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화 >
# 72화
전설이나 신화로 내려오는 인물들에게는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신과는 달리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해내는 그들을 신격화하는 일이다.
그 신격화를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했다고 치부하는 일이다.
대마법사 멀린 또한, 그런 신격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를 테면.
그의 출생이 인간과 몽마 사이에 태어났다고 하는, 악마의 계략으로 만들어진 아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톨비아 내에서 멀린은 캐스터 계열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를 받는 화신이었다.
사냥 스킬은 물론이거니와 상대의 방어도를 깎아내리는 방깎 스킬, 아군의 능력치를 끌어 올리는 버프 스킬, 거기에 보스전에서도 강력한 화력을 뽐낼 수 있는 필사 스킬까지.
완벽한 육각형을 그리는 그 스킬들의 존재는 멀린이 오 성 등급의, 고위 화신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오 성 등급이라며, 유저들이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그런 멀린에게도 문제가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흔히들 있지 않은가.
남자답지 않은 곱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인기가 없는 친구가.
너는 참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알아서 꼬일 텐데...라며 충고를 해준 경험.
‘공격대가 여러 울었지.’
멀린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에 있다.
녀석은 생긴 외모와는 달리, 여성형 화신들에 있어서는 이상하리만큼의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정호가 소환했을 때, 보니와 메리에게 달려드려는 멀린을 막아 세우지 않았던가.
“...무슨 일이십니까. 마스터.”
다만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정호는 대 보스전의 화신들을 이미 결정지어 놓았다.
‘강신에는 아틸라, 소환에는 멀린, 서서, 티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신들 중, 가장 높은 등급의 화신들로만 이루어진 파티.
거기에 멀린이 한 눈을 팔 ‘여성형 화신’ 따위는 없었다.
“멀린, 스킬 ‘아발론의 성역’”
정호는 곧장 멀린의 스킬 중, 버프 계열의 아발론의 성역을 명했다.
[아발론의 성역]
-성역임을 선포하여, 자신을 제외한 50m 범위의 아군을 치유하고, 그들의 능력치 중 하나를 랜덤으로 대폭 상승시킨다. 상승되는 능력치는 지능 수치의 절반에 따른다.
┖현재 : 능력치 150증가 (지능 300)
‘어이가 없다니까.’
그렇지 않아도 캐스터 계열의 화신이라, 지능 수치가 하늘을 뚫을 지경인데.
그 절반에 달하는 지능 수치를 범위 내의 모든 아군에게 능력치 버프를 준다.
‘서서가 무과금의 희망이면, 이건 신이로군.’
거기에 둘을 합치면, 말도 안 되는 시너지를 낸다.
서서가 구원대로 소환해낸 일 성 등급의 화신 다섯.
등용문의 효과로 이 성 등급이 되었으나, 이름도 없는 그들이 가지는 능력치는 그리 보잘 것은 없다.
애당초 소환된 화신은 도감의 효과도 받지 않는 녀석들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노련한 창병☆☆]
-힘 : 192 체력 : 27 민첩 : 21 지능 : 7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허탈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 나왔다.
‘랜덤한 능력치라고...’
조금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옵션이었으나.
추가되는 능력치 자체가 ‘헉’ 소리가 나올 지경이니, 고작 해야 이 성 등급의 화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존재가 다섯이나 된다.
‘아틸라는 힘이군.’
강신시킨 아틸라의 힘 스탯은 이제, 400을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강인한 기운은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어? 뭐야. 갑자기.”
거기에 정호가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났다.
“치, 치료 됐어!”
“내 몸이 이상해!”
“힘... 힘이!”
공포와 두려움에 도망만 치던 저인족들에게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륵- 부륵-.
저인족들의 몸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녀석들이 되살아나는가 싶더니.
마치, 저인족들의 왕인 켈린왕처럼.
그 크기가 커다랗게 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꼬리가 날카로워 진다거나 하는 돌연변이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
“마스터, 문제라도 있습니까?”
미소를 내짓고 있는 멀린의 얼굴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까지 했으나.
‘한 대 때려주고 싶군.’
정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녀석은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떨면서 자신의 반응을 보고 있었다.
‘화신이 아니라, 아군.’
이 기현상의 원인은 당연하게도 ‘아발론의 성역’의 스킬 효과였다.
본래 화신들의 버프 스킬로 생각하자면, ‘50m 내의 화신’이었을 터였으나.
