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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78화 (79/144)

< # 78화 >

# 78화

게임에서 업데이트란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

편의성 패치나, 버그의 수정을 비롯해 밸런스의 조정처럼 비교적 간단한 업데이트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던전, 새로운 시스템의 패치처럼 대격변에 가까운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Ver 13.00’

고작해야 소수점이 바뀔 뿐인 버전이 ‘13’이라는, 정수로 변했다.

‘톨비아의 버전이 12.98이었던가?’

그저 버전을 두 계단을 뛰어넘었다는 간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버전의 정수가 변한다는 것은 대규모 업데이트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으니까.

그것은 정호가 목이 빠져라 바라던 일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 게.

스스로 자괴감이 들 정도로.

정호는 손절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나 미련이 많았던지, 톨비아가 아주 망겜 중에서도 대차게 망한 똥겜이 되었을 때에도.

‘업데이트하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미련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으니까.

결국 마지막에 들어서는 동시 접속자 수 ‘1’.

혼자 살아남았다.

이 정도의 미련이면, 결혼한 전 여자친구에게 시시때때로 연락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업데이트라...’

다만.

그런 바라던 일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정호의 표정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톨비아의 업데이트라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어째서 버전이 뒤바뀌는, 대규모 업데이트를 코앞에 두고서도 유저들이 단 한 명도 복귀하지 않는가.

그것은 톨비아의 ‘대규모 업데이트’가 얼마나 치가 떨리는 것인지 이미 경험해보았던 탓이다.

‘과금 요소만 늘어날 뿐이니까...’

애초에 처음부터 유저들의 지갑을 노리고 설계되었다는 듯.

톨비아는 업데이트를 하는 족족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BM(Business Model)을 추가했다.

거기에는 VIP, 강신 시스템을 비롯해 각성과 픽업 찬스까지.

하나, 하나 추가될 때마다 현금을 요구하는 그 업데이트들은 사람들이 치를 떨고 도망가게 하기 충분했다.

정작 그 속에서 살아남은 미련 많은 정호조차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Ver 13.00 업데이트 목록]

-픽업 찬스 뽑기가 추가 됩니다.

...

‘나쁘지는 않은데.’

정호는 그 첫 문장을 읽고서는 고개를 기울였다.

‘필요하긴 했어.’

게임이었다면 당장에 접어버리고 말 것이지만.

정호에게 있어서 지금은 필요한 시스템이었던 탓이다.

‘너무 길어.’

픽업 찬스가 갱신되는 것은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임의대로 바꿀 수 있다면, 뽑기를 함에 있어서 화신을 저격하는 것이 편해질 뿐이다.

“이런, 이게 아니지.”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다.

‘미친 놈 아니야?’

톨비아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했으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당장 코인이 넉넉했던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톨비아에 절여진 탓일까.

너무도 톨비아스러운 시스템의 업데이트를 쉬이 받아들여 버렸다.

보통의 톨비아 유저라면, 욕지거리를 내뱉을 것이 분명하다.

일주일에 한 번, 자동으로 갱신되는 픽업 찬스를 BM화 할 생각을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쓰읍...”

정호는 다음 문장을 읽는 것이 걱정스러워졌다.

버전의 업데이트란 결국, 첫 문장이 좌지우지하는 법이다.

이번 업데이트에서 다루어질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그 첫 소개를 ‘BM', 즉 과금 요소를 집어넣었다는 것은 바로.

‘다음도 다를 바가 없다는 건데...’

정호는 자신의 주위를 휘감고 있는 막대한 양의 코인을 손으로 쓸었다.

어째서인지.

이 많은 양의 코인들이 곧 생이별을 할 것만 같았으니까.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 진짜!”

지금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존재.

톨비아에게 큰 소리를 친, 정호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채 다음 문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그 직후 이어지는 내용들은 정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다만, 끝까지 읽은 정호의 얼굴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너 톨비아...맞지?”

톨비아라고 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으니까.

* * *

[Ver 13.00 업데이트 목록]

-픽업 찬스 뽑기가 추가됩니다.

-장비 픽업 찬스 뽑기가 추가됩니다.

-초월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제작의 화신들이 합류합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톨비아나 다름없는데.’

대부분이 정호가 원하는 것들이기는 했다.

장비 픽업 찬스는 뽑기라는 점이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지만.

‘전용 무구’의 유무가 얼마나 큰 차이를 내는지는 이미 경험해본 바가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풀 각성을 이루어냈다고는 하나.

