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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75화 (76/144)

< # 75화 >

# 75화

거대한 선박들은 멀린의 스킬에 의해 휩쓸려 나갔다.

밸라미의 부하들은 그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으나.

선장마저 붙잡힌 마당에, 해적선을 잃은 해적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그들에게 동료애라고는 쥐뿔도 없다.

결사항전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는다.

부리나케 헤엄을 쳐 도망치는 그들의 모습.

정호는 굳이 녀석들을 쫓으려 하지는 않았다.

‘이 쪽이 더 값지니까.’

녀석들이 떨어뜨릴 적은 코인보다, 지금은 붙잡은 고기를 손봐야 할 시간이었다.

‘밸라미라...’

완전히 제압되어진 녀석을 죽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녀석을 향해 검을 한 차례 휘두르면 되는 일.

그것만으로 ‘크라켄의 역습’은 클리어 되고, 자신은 막대한 보상을 쥐어 쥘 수 있었건만.

정호는 그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보스 도감에 포함되는 녀석인가?’

기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림자 지하 성채의 보스, 니네체르.

녀석은 스스로 부하가 되겠다며 매달리고서, 게임에서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화신 도감.

[화신 도감]

-보스 몬스터 :

그들은 화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타락했으나, 당신에게 귀속되기를 원합니다.

-니네체르 ☆☆☆ (보유중) / 소환 개체 수 1 증가

-???

-???

...

고작 니네체르 하나를 포함시켰을 뿐 일진데.

소환 개체 수가 증가하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도감.

‘오라클의 효과와 동일할 정도니까.’

무려 오 성 등급의 장비.

가끔씩 등장하는 럭키 몬스터가 떨어뜨리는 장비인 오라클과 동일한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오라클보다 훨씬 좋은 옵션이지.’

장비의 착용은 한정되어 있다.

제아무리 좋은 장비를 얻어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검이라면.

두 자루의 검을 착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 도감은 정호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존재였다.

“밸라미.”

정호를 대신하여, 그 설득에 나선 것은 티치였다.

“이런 만들어진 것처럼 작은 대양 위가 자네가 바라던 대해적의 시대인가? 그저 가끔씩 찾아오는 이들을 약탈하며 연명하는 삶이?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제아무리 악연이라고는 하나, 같은 선박에서 동거동락을 하던 이의 말이다.

더욱 와 닿을 수밖에 없으리라.

“흥, 이제는 나를 능멸하려 드는 군. 티치. 네 녀석이야 말로, 해적의 해(海) 자도 모르는 녀석의 아래에서 심부름거리나 하는 주제에.”

다만.

과연 해적왕이라고 할까.

밸라미의 자존심은 상당히 강한 모양이었다.

“주인이 해적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말이네.”

티치는 자신의 양초 수염을 쓰다듬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일단 해적질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

그 설득에 밸라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티치의 말은 정론이었다.

‘얼마 걸리지는 않겠군.’

정호조차도 그리 생각했다.

부하들을 잃고서, 크라켄조차도 전투 불능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스스로도 완전히 제압당한 마당.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거나, 죽거나.

그에게 선택지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케하하하하하.”

녀석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허탈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그 직후의 반응은 정호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봐, 티치. 그리고 거기 있는 네 놈.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나 알려주지.”

갑작스레 녀석의 태도가 돌변했다.

“내가 부하를 물린 것은 자네들이 어떻게 나오나 확인해보려는 것뿐이야. 거기에는 내 목숨을 부지하려는···, 그 따위 얄팍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무슨 소리지?”

그 반응은 정호로써도 예상하지 못했다.

“목숨이 하나? 웃기지도 않을 소릴 하는군. 그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

정호는 짐짓 말을 잃었다.

녀석이 하는 말은 결코 던전 내의 몬스터 따위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왜 화신이 되기를 거부한 것인지 아나?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따위가 아니야.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했을 뿐이지.”

툭.

밸라미는 자신의 목에 드리워진 나이프를 아무렇지도 않게 쳐냈다.

곧장 코르데가 죽여도 되냐는 듯, 눈빛을 보내왔으나.

정호는 손바닥을 들어 그것을 만류했다.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지. 해적왕이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고작해야 흘러가는 역사의 파편일 뿐이야. 그런 내가.”

