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5화 >
# 85화
새뮤얼 벨라미는 신중한 이다.
그가 현대에 이르러, 해적왕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어디까지나 그의 약탈 금액이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치고 있다는 것이었으나.
그런 약탈을 가능케 한 것은 어디까지나 벨라미의 이 신중함에 있었다.
적과 자신의 힘의 격차를 확실히 인지하고서.
거기에, 자신을 잡으러오는 수많은 해군들을 따돌릴 수 있는 주도면밀함까지 있어야 비로소, 해적왕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새뮤얼 벨라미가 수없이 많은 목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없다.
‘저번 패배의 요인은 명확하지.’
벨라미는 한 번의 목숨을 스스로 저버렸다.
분명 저항할 방도는 있었으나,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크라켄을 궁지에 몰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지 않은가.
다음에 만나,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내기 위함이었다.
‘녀석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다만, 한 번의 죽음으로 알아낸 것은 녀석의 전력이 생각보다는 약하다는 것.
부하들을 물리게 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대규모 전투를 피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암살자’를 이용하기까지.
정말이지, 전형적인 약자의 꼼수가 아닌가.
‘그래도, 방심을 할 수는 없지.’
하나, 그럼에도 크라켄을 궁지에 몰았다는 사실만은 바뀌지 않는다.
벨라미는 한 번의 목숨을 앗아간, 녀석에게 철저한 복수를 다짐했다.
“찾으시다는 녀석이 저인족들의 도시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부하 하나의 말에 벨라미는 미소를 내지었다.
‘곧장 저인족들에게 간다라.’
녀석은 크라켄을 궁지에 몰았을 때에도, ‘제물의 날’을 이용했다.
이번에도 저인족들의 지원을 얻기 위함일 터.
“총공격을 하지.”
“저, 저인족들에게 말입니까?”
곧장 떨어지는 총공격 선언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으나.
“어차피 눈엣가시 같은 녀석들이었다. 저인족 몇 백 정도가 지원 한들 상관없어.”
“아, 알겠습니다! 곧장 준비하겠습니다!”
벨라미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하나의 목숨을 대가로 얻어낸 녀석의 전력.
강력한 마법을 쓰는 재수 없게 생긴 남자가 하나.
몸을 숨기는 데에는 일가견인 여자가 하나.
가증스러운 검은 수염.
스스로의 무력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내게 이빨을 드러낸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이번에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한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어디 있지?”
수십의 배를 이끌고 나타난 벨라미가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실로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
저인족들의 도시에 당도하기 전.
그 앞을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혼자?’
근처에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익숙한 사내가 자신과 부하들을 홀로 맞이하고 있지 않은가.
‘함정...!’
벨라미는 그 의미를 깨달았다.
놈은 분명, 크라켄을 상대할 때에도 일 대 일에서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마법을 쓰는 사내가 대부분의 공격을 가했을 뿐이지 않은가.
“녀, 녀석의 부하를 찾아라! 이 근처에 숨어 있을 게 분명하다!”
명령을 내린 벨라미는 스스로도 두리번거리며 녀석의 부하를 찾으려 애썼다.
“어떤 헛짓을 꾸민지는 모르겠지만, 전과는 다를 거다!”
그런 그 때.
스르릉-.
“...”
놈이 말없이 검을 빼어든다.
지난번에 보았던 검과는 사뭇 다른, 거대한 크기의 검.
“하, 하하. 겨우 검을 크게 만들었다고 이곳까지 닿으리라고 생각하는 거냐. 멍청한 녀석이군!”
하지만 그리 말을 하면서도, 잔뜩 긴장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군. 너무 이상해.’
분명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한데,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전과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불안이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이윽고, 검이 허공을 향해 천천히 휘둘러지기 시작하자.
“포, 포격! 아니 방어다! 방어해!”
“예? 저 녀석은 저렇게 멀리 있는데요?”
“일단 막으라고!”
