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1화 >
# 81화
한 때, 톨비아 유저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되었던 글이 있었다.
-각성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가요?
자신의 화신이 각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성격이 삐뚤어졌다. 각성 자체를 극도로 꺼려한다 등의 이야기.
그것은 특히나 ‘낮은 등급’, 3성 이하의 화신들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일 중 하나였다.
정호의 화신들 중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있었다.
키드.
녀석은 각성에 대해 굉장히 꺼려하는, 예민한 축에 속했다.
오히려 각성을 이루어내기 보다, 쉬고 싶다고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않았던가.
유저가 떠나가기 시작하며, 그 논란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기는 했으나.
애초에 유저는 스스로 각성을 이루어낼 수 없다.
오로지 메시지로 한 줄 적혀 있는, ‘각성을 위한 수련’이라는 내용.
그것으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불과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하아, 하아, 하아.”
정호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도로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키에에엑.”
“캬아아아악!”
마라톤 대회라도 열린 것일까.
새까만 도로 위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가득했다.
오직 정호라는, 골인을 향해 내달리는 마라톤 선수들이.
[목표 : 좀비 100마리 처치]
[진행도 : 0%]
[각성 시간 : 20분 / 120분]
‘벌써 20분이야? 미치겠네.’
정호는 속으로 투덜대기는 하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설마 좀비들한테 쫓기는 신세가 될 줄이야.’
좀비라면, 이미 그림자 지하 성채를 통해 만난 구울보다도 낮은 개체.
하나, 하나가 일 성 등급의 화신보다 못한 능력치를 가진 녀석들에 불과했다.
그 적이 수백, 수천이 있다 한들, 큰 의미를 가지지는 못한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의 이야기.
오 성 등급의 화신인 아틸라를 강신시키고,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화신들을 존재했을 때의 이야기다.
-각성 재료 : 無
-순수한 능력치의 화신이 각성을 시도합니다.
-장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각성 확률 : 30%
각성 재료가 이런 식으로 적용되는지는 몰랐던 정호에게는 최악의 소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도 그럴 게.
순수한 능력치의 ‘이정호’라는 화신은.
-[이정호☆]
-힘 : 8 민첩 : 7 체력 : 12 지능 : 10
저항조차 못할 정도로 무능한 능력치만이 존재했으니까.
“하아, 하아, 지...하아.”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고 했으나, 그조차도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에 의해 내뱉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전력 질주에 가까운 달리기를 이어나간 정호의 체력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마당.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이곳이 현실의 도심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회색의 콘크리트로 가득 솟아난 도심이란 정글과도 같았으니까.
타악-!
“하아, 하아, 하아...!”
녀석들의 눈을 따돌려, 굽이진 골목길로 들어선 정호는 참으로 꿀맛 같은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그러나 이 장소도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몸을 숨겼지만.
녀석들은 얼마 가지도 않아, 귀신 같이 정호를 찾아내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대책이 필요해.’
단 한 마리의 좀비조차 잡지 못한 채, 20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남은 시간은 100분 남짓.
그 안에 각성을 이루어내려면 분 당 한 마리라는 좀비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한, 두 마리 떨어져 있는 녀석들을 잡는 걸로는 시간이 빠듯한데.’
톨비아의 좀비들은 비교적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다.
비록 멀리 떨어진 개체가 있다고 한들.
전투가 일어난다면, 순식간에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30프로.’
일 성급의 화신이 각성을 이루어 낼 확률이다.
그렇다면 정호에게도 아예 기회가 없다는 의미는 아닐 터.
‘방법이 있을 거야.’
열쇠는 분명 있다.
자신이 아직 찾아내지 못했을 뿐.
그 방법에 대해 고민을 이어나가던 그 때.
“캬아아악!”
갑작스레 골목 한 편에서 나타나는 좀비가 한 마리.
‘이런!’
화들짝 놀란 정호는 재빨리 몸을 눕혀 녀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좀비라는 언데드라 할 지라도, 결국은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다.
찌이이이익-!
쿠당탕.
형편없는 스탯 덕분에 옷이 찢어지기는 했으나.
