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8화 >
# 68화
저인족들의 도시에는 묘한 소문이 돌았다.
‘제 247번째 막내 왕자, 레클리스가 신수 사냥을 시작했다.’
다분히 누군가의 의도로 뿌려진 것이 분명한 가십거리에 불과했으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심해에서 몇 없는 새로운 소식을 반겼다.
‘247번째라니, 난 들어본 적도 없는 왕자인데?’
‘레클리스? 이름처럼 참 무모하네.’
다만 그것을 응원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무모한 왕자, 레클리스의 도전에는 인간 다섯 정도가 함께 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조차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으니까.
‘인간이라니. 그 허접한 녀석들?’
‘신수님에게 덤비다니, 천벌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몰라.’
이미 던전 내로 진입한 아스텔 유저들에 의해 그 수준이 드러난 마당이다.
자신들도 버거워 하는 인간들이 신수라니?
신수가 어째서 신수로 불리는가.
그들은 저인족들에게 있어서는 재앙과 같은 존재다.
하나, 하나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공포와 같은 존재들.
다만 그 신수들을 처리할 방도가 없으니 최대한 그들의 해역을 피할 뿐이다.
신수라 부르며 최대한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기도를 올릴 뿐인 존재란 말이다.
‘죽겠네.’
‘왕족이라고 별 것 없나봐. 멍청하기는 시민들보다 못 하네.’
물론 그런 저인족들의 반응은 레클리스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는 애초에 방해가 된다며, 배에 올라타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왜 그런 계약을 했지?”
하나, 레클리스라 하여 다를 바는 없었다.
“신수님들이라니.”
스스로 잠시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호가 내건 조건들은 하나 같이 터무니가 없었다.
신수를 처리하고, 신화를 만든다.
그 신화를 토대로 크라켄이 쓰러졌을 때 자신의 공으로 돌린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다고.”
애당초 신수라는 존재들 자체가 쓰러진 이력이 없는 존재들이다.
한데, ‘제물의 날’에 자신의 안전을 책임질 경호원들을 그런 신수들에게 보내버렸다.
‘지금,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이미 인간들은 죽은 것이 확정되었다.
문제라면 이제 ‘제물의 날’에 참가하는 자신의 처지다.
경호원 없이, 죽을 것이 뻔한 그곳에 발을 내딛는다면 자신은 이미 사자(死者)나 다름없다.
‘아버지도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는데.’
역시 저인족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켈린왕’조차도 온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고서 간신히 숨을 붙여 살아남은 곳이 아닌가.
‘아니야. 이건 역시 아니야.’
레클리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지 않고서야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할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재끼려, 손잡이를 잡아채자.
덜컥-!
“악.”
아직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 문이 열려 코를 찧은 레클리스가 주저앉았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그 원인 제공자를 바라보았다.
“무, 무슨 일이야. 리앙.”
이 시골 촌구석에서 가신을 자처한 조개 줍기의 천재, ‘해녀’ 리앙이 그 자리에 있었다.
“도련님.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곧장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리앙의 얼굴에 레클리스는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알고 있어. 인간 놈들 이야기지?”
“어, 네...! 글쎄 인간 녀석들이.”
“죽었겠지.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아버지에게 가려던 참이다.”
“무슨 소리세요. 도련님. 신수 레기오로스 님이 그 인간 녀석들에게 죽었다고요!”
“하! 누가 그런 헛소문을...”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어?”
레클리스는 말을 하다말고 멈추어 섰다.
그것은 생각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로 머리가 정지해버린 것이었다.
“도련님? 도련님? 괜찮으세요?”
“아.”
한참을 지나고서야, 레클리스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레기오로스님이 쓰러져?’
아니, 이제 ‘님’을 붙일 필요도 없다.
그저 바다 위에 서식하던 거대한 늑대가 사라졌을 뿐이다.
‘가, 가능은 할 것 같아.’
정말이지 가까스로 그것을 긍정했다.
레기오로스라면, 바다 아래에서 움직이는 선박의 존재 따위는 알지 못할 터다.
그러니 그런 장점을 이용해서...
‘도대체 그 사람은 무슨 괴물인 거야?’
하지만 도저히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해적들을 몰살시키는 것과 신수를 쓰러뜨리는 것은 그야말로 심해와 하늘만큼의 차이가 나는 법이다.
“이번에 켈린왕, 아니 아버님께서 크게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네! 무려 레기오로스가 점령하고 있던 심해 일부를 도련님의 영지로 드린다고 하더라고요!”
“어...어? 그래?”
“아아. 드디어 도련님도 영지를 가지게 되었어요.”
고작 하루 만에 시골 촌구석 이름도 모를 ‘왕족’에서.
