해버린다면 주객이 전도된 형태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유저들의 불만 섞인 말들도 한 남자의 앞에서는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젠장...!’
항구에 유저들이 모여들고 있던 그 때.
망망대해 위에서 앤 여왕의 복수 호를 이끌고 있는 정호는 이를 갈고 있었다.
“설마 침공까지 빼먹을 줄이야!”
늦게라도 알려주면 훨씬 나은 격이다.
더 이상은 정호에게 들리지 않는 아스텔의 목소리.
그것은 가장 중요하기 짝이 없는 ‘침공’이라 할지라도 다를 바가 없었다.
* * *
퍼어어엉-! 퍼어엉-!
앤 여왕의 복수 호에서 쉬지 않고 대포알이 쏘아져 나갔다.
“으, 으아아악!”
“캬아아악!”
그럴 때마다 해적들과 함께 바다 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몬스터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르릉-!
쿠르릉.
정호 또한 연신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녀석들을 학살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주, 주인장. 이거 조금 위험한 것 아니여?”
검은 수염, 티치의 말마따나.
망망대해 위에서 펼쳐지는 전투는 정호에게 그리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젠장...!’
제아무리 정호의 화신들이 강하고, 스스로도 강력한 장비를 손에 넣었다고는 하나.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끝이 없네.”
정호는 이를 바득 갈았다.
크라켄의 역습은 해상 루트와 해저 루트.
둘로 나누어질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도사리는 던전.
포탈이 하나, 둘 정도라면 모를까.
빠른 공략을 위해, 일부러라도 많은 포탈이 위치한 곳을 찾아다니던 정호였지 않은가.
포탈 내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의 수는 정호가 처리할 수 있는 허용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퍼어엉-!
“으윽...! 주인! 하단부에 구멍이 난 것 같아!”
앤 보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상황이 심각해짐을 알려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령선과 다름없던 앤 서니의 복수 호가 아주 걸레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쯧...!”
혀를 차냈다.
정호는 광범위의 공격 스킬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검은 수염의 포탄 세례와 더불어.
멀린의 씨 블라스트.
거기에 강신시킨 아틸라의 군신의 검까지.
하나 같이 크라켄의 역습 정도의 몬스터가 막아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강력한 스킬.
다만.
‘차라리 녀석들이 한 방향에서만 온다면.’
녀석들은 그 수도 수였으나.
한 가운데에 있는 정호를 향해 덮쳐오는 형세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광범위 스킬이 대부분 긴 쿨타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마구잡이로 쏘아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곳을 벗어난다! 티치, 포탄 세례!”
정호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있어봐야,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일 뿐이다.
굳이 녀석들이 펼친 어망 안에서 싸워 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 말만을 기다렸수다. 전 포탄 장전!”
철컥- 철컥- 철컥-.
50문에 달하는 포대가 단 번에 고개를 들었다.
“포탄 세례!”
퍼엉-! 펑-! 펑-!
“캬아아악!”
티치의 말에 따라, 불을 내뿜는 포대가 길을 뚫어내자마자 앤 여왕의 복수호가 전속력으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 도망간다!”
“멍청한 놈!”
“얼른 잡아!”
갑작스레 도망을 택하는 모습에 신이 난 해적들이 안달이라도 난 듯, 정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구우우우우웅-.
우우우웅-.
“크라켄까지? 미치겠군.”
마치 지금까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처럼.
정호의 뒤를 바짝 쫓는 보스 몬스터, 크라켄의 존재까지 있었다.
* * *
갑작스러운 침공이기는 했으나.
아스텔 유저들에게 있어서 마냥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첫 번째 웨이브.
-해적들이 침공합니다.
“다, 다행이야!”
“전부 튀어나오면 어쩌나 싶었어...!”
알려오는 아스텔의 목소리에는 크라켄의 역습 중에서도 ‘해적’.
그러니까 해상 루트의 적들만이 처 들어온다는 이야기였으니까.
“파워 차지!”
“아이스 스피어!”
항구를 향해 몰려오는 해적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는 유저들의 낯빛은 밝았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찾아온다면, 할 수 있겠어!”
아스텔 유저들은 지난 시간의 시련을 통해 그 수준을 상승시킨 마당이었다.
해저 루트를 선호하는 그들로써는 해적들과의 전투가 그리 익숙하지는 않았으나.
잡졸에 불과한 녀석들을 하나, 둘 처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마법사들은 항구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중급 마법을 선박을 향해 쏘도록 하세요. 근접 클래스들은 이미 도착한 해적들을!”
거기에 지휘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그림자 지하 성채에서 지휘권을 지니고 있었던.
“레이나 님이 와서 다행이야.”
랭킹 3위의 상급 마법사.
길드 대마법사의 수장, 레이나이지 않은가.
““와아아아아!””
착착 진행되어가는 침공 방어.
아스텔 유저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다.
“...”
다만 레이나, 세정의 표정만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어떻게, 그 사람이 있는 거지?’
세정은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본 그 브리깃선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침공해오는 해적에도 분명 비슷한 형태의 선박이 있었기에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었으나.
그 거대한 크기는 과금망겜플레이어의 브리깃선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정말 살아 있었나?’
그 사실은 죄악감으로 점철되어 있던 세정의 마음을 크게 덜어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결코 안심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째서 그쪽 방향에서...’
침공 직전까지도 던전 공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고 하면 충분히 설명이 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형태가 매우 이상했다.
해적기를 내걸고 있는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선박을 필두로, 수많은 해적들이 쫓고 있는 모습.
그것은 도망치고 있다기보다는,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여졌으니까.
“그래, 저런 형태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탓일까.
세정은 멀리서 다가오는 해적들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어, 어어?”
