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6화 >
# 86화
벨라미의 해적단이 저인족들의 도시에서도 식별될 만큼 거리를 좁혀 왔을 때.
도시 내의 저인족들은 그 군세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와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대통, 음... 이건 너무 입에 안 맞네. 지도자가 손을 대지 말라고 했잖아.”
“그,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저런 녀석들한테 덤비는 건 좀.”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하나의 핑계거리를 대며, 회피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라켄을 비롯한 수천의 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저들과 싸운다는 것은 자살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제물의 날에서 살아남았다잖아.”
“아니, 살아남는 게 문제가 아니라. 쓰러뜨렸다며...?”
이미 크라켄을 한 번 쓰러뜨린 전적이 있는 인간.
그런 인간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혼자지?”
“그, 그러게.”
다만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분명 적들의 군세는 막강할 진데, 그 적을 마주하는 것이 고작해야 하나의 인간뿐이었으니까.
“고, 고작해야 인간 하나로는 무리라니까!”
“나, 나도 인간 녀석은 몇 번이고 만났어! 그들은 하나 같이 약해 빠졌다고!”
“우린 다 죽고 말 거야!”
적들이 코앞까지 치닿자, 혼란에 빠지는 저인족들.
쿠웅!
“갈(喝)!”
그런 그들을 막아서는 것은 심해경비대 대장, 지켈의 일갈에 의해서였다.
“대통령 각하께서 모든 책임을 진다고 하셨다! 너희들이 직접 뽑은 지도자를 믿지 못한다면 누가 믿느냔 말이다!”
단호한 지켈의 말.
“마, 맞아.”
“...하지만 저 수는 좀.”
그에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으나, 누그러지기는 했다.
“고마워요. 지켈.”
“아닙니다. 각하.”
그에 감사의 인사를 받은 지켈은 가슴에 손을 얹고서 고개를 숙였다.
‘...저들의 전투를 본 적은 있지만, 저 수와 마주하는 것은 무리일 터.’
하나, 지켈이라 할지라도 마냥 지도자의 말을 온전히 믿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켈은 저 인간의 전투를 이미 제물의 날에서 지켜 본 이력이 있었다.
저 인간의 무력은 분명 대단하기 그지없어, 크라켄을 궁지로 몰아세우기는 했다.
‘하지만 동료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저 하나의 인간이 가진 힘은 아니었다.
그의 주위에는 강력한 동료, 혹은 수하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
한데 어째서인지, 인간은 이번에 홀로 나섰다.
‘준비해두어야 되겠어.’
지켈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상황이 잘못되면, 언제라도 뛰어나갈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런 지켈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쿠르르르릉-!
난데없이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
“저, 저게 대체...!”
그 굉음이 이루어낸 일을 바라 본 지켈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거대한 크라켄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 여파로 백에 달하는 해적들이 목숨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여, 역시... 지켈님! 이 상황을 예상하셨군요.”
“인간에게 비장의 수가 있었다!”
그에 따라 저인족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아니, 전혀 몰랐는데.’
오히려 잘못될 확률이 높다 판단하여,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나, 놀라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콰르르릉-! 콰르릉-!
“어...어...?”
분명 비장의 한 수라고 생각했던 그 천둥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적들은 휘둘러지는 검에 닿지도 않은 채, 추풍낙엽처럼 쓰러져만 가고 있었다.
쿠르르릉-.
쿠르릉-.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천둥소리가 점점 멎어들기 시작한다.
전투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
터덜거리며 도시의 방향으로 다가오는 인간.
“...저 인간은 도대체.”
“무, 무서워.”
오히려 환호하던 저인족들조차 그 모습에 공포를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지 않는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 탓에 지켈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각하.”
오히려 리앙을 향해 고개를 돌려 책임을 떠넘긴다.
저 인간에게 온전히 전투를 맡긴 것은 저인족들의 대통령, 리앙이었으니까.
지혜로운 자라는 칭호를 받은 그녀라면.
이 상황을 모두 예상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감옥에 가는 게 정석이라더니... 꽤 영특하군. 이런 상황이라면, 나에게 보상을 주어도 아무도 무어라 하지 못할 테니까.”
다가온 인간, 정호에게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인 일이 아닌가.
“물론이죠. 제 나이는 아직 창창하니까요.”
시원한 대답.
‘역시 리앙 각하!’
지켈은 감탄을 했다.
비록 인간이라는 수단을 이용하기는 했으나.
크라켄을 쓰러뜨렸다는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고 낭비죄로 폐위가 되어버리고만 켈린왕과 레클레스왕.
그것은 일반 저인족들이 그만한 보상을 주어 줄 보상이 있는가에 대한 납득을 하지 못하여 생긴 일이다.
‘지금이라면.’
하지만 이 모든 전투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다르다.
어떤 보상을 쥐어주던 간에, 납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탓에 지켈은 확인하지 못했다.
‘괴, 괴물...!’
리앙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 지은 입술.
그 끝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 * *
정호는 보상을 위한, 저인족들의 창고로 향하면서 미소를 내지었다.
‘생각보다 무기의 성능이 상당한데.’
오 성 등급에서도 초월급이라는 ‘천둥의 드래곤 슬레이어’는 만족스러운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음, 내 무기보단 못하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무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아틸라조차도 공감을 할 정도였으니 말을 다했다.
‘특수 능력이 하나 빠졌을 뿐이지, 그 성능 자체는 육 성이라고 해도 되겠어.’
20인 공격대 던전.
그것도 보스와 함께 처 들어오는 이벤트까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홀로 막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쉬이 볼 일이 아니었다.
