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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74화 (75/144)

< # 74화 >

# 74화

모든 게임에 존재하는 던전이 그렇듯.

그 끝에는 보스 몬스터라는, 그 던전의 주인이 되는 격인 존재가 그 끝에 도사리고 있다.

톨비아 또한 그것은 다를 바가 없어, 보스 몬스터가 메인으로 그 던전의 테마가 결정되어 진다.

다만, 다른 게임과 차별점을 준 점이라고 한다면.

그 던전의 주인이 보스 몬스터와는 별개가 되는 존재가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크라켄의 역습]

-고대 시대에 토벌된 크라켄. 그런 크라켄을 ‘새뮤얼 밸라미’가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부활시켰습니다.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크라켄을 막고, 해적들의 역습에 대비하십시오.

크라켄의 역습의 경우에는 분명 보스 몬스터로서 크라켄 임에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설명에는 ‘새뮤얼 밸라미’라는, 전혀 다른 인물이 거론되는 것처럼 말이다.

새뮤얼 밸라미.

통칭, 블랙 샘이라 불리는 그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해적 약탈금액 1위인.

해적왕이라는 이명이 가장 잘 와 닿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놈이.’

정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런 밸라미를 바라보았다.

게임 내에서의 밸라미는 상당히 까다로운 적에 속했다.

해적들을 이끄는 선장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나 적들을 쓰러뜨리는 강력한 무력 따위가 아니다.

오로지 상대를 약탈하고서, 그 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잡히지는 않는, 영특하고도 교활함.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밸라미는 해적들이 따르기에 적합한 사내였다.

현대의 기준이기는 하나, 무려 1억 2천 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가치의 약탈 금액을 올린 전과가 있는 이.

그런 이를 선장으로 삼고, 자신의 본거지로 삼을 해적들은 정말이지 수없이 많았다.

그 수만 하더라도 수천에 달해 밸라미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그 많은 수의 해적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상당한 까다로움이 동반했다.

해상 루트가 선호되지 않는 것도 이 대규모 전투를 피하고 싶기 때문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 나타났다는 거지.’

정호가 ‘제물의 날’에 참가한 이유도 바로 퀘스트의 보상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덤벼오는 수천의 해적들을 상대하기 꺼려했던 탓이다.

그런 해적들의 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정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멍청하기는.’

녀석은 등장 시기를 놓쳤다.

크라켄은 이미 두 번의 목숨을 잃은 마당이다.

남은 목숨 또한, 그 체력이 다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마당.

거기에 밸라미 스스로도 간신히 시간을 맞춘 듯, 부하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사지에 제 발로 기어들어왔군.’

의외의 상황이나 다름없었으나.

자신의 존재에 의해서 보스 격인 녀석들이 전혀 다른 패턴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그림자 지하 성채’의 니네체르로부터 깨닫고 있는 마당이었다.

그것에 밸라미라는 녀석이 역겨운 취향이 드러난 것은 불쾌하기는 했으나.

당장 일어날 전투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물러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녀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크라켄을 품은 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정호는 다 잡은 물고기를 놓아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곧장 검을 빼어들고서, 녀석을 향해 다가서려던 그 때.

“이야, 밸라미. 오랜만이구먼.”

그런 정호를 만류하려는 듯, 하나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티...티치!”

“어찌 잘 지냈나? 아니, 그 모습을 보니 못 지낸 것 같구마이.”

티치는 불도 붙지 않은 시가를 꼬나물고서는, 녀석을 향해 말을 내걸고 있었다.

“어째, 네 취향은 언제도 변하지가 않는 구먼. 역겨우이.”

“너의 그 더러운 수염은 아직도 밀지 않았나?”

그제야 정호는 떠올렸다.

‘구면이었군.’

티치와 밸라미는 카리브 해에서 동시대에 활약했던 해적.

이른 바 동업자였다는 것을.

* * *

정호가 세트 효과를 발현하고 있는 도감 중에는 ‘해적’으로만 이루어진 도감이 존재한다.

티치와 함께 앤 보니, 메리 리드와 같이 그 도감에 이름을 올린 4성급의 화신, ‘벤자민 호르니골드((Benjamin Hornigold)’.

다만, 해적을 잡는 해적으로 유명한 벤자민은 사실 그리 중요치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휘하에 있던 이들이 바로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와 해적왕, 새뮤얼 밸라미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어린 노예들을 탐하고 다니나? 정말이지, 역겨운 취미로구만.”

“웃기지마라. 크라엔은 내 딸이다. 그러는 네 녀석이야말로 아직까지 제대로 된 약탈을 하지 못한 모양이군. 그런 덜 떨어진 녀석의 밑에 있는 것을 보면.”

“뭐이? 갸하하하. 아주 미친 놈 아닙니꺼? 주인장. 괴물 놈에게 이름까지 붙여놨으이.”

