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1화 >
# 71화
저인족의 수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
제물의 날에 대비하여, 대기 중인 정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살베이라고?’
자신의 눈앞에서 앉아 있는 저인족의 소녀.
그녀가 ‘크라켄의 역습’에서 반드시 찾아야 할 럭키 몬스터인 살베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탓이다.
‘이런 생김새였나?’
정호는 톨비아에서 몇 번이고 크라켄의 역습을 공략했었다.
거기에는 당시 정호의 소환 수가 ‘포세이돈’이라는, 바다에 특화된 화신이라는 것을 제쳐두고서도.
비싼 값에 거래되는 소환 개체 수 증가의 옵션을 가진 ‘오라클’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 말인 즉.
정호는 눈앞에 나타난 럭키 몬스터를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익숙하다는 말이었다.
‘종족이 다르잖아.’
한데, 정호는 눈앞에서 오라클을 꺼낼 때까지 ‘리앙 더 살베이’라는 행운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살베이와는 거리가 먼 겉모습 덕분이었다.
‘럭키 몬스터니까.’
럭키 몬스터란, 일반적인 몬스터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형의 괴물.
막대한 전리품을 약속하는 대신, 그 힘은 다른 녀석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제로 정호는 럭키 몬스터를 만나기도 하지 않았던가.
홉고블린.
고블린의 이형종이면서도, 강인한 체구와 함께 상당히 진땀을 뺀 럭키 몬스터.
살베이 또한, 다를 바가 없어 일반적인 저인족과는 전혀 다른 힘을 내보이는 존재였다.
“으히, 으히히히.”
“괜찮습니다. 왕자님.”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린 레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리앙의 모습이 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켈린왕 쪽이 살베이에 가깝군.’
살베이는 거대한 상어, 메갈로돈의 형태를 지닌 저인족.
하나, 리앙의 가녀린 손은 살베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뭐, 됐어.’
손이 닿는 위치에, 럭키 몬스터가 있다.
그 사실만 하더라도 정호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나 다름없다.
‘당장 얻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정호는 녀석이 건넨 오라클을 곧장 취하려고 했다.
무려 오 성급의 장비다.
지금껏 가지지 못했던, 강력하기 짝이 없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물품.
하나, 살베이는 레클리스처럼 멍청이가 아니었다.
‘왕자님을 살려주신 것을 확인한 이후에 드리겠어요.’
정호가 진주에 흥미를 느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살베이는 그것을 다시금 품에 넣었다.
어디까지나 살베이의 목적은 레클리스의 생존 여부였으니까.
[Q. 살베이의 부탁]
-‘리앙 더 살베이’는 레클리스가 살아남기를 원합니다. 제물의 날이 끝나는 시간까지 레클리스를 경호하십시오.
-목표 : 레클리스의 생존.
-보상 : 오라클☆☆☆☆☆
그것은 비단 정호의 손에서 살아남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약속을 어긴 레클리스를 정호가 ‘제물의 날’에서 경호해줄 리가 만무했으니.
그 제물의 날까지 보장하라는 의미였다.
‘이번에는 기한도 있으니, 빠져나갈 구멍은 없겠지.’
솔직히 말하면, 정호는 꽤나 관대해졌다.
갑작스레 나타난 오 성 등급의 장비, 오라클의 존재.
본래라면 현대에 나타난 모든 크라켄의 역습 던전을 이 잡듯이 찾아야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실제로도 정호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이었다.
한데, 그것이 손이 닿는 위치에 왔다.
‘저인족의 보물이 문제가 아니지.’
오히려 그 보상을 뒤로 미룬 것은 정호의 의사였다.
[오라클☆☆☆☆☆]
-수 세기 전. 가장 현명했다고 전해지는 저인왕이 지니고 있었던 진주.
오라클의 설명처럼, 수 세기 전 왕족의 성이 ‘살베이’라면 보물들이 도사리는 창고로 향하는 방법 정도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앙은 현재의 왕족이 아니다.
보물을 꺼내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란 말이다.
‘절대로 그렇겐 안 돼.’
혹여나 살베이가 감옥으로 갈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
“왕자님, 정신 차리세요.”
“아파. 아파...! 난 왕족이야. 왕족이라고.”
“네, 네. 왕족이라면 그 위엄을 보이셔야죠.”
탁, 탁, 탁.
이제는 레클리스의 뺨을 때리고 있는 살베이.
그것을 바라보는 정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차하면, 죽이고 빼앗는다.’
정호의 얼굴에는 비정함마저 감돌았다.
* * *
제물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저인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른, 돌아가야 해.”
“아이는 절대로 밖으로 내보내지 마라!”
비전투원과 아이들은 지느러미가 빠져라, 재빠르게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그런 이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아버지...! 아버지!”
“금방 돌아오마.”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의 절규.
제물의 날은 일정 주기로 찾아오는 크라켄을 막아내기 위한 전투.
하나, 그 실상은 그저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는 말 그대로의 ‘제물’이 되는 일에 불과했다.
“...”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심해에 있던 수많은 저인족들이 그 모습을 감추자.
순식간에 바다 아래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조용하군.’
제물의 날이 다가왔기 때문일까.
저인족들 뿐만 아니라, 물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 바다에 자신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
그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제물의 날에 끌려가는 이들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우리들이 누구인가!”
“우리가 가족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냔 말이다!”
“우리는 저인족들의 용사다!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가증스러운 문어 녀석은 다가오지도 못할 것이다!”
공포를 이겨내려는 듯, 소리를 내지르며 나아가고 있는 저인족들.
그 맨 앞에는 심해경비대의 대장인 지켈의 모습도 있었다.
“쯧...”
정호가 그에 혀를 차냈다.
하나 같이 두툼한 갑주로 가득한 저인족의 전사들의 모습.
