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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70화 (71/144)

< # 70화 >

# 70화

언제나 그렇듯, 권력자의 부패는 필연이다.

권력 그 자체는 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으나···.

그 힘에 이끌리는 이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왕자···, 아니 미래의 저인족들을 이끄실 황태자님.”

특히나 그 부패는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권력자가 약하면 약할수록.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

“멍청한 인간들을 이용해, 신수님들을 쓰러뜨리시는 그 지혜와 통찰력을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신화를 쓰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껏 이런 업적을 남긴 왕은 없었습니다. 아니, 아직은 왕자님이셨죠. 하하!”

추종자들이라 적고, 간신이라 부르는 이들의 감미롭기 짝이 없는 듣기 좋은 말들.

그것을 분별력 있게 거를 수 있는 혜안이 레클리스에게는 없었다.

‘얘들이 왜 이래?’

레클리스 또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레기오로스가 쓰러졌을 때만 하더라도 모여들지 않던 녀석들이 아스피도켈론이 죽자, 속속들이 레클리스의 휘하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아침도 아니고, 단 수 시간 만에 이루어진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황태자위’라는, 실존하는 권력까지 주어졌을 때.

레클리스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내가 대단하긴 하지.’

생각해보면, 저 인간들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자신이다.

납치라는, 꽤나 치욕적인 일을 겪기는 했으나.

그것 또한 자신이 직접 나서 자작극으로 바꾸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니 자신은 대단한 혜안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법도 했다.

다만,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보상이...’

바로 인간, 정호와 약속했던 보상의 문제다.

레클리스는 분명 ‘황태자’의 위치에 올랐다.

다음 대의 왕이 될 것이 분명했으나, 그렇다고 ‘저인족의 보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약속할 수 없는 보상을 내건 것이다.

레클리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측근으로 들어온 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처리하시지요. 고작해야 인간입니다. 신수님들을 쓰러뜨렸다고는 하나, 이곳은 우리의 전장입니다. 아가미라도 달고 있지 않는 한, 쉬이 덤벼들지도 못할 겁니다.”

강경한 대응을 하자는 답.

그에 레클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신수님들을 쓰러뜨렸다면, 필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다.”

레클리스는 무능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멍청이는 아니었다.

애초에 녀석들은 역대 왕 중 가장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켈린왕에게 덤벼들려고 했던 것은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보상을 약속하셨다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켈린왕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되지 않을까요...”

조개 줍기의 천재, 해녀 리앙.

시골의 촌구석에서 자신을 가장 처음 왕족으로 대우해준 이가 그리 첨언을 했으나.

“지금 그것이 불가능하니 황태자님께서 물어보고 있지 않은가.”

“조용히 좀 하고 있게.”

“...황태자님은 어째서 저런 무능한 이를 곁에 두시는 건지.”

“쯧...이래서 시골 녀석들은”

그런 의견 따위는 묵사발이 나 버렸다.

“이러면 어떻습니까. 보상을 약속했다면, 주기는 해야 합니다. 하나, 그 기간을 정하시진 않으셨지 않습니까?”

오히려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은, 간신의 그럴 듯한 말.

“우리 저인족들의 보물은 역대 왕들만 출입할 수 있는 귀한 물건들입니다. 아직 황태자님께서는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렇지.”

“그렇다면, 인간들에게 보상을 주는 것도 ‘왕’이 된 이후가 되면 됩니다. 황태자이신 레클리스님께서 다음 대의 왕이 되는 것은 확정된 사항이니까요.”

상당한 궤변에 불과한 개소리였으나.

레클리스는 그 답변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하나, 이미 나는 제물의 날에 녀석들과 함께 참가하기로 되었다. 거기서 살아남는다면, 나는 곧장 왕이 되고 말 터인데. 그 때는 어떻게 하겠나.”

“정말이지 간단한 일이지 않습니까. 참가하지 않으면 됩니다. 애초에 저는 황태자님께서 제물의 날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저인족들의 보배와도 같은 황태자님이 그런 위험한 일을 자초하시다니요.”

“그런 방법이 있었군.”

자신의 답답한 등을 긁어주는 듯.