고작해야 삼 성 등급에 불과한 코르데의 전용무구는 그 이름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초월은...’

[초월]

-온전히 각성을 이루어낸 화신들은 자신의 격을 높이고,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분명 내용을 읽어보았을 때에는 등급 그 자체를 올릴 수 있는 실로 대단하기 짝이 없는 효과였으나.

-초월 확률 :

1성 : 5% / 필요 코인 1,000코인.

2성 : 3% / 필요 코인 2,000코인.

3성 : 1% / 필요 코인 3,000코인.

...

‘톨비아스럽네.’

그 확률과 필요 코인 양을 보았을 때, 정호는 감탄하고야 말았다.

고작해야 2성의 화신을 얻어내는 데에 필요한 코인은 기댓값으로만 2만 코인에 이르러 있었으니까.

‘4성의 화신이 10만... 어지럽군.’

사실상 그 등급의 화신을 뽑아내는 것이 더욱 이득일 수도 있는 부분.

가성비라고는 하나도 없는, 톨비아다운 패치나 다름없다.

다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였다.

-제작의 화신이 합류합니다.

‘화신의 합류는 언제나 하던 패치인데...’

새로운 종류의 화신이 늘어나는 것은 업데이트 때마다 이루어졌던 일이기에,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었으나.

‘제작의 화신.’

그 종류가 지금껏 보아왔던 녀석들과는 다르다는게 문제였다.

-장비 도감이 추가됩니다.

-장비 제작이 활성화됩니다.

-장비 분해가 추가됩니다.

-장비 합성이 추가됩니다.

-장비 변환이 추가됩니다.

-장비 강화가 추가됩니다.

이어지는 것은 결코 톨비아답지 않은 것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호는 상당히 많은 양의 장비를 지니고 있는 참이었다.

‘대부분이 일 성, 이 성 등급인데...’

뽑기로 인해 상당수의 장비가 처박혀 있는 마당이다.

한 때, 아스텔의 상점에 팔려고도 해본 기억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코인이 페이백 된다면...’하는 마음으로 가져갔던 것이었으나.

상점주인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처치 곤란한 장비들을 이용해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은 두 팔을 벌려 환영할 일이었으나.

‘그렇게 욕을 해도 추가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톨비아가 ‘업데이트’로 내놓았다는 점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었다.

장비에 관련해서는 톨비아 유저들이 가장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는 문제였다.

뽑기로 나오는 수없이 많은 장비들은 대부분은 쓸모가 없다.

심지어는 높은 등급의 장비라 할지라도, 보유한 화신과 어울리지 않기에 창고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이 간단한 걸 왜 이제야 해주는 거야?’

마치 일부러 추가하지 않는 듯.

유저들이 아무리 개선을 요청해도, 하지 않던 업데이트를 지금에 와서 해준다는 것.

분명 정호가 의심을 품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유저에게 화신 등급이 부여됩니다.

단 하나의 문장.

그것이 이 업데이트의 핵심이었으니까.

‘등급...’

어째서 초월이라는 시스템을 추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실제로 정호는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정호☆] :

29세. 미련한 도박중독자.

-힘 : 48 체력 : 52 민첩 : 47 지능 : 50

(화신 도감의 수치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강신한 화신의 스탯에 추가됩니다)

‘높네.’

스마트워치를 이용하여, 확인했던 자신의 능력치와는 사뭇 다른 스탯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최초 클리어 업적.

그림자 지하 성채에서 ‘10’, 크라켄의 역습에서 ‘30’이 오른 도합 모든 스탯이 40.

1성의 화신에 위치한 정호라 할지라도, 높은 수치에 달해 있었다.

“쯧.”

정호는 혀를 차냈다.

‘미련한 도박중독자...’

다른 화신들처럼, 무언가 대단한 설명이 붙어있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미련한 도박중독자라니.

아주 놀리기로 작정을 한 설명이 아닌가.

하지만 그 내용 자체는 정호에게 상당히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스탯의 추가라...’

제아무리 도감 수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강신시킨 화신의 스탯에 도합 ‘200’에 가까운 스탯을 공짜로 얻어내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지금으로도 한 번의 각성을 이루어낸 것과 같은 효과라니.’

현재 정호의 등급은 일 성.

스탯 만이라고는 하나.

고작 그것으로 아틸라를 한 번, 각성 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같은 선상에 섰다는 거지.’

여전히 아스텔 유저들처럼 경험치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스스로 강해질 발판을 얻었다는 사실은 정호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차르륵-, 차르륵-.

정호는 코인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고민을 기했다.