멀린의 스킬은 ‘아군’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호가 거절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꺼내는 것임에 틀림 없는 말을 꺼내는 멀린.
자신의 유능함을 뽐내며 건방을 떠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나.
그것을 무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 어떻게 하지?”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자신들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저인족들이 주저하며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전개는 정호로써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능력치 150 이상의, 인외의 영역에 들어선 아군이 무려 수백이 생긴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전군!”
몸에 강신시킨 아틸라처럼, 능숙하게 그들의 사기를 올리는 일은 정호가 할 수 없는 법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그런 기나긴 연설을 해줄 필요가 없다.
그저, 저 거대한 형체의 문어를 향한.
“공격!”
퍼어어어엉-!
“공격!”
“공격이다! 모두 돌격!”
단 한 발의 포탄이면 충분했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 소리가 드높게 울려 퍼진다.
“우우, 주인장. 나는 왜 이런 거요.”
그 속에서.
정호의 화신들 중 홀로 ‘지능’이 올라버린 검은 수염, 티치의 불만 섞인 절규가 뒤따랐으나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 * *
스킬, 아발론의 성역에 의해서 일어난 저인족들의 돌연변이 현상.
단 한 순간에 그들 하나, 하나가 제물의 날에서 살아남은 켈린왕과도 같은 힘을 지니게 된 격.
그것은 전황을 완전히 바꾸어 두었다.
콰아아아앙-!
크라켄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듯, 연신 여덟 개의 다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피해!”
샤샤샥-! 샥-!
다만, 그 공격은 조금 전과는 달리 그 피해가 막심하지는 않았다.
“커헉...!”
“괜찮아?”
“괜찮아. 버틸 만 해...!”
민첩이 비약적으로 오른 이들은 다리를 쉬이 피해내었고.
체력이 오른 이들은 한 번으로는 즉사하지 않을 정도의 질긴 가죽을 얻은 마당이다.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해!”
그 스탯이 힘으로 향한 이들은 아예 크라켄의 다리를 잡고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꽁꽁 싸매고도 있었다.
지능이 오른 녀석들은 그 와중에도.
“부숴! 녀석을 더 화나게 만들어!”
“알만 없어지면, 제물의 날은 끝이다!”
틈틈이 알을 박살내며, 크라켄의 화를 돋우는 중이었다.
‘좋군.’
그저, 화신들의 능력치를 올리려 사용한 버프 스킬이 이토록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던 정호는 입가에 미소를 내지었다.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겠어.’
이것만으로 크라켄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정말이지 얼마나 좋을까.
다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크으으윽....!”
“왜 이렇게...! 질겨!”
크라켄은 보스 몬스터다.
그것도 그 거대한 형체에 어울리는 높은 체력과 방어력을 지닌 몬스터.
20인 공격대 던전의 보스.
그것도 사 성 이상의 화신들을 지니고 있어야만 공격대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높은 난이도를 지니고 있는 녀석이란 말이다.
‘그러니, 단번에 피를 빼놔야지.’
정호는 녀석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그 뒤에 붙어 있을 약점을.
‘미간.’
해상전으로는 타격할 방도가 없다.
녀석은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튼튼하고, 강력하기까지 한 다리.
그것으로 적을 확실하게 말살할 때까지는 도저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 수면의 아래.
심해라면 다른 이야기다.
‘노리는 건, 다리의 사이.’
화가 난 녀석은 다리를 넓게 펼쳐, 저인족들을 향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 탓일까.
녀석은 자신의 눈과 눈 사이의.
문어라면 가지고 있을 약점을 훤히 내놓고 있었다.
“푸후우우우우...”
정호는 검을 내뻗은 채, 숨을 크게 내쉬었다.
펼치려는 것은 당연하게도, 아틸라의 필사 스킬, 군신의 검.
그리 좋은 기억만 있는 스킬은 아니었다.
-뭐든지, 이미지가 중요해.
곧장 아틸라의 조언이 들려왔다.
‘그래.’
정호도 그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전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에서 펼친 군신의 검은 욕심이 과했다.
당시 이미지 했던 것은, 눈앞에 있는 모든 보스의 존재들을 한 번에 휘몰아 칠 수 있는 거대한 폭풍이다.
덕분에 정호는 그 반동으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허우적댔다.
‘이제 그런 실수는 안 해.’
녀석의 눈과 눈 사이에 존재하는 미간을 노리는 일이다.