걱정하는 부분까지 싹 밀어주는, 시원하기 짝이 없는 해결법이지 않은가.

게다가.

“거기에, 인간들에게 굳이 보상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아직 해결법은 끝나지도 않았다.

“인간들의 수명은 고작해야 백 년. 녀석들이 설사 제물의 날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켈린왕의 수명은 녀석들의 수명보다도 길기 마련입니다.”

“완벽하군...!”

레클리스는 그 답변이 실로 만족스럽기 짝이 없었다.

단 한 줌의 보물도 빼앗기지 않고서, 빠져나갈 길을 완벽하게 제시하지 않았는가.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저 방법으로 가시죠.”

“역시 뇌마(腦魔)라고 불릴 만 합니다!”

“뇌마를 곁에 두었으니, 황태자님의 혜안과 함께라면 심연으로 깊게 헤엄칠 수 있으실 겁니다!”

추종자들의 호응까지.

레클리스는 저 방법으로 인간을 대하기로 하였다.

거기에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는 것 따위는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

“인간, 무언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보상을 주지 않는다는 게 아니네. 황태자님께서 왕이 되고 난 이후라는 말이지.”

그 모든 일에 전제조건은.

“아, 그래? 말장난? 그거 나도 좋아해. 아주.”

정호가 받아들여야 성립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터업-!

“크아아악-.”

순식간에 뇌마의 머리를 잡아챈, 정호가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선택지를 세 개 줄게.”

한데, 그 말을 꺼내자마자.

퍼석-.

시시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가장 먼저 나섰던, 뇌마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허어어억! 뇌마님!”

“이게 무슨 짓이냐!”

“선택지를 준다고 하지 않았나!”

곧장 반발하는 추종자들.

“말장난이야. 말장난. 너희가 좋아하는 그거.”

섬뜩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내지은 정호는 손가락을 모두 접었다.

“선택지가 있을 리가 없잖아.”

* * *

정호는 지금껏 이토록 화가 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저인족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 정도는 톨비아에서도 경험해본 바가 있었기에 상관이 없다만.

엄연히 게임 시스템 상 ‘퀘스트’에 대한 보상은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한을 두지 않았다? 이게 뭔 미친 소리지?’

그렇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정신이 나간 저인족들은 그 게임 시스템을 이용해먹으려 들고 있었다.

‘시발 새끼들이?’

욕지거리를 삼킨다.

오로지 보상 하나만을 위해서 갖은 고생을 했다.

이용당하는 입장임을 충분히 인지한 채 말이다.

한데, 이것은 어지간히 자신을 호구로 보고 있지 않는 한은, 떠올릴 수가 없는 생각 아닌가.

“죽여도 돼.”

아직 보상을 얻지도 못했는데, 저인족들과의 전면전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나.

정호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이 결정이 저인족들의 왕인, 켈린왕이 내린 지시가 아니란 것이었다.

‘지켈도 없고.’

지켈은 어디까지나 왕의 직속부하.

공기 방울, 즉 버블 스킬을 부여한 녀석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싸움을 걸만 했는데.

거기에 명분까지 있는 마당.

거릴 것 따위는 없었다.

타앙-! 타앙-!

“사, 살려줘!”

“황태자님! 도와주십시오!”

저인족들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그 장소는 그야말로 아비규환과도 같은 지옥도가 펼쳐졌다.

“갸하하하하, 이런 녀석들이 으잉? 주인장한테 사기를 치려고 했으이?”

아군을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다.

어차피 해저 루트로 통하면, 적으로 만나게 되는 녀석들이고.

보상조차 쥐어주지 않는다면, 정호에게 있어서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코인도 얼마 되지 않는군.’

애초에 비전투원 소속인 탓일까.

녀석들이 정리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어. 어....어어.”

마치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겟다는 듯.

지옥도 속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레클리스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터업-!

그런 레클리스의 어깨 위로 티치가 어깨동무를 하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 꼬마. 우리가 많은 걸 바라고 있지는 않잖우? 노력에 대한 보상! 그기면 된다니께?”

“예...? 예. 예...?”

