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3화 >
# 73화
크라켄은 세 개의 심장을 가진 문어에서 모티브를 딴, 세 번의 목숨을 가진 보스 몬스터다.
그 세 번의 목숨은 하나, 하나가 페이즈가 되어, 크라켄의 공격 형태가 바뀐다는 점이 주요 공략법이 된다.
‘두 번째가 가장 까다로워.’
조우 시의 크라켄은 온전한 방어 모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를 테면, 오만한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껏 심해에서 왕 노릇을 하며, 천적이 없었던 녀석이다.
제아무리 많은 유저들이 몰려왔다고 한들, 인간은 크라켄에게 있어서는 위험 대상이 아닐 터.
녀석은 자신을 토벌하러 온 유저들을 상대로 장난질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호와 저인족들이 찾아왔음에도, 자신의 알을 지키려 드는 모양새가 딱 그 꼴이다.
다만, 그 목숨이 한 번 사라졌을 때.
크라켄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까다로운 건... 독이지.’
두 번째 페이즈부터는 녀석이 완전히 진지하게 변하는 순간이다.
크라켄의 거대한 다리에 붙어 있는, 빨판에는 스치기만 하더라도 상태 이상, ‘맹독’을 부여하고.
녀석이 뿜어내는 새까만 먹물에 닿는다면, 상태 이상 ‘침묵’에 걸리는 실로 까다롭기 짝이 없는 상대로 변하고 만다.
‘침묵은 특히나.’
지속성 짙은 ‘침묵’은 길게는 20분, 짧게는 5분까지 이어지는 상태 이상.
공격대라도 가장 큰 주의를 요하는 것이기는 했으나···.
홀로 녀석을 공략하려고 하는 정호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상태 이상이기도 했다.
‘티치가 나설 순간이 없어서 다행이야.’
정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단체로 침묵에 맞아버렸다면.
검은 수염의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인 ‘럼주 한 병’이 있다 한들, 그것은 엄연히 쿨타임이 존재하는 스킬.
전투를 이탈하는 화신이 있다는 것은 정호로써는 크라켄의 공략을 미룰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세 번째는...’
크라켄의 마지막 목숨.
그것은 모든 보스가 그렇듯, 최후의 발버둥을 치는 페이즈나 다름없었으나.
정호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크라켄의 강점은 거대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방어력과 높은 체력에서 오는 법이다.
하지만 녀석이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그 강점을 완전히 내버린다.
우우우웅-.
자신의 몸을 다리로 감싼 크라켄의 형체가 점차 작아진다.
무려 수백 미터나 될 법한 그 형체가 기묘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천천히 그 형태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쓰, 쓰러뜨렸다!”
“녀석이 죽어 버렸다고!”
이윽고는, 저인족들조차 크라켄이 죽어버렸다고 착각을 할 만큼 작은 형태.
“이건, 녀석이 남긴 마지막 알인가?”
“얼른 깨버리자고.”
그 형태가 얼마나 조그마하던지, 저마다 곡괭이를 들고 녀석에게 다가간다.
정호가 그들에게 무어라 말을 할 새도 없었다.
쉐에에에엑-!
“커헉!”
곡괭이를 쥐고 힘껏 내리찍으려던 저인족 몇이 단번에 그 몸을 꿰뚫린 채 죽었으니까.
우우우웅-!
빨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다리는 어디로 갔는지, 녀석의 다리는 긴 송곳처럼 날카롭기만 했다.
스르르르륵-.
이윽고, 그 여덟 개의 다리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크라켄.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유창한 말과 함께,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전혀 의외의 존재다.
14, 아니 13세 정도는 되었을까.
보라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저, 내 아이들을 지키려는 것뿐이야.”
서글픈 표정을 내짓는 녀석의 모습은 정말이지 악의 따위는 없는, 가녀리기만 보였으나.
‘그 따위 겉모습에 속는 멍청한 녀석이 있겠냐고.’
크라켄이 세 번째 페이즈에 인간 형태로 변신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제아무리 거대하다고는 하나, 크라켄은 엄연히 문어에 속하는 녀석.
문어는 변신의 귀재이자, 그 천적으로 수십 가지의 모습으로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 취향이었어? 아니지, 이건 취향 문제가 아닌데?
‘설마.’
아틸라가 내걸어오는 말에,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검을 쥐었다.
‘상대를 잘못 봤어.’
정호는 보스 몬스터 따위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물며 소녀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크라켄의 형태가 줄어듦에 따라, 쉬이 다가갈 수 없었던 공격 범위가 크게 감소되어 공략이 편해졌다는 것이 정호가 가지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가지고 있는 생각인지는 몰라도 역겹군.’
오히려 저런 모습으로 만든 녀석의 머릿속이 의심스러울 마당이다.
“멀린, 마법으로 보조해.”
정호는 곧장 녀석에게 향하며, 멀린에게 명했다.
제아무리 그 형태를 줄였다고는 하나, 녀석이 가지고 있는 높은 체력은 그대로인 상황.
오히려 조금 전의 기습을 가한 공격은 상당한 빠르기로 이루어져 있어, 생각보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렇기에 지원을 명한 것이었으나.