분명 지금껏 얻어낸 코인들 중, 가장 막대한 양의 코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코인의 분배가 중요해지는 기점이 아닌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먼저...’

당장이라도 스스로의 각성과 초월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그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부분.

심지어 초월은 그 낮은 확률을 보았을 때, 코인을 질렀음에도 ‘무과금’이 되기 딱 좋은 놈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전에 끝내두어야 하는 녀석이 있었다.

‘제작의 화신.’

지금껏 톨비아 유저들이 부르짖으며, 개선을 요구했던 사항.

장비 제작과 분해, 합성.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화신’을 저격해야만 했다.

“하아...”

정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설마하니 업데이트가 되자마자 꺼내는 첫 마디가.

“픽업 찬스 뽑기.”

[픽업 찬스 뽑기]

[1회 뽑기 : 500코인]

[잔여 코인 : 97,300코인]

새로운 BM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호구 고객.

호갱의 길이었으니까.

* * *

정호는 픽업 찬스 뽑기에 대해 그리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까지 화신을 저격할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것은 일주일의 갱신 시간으로는 현실에 다가 온 침공에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가지도 못했다.

[픽업 찬스! 카리브 해의 해적이 찾아옵니다]

‘아? 아아? 아...! 이건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화신 뽑기와 픽업 찬스의 뽑기.

그 두 가지는 같은 선상에 있는 종류의 뽑기가 아니었으니까.

‘뽑아야 하나? 벤자민이 필요하긴 한데? 하지만, 그렇게 하면 코인이? 아...’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화신 뽑기는 정호의 의사가 들어갈 부분 따위는 없다.

그저 코인을 넣으면 그 결과가 나오는 종류의.

이른바 도박이나 다름없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픽업 찬스 뽑기’는 다르다.

‘이런...망할!’

어디까지나 정호의 의사에 의해서.

그 결과를 멈출 수 있다는 점.

화신 뽑기처럼 직관적인 녀석보다 더욱 ‘악랄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픽업 찬스! 아탈란타(Atalanta)가 찾아옵니다!]

[단일 픽업 찬스!]

‘이...이건,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정호는 화신 뽑기로 향하는 자신의 손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정신차리자. 활의 화신은 당장 필요... 없잖아. 뜰 확률도 낮아. 5성 등급이잖아. 멀린도 픽업에서는 안 나왔어.’

그저 픽업 찬스일 뿐이다.

픽업 찬스가 떴다고 한들, 그것을 뽑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픽업 찬스 뽑기는 어디까지나 코인을 소모한다.

그 탓일까.

마치 오늘의 점심을 고르는 것처럼 어려운 선택장애가 자꾸만 찾아온다.

‘필요한 건 제작의 화신이야.’

정호는 그것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텼다.

눈물을 머금고 픽업 찬스를 돌린다.

‘아...아탈란타면 원거리 전에서 빛을 발하는 화신인데.’

아쉬움과 후회가 몰려오지만, 그것을 돌아볼 새 따위는 없었다.

‘2천 코인...3천 코인...’

점차 줄어만 가는 코인의 수는 정호의 마음을 꺾이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지금이라도 멈출까...?’

생각해보면, 픽업 찬스도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최신 업데이트인 ‘제작의 화신’의 픽업 찬스가 나타날 확률이 높을 리가 없다.

‘낮은 등급의 화신을 이용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코인이 소모될수록 현실에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이 마지막...! 뭐가 나오던 간에 뽑기로 진행한다.”

픽업 찬스가 없다고 한들.

화신 뽑기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굳이 확률을 올리기 위해서 이런 코인을 전부 소모할 필요 따위는 없다.

[픽업 찬스! 성전의 기사들이 찾아옵니다!]

꼭 이럴 때만 애매한 픽업 찬스가 떠오른다.

“아... 이건 아니야!!! 진짜 마지막이야.”

조금 전에 했던 말은 쏙 들어간다.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어려운 동물이다.

정호는 더더욱 그랬다.

마지막. 진짜 마지막. 진짜, 진짜 마지막.

그렇게 시작한 뽑기는.

“하아, 하아, 하아...!”

찐찐찐찐찐막까지 도달하고서야 멈추었다.

[픽업 찬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찾아옵니다!]

“하아, 하아...”

정호는 숨을 몰아쉬며, 억지로 입술을 비틀었다.

“내, 내가 이겼어. 이긴 거야.”

소모한 코인은 무려 5천.

고작해야 픽업 찬스에 쓸 만한 양의 코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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