이런 직감은 지금껏 틀린 적이 없었다.
자신이 언제고, 약탈을 할 때면 가끔 느끼는 종류의 불안감.
하지만 이번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피, 피해!!!”
벨라미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후우우웅-!
한 차례 휘둘러지는 검.
그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한 번의 휘두름에서.
쿠르르르르릉-!
우레와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 * *
촤아아아악-!
벨라미를 향해 휘두른 일격.
천둥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가진 특수 능력인 ‘우레의 일격’은 안타깝게도 갑작스레 나타난 크라켄의 다리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우우우우우웅-!
하나, 그것을 막아낸 크라켄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약점 부위에 타격을 당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고, 공격!”
““와, 와아아아아!””
다만, 벨라미의 대응은 재빠르기 그지없었다.
분명 당황했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수천의 부하들과 함께 공격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한 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저런 큰 공격을 마구잡이로 쏘아 댈 수는 없을 거다!”
“돌격! 돌격!”
심해라는 특성상 분명 움직임이 둔하기는 했으나, 벨라미의 부하들은 훈련이라도 된 것처럼 재빠르게 정호를 향해 다가왔다.
‘큰 공격 뒤에는 빈틈... 맞는 말이지.’
정호는 녀석들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밸라미는 최적의 판단을 내렸다.
‘물론, 맞는 말인데..’
적들이 속속들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호는 느긋하게 그 모습을 관망했다.
‘큰 공격이 아니었는데...’
스스로도 놀란 마당이다.
‘우레의 일격’나 ‘괴물파괴자’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패시브 속성의 특수 능력에 불과한 녀석이다.
정호는 정말이지, 검을 한 차례 휘둘렀을 뿐이었다.
후웅-! 후웅-!
다가오는 적들에게 가볍게 휘두르는 검.
그에 따라 ‘콰르릉’하며 굉음을 일으키는 그 공격에.
“으, 으아아아!”
상태 이상, ‘공포’ 효과가 적용되기도 전에 그 여파로 해적들이 나가떨어진다.
“저, 저 미친 놈이!!”
“도대체 언제까지 휘두를 셈이냐!”
“저 녀석은 지치지도 않나?”
아무렇지도 않게 거대한 검을 재차 휘두르는 정호의 모습에 벨라미를 비롯한 해적들이 경악을 했다.
하나, 이는 당연한 일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게.
[이정호★★]
-힘 : 120 체력 : 100 민첩 : 114 지능 : 97
비록 3성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정호는 두 번의 각성을 통해, 인외라 불리는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사실상 정호 자체만으로도 아스텔 랭커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주인, 오늘 밤에는 힘이 넘치는데?
‘실없는 소릴...’
강신시킨 아틸라가 농담을 내던지기는 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모든 스탯이 200을 넘긴 아틸라를 강신시킴으로써 정호와 아틸라의 스탯의 합이 무려 모든 스탯 300을 넘어서 있었으니까.
‘거기에 무기까지.’
꽈악-.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들어 올리는 정호의 몸에는 힘이 넘쳐났다.
구우우우우웅-!
그 공격은 거대한 체구의 크라켄에게도 손쉽게 통하고 있었다.
모든 스탯 ‘400.’
신 등급이라 불리는, 6성 등급의 화신이라 할지라도 쉬이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의 힘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방어력으로 유명한 크라켄이라 할지라도.
‘괴수파괴자도 먹히는 군.’
1티어 무기 특수 능력인, 적의 일정 방어도를 무시하는 ‘괴수파괴자’의 효과까지 더한 정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험 상대로는 딱인데.’
정말이지 그랬다.
무기를 사용해보았다고는 하나, 그것은 고작해야 2성 등급의 화신 ‘각성’에 썼을 뿐.
아틸라를 강신시킨 채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클레이모어라는, 새로운 검을 확인하는 데에는 이것만한 일이 없었다.