“마스터.”
멀린의 상태가 이상했다.
“이야기라도 들어 보죠?”
멀린의 시선이 크라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야.”
정호는 그에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설마 이 새끼.’
크라켄과 멀린을 번갈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 혐오감이 떠올랐다.
“너냐?”
크라켄은 자신을 쓰러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로 변화한다.
그것이 공포나 두려움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면, 이상에 가까운 형태로.
“아? 아아? 아닙니다. 마스터. 지금 저를 의심하는 겁니까? 저는 모든 여성을 사랑합니다만, 그렇다고 저런 소녀를 향해 욕정을 품지는 않습니다!”
멀린이 그에 화들짝 놀라며, 변명을 토해낸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욱 의심스럽다.
“그럼 티치나 서서겠네?”
정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검은 수염과 서서를 바라보자.
“주군, 제 나이가 몇 살로 보이십니까.”
“주인장, 내 취향은 파도에 강한 여자야. 저런 비실한 꼬맹이가 아니라.”
서서는 근엄하게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고.
티치는 평소에 쓰던 어설픈 사투리는 어디 갔는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어투로 답한다.
“아니, 정말이지 억울합니다. 마스터. 저는 아닙니다!”
“그럼, 증명해 보이던가.”
후웅-!
정호는 더 이상 멀린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듯.
매몰차게 멀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몸을 날렸다.
“정말 저를 죽이실 건가요?”
글썽글썽한 눈망울을 보이는 크라켄.
그것을 바라보며 정호는 다짐했다.
누구 취향인지는 몰라도, 보스전이 끝난다면 흠씬 두들겨 주리라고.
“정말...아니라니까요.”
멀린의 푸념이 그 뒤를 따랐다.
* * *
정호는 크라켄이 소녀의 모습을 했다고 해서, 방심 따위를 하지는 않았다.
쉐에에에엑-!
휘둘러지는 검에는 무려 400이라는 힘에 가까워진 스탯이 그대로 담겨져 있어, 맞닿는 모든 것을 박살 내 버릴 정도였으나.
카아아아앙-!
과연 보스 몬스터라고 할까.
크라켄은 그 공격을 자신의 다리 두 개로 쉬이 막아내자.
문어의 다리와 맞닿았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쉬익-!
쉬이이익-!
오히려 남은 여섯 개의 다리로 전후좌우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은 정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어렵군.’
가장 주의했던 두 번째 페이즈를 단숨에 넘긴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 번째 페이즈가 간단하리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공격대 기준으로 잡고 있었어.’
세 번째 페이즈는 인간 형태로 변하는 크라켄.
그 힘과 능력치를 그대로 가진 채 작아지기만 할 뿐이었으나.
그것은 공격대에 있어서는, 그만큼의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티치에게는 무리가 따르겠어.’
탱커형의 화신인 티치였으나.
아직 풀 각성도 아닌 티치가 앞장서서 녀석의 공격을 막아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현 상황에서 티치보다도 높은 체력을 지닌 자신조차도.
촤악-!
‘윽...’
그저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상당한 고통을 동반하는 피해가 들어왔으니까.
다만,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콰앙-! 콰앙-!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쏘아 올려지는 티치의 포격과.
“도와드리겠습니다!”
“크으윽...!”
“내 창은 제일! 으윽!”
큰 도움이 된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아발론의 성역 효과로 150의 능력치가 단숨에 상승한 이 성급의 구원대.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크라켄의 어그로를 착실히 빼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슈우우우웅-!
오 성급 화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있었다.
굳이 스킬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파앙!
멀린이 펼치는 마법에는 크라켄이 특히 주의를 기울이며, 훌쩍 몸을 피해내기까지 했다.
‘...왜 직격하지 않지?’
다만, 그것만으로는 정호가 가지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었다.
쉐에에에엑-!
파앙-!
“일부러 맞추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마스터! 억울합니다! 정말, 저는 억울하다니까요. 물론... 여성을 공격하는 것은 조금 꺼려합니다만.”
쯧.
혀를 차낸 정호는 크라켄에 집중하기로 하고는, 녀석에게 검을 날렸다.
‘녀석이 아예 전투에 참가하지 않지는 않으니까.’
녀석의 변태성은 이미 톨비아 때부터 정평이 난 마당이다.
애초에 ‘여성형 보스’가 있는 장소에서는 멀린의 교육이 충분하지 않으면 아예 공격을 하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는 같은 공격대원의 화신을 막아서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지원을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파앙-!
크라켄은 멀린의 공격에 크게 주의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직격하지 않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 공격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지려 하는 움직임.
한 마디로, 멀린의 마법을 막는 것보다는 피해내려 하고 있다.
‘성대하게 시작한 탓이로군.’
그것은 녀석의 목숨을 한 번 앗아간, 멀린의 필사 스킬인 ‘메테오 폴’이라는 마법의 영향이 커 보였다.
파앙-!
다시금 떨어지는 멀린의 마법.