‘녀석이 생각보다 빠르게 무릎 꿇기도 했고.’
족히 세 번.
그 정도는 되어야, 고개를 숙이고 부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벨라미다.
하지만 녀석은 단 한 번의 마주침으로 그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이 제아무리 강한 녀석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어쩌지 못할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법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하지만 정호는 녀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러 굽히러 들어오는데, 들여 보낼 이유가 없어.’
정호는 이번 크라켄의 역습을 마지막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
장비를 얻었고, 화신을 얻었으면 이제 코인을 파밍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그런 와중에, 보스 몬스터 중 하나인 벨라미의 기세가 꺾였다.
‘수하로 들이게 되면, 다시 적대시 할 거니까.’
니네체르의 경우로 이미 확인한 전적이 있지 않은가.
니네체르를 수하로 들인 이후, 보스 몬스터들은 하나 같이 게임에서와 같은 대사를 흘리는 클론들이 되었다.
하지만 벨라미를 수하로 들이지 않는다면, 정호가 방문하는 모든 포탈은 ‘이성이 있는 벨라미’.
즉, 정호에게 이미 의지가 꺾여버린 녀석만이 남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정호가 아니었다.
‘공물 정도는 바쳐야 되지 않겠어?’
해적이란, 약탈을 하는 인간.
녀석들의 세를 본다면, 쌓아 놓은 것도 많은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것을 쏙 빼놓고, 그저 몸만 오겠다는 심보를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 도착했어요.”
이윽고, 리앙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익숙한 창고.
“괜찮겠나?”
“무, 물론이죠. 아무도 불평을 가지지는 않을 거에요.”
정호의 질문에 답하는 리앙의 낌새가 심상치가 않았다.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모습이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
‘그러니까 괜히 퀘스트를 바꿔서는.’
정호는 그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리앙은 본래 켈린왕이 주는 퀘스트를 대신하여 주기는 했으나.
그 내용을 일부 바꾸었으니까.
[반복 퀘스트]
[리앙의 부탁]
-재차 침공해오는 크라켄을 쓰러뜨리십시오.
-처치 수에 따라 저인족 명성치를 부여합니다. 명성치를 통해, 보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상 :
[선택]
신상 제작 : 100,000 명성치
저인족의 보물 택 1 : 20,000 명성치
리앙의 공기 구슬☆☆ : 10,000 명성치
저인족의 삼지창☆☆ : 3,000 명성치
1,000 코인 : 3,000 명성치
...
명성치로 그 공헌을 치환하여, 보상을 선택하는 방식을 택한 리앙이다.
보상에 대한 기준을 정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정호는 다른 파티원과 함께 다니지 않는, 솔로 유저라는 점과.
저인족들의 도움을 일체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치한 수 : 해적 3500명 / 벨라미 / 크라켄
-보유한 명성치 : 75,000
단 한 번의 전투로 벌어들인 명성치만 하더라도 7만을 훌쩍 넘긴다.
반복 퀘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코인으로만 2만 5천 코인에 달하는 수확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장비를 한 번 더 만들어야 하나?’
지난번에 얻어낸 장비들은 모두 사 성 등급의 알짜배기들이다.
그 중에서도 대검은 오 성 등급, 초월작이라는 대단한 무기로 재탄생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재료는 남아 있고, 창고에 남아 있는 것도 몇 개 남지 않았을 거니까.’
그렇다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저 던전을 탐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물품.
“리앙의 공기 구슬을 하나.”
“아아, 네! 알겠습니다.”
리앙이 환한 미소를 내지었다.
혹여나 선택을 바꿀까 걱정스러운 모양인지.
곧장 품속에서 공기 구슬을 꺼내었다.
[리앙의 공기 구슬☆☆☆]
-저인족의 지도자, 리앙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공기 구슬. 일반적인 저인족의 공기 구슬보다 더 큰 용량을 가지고 있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이 제한되지 않는다.
-능력치 : 無
-특수 능력 :
[잠수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물속에서의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가 상승한다.
‘공헌도 1만이라는 건, 꽤 비싼 가격이지만... 하나 쯤 가지고 있는 게 좋겠지.’
정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공기 방울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이전, 리켈의 공기 방울처럼.
시전자가 취소를 한다면 언제든 사라지고 마는 리스크를 동반하는 일.
그것을 없애는 조건으로 1만···.
아니, 3,333코인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꿀꺽.
침을 삼키는 리앙의 눈에는 걱정스러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그 걱정이 무엇인지는 예상가는 것이 있었으나.
“모두 코인으로 하지.”
정호가 배려할 일은 아니었다.
“아아...!”
결국 올 게 왔다는 듯, 절망감에 빠지며 침음성을 내뱉는 리앙.
“안 되나?”
“그, 그게 말이죠...”
국고 낭비죄라는, 웃기지도 않을 일로 절대 왕권을 지닌 왕이 폐위 당하고 말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남아 있는 코인으로는 정호님의 보상을 전부 처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코인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 예정이지?”
정호는 그런 대답을 듣고 나서도, 담담히 물었다.
애초에 보상을 주지 못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는 것은 저인족들의 도시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았다.
지난번에 찾아왔을 때보다 훨씬 낙후한 지역에 들어선 것만 같았으니까.
다만, 그것을 알고도 코인을 요구한 것은.
“그 대신이라고 할까요. 사실 조금 명성치가 모자라시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제의를 받기 위해서였다.
“신상 제작으로 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1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성치가 소모되는 이 ‘신상 제작’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