“저거...”
하지만 술렁이는 주변에 의해서 곧장 정신을 되찾을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하던가.
정말로 과금망겜플레이어의 브리깃선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것도.
““캬아아아아악!””
바다의 위로 치솟아 오르며, 소리를 내지르는 몬스터들과 함께 말이다.
“스팅거에...라우저, 핑윙까지...!”
“첫 번째 웨이브라면서...? 해적들이 오는 것 아니었어?”
아스텔이 알려왔던 말과는 전혀 다른 웨이브.
바다가 새까맣게 변할 정도로 압도적인 수의 몬스터들의 군단.
그에 당황이라도 한 것일까.
유저들은 멍하니 하나의 브리깃선이 이끄는 몬스터들의 군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뭣들 하고 있으세요! 마법사들은 몬스터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세요!”
그곳에서 유일하게, 세정만이 그 상황에 심각함을 인지하고서 재빠른 대응을 하기는 했다.
다만.
“얼른 전투···.”
그런 세정조차도 말을 다 잇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구우우우우웅-.
마치 귀에 직접 때려대는 듯한 굉음이 있었으니까.
“저게 무슨 소리야?”
“어, 어어...! 저 녀석이 왜 벌써!”
일반적인 아스텔 유저들은 알지 못하지만.
보스 공략을 이루어낸 랭커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대상.
“보스! 보스다!!!”
“크라켄이라고!”
보스, 크라켄의 등장이었다.
* * *
“아이스 스피어!”
“파이어 볼!”
“어스 퀘이크!”
후웅- 파앙- 퍼엉-!
어느새 새벽의 달빛이 지고, 새로운 아침이 떠오르는 항구의 바다.
그 위를 수놓는 마법들의 향연은 실로 아름답기까지 했다.
다만 그 아름다운 똥 덩어리들이 자신에게 떨어진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런, 시발. 왜 나한테 쏘고 지랄이야.”
정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몬스터들을 한 방향으로 모으기 위해서 항구로 향하고 있던 차에, 갑작스레 마법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스텔 유저들.
아군이 분명할 녀석들에 의해서 말이다.
‘무슨 미친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호도 예상가는 바가 있었다.
“...이봐. 티치. 브리깃선 수리 좀 하는 게 어때.”
“무슨 소리입니꺼, 주인장. 이 정도는 되어야 적들이 깜짝 놀랍니더. 갸하하하하. 사실, 고칠 수도 없지만 말입니더.”
“...쯧.”
몬스터들과의 전투에 의해 이곳저곳 헤지기는 했으나.
애초에 앤 여왕의 복수 호는 유령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음습한 분위기를 가진 선박이다.
그런 선박이 몬스터를 데리고 나타났다면, 놀라지 않는 녀석은 없으리라.
퍼엉-! 퍼엉-!
“캬아아악!”
정호는 선박 위로 올라오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면서도 쉬지 않고 날아오는 마법을 쳐내기에 바빴다.
‘이래서야 아까보다 더 심하잖아.’
차라리 몬스터들에 둘러싸여 있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렇다고 아스텔 유저들을 향해 공격을 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려 뒤를 돌리는 순간, 아스텔 유저들에게 공격을 당할 기세다.
“...”
정호는 흘깃, 아스텔 유저들을 향해 시선을 보내고선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정호가 향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항구의 방향 밖에는 없었다.
정호가 도망치며, 몰려온 적은 보스인 크라켄을 비롯해 ‘만’을 훌쩍 넘기는 수의 몬스터들.
그 녀석들을 뚫고 다시금 망망대해로 나가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큰 소리로 소리를 내지른다고 해서 닿을 위치도 아니었거니와.
그조차도 터져 나가는 마법들에 의해 묻힐 가능성이 높은 답답한 상황.
‘적당히 하면...’
정호는 검을 고쳐 잡고서는, 항구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 공격들을 잠시나마 멈추게 한다면.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면 충분한 의사소통이 될 것이었으니까.
후우우웅-.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높게 치켜들고서 항구 쪽의 유저들을 향해 휘두르려 하는 그 때.
촤아아아악-!
바다 속에서 갑작스럽게 치솟아 오른 물줄기에 의해서 그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음?”
순간 몬스터인가 싶어, 방어 자세를 취한 정호.
하지만 이윽고 천천히 바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고는 의문을 터뜨렸다.
그것은 이곳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으니까.
“...아틸라?”
닮은 듯, 닮지 않았던 하나의 석상.
던전의 내부.
그것도 심해에 처박혀 있어야 할 신상, ‘행운의 여신’이 항구의 바다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어째서?’
그런 생각이 떠오를 새도 없었다.
“드디어 은혜를 갚을 시간입니다! 저인족들의 저력을 보여주세요!”
던전을 공략하며 수도 없이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
촤아악-! 촤아악-!
그 목소리와 동시에, 바다 위로 솟구치는 수많은 저인들.
“기다리셨죠? 심해의 녀석들을 정리한다고 늦었어요.”
정호를 향해 윙크를 하는 존재는 저인족들의 지도자이자 대통령, 리앙이었다.
정호는 어째서 저인족들이 나타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나.
‘나쁘지는 않아.’
아군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양할 사항은 아니었다.
저인족들 자체는 큰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멀린의 ‘아발론의 성역’이라면 충분히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그런 정호의 생각은 이어지는 리앙의 말에 멈추고야 말았다.
“정호님을 공격하는 적들을 쓸어버리세요!”
““와아아아아!””
저인족들은 리앙의 말에 따라, 몬스터와 해적들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아니 잠시만!”
하지만 정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 쪽은 아니야!”
저인족들이 아스텔 유저들이 있는 항구를 향해서도 내달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