그에 크라켄이 신형을 뒤로 물리는 것을 확인한 정호는 곧장 검을 주욱 내뻗었다.
까앙-!
상당히 둔탁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초에 뒤로 물리고 있던 녀석에게 검을 닿게 했을 뿐이다.
정호는 검을 좌로 휘두르며, 신형을 한 바퀴 돌리는가 싶더니···.
파악!
왼 팔꿈치로 녀석의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그대로 가격했다.
“캬학-!”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
‘약점은 여전하군.’
인간의 형태로 바뀌었을 뿐, 미간이 약점이라는 점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아니, 애초에 인간도 미간이 약점이기도 하니 상대법이 그리 다를 바는 없었지만 말이다.
휘이이익-!
그 직후부터 정호는 회피하는 데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쉐에에엑-!
후우웅-!
휘둘러지는 검은 가벼워져, 어디까지나 녀석의 공격을 견제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공격을 하는 것은 언제나.
파앙-!
멀린의 마법이 떨어진 직후.
검을 휘두르며, 녀석의 여덟 개의 다리가 막아세울 때.
콰득!
정호의 한 치의 자비도 없는 니킥이 140cm의 작은 체구의 소녀에게 틀어박힌다.
“캬하아아아악-!”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크라켄에게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고 물러선다.
‘반복.’
그것 만으로는 확실하게 끝낼 수는 없었으나, 이 정도만 해도 만족했다.
버프이자 디버프인 ‘신수의 저주’로 인해 줄어드는 체력보다, 400을 바라보는 힘 스탯이 고스란히 담긴 주먹다짐이 녀석에게 그보다 더한 피해를 입힌다.
퍼억-!
“캬하아아악!”
퍼억-!
“캬아아악...!”
그것이 매 순간 반복되자, 크라켄의 체력이 확실히 떨어졌는지 그 신음조차 약해지고 있었다.
“마, 마스터. 그 정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 돼.”
멀린이 그에 앓는 소리를 내며, 만류를 하기는 했으나 그것을 받아들일 정호가 아니었다.
이윽고.
파악-!
체력이 다한 것인지, 정호가 가볍게 내던진 검이 녀석의 몸체에 틀어박혔다.
‘됐군.’
전투가 시작한지 10분.
아틸라의 스킬, 전투광의 효과로 이제는 400을 훌쩍 넘긴 힘 스탯은 가볍게 휘두른 검으로도 녀석의 단단한 몸체를 뚫어낼 수 있을 정도다.
정호는 더 이상의 주먹다짐을 그만두고서, 검에 힘을 실었다.
콰악-! 콰득-!
녀석의 문어 다리는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정호가 공격을 가할 때마다, 보라색의 피가 터져 나온다.
“왜, 왜...캬하악...!”
비틀거리는 녀석의 신형을 확인한 정호는 곧장 검을 내뻗었다.
‘이걸로 마지막...!’
노리는 곳은 녀석의 약점, 미간.
아니, 머리에도 있을 심장과 함께 관통시킬 생각이었다.
그런 그 때.
“아빠!!”
크라켄의 입에서 터무니없는 말이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뭐?’
정호는 곧장 위기를 느끼고는 검을 회수한 채, 몸을 훌쩍 뒤로 날렸다.
‘아빠라고?’
‘크라켄의 역습’에서 등장하는 크라켄은 단 한 마리 뿐이다.
한데, 녀석이 부르짖는 아빠라는 단어는 결국 한 마리의 크라켄이 더 존재한다는 게 아닌가.
‘설마, 해저 루트와 해상 루트에 각 한 마리씩인가?’
생각해보면 그림자 지하 성채 때에도,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전혀 다른 전개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추측이 떠오르는 그 때.
콰아아아아앙-!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호가 있었던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
“누가 우리 예쁜 딸을 건드는 거야!”
그 직후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정호의 귀를 때렸다.
“휴우...!”
정호는 그에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것은 몸을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저 공격에 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한숨은 아니었다.
정호는 저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직접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직접 와주니 고맙군.’
‘크라켄의 역습’은 어디까지나 크라켄이 보스 몬스터로 존재하는 던전.
다만, 그런 크라켄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었다.
“우리 예쁜 딸. 많이 아팠어요?”
“응.”
녀석은 이미 크라켄을 자신의 품속에 넣고서,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벨라미.”
새뮤얼 벨라미.
통칭, ‘블랙 샘’
검은 수염이 그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해적왕’이라는 자리를 꿰찼다면.
녀석은 약탈 금액 하나만으로 ‘해적왕’에 이른 사내.
“네 녀석이 감히 우리 딸을 건드려?”
녀석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눈을 부라리며 정호를 노려다보고 있었다.
정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멀린, 미안하군.”
“무슨 소리입니까? 마스터.”
정호의 시선은 벨라미와 크라켄의 부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나 벨라미가 크라켄을 바라보는 음흉하기 짝이 없는 눈을.
“아무래도 내가 큰 착각을 한 모양이야.”
정호는 잊지 않았다.
보스전이 끝나면, 크라켄을 저 형태로 만든 녀석을 흠씬 두들겨주겠다는 다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