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2화 >
# 82화
소환을 함과 동시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브란테스의 모습은 정호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뚜벅, 뚜벅.
퀴클롭스는 외눈박이의 거인족.
분명 그 덩치는 상당했건만, 그렇다고 거인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난쟁이 같군.’
짤막한 팔다리와 거대한 머리.
분명 2m라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신체비율.
난쟁이를 길게 늘려 놓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폴리페무스와는 다르군.’
같은 퀴클립스 종족인 폴리페무스가 전형적인 거인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
정호는 한참 동안이나 녀석을 바라보았다.
벗겨진 머리부터, 묘한 주황빛을 내는 덥수룩한 양초 수염.
거기에 작다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기묘한 신체 구조.
상당히 특이한 모양새지 않은가.
“...네 녀석이 그 주인이라는 녀석이냐? 잘못 걸렸군. 쯧.”
하지만 감평을 하는 것은 브론테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하나 밖에 없는 눈을 찌푸린 채, 정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브론테스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내고 있었다.
“그래, 뭘 만들어 줄까. 어차피 재료도 없을 테니, 대충 만들어주지. 그것으로도 너에게는 충분히 과분할 정도일 테니까.”
이어지는 말.
실력에는 자신이 있어보였으나, 그 말의 뜻을 정호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무시하고 있군.’
브란테스는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아들.
불멸을 부여받지는 못했으나, 결국 녀석은 신의 아들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마당이다.
자존심이 강한 신의 특성상, 주인인 정호를 얕잡아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랜만에 힘 좀 쓰겠는데.’
생각해보면.
지금껏 새롭게 얻은 화신들이 곧이곧대로 정호의 말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노릇이다.
본래라면 키드보다도 더한 반항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화신의 대부분은 그 교육에 있어서, 사랑의 매만큼 좋은 수단이 없었으니까.
곧장 아틸라를 소환하려던 그 때.
“...에잉, 쯧. 잔뜩 만들어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런 주인 밑에서는.”
녀석의 중얼거림에 정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자기 딴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워낙에 큰 울림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호의 귓가에 모두 꽂혔다.
“이봐, 이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정호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자신이 등에 지고 있던 바스타드 소드를 녀석을 향해 내밀었다.
“어떤 어중이떠중이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별 것 아닌 장비겠지.”
대수롭지 않게 검을 받아든 녀석은 하나 뿐인 눈알을 스윽 돌리며 아무렇게나 말을 이어나갔다.
“검신이 형편없어, 한 번도 수리하지 않았군. 거기에 담금질도 그리 많이 하지도 않았어. 인간용으로 만든 주제에 그 무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군. 여기 새긴 건, 만든 놈의 이름인가? 이 따위 검에 이름을 새기다니, 정말이지 형편없는 녀석이군! 그러니까 이름이 브...론.”
한데, 관심도 없다는 듯 대충 감평 하던 녀석이 갑작스레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름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생각했던 것보다 쓸만한 검이야. 인간들이 쓰기에는 딱 좋지. 암! 그렇고말고!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로군!”
그 제작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돌변하는 녀석의 태도에 정호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네가 만든 것이 아닌가?”
“...이, 이익! 무슨 소리냐. 나는 이런 엉터리 검을 만든 기억이 없어!”
“브론테스가 만들어 낸 시험 작 중 하나.”
“...”
기어코 바스타드 소드의 설명까지 읊어주자, 녀석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어디서 구했나.”
“홉고블린이 들고 있더군.”
“고, 고블린...!”
자신의 무기가 고블린의 손에 들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브론테스.
그렇지 않아도 새빨갛게 변해 있던 얼굴이 아예 홍당무가 되었다.
탁, 탁, 탁.
“...”
바스타드 소드를 두들기며, 한참이나 말이 없던 브론테스.
그런 그가 결연한 얼굴을 하고서 정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장 이 검을 고쳐야겠네.”
굳이 ‘교육’이라는 회초리를 들 필요도 없었다.
“주인, 부탁하지. 철 없을 때 만든 이 고철덩이를 바꿀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어.”
녀석이 원하는 것은 정호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 * *
“...내가 잘못 봤군.”