다만 홀로 상대하기로 한 것은 비단, 지금의 힘에 대한 테스트만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녀석에게도, 확실히 해줄 필요가 있고.’
제아무리 스탯이 높아졌다고 한들.
상대는 20인 공격대 던전의 주인이지 않은가.
게임이 아니고서야, 화신도 없이 솔로 플레이를 지향할 필요는 없었다.
정호는 벨라미를 향해 눈을 흘겼다.
“...이, 이게 대체.”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하고 있는 벨라미의 모습.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다.’
화신 도감의 ‘보스 몬스터’ 항목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녀석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벨라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도망을 가는, 그야말로 도마뱀과 같은 녀석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포탈은 그야말로 벨라미가 가진 목숨의 수나 다름없다.
그런 녀석에게는 말로 하는 설득 따위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몇 번이고 도망쳐 봐라.”
확실히 몸에 인지시켜야 한다.
후우우우웅-!
콰르르르릉!
“절대로 넘어설 수 없을 테니까.”
희망 따위는 없는, 절망이란 녀석을.
* * *
“하, 하하, 하하하.”
마치 실성이라도 한 듯.
아수라장 속에서 벨라미는 헛웃음을 흘렸다.
‘주변에 있었던 부하들이 전부가 아니었군.’
자신은 착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수하가 있다는 것은 그 주인인 녀석의 무력이 상당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 않은가.
‘도대체... 이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난 싸움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실로 간단했다.
‘나를 가지고 논 셈이로군.’
설마하니 그 짧은 기간만에 이만한 힘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
자신을 장난감으로 보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힘은 자신의 이해범주를 넘어서 있었으니까.
“이름이 무엇이지.”
“이정호.”
새빨간 눈을 빛내는 사내의 짧막한 대답.
그것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려올 지경이었지만, 벨라미는 정신을 다잡았다.
“정호라... 좋은 이름이군 그래.”
혹시나 신경을 거스르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정말이지, 이 이정호라는 사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쉬이 굽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녀석이 나를 원한다면, 거부권은 없다!’
그것은 이미 결정되어진 마당이다.
그렇다면 녀석의 아래에서의 자신의 위치.
그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검은 수염의 밑으로는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 양초 괴물 아래에 들어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아니, 조금 더 원한다면.
녀석의 위.
적어도 간부의 위치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나를 원하는 모양이지? 하지만 어림도 없을 거다. 해적왕으로 불리는 나를 설득하는 것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정호라는 녀석은 저런 힘을 지니고도 자신을 원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놓은 강경책.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 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떠들어댔다.
“그럼, 죽으면 되겠군.”
깔끔하기 짝이 없는 대답.
동시에 거대한 검이 순식간에 자신의 코앞에 도달한다.
“...뭐? 자, 잠깐. 잠깐만!”
당황한 벨라미는 손을 내저어, 그것을 만류했다.
“설득! 설득은 안 하나? 내 맘이 바뀔 수도 있지 않나? 알고 있지 않는가! 나에게는 수백에 달하는 목숨이 있지. 그럴 때마다 수천의 부하들이 생기는 마당이고. 그런 나를 몇 백번이나 쓰러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수백 번 죽는 체험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군.”
‘으윽...!’
벨라미는 그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직접 목숨을 끊는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나, 그 고통은 이루 말을 할 수 없다.
심장박동이 멈추고, 온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체험.
결코 다시는 경험해보지 않은 체험이었다.
스르르르릉-.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검.
그에 벨라미가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조금만, 조금만 설득하면 될 지도? 될 것 같기도?”
벨라미는 결국 눈앞의 검에 주저앉게 되었다.
다만.
후우우웅-.
검이 멈추지를 않는다.
“어, 어어? 내 말 안 들려? 조금만 설득하면 넘어갈지도 모른다니까? 아니 될 게! 된다고!”
그런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어.”
비정하기 짝이 없는 없는 말과 함께 검이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