검은 수염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정호를 향해 눈짓을 보내었다.

‘잠자코 있어달라는 의미군.’

정호는 고작해야 덜 떨어진 녀석이라는 말같이, 하찮은 도발에 넘어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으나.

이 대화를 지속할 의미를 찾지는 못했었다.

다만, 검은 수염의 그 눈짓에 몸을 멈춰 세웠다.

‘녀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티치일 거니까.’

정호가 알고 있는 녀석은, 게임 상에서의 밸라미다.

톨비아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니네체르와 같이 제정신을 유지한 밸라미는 정호에게는 미지의 존재나 다름없다.

“한데,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네 녀석들의 부하들도 얼마 없어 보이는디···, 사실 전부 허풍 아니여? 네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여. 갸하하하.”

“우, 웃기지마라! 지금도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게 아니지. 아무튼 너 따위 녀석보다는 많다!”

티치의 얼토당토않은 도발.

그것에 정말이지 허무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는 그 모습에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기하고 있다는 거지.’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포격에 직격당할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 네 녀석은 항상 그랬으이. 어린 노예를 소중히 하는 척하면서도, 네 자신의 목숨은 끔찍하게 아꼈으니께. 하지만, 지금은 혼자인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감?”

“내 딸, 크라엔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지? 헛소리 하지 말고 당장 물러나! 티치!”

“알았다. 네 녀석 말대로 하갔서. 주인장, 서서 하나 정도는 물려도 좋을 것 같은디?”

“하나가 아니라, 전부 다다!”

밸라미가 윽박을 내지르기는 했으나.

정호는 곧장 티치의 의도를 파악했다.

‘나한테 하는 말이군.’

티치는 크라켄과의 전투에서 먼 거리에서의 포격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탓에 정호와의 거리는 상당한 수준.

의도를 알리려면, 밸라미와의 대화에서 정호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멍청하군.’

그 사실을 밸라미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은 실로 웃기는 노릇이었으나.

“고생했다. 서서.”

정호는 티치의 말에 따라, 서서를 소환 해제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소환.”

밸라미의 거리에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목소리로 또 다른 화신을 소환했다는 점이다.

“네 요구 중 하나는 들어주었으이. 그러니 네 녀석도 부하들을 조금은 물려도 되지 않겠는감?”

“무슨 소릴! 애초에 부하들이 없다고... 이런. 하지만 어림없다. 고작 한 녀석으로는...!”

“아니, 이러면 곤란하제. 우리는 고작해야 주인장을 합쳐도 넷 밖에 되지 않는다구. 그 하나의 가치가 을마나 커다란지는 모르는 것은 아닐틴디?”

“...한 척 물리지. 다만, 단 한 척이야. 이봐! 올라가!”

구우우우웅-.

밸라미와의 협상을 순조롭게 진행되어져 갔다.

도대체 저 심해에 어떻게 숨어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배 한 척이 바다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선장. 먼저 올라가본다.”

“죽지나 말라고. 하하하하!”

그 안에 타고 있는 선원들의 수만 하더라도 무려 이백을 아우르는 대규모의 인원이었다.

‘서서 하나로 저 인원이라면, 남는 장사지.’

애당초 재소환한다는 선택지도 있는 마당이다.

정호에게 손해를 볼 상황은 전혀 없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저 사람. 싫어.”

전투 상황을 전혀 모르는 밸라미와는 달리.

직접 정호와 칼을 맞댄 이가 아직 이 자리에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말을 할 수 있는, 인간 형태의 크라켄.

녀석은 손가락으로 멀린을 가리키고 있었다.

“으윽...! 저런 소녀조차도 나를 싫어하다니. 마스터. 저는 어떤 낙으로 살면 되는 겁니까.”

오열하는 멀린을 뒤로 한 채.

정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크라켄이 가리킨 대상인 멀린은 가장 역소환 하고 싶지 않은 화신이었던 까닭이다.

‘아발론의 성역이 끝나고 만다.’

서서의 스킬, 구원대는 그 재사용 시간이 짧은 편에 속했다.

재소환할 때 즈음이면, 다시금 사용할 뿐이다.

다만, 멀린의 스킬인 ‘아발론의 성역’과 ‘악마의 터치’는 하나, 하나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스킬 답게 그 재사용 대기 시간이 긴 편에 속했다.

정호가 일부러 보스전까지 멀린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 까닭도 바로 이 점 때문이 아니었던가.

‘전면전으로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크라켄은 그 체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마당이다.

밸라미와 해적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심해로까지 전체에 해당하는 수천의 해적들을 모두 끌고 올 수는 없었을 확률이 높지 않은가.

다만, 정호가 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까닭.

‘신수의 저주가 생각보다 많이 중첩되었어.’