신수, 레기오로스의 지역을 다스리는 왕족 출신의 영주가 되어버렸다.
‘사, 사실 이 정도만 되도 행복한 게 아닐까?’
지느러미가 생긴 인간이 자신의 욕심으로 심해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다 얼어 버린 채 떠오른 전설도 있지 않은가.
분수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
‘좋아.’
원래라면, 해적들로 그 강함을 확인해보려 했었던 계획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으나.
그보다 신수를 처리할 정도로 강인한 인력이라면 ‘제물의 날’에서 자신을 확실하게 경호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고른 녀석들이니, 당연한 일이지.”
“여, 역시...대단한 안목이세요!”
“당장 그 인간 녀석들에게 전해줘야겠어.”
“헉! 설마, 다음 신수도 처리하라는 명령을...?”
“무슨 개소리야!”
리앙의 물음을 들은, 레클리스가
“녀석들이 다음으로 갈 신수는 거북 신님. 아니, 아스피도켈론님이라고!”
그 인간, 이정호라는 이가 쓰러뜨린 레기오로스도 분명 신수의 범주에 들어가는 녀석이다.
하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법도 했다.
그도 그럴 게.
레기오로스는 10m라는 꽤 커다란 크기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 정도의 생물체라면 심해에도 아주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싸워볼만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스피도켈론님은 달라.’
다만, 두 번째 신수.
거북 신이라 불리는 아스피도켈론.
그것은 저인족, 인간족이라는 종족의 경계를 넘어서.
도저히 상대를 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아예 몸 위에 ‘섬’을 하나 짊어지고 다니는 존재다.
인간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르는.
그런 초월적인 영역에 도달했을 리가 없다.
“말려! 지금 당장! 어떤 연락책을 쓰던 간에! 돌아오면 보상도 준다고 할 테니까!”
확신으로 가득 찬 레클리스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 * *
아스피도켈론과의 전투에 접어든 정호는 바다 위에 올라와 있었다.
“티치! 스킬, 포탄 세례!”
거대한 거북을 상대로, 정호는 초장부터 모든 수를 내보였다.
피이잉-! 피잉-!
퍼퍼퍼퍼퍼퍼펑-! 탕! 탕! 탕!
포탄과 함께 온갖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으으으으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피도켈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귀찮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며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쯧...!’
정호는 속으로나마 혀를 찼다.
체구만큼이나 녀석의 방어력은 보통을 넘어서 있었다.
애당초 네임드 몬스터들 중에서, 최상위권의 방어력을 지녔다는 아스피도켈론이다.
어지간한 공격 따위는 생채기는커녕,
‘그래서, 아예 안 잡는 루트로 가는 게 해상 루트니까.’
정호도 본래라면, 녀석을 쓰러뜨리고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녀석에게 공격성은 없다.
어지간한 일은 덤비지도 않고, 자신의 심기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막아서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보스 몬스터와의 싸움 전에 괜한 힘을 빼고 싶지 않았던 탓이 컸다.
‘하지만 잡아야 돼.’
다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레클리스라는 우수한 봉을 만난 덕분에 정호는 녀석을 반드시 처리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주인장, 이거 되는 것 맞소? 녀석이 간지러워 하는 것 같은데.”
“...팔 아파.”
다만 화신들의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메리 리드조차 손에 쥔 총을 내려놓으며 말을 내걸 정도였으니까.
“아니, 이대로 계속한다.”
퍼퍼퍼퍼펑-! 펑!
포탄이 쉬지 않고 쏘아졌다.
“그르르르르-.”
“어어... 위험 한 것 같은데...?”
그런 노력은 허투루 끝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저 피해가려던 녀석의 눈이 살짝 찌푸려지며, 정호 쪽을 주목하고 있었으니까.
‘됐어.’
하지만 정호가 원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
멀린을 소환하여 적의 방어력을 대폭 낮추는.
디버프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은.
크라켄과의 보스전 이전에 멀린의 체력을 아껴두고, 디버프 스킬의 보존이 있었으나.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필요 없으니까.’
애당초 저런 크기의, 그것도 등딱지에 섬이 있을 정도로 둔한 녀석에게 멀린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잘 하고 있어. 이대로만 해. 최대한 주의를 끌어.”
정호의 노림수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진행 상황은?’
키드를 대신하여 내보낸 화신이 직접적인 타격을 이어나가고 있으니까.
-완전 암살의 조건에 부합하는 것은 세 번 이었어요.
다름 아닌, 샤를로테 코르데의 존재다.
코르데는 암살자 클래스의, 풀 각성을 이루어낸 3성 화신.
특히나 ‘암살 천사’의 매혹 효과는 생각보다 뛰어났던 탓에 자주 사용했던 화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수였다.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텐데.’