브론테스는 꽤나 놀랐다는 듯, 하나 뿐인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비록 대부분이 쓸모가 없지만, 이토록 많은 양의 강철이 있다면...”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방 한 편에 가득 들어 찬 수없이 많은 장비들을 보았던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처치 곤란했는데.’
아스텔의 상점에 팔리지도 않는 일 성 등급과 이 성 등급의 장비들.
쓰기에는 그 능력이 형편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은 정호의 방 하나를 완전히 창고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것들로는 모자라네. 수리 정도라면 할 수 있겠지만... 알지 않은가?”
철그럭-.
정호를 향해 바스타드 소드(명품)을 들어 올리는 브론테스의 얼굴에는 불안이 떠올랐다.
그 불안의 원인은 정호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만든 무기라고···.’
녀석은 바스타드 소드를 대장장이 일을 시작한지 두 번째로 만든 물건이라고 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과연 오 성 등급의 화신이라고 할만은 했으나.
‘창피할 만도 하군.’
브론테스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인물이 갑작스레 어렸을 적 일기장을 들고 나타난 셈이 아닐까.
“이것들은 어떻지?”
정호는 곧장 녀석의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한 물건들을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심해의 대검☆☆☆☆]
-고대에 저인족의 황금기를 이끌던, 심해왕의 대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녹이 슬어 그 대부분의 힘을 잃었다.
-착용 제한 : 힘 100이상.
-능력치 : 힘 80증가.
-특수 능력 :
[해일의 눈 : 자신을 중심으로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적들의 원거리 공격을 방어하고 시야를 차단한다. 조건부 - 장소 : 물]
[군중의 외침 : 소환한 화신의 수만큼 그 능력치가 상승한다. 소환된 화신 1명 당 모든 스탯 5증가]
그 중 하나는 바로, 4성 등급의 대검.
저인족의 보물 창고에서 얻어온 물건이었다.
본래라면 정호는 바스타드 소드를 대신하여 사용할 무기이기도 했으나.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바스타드소드가 손에 익었으니까.’
다만, 그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특수 능력이 방어형태의, 그것도 ‘조건’으로써 장소가 물이어야 한다는 점이 컸다.
“괘, 괜찮군. 이거라면, 충분히 상당한 물건으로 만들 수 있겠어.”
브론테스는 자신이 만들어 낸 무기보다 높은 등급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꽤나 당황한 눈치였으나.
“무슨 소리야.”
정호는 그것으로 끝낼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잔뜩 만들어내고 싶다고 했겠다.’
녀석이 중얼거렸던 말을 곱씹으며, 꺼내놓는 물건들.
[그린 드래곤의 비늘]
-5성 이하의 장비 강화 재료.
-최고급 장비 제작 재료
[야마타노오로치의 머리]
-4성 이하의 장비 강화 재료.
-고급 장비 제작 재료.
[육각수의 뼛조각]
-4성 이하의 장비 강화 재료.
-고급 장비 제작 재료.
[안티 스토커의 날개]
-3성 이하의 장비 강화 재료.
-희귀 장비 제작 재료.
본래라면 ‘강화’ 외에는 아무런 옵션도 달려있지 않았던 재료들이었으나.
새로운 업데이트가 진행되고 난 이후, 그것은 ‘제작 재료’로써의 형태를 지니고도 있었다.
“...주, 주인. 이게 다 무엇인가?”
브론테스는 곧장 화들짝 놀라며,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하나 같이 상당히 높은 던전의 보스 몬스터들이 떨어뜨리는 재료들이지 않은가.
“드, 드래곤...?”
그 중에서도 그린 드래곤의 비늘은 드래곤을 쓰러드리지 않고서야 얻어 낼 수 없는 물건.
제아무리 드래곤 중에서도 그 급이 떨어지는 ‘그린’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존재하는 몬스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드, 드래곤 슬레이어인가? 주인?”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정호를 향해 물어왔으나, 답을 하지는 않았다.
‘설명해줄 필요는 없겠지.’
사실 그것들은 모두, 미치광이 과학자가 만들어낸 키메라가 떨어뜨린 것들에 불과했다.
하나, 그 재료들만큼은 ‘진짜’이지 않은가.
“이, 이런 재료들을 쓸 수 있다니...!”
마치 감동이라도 먹은 듯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브론테스를 향해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최고 등급이야.”