저인족 중에서도 정예임에 틀림이 없는 그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는 말을 할 것도 없었다.
“켈린왕은 분명 대단한 힘을 지닌 왕이지만, 그렇다고 지혜롭지는 못해요.”
“음?”
그런 정호를 향해 말을 내거는 이가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까지 다가온 리앙이 입을 열고 있었다.
“제물의 날에 참가해야 할 인원은 저런 정예 전사들이 아닌데...”
아쉽다는 듯, 말을 늘리는 리앙의 목소리.
“그럼 어떤 녀석들이 가야한다는 거지?”
“노인들이요. 혹은 더 이상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이들.”
그에 정호는 흥미로운 미소를 내지었다.
가녀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서, 꽤나 비정한 말을 꺼내고 있지 않은가.
리앙은 그런 정호의 표정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아, 아니. 어차피 우리 저인족들은 지금껏 크라켄을 막아낸 이력이 없어요. 그러니 다음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알았다.”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를 등한시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호는 손을 휘휘 내저어,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변명을 늘어놓는 리앙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봐도, 이 녀석 쪽이 레클리스보다는 왕에 가까운데.’
그런 감상이 절로 흘러나왔으나, 그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던전의 내부다.
수없이 많은 ‘크라켄의 역습’ 던전 중 하나.
그것이 레클리스라는, 꽤나 멍청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 왕이 된다 한들 변하는 것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군이 될 것도 아니고 말이지.’
현대에 포탈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 중에는 저인족들도 포함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티치.”
저인족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정호는 검은 수염을 불렀다.
“예이. 갑니다요.”
부우우우웅-.
앤 여왕의 복수 호가 스산하기 짝이 없는, 검게 물든 심해의 바다로 향했다.
* * *
‘제물의 날’이 거행되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정호를 맞이하는 것은 미리 도착한 저인족들의 웅성거림이었다.
“으...으으, 이게 다 뭐야.”
“끈적거리는데...”
“기분 나빠.”
“이게 저, 전부 알이라고?”
분명 정예임에 분명한 그들은 하나 같이 공포와 두려움을 내보이며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은 ‘제물의 날’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애당초 제물의 날에서 살아남은 저인족이란 ‘켈린왕’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없는 마당이다.
“쯧...”
심지어 몇 번이고 이 제물의 날에 찾아온 이력이 있는 정호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으니.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하는 저인족들의 충격은 상당했다.
눈앞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수 없이 많은 알들.
찐득한 액체가 그 알들을 보호하듯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실로 역겨웠다.
‘아주 잔뜩 낳았네.’
저인족들이 말하는 ‘제물의 날’이란 바로 크라켄의 ‘산란일’을 의미했다.
한 번에 수백에 달하는 알을 낳는 크라켄.
그 수백의 알에서 태어나는 새끼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저인족들의 안전은 없었다.
“어, 어떻게 하지?”
“얼른 부숴!”
퍼석-! 퍼석-!
저인족은 작업을 시작했다.
저마다 곡괭이를 쥐고서, 알을 부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우리 살아남는 것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제아무리 크라켄의 새끼라 할지라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알에 불과했다.
그것을 부수는 데에는 그 어떤 전투도, 희생도 없다.
실로 간단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반복 작업.
“...”
하나, 정호는 그런 이들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오히려 잔뜩 긴장한 채, 두리번거린다.
‘문어라면 이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을 리가 없지.’
크라켄이 제아무리 바다의 괴물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문어과에 속하는 녀석이다.
문어는 모성애가 강하다.
쿠르르르릉-.
아니나 다를까.
알에서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길게는 몇 년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는 문어과에 속한 크라켄.
녀석이 자신의 알을 부수고 있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어? 어, 어어?”
“무슨 소리야?”
한창 신명나게 알을 두드리고 있던 저인족들은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굉음에 소란스러워졌다.
조금 전의 정호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굉음의 정체를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정호와는 달리.
알을 두드리고 있던 저인족들은 이미 크라켄의 사정거리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쉐에에에에엑-!
콰아아아아앙!
갑작스럽게 날아든 거대한 형체가 정예 저인족들을 수십 명이나 박살냈다.
“으아아아아악!”
“뭐야! 뭐냐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그 상황은 저인족들에게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저기 있었군.’
다만, 정호는 아니었다.
정호는 녀석의 공격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알들이 위치한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조금 더 아래의 심해.
녀석은 화가 나기라도 한 듯, 새빨간 눈을 빛내며 도망치는 저인족들을 향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지옥이 바로 이곳일까.
아비규환과도 같은 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직... 아직이야.’
정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녀석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알을 깨부수고 있는 가증스러운 녀석들을 향해 분노의 철퇴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단숨에 끝낸다.’
정호는 ‘신수의 저주’라는, 버프를 두르고 있다.
모든 능력치와 상태 이상 저항률을 올려주지만, 전투 시간이 길면 길수록 체력이 내려가는 묘한 버프.
애초에 단기일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정호였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단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이었다.
이윽고, 살아남은 저인족들이 녀석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자.
우우우우우웅-.
청각을 잃어버릴 듯한, 초음파와도 같은 소리와 함께 크라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허, 허어어어억!”
“저, 저렇게나 크다니.”
“살려줘... 살려줘.”
그 거대한 형체는 그렇지 않아도 절망감에 휩싸였던 저인족들의 전투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렸다.
“지금!”
하나, 정호는 그 거대한 형체가 아닌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형체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여덟 개의 다리를 활짝 펼친 채 나타난 크라켄.
그로 인해 녀석의 약점이 훤히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처어어억-!
정호는 검을 내뻗은 채, 외쳤다.
“멀린!”
부르짖는 것은 전설 속의 대마법사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