밸라미는 손깍지를 쥐고서 콧잔등 위로 들어 올린 채, 말을 이었다.

“세상을 지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드넓은 바다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일단 그 놈이 제안한 ‘화신’이 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지. 영원한 목숨 하나 만으로는 모자란단 말이야.”

그림자 지하 성채의 왕인 니네체르는 자신이 어떻게 보스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한데, 녀석은 스스로 그 선택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보다 내가 많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나가 안 된다면, 둘. 둘이 안 된다면 셋. 이곳은 몇 번째의 ‘나’인가? 열 두 번째였던가. 케하하하하.”

[크라켄의 역습 12]

정확하게 던전의 번호까지 맞추는 녀석의 얼굴에는 광기마저 서려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죽는다고,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지. 또 다른 내가 이 기억을 온전히 계승한 채 살아갈 테니까.”

니네체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일조차도, 녀석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빠...”

두려움을 가진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크라켄을 향해 밸라미는 인자한 미소를 내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단다. 어차피 너는 언제나 내 딸일 테니까.”

다만, 그 직후에 이어진 일은 그 인자한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

푸욱-.

밸라미의 손이 크라켄의 미간을 그대로 꿰뚫었다.

“카- 카학. 카하아아악-. 이, 이 새끼가.”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막을 새도 없었다.

크라켄은 곧장 여덟 개의 다리로 밸라미의 몸을 꿰뚫었다.

“케하하하하.”

밸라미는 피를 흘리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떨리는 손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검지를 펼친 녀석은 정확히 정호를 가리켰다.

“어떤가.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는 기분은? 괴롭겠지. 다음에는 이 따위 잔재주가 통하지 않을 것이니까!”

투욱.

일갈을 내지르고서, 고개를 떨구는 밸라미.

“...”

꽤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상황.

정호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리며, 산화하는 녀석을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 놈이라.’

정호는 밸라미가 했던 말을 곱씹고 있었다.

화신이 되거나, 타락하거나.

그저 게임에서 하나의 설정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것이 확실해진 마당이다.

그것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은 참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마당이었으나.

‘톨비아 관계자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한 번도 공개선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개발자.

그보다 문제가 있다면, 다음 던전 공략에 상당히 곤란함을 가진다는 것이었으나.

‘멍청하긴.’

정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 밸라미를 비웃었다.

‘다음은 없어.’

밸라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다음 던전 공략에서 정호가 지금과 같은 전력을 유지한다는 가정이다.

‘아스텔 유저라면 달랐겠지만.’

녀석은 마치 ‘경험치’라는 존재를 알고 있는 양 행동했다.

만약 이 상황을 아스텔 유저가 맞이했다면, 크게 오열했을 것이 분명했다.

무려 보스 몬스터 둘의 경험치를 한 번에 잃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다만, 정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크라켄의 첫 번째 심장.’

크라켄이 떨어뜨린 것은 무려 5천 코인.

밸라미는 3천 코인이나 떨어뜨렸다.

[크라켄의 첫 번째 심장]

-크라켄이 품고 있던 세 개의 심장 중 그 첫 번째 심장.

-5성 이하의 화신을 각성시킬 수 있다.

-각성 확률은 화신의 등급 여부에 따른다.

그것을 포함하여, 5성 등급의 화신을 각성시킬 수 있는 재료까지.

‘잔재주를 부릴 필요도 없을 텐데.’

세 마리의 신수를 포함하여, 크라켄까지도 재료를 드랍했다.

제아무리 그 확률이 확정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초 클리어!]

[크라켄의 역습을 최초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 상승의 효과를 얻습니다. +30]

[최초 토벌!]

[보스 몬스터 크라켄을 최초로 토벌하였습니다]

[최초 토벌 보상으로 15,000코인을 지급합니다]

[추가 보상! 크라켄의 두 번째 심장을 지급합니다]

[보상 받기 Y/N]

[최단 시간 클리어!]

[크라켄의 역습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클리어 하셨습니다]

[최단 시간 클리어 보상으로 3,500코인을 지급합니다]

[추가 보상! 해적왕의 장총☆☆☆☆을 지급합니다]

[보상 받기 Y/N]

[높은 공헌도!]