무게중심이 무너진 녀석을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런 기회를 놓칠 정호가 아니었다.
콰악! 콰악!
두개골에 정통으로 박혀 들어가는 시원한 싸커킥의 연속.
콰악! 데구르르르.
머리가 없어진 좀비는 시체로 돌아갈 뿐이다.
“하아, 하아, 하아. 이런 젠장...!”
이를 갈았다.
아직 이 각성의 열쇠도 찾지 못한 채, 전투가 시작되고야 말았다.
“케에에에에...”
벌써 알아차린 것일까.
멀리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소리는, 정확히 정호를 향해 오고 있었다.
‘도망쳐서는 답이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떠날 채비를 하던 그 때.
“...음?”
좀비가 사라진 자리에 무언가 떨어져 있음을 확인한 정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형태.
‘코인은 의미가 없는...’
잠시간 그것이 몬스터가 떨어뜨리는 코인이 아닌가 싶었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열쇠?”
각성을 위한 열쇠라는, 비유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어디에나 볼 법한, 열쇠가 있었다.
* * *
정호는 착실히 사냥을 시작했다.
제아무리 스탯이 낮다고 한들, 좀비들도 만만치 않게 약한 몬스터.
거기에 아틸라를 강신시켜 몸을 쓰는데 익숙해진 정호이지 않은가.
다수의 상대라면 모를까.
일 대 일이라면, 패배할 이유가 없었다.
[목표 : 좀비 100마리 처치]
-적에게 치명상을 입을 시 실패합니다.
[진행도 : 40%]
[각성 시간 : 100분 / 120분]
‘40분이라.’
다만 그 결과는 그리 썩 좋지 못했다.
80분의 사냥에 40마리.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20분.
턱도 없이 모자라기 짝이 없는.
완전한 실패로의 길을 가고 있었다.
‘충분하겠네.’
하나, 정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리 씩 사냥을 이어나갔다.
‘28개라.’
정호는 주머니 속의 묵직함을 느끼며, 미소를 내지었다.
각성의 장소는 다름 아닌 현대.
거기에 도심이라면, 이 열쇠를 어디에 사용할 지는 너무도 뻔한 일이지 않은가.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정호는 골목에 숨은 채, 도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넓게 이어진 4차선에는 좀비들이 가득 들어서 있기는 했으나.
거기에 좀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도로에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는.
연간 3천 명이라는 인간을 해치워 버리는 현대의 강력한 무기가 있지 않은가.
‘하나, 둘...!’
스스로 숫자를 세며, 바닥을 박차고서 내달렸다.
“케에에엑-!”
“키에에?”
좀비들이 갑작스런 정호의 출현에 고개를 돌릴 무렵.
정호는 곧장 주머니 속에 있는 열쇠들을 꺼내어 그 무기들을 향해 꽂아 넣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니야. 이것도 아니고.’
다만 도로 위에 수많은 무기들 중에 맞는 열쇠를 찾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결국 각성 확률 ‘30프로’란, 널려 있는 것들에 열쇠가 맞을 확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젠장...!’
결국 28개의 열쇠를 모두 꽂아보고서도 찾지 못한 정호.
“키에에엑-!”
좀비들이 이미 자신의 코앞까지 당도했음을 깨달은 정호는 곧장 다음으로 향했다.
절그럭, 절그럭.
상황이 급박해지다보니, 모든 열쇠를 꽂아보는 일도 힘들었다.
-남은 시간 : 115분 / 120분
하염없이 시간은 흘러가며, 결국 실패로 끝나나 싶었을 무렵.
달칵-.
“됐다.”
정호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열쇠가 문을 열었다.
그것도 널려 있는 무기들 중, 가장 이상적인 무기를.
“키에에엑-!”
다가오는 녀석을 발로 밀쳐버린 채, 곧장 열쇠를 꽂고서 시동을 내걸었다.
부르르르릉-.
좀비 하나, 둘 정도는 가볍게 쓰러뜨릴 현대의 무기.
-남은 시간 116/120분
‘충분하겠네.’
심지어 그 중에서도 정호가 뽑은 것은 남은 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자신감을 불어다 주는 녀석이지 않은가.
부르르르릉-.