거기에는 일체의 낭비도 없는.
한 점을 꿰뚫는 화살과도 같은 바람이 필요한 법이다.
“멀린. 녀석에게 ‘몽마의 터치.’”
“문어를 만지는 것은 별로입니다만··· 뭐, 좋습니다.”
곧장 멀린의 손아귀에서 뻗어져 나온 기괴하게 생긴 악마의 손이 크라켄을 덥석- 집었다.
[몽마의 터치]
-몽마의 힘을 이어받은 이의 손길. 일체의 적에게 방어도 하락의 효과를 부여합니다. 하락 수치는 지능에 비례합니다.
-현재 : 75% (지능 300)
간단하기 짝이 없는 짧은 설명이 가지는 효과는 상당했다.
“어? 어어...! 검이 먹힌다! 먹힌다고!”
“좋아! 얼른 죽여!”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전긍긍하고 있던 저인족들의 공격조차도 먹혀들 정도.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정호는 외쳤다.
다만 펼치는 것은 지금껏 준비하던 ‘군신의 검’이 아니라.
“메테오 폴!”
“...여기서는 마스터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멀린의 필사 스킬인 메테오 폴(Meteorfall)이었다.
* * *
[메테오 폴(Meteorfall)]
-거대한 운석을 소환하여 적 일체에게 강대한 피해를 입히고, 주변의 적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줍니다.
필사 스킬답게, 간단한 설명.
다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다.
운석을 소환한다.
행성 주위를 공전하는 천체, 그 자체를 불러와 떨어뜨린다는 의미.
“메테오 폴.”
우우우우우웅-.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심해에 난데없이 등장한 운석이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어, 어어...! 저게 뭐야!”
“피해! 얼른 도망가!”
그 거대한 형상은 지금껏 운석이라고는 보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한 심해의 저인족들조차도 위험을 느끼고 대피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운석은 심해 속으로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떨어졌다.
목표가 되는 크라켄이 그저 자리만 잠시 피해낸다면, 큰 피해는 막을 수 있는 상황.
다만, 크라켄은 자신의 머리 위까지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크에에에에에-.”
그렇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자신의 알들이 박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절대로 뚫리지 말아야 할, 자신의 몸이 공격당하고 있는 마당이다.
지금껏 이보다 더한 분노를 느끼지 못했던 크라켄은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했다.
이윽고-.
거대한 운석이 녀석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심해 속에서 터져 나갔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열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으으으으!”
“뜨거, 뜨거워...!”
이미 대피하고 있던 저인족들조차도, 그 열기에 피해를 받은 것인지 신음을 터뜨렸다.
그 운석에 직격한 크라켄의 고통은 말을 할 것도 없었다.
“캬하아아아아아악-!”
녀석은 지금껏 이런 고통을 맛 본 적이 없었다는 듯.
고통에 찬 굉음이 귀를 어지럽게 했다.
“캬하아아아악-!”
하나, 놀라운 일이었다.
녀석은 고통에 찬 신음을 터뜨리면서도, 아직까지 그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다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저항을 하고 있었다.
콰득! 콱!
그 덕분에 자신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알들을 스스로 부숴내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하나.”
정호는 그것을 담담히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확실해. 한 번 죽었군.’
멀린의 메테오 폴은 녀석은 한 번, 사살했다.
그 사실은 녀석이 필사적으로 지키려하던 알을 더 이상 거리낌 없이 부숴내는 것으로 확실해졌다.
2페이즈의 돌입.
조금이라도 많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행동이었다.
‘앞으로 두 번.’
문어과의 속하는 크라켄은, 문어처럼 세 개의 심장을 가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대신이라고 할까.
‘세 번의 목숨’을 가지고 있는, 정말이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존재다.
다만.
정호는 이미 그에 대한 준비를 마친 마당이었다.
“캬하아아아아악-!”
붉은 눈을 빛내며, 멀린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는 크라켄.
확실한 어그로가 끌린 그 상황에서 정호는 입을 열었다.
“군신의 검.”
화아아아아아악-!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바람이 거대한 물살과 함께 녀석의 미간으로 향한다.
콰득-!
충분한 준비 끝에 펼쳐진 군신의 검.
빗나갈 이유 따위는 없다.
“캬하아악-!”
녀석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와 함께, 여덟 개의 다리가 스스로의 몸을 감싼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정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