애당초 녀석은 너무도 거대한 나머지, 어지간한 고통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녀석이다.
아마도, 코르데가 몸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과다출혈 스택이 세 번이라.’
정호가 원하는 것은 코르데의 전용무구 ‘천사의 잃어버린 나이프’의 전용 스킬 효과.
‘만인을 위한 암살’의 효과로 아스피도켈론을 쓰러뜨릴 계획이었다.
적에게 들키지 않은 채, 완벽한 암살을 시도했을 때 주어지는 ‘과다 출혈’.
이와 같이 커다란 녀석들.
게다가 높은 방어력을 지닌 네임드 몬스터들은 이런 상태 이상의, 지속성 데미지가 약점인 법이었으니까.
‘생각보다는 적군.’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너무도 늦은 속도로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더 빠르게는 안 되나?’
-어머, 완전 암살이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매몰찬 대답에 정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적어도 상태 이상으로 죽이려면 50번은 중첩 되어야 할 텐데...’
퍼퍼펑-! 퍼엉-!
타앙! 타앙! 타앙!
벌써 전투에 접어선지 2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공격대가 보스전을 하는 것과 맞먹는 공략 시간이다.
‘화신들도 지쳐 가는데...’
과다출혈은 분명 효과적인 상태 이상이었으나, 거대한 체구를 가진 녀석은 그만큼 체력도 많은 것이 문제다.
다만.
“주인장, 그래두 요놈이 뭔갈 자꾸 뱉어내기는 하는구먼 갸하하하!”
녀석이 쓰러지지 않기에 얻어지는 부가적인 효과도 있었다.
‘조금...만. 조금 만 더... 해도 되지 않을까?’
단순히 녀석의 주의를 끌기 위해 가해졌던 총공격이.
세트 효과인 ‘약탈’에 의해서 배 위에 여러 가지 부산물이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호의 속은 녀석을 빠르게 쓰러뜨려야 한다는 마음과, 약탈의 효과를 조금 더 맛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오오오오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녀석이 제아무리 둔한 녀석이라고 할지라도.
완전한 적의를 가지고서 쉴 새 없이 공격을 해대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녀석이 아가리를 쭉 벌리고서, 앤 여왕의 복수 호를 조준하려 하고 있었다.
드래곤처럼, 브레스 류의 광역 공격 스킬임에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가리에 모여지는 거대한 에너지를 확인한 정호는 황급히 검을 들었다.
처억-!
‘막을 수 있다.’
해 본 적은 없었으나, 정호는 저 브레스를 맞받아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게, 이미 전투 시간은 25분을 넘기고 있는 마당이다.
5분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하는 아틸라의 스킬, ‘전투광’의 효과로 이미 25%에 달하는 능력치가 상승한 마당이다.
‘크라켄 때는 고생 좀 하겠어.’
정호는 자신의 온 몸에 힘을 손끝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펼치려는 것은 당연하게도 ‘군신의 검’.
무려 일주일이라는 쿨타임을 지니고 있는, 아틸라의 필사(必死) 스킬.
크라켄에게 쏘아야 할 스킬이었으나, 저 광범위의 브레스를 막아낼 수단이 이것밖에 없었다.
이윽고.
화아아아아아-.
녀석의 아가리에서 눈부신 빛이 일렁거리며 거대한 활의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흐으으읍.”
정호 또한 활시위를 거세게 당겨, 녀석의 공격에 대비했다.
한데.
피식-.
“...음?”
당장이라도 쏘아질 것만 같았던 녀석의 에너지가 단번에 소멸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혹시나 몰라, 검을 내뻗은 채로 고개를 기울이는 정호.
그런 정호의 귓가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살 성공입니다.
‘...뭐?’
코르데가 말하는 ‘성공’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전용 스킬 :
[만인을 위한 암살 : 적에게 완벽하게 암살이 성공했을 시, 일정 확률로 적을 즉사시킨다. 실패 시 상태 이상 ‘과다출혈’에 처한다]
만인을 위한 암살의 즉사 효과가 터진 것이다.
파사사사삭-.
거대하기 짝이 없는 섬이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뭇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결말.
“...”
그걸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안도감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하기라도 한 듯이, 잔뜩 찌푸려진 미간.
‘코르데. 혹시나 싶어서 묻는데... 완전 암살의 성공 확률은?’
-보통은 0.00012% 정도 됩니다.
그 불안의 원인을 듣고 나서야, 정호는 오열했다.
“하필이면 왜! 그게 지금!”
아아아아-!
터져서는 안 될 확률이 터졌다.
뽑기에 써야할 행운을 낭비했다는 말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