“아따. 주인장, 임마 완전 맛이 갔는디? 으뜩 합니꺼? 죽이요?”

스윽-.

아예 총을 녀석에게 들이대는 티치의 모습.

그에 정호는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음...’

확실히 괘씸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다만 레클리스를 죽이고 만다면, 녀석이 약속한 보상은 날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다시 인질 협상을 한다?’

이제는 왕자가 아닌 황태자인 레클리스라면.

이대로 켈린왕에게 데려가, 그 보상의 목록과 함께 교환하는 조건도 가능할 터.

하지만 그것도 확실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수나 다름없다.

“쯧...”

녀석을 죽이고서, 새로운 황태자를 내세우는 방법도 있을 터다.

아직 ‘제물의 날’까지 시간은 몇 시간 정도 남았으니, 거기서 크라켄을 죽인다면.

그 보상을 타낼 수도 있다.

차라리 이 방법이 손이 덜 가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죽...”

결국 녀석의 생사가 결정되려는 그 순간.

“자, 잠시만요! 인간님!”

갑작스레 난입한 저인족의 소녀가 하나, 튀어나왔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녀석이 있었나 싶어, 목격자를 완전히 없애 버릴까 싶었으나.

정호는 그 행동을 보류했다.

“레, 레클리스님은 죄가 없습니다! 간신 녀석들이 괜한 바람을 불어넣는 바람에 일어난 일입니다!”

“넌 누구지?”

곧장 레클리스를 변호하는 것으로 보아, 레클리스의 측근임에 틀림이 없어보였다.

한데 그런 것치고는 조금 전의 추종자들과는 사뭇 다른, 추레한 옷가지를 하고 있었다.

“리, 리앙이라고 합니다. 추, 출신은 말씀을 드려도 모를 정도로 시골이라서...”

“그래서, 무슨 볼 일이지?”

“...레클리스님을 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에 대한 메리트가 전혀 없다. 약속을 안 지키는 녀석을 어떻게 믿지?”

“제가...! 제가 레클리스님을 대신하여,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시죠!”

확실히.

이러면 당장 그 보상에 대한 문제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보상은 당연히 줘야 할 것에 불과해.”

아직 받지 않았다 뿐이지.

퀘스트를 클리어 한 정호에게 있어서, 저인족들의 보물과 코인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녀석이 대신 준다고 하여, 약속을 깬 레클리스를 죽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란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예상했다는 듯 저인족 소녀, 리앙은 손을 쭈욱 내밀었다.

그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은 자그마한 진주.

“이, 이걸로 참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아버지의 유품...이었습니다.”

정호는 떨떠름한 얼굴을 내지었다.

‘유품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받기 꺼려지는데, 애초에 시골 출신의 물건이라 한다면 그리 큰 가치를 지니질 않을 게 뻔했다.

당장이라도 거절을 하려, 입을 열려 했으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는 리앙의 모습에, 진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확인이라도 해볼까.’

그래 봐야 결정을 바꿀 리는 없었으나.

이토록 부탁을 하는데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큰 기대 없이, 그 진주를 확인했다.

[오라클☆☆☆☆☆]

-수 세기 전. 가장 현명했다고 전해지는 저인왕이 지니고 있었던 진주.

-능력치 : 無

-특수 능력 : 소환 개체 수 증가.

“...어?”

한데, 그 내용을 확인한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고작해야 작은 진주에 불과한 물건이 오 성인 것도 놀라운 데.

그 특수 능력이 매우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이봐.”

“네...?”

정호는 곧장 리앙을 불렀다.

‘이상하긴 했어.’

그러고 보니, 묘했다.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레클리스를 대신하여 보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왕족도 아닌 녀석이 말이다.

“너, 풀 네임은?”

이전에도 떠올린 기억이 있다.

‘크라켄의 역습’에서 나타나는 몬스터.

그것도 해저가 아닌, 해상 루트로 심해까지 내려가야 찾을 수 있는.

톨비아의 유저라면 그 누구나 바라는 ‘소환 개체 수 증가’의 장비품을 떨어뜨리는 럭키 몬스터.

“리앙 더 살베이...입니다.”

그 럭키 몬스터는 '살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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