크라켄과의 전투로, 신수의 저주로 인해 체력 스탯은 벌써 100 이하까지 떨어진 마당이다.

거기서 크라켄이 아니라고는 하나, 해적들과의 전투까지 벌어진다면 정말 목숨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모습이라도 드러냈다면.’

멀린의 스킬로 한 번에 휩쓸어 버릴 수도 있는 법이었으나.

모습을 감추고 있는 이상,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골치 아프군.’

그런 생각을 가지며, 시선을 검은 수염에게 보내자.

티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멀린은 우리들 중 가장 강력한 화신들 중 하나지. 아마도, 이 사내가 없었다면 자네의 딸에게 우리는 간단히 쓰러졌을 거야.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네 녀석도 잘 알고 있을 터.”

“그 같잖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한 모양이군.”

정호는 그 대화에 솔직하게 감탄했다.

‘이야.’

티치는 진지해질 때면 항시, 사투리를 집어넣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밸라미라는 사내와 함께 있을 때에는 ‘거짓’을 하지 않는다는 효과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아니. 실제로 거짓을 고하지는 않았다.

멀린이 아니었다면, 정호는 크라켄에게 도전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좋다. 그 멀린이라는 사내를 돌려보낸다면, 부하들을 모두 물리지.”

“그건 안 되는 말이지. 형제여. 일단 네 부하들을 보내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서로 양보할 수가 없는 모양이군.”

“동시에 라면 가능하겠는가?”

결국 얻어낸 협상 안은 실로 정호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우우우우웅-.

구우우우웅-.

그 말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없이 많은 해적선들.

‘미쳤군. 졌겠어.’

그 수를 본 정호는 아찔함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토록 많은 수의 해적선이 심해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조금 전에 바다 위로 올라간, 한 척의 해적선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원의 해적들이 있었다.

“많군.”

“네 녀석과는 달리, 나는 관록이 있는 편이라. 케하하하하.”

웃음을 흘리는 밸라미.

다만, 검은 수염은 그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갸하하하하! 자네는 이전부터 변함이 없구먼! 멍청한 것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이!”

그것은 정호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멀린.”

“돌아갑니까? 마스터.”

“무슨 소리야. 스킬, ‘씨 블라스트(Sea Blaster).’”

이미 모습을 드러낸 매복 따위는, 정호에게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으니까.

[씨 블라스트(Sea Blaster)]

-전방 100m에 달하는 적들에게 강력한 데미지를 주는 해일을 일으킨다. 데미지는 화신의 지능 수치에 따른다.

-특이 사항 : 물에 인접할수록 그 파괴력이 상승한다.

멀린의 네 가지 스킬 중, 사냥에 특화된.

아니, 광범위의 적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스킬.

심지어 심해라는 장소 특성상, 그 공격력은 단순한 광역 마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력함을 지니고 있는 스킬.

그것이 멀린의 손에서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이봐, 약속이 다르지 않나.”

“해적들의 약속은 원래 그런 법이 아니여?”

“뭐, 그런 법이지.”

다만, 밸라미 또한 크게 당황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는 해적들의 선장이다.

상대가 배신할 것은 염두 해둔 채, 움직이는 것이 해적이 아닌가.

“적어도 바다에서만큼은, 나를 이길 수 없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티치.”

솨아아아아아아-!

동시에 밸라미의 손아귀에서 그저 흘러만 가던 물들이 응축되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하긴, 녀석도 보스 몬스터 격이니까.’

크라켄을 휘하로 둘 정도라면,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나, 그 사실은 정호도 알고 있었다.

그 대책 정도는 이미 해둔 마당이다.

“그건 멈춰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으음?”

스르르륵-.

녀석의 뒤편에서 등장하는 하나의 존재.

은발의 아리따운 여성이 나풀거리며, 밸라미의 목에 나이프를 겨누고 있었다.

‘고작 삼 성 등급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티치와의 대화를 틈 타, 코르데가 녀석의 뒤를 잡았다.

“...이따위 작은 나이프 쯤은...!”

그에 곧장 뿌리치려하는 밸라미를 향해 정호가 입을 열었다.

“정말 그럴까?”

정호는 사뭇, 해적과 같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 쪽에도 저인족들이 있을 테니 알 텐데... 신수, 아스피도켈론을 쓰러뜨린 건 그 작은 나이프가 이루어낸 일이야.”

“단 한 방에 말이지.”

티치가 그 말을 거든다.

거짓은 없었다.

다만, 해적은 허풍이 심한 법이다.

“이, 이런 젠장!!”

자신의 목숨을 끔찍하게도 여긴다는 밸라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었다.

솨아아아아아-!

거대한 해일이 수많은 해적들이 타고 있는 선박들에게 향한다.

콰아아아앙-!

거기에는 자그마한 저항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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