콰드드득-.
그저 후진을 했을 뿐 일진데, 좀비 하나가 바로 깔려 죽어버린다.
정호가 뽑은 열쇠는 성난 황소다.
덜컹- 덜컹- 덜컹-.
“키에에엑!”
“케에엑!”
질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20톤 덤프트럭의 도로주행이 시작되었다.
* * *
-이정호가 수행을 위한 여행을 끝마쳤습니다.
-이정호☆의 각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정호★가 귀환합니다.
[이정호★] :
29세. 미련한 도박중독자.
-힘 : 68 체력 : 72 민첩 : 67 지능 : 70
‘전체 스탯에 20.’
고작 2시간 정도의 투자로 얻어낸 것이라기에는 놀라운 효과이지 않은가.
“쯧...!”
다만 그것을 보고도, 혀를 차냈다.
정호는 이토록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장비도 없이 맨손.
거기에 부실하기 짝이 없는 스탯.
자신을 수호하던 화신들조차 없다.
‘어째서 키드가 꺼려하는지 알겠어.’
정호가 도전한 것은 고작해야 일 성 등급의 각성.
그렇기에 ‘열쇠’라는 변수가 존재했었으나, 그 이후에 어떻게 변화할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조금 무섭네.’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각성에 실패한 화신들은 모두 귀환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이 화신이 되었다고 한들, 자칫 각성 미션에서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정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월. 대상 이정호.”
제아무리 두렵다고 한들, 정호가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애당초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일은 스스로 자멸하는 지름길이다.
-1,000코인을 사용하여, 각성을 끝마친 이정호★의 등급을 상승시키겠습니까?
-확률 5%
“그래.”
악독하기 짝이 없는 확률과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코인의 수에도 불구하고 정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퍼엉-.
기괴망측한 소리.
그와 동시에 ‘초월이 실패했습니다.’라는 다소 허무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평소 같았으면, 이를 바득바득 갈았을 내용이 분명했으나.
“초월.”
다시금 담담하게 입을 여는 정호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각성 중 사망에 대한 패널티는 미지수니까...’
초월을 이루어내면 다시금 각성을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무슨 함정이 깔려 있지 모르는, 흩뿌려진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다.
오히려 안도감이 들 정도다.
빰빠람-!
하지만 본래 운이라는 녀석은.
“아?”
-화신, 이정호★가 초월에 성공합니다.
-이정호★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이처럼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일수록, 찾아오는 법이다.
* * *
‘미치겠네.’
고작해야 5%의 확률이 단 두 번 만에 붙어버린 상황.
분명 좋은 상황이었기에, 미소가 내지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흥겨워할 것은 아니었다.
‘또 도전해야 하는군.’
골치가 아픈 것은, 그 각성 미션 때문이다.
확률이라는 표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몸을 움직여 퀘스트를 클리어 하는 형식의 각성.
고작해야 일 성 등급의 각성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피로가 쌓여있는 마당이었다.
“...이정호 각성.”
정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 말을 입에 담자.
-각성 재료가 필요합니다.
-보유 각성 재료 :
호루스의 그림자 (각성 확률 : 60%) / 장비 착용 가능
이번에는 각성 재료가 필요하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다행스럽게도 일 성급 때와는 달리, 그 확률이 대폭 상승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쓸 거였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 내용을 넘기려던 그 때.
정호의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장비 착용 가능?”
다른 화신들과는 다르게, 정호는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좀비와의 싸움도 ‘맨손’이었지 않은가.
“이거. 생각보다.”
한데, 장비가 착용이 가능해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60프로의 확률이라는 건, 결국 이 성 등급의 화신이 각성할 확률이라는 거고.’
다른 것도 아니고, 장비라면.
정호에게는 하나의 수단이 있지 않은가.
철그럭-.
손에 쥔 바스타드 소드를 한 차례 바라본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걸로도 모자라지.’
60프로라는.
정석적인 확률보다 보다 확실한 방법.
이를 테면 해결책, ‘열쇠’ 따위를 의지하기보다.
“브론테스 소환.”
그 확률조차도 아작 내 버릴 정도로 강력한 무구를 손에 넣으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