“당연하지! 이런 물건들로 제대로 된 무기를 못 만든다면 대장장이 실격이야!”
브론테스는 피가 끓는다는 듯, 정호가 제공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철그럭- 드르륵-.
한참이나 그 물건들을 바라보던 브론테스.
녀석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정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수를... 둘 정도 붙여 주었으면 좋겠어. 대장장이 일을 알면 더 좋고. 아니, 없어도 되네. 오래 걸릴 뿐이니까.”
큰 기대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듯한 말이었으나.
정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구야자와 뵐란트를 붙여주지.”
“정말 없는 것이 없군.”
후웅- 후웅-.
우악스러운 손으로 힘찬 악수를 해댄 브론테스가 곧장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기대하고 있어도 좋다고.”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하나의 메시지.
-브론테스☆☆☆☆☆가 자신의 대장간으로 향합니다.
-장비 제작이 진행됩니다.
-사용 스킬 : 분해 / 합성 / 제작.
-주무기 : 바스타드소드(명품)
-재료 : 심해의 대검 / 그린 드래곤의 비늘 외 3종
-조수 : 뵐란트☆☆☆☆, 구야자☆☆☆
-소요 시간 : 24시간.
-진행도 : 0%
-제작자의 등급에 따라서 명품, 걸작, 대작, 초월작의 등장 확률이 상승합니다.
-재료의 등급에 따라서 명품, 걸작, 대작, 초월작의 등장 확률이 상승합니다.
-조수의 등급에 따라서 명품, 걸작, 대작의 등장 확률이 상승합니다.
그것은 브론테스의 말마따나.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었다.
* * *
“푸후...”
정호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거기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꽤나 매캐한 먼지가 올라오기는 했으나.
그것에 신경을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세 번째 시련의 시작?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하는 그 내용은 정호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으니까.
‘아예 연결고리를 끊었군.’
정호는 아스텔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아스텔의 ‘첫 번째 보상.’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이 끝이 났을 때 일어난 일일 터다.
‘버렸다는 거겠지.’
정호는 입술을 비틀었다.
이래서야 완전히 죽은 사람 취급이지 않은가.
정호는 아스텔의 목소리 대신, 톨비아로 추정되는 이의 목소리를 받았으나.
녀석은 아스텔과는 달리, 시련처럼 보상이 주어지는 형태의 지원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뜯어내려고 안달이 난 놈이지.’
녀석은 아주 제대로 미친 녀석일 것이 분명했다.
축복이라며 준 픽업 찬스.
그것을 몇 번 맛보게 하더니, 그것을 과금의 형태로 바꾸어버리지 않은가.
전형적인 과금 게임의 특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도 시련이라면...’
다만, 시련이라는 내용을 확인했을 때 정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스텔 유저들의 공략이 멈추었다.’
그것은 정호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아스텔 유저들이 성장하여, 던전을 공략하고 만다면.
그만큼의 코인을 잃어버리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것이 시련으로 인해 멈춰 선 마당이다.
-진행도 : 99%
하루간의 휴식을 취한 정호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절호조나 다름없다.
오히려 몸이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키고 싶은 마당이었다.
-장비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브론테스☆☆☆☆☆가 귀환합니다.
그 소식이 떠오름과 동시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화아아아악-.
빛무리를 이끌어내며, 모습을 드러내는 브론테스.
“...어떻게 됐지?”
정호는 그 완료의 상황을 알기 위해 곧장 질문을 내던졌다.
하지만 브론테스의 얼굴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미안하군. 주인.”
기대를 하라고 해놓고서, 실망감을 안겨주는 브론테스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최고 등급이 안 뜬 건가?”
“...”
정호는 침착하게 되물었다.
그러자 브론테스가 말없이 천천히 검을 건네었다.
분명 미끈한 검신에서 느껴지는 예리함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으나.
각종 고급 재료가 들어간 것치고는, 실로 평범하다고 할 정도로 간단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정호는 곧장 손에 쥔 검을 확인했다.
한데,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음?"
정호가 눈을 부릅떴다.
“미안하네 주인... 분명 바스타드소드를 만들려 했지만 욕심 때문에 클레이모어가 되었어.”
이어지는 브론테스의 말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5성... 초월작.”
최고 등급이 떠올라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