[파티 내 최고 공헌도에 등극하셨습니다]

[추가 보상 1,000코인을 지급합니다]

[보상 받기 Y/N]

지금까지 얻어낸 코인을 합치면, 무조건적인 스펙 업이 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코인을 얻어내지 않았던가.

“어디까지 버티나 볼까.”

정호는 단단히 벼르고 있을 밸라미를 상상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내지었다.

녀석의 태도로 확신하건데.

밸라미는 ‘보스 몬스터’ 도감에 포함이 되는 녀석이었다.

절대로 굽히지 않은 채, 자살까지 하는 기행을 펼치는 밸라미의 행동은 실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으나.

“놈이라면,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은디.”

티치의 말처럼, 그것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정호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녀석의 기행은 어디까지나, ‘다음’이 있다는.

철저한 계산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녀석이 무슨 반응을 보여줄지 참으로 볼만 할 터.

“돌아가지.”

정호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사뭇 어이가 없는 마무리이기는 했으나, 과정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물의 날’은 끝이 났고, 저인족들의 염원인 크라켄이 쓰러졌다는 점.

‘보상을 먹으러 갈 시간이니까.’

환한 미소를 짓는 정호를 맞이하는 것은.

““와아아아아아아!””

그제야 크라켄이 쓰러졌다는 것을 알아챈 저인족들의 환호였다.

* * *

저인족들의 도시에는 축제가 벌어졌다.

“신수들을 쓰러뜨린 인간들이 문어 녀석을 죽여버렸다던데?”

“문어라면 크라켄...? 녀석을 말하는 거야?”

실로 믿지 못할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그들은 하나 같이 되돌아오는 인간들에게 환호를 내보냈다.

““와아아아아아아!””

저인족들에게 있어서는 굴욕이나 다름없는 지난 세월들.

그것을 끝장 낸 영웅을 향한 환호는 끝을 보이질 않았다.

다만, 그것을 마냥 기뻐하는 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 설마 정말로 쓰러뜨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군.”

바로 정호에게 보상을 약속한 ‘켈린왕’이다.

“보상을 받으러 왔다.”

“...”

사실 켈린왕은 정호에게 보상을 쥐어 줄 생각이 없었다.

‘보물을 인간들에게 주어야 하다니...!’

보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인족들이 긴 시간 동안 수호해온 그 물건들은 하나 같이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걔 중에는 신수라 불리는 괴물들이 저인족들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저인족들을 수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구도 있는 마당이다.

‘언제 미지의 적이 찾아올 지도 모르는 마당인데.’

왕이란, 언제나 지금의 위협보다는 다음에 찾아올 위기를 감지해야 하는 법이다.

다만, 제아무리 켈린왕이 보상을 쥐어주기 싫다고는 하나.

이미 약속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진짜 보물을 찾을 수는 없겠지.’

켈린왕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창고에는 수없이 많은 보물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강력한 무구는 그 손에 꼽을 정도.

그것은 저인족도 아닌 인간이 제대로 찾을 리가 만무했다.

‘단 하나일 뿐이다.’

설사 찾는다고 한들, 약속한 보상은 단 하나 뿐.

지난 날 절대 쓰러뜨리지 못하리라고 생각해, 몇 개나 되는 보물을 약속하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스스로 칭찬했다.

“창고를 열어주겠네. 가져가시게. 하지만 명심하게.”

손가락을 들어 올린 켈린왕은 인간을 향해, 단호히 입을 열었다.

“단 하나일세. 그 어떤 경우에도 그 개수를 넘어서면 안 되네!”

명심하라는 듯.

몇 번이고 손을 들어올린다.

인간도 그런 켈린왕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시원한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지은 켈린왕이, 자신의 의자를 치웠다.

쿠르르르르릉-.

동시에 의자가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비켜나간다.

항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왕의 존재로 철저하게 감시되어지는 보물 창고로 향하는 계단이 펼쳐졌다.

“걱정하지말라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가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터벅, 터벅.

다만, 인간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멀어질 때 쯤.

“너와 약속한 건 하나였지? 켈린왕, 너하고의 약속은 말이야.”

“...음?”

해소되었던 불안감이 재차 떠오르는 것은 착각이 아니라고.

켈린왕은 그리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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