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7화 >
# 67화
레이나가 이끌고 있는 ‘여신의 눈물’ 호에는 총 스무 명의 정예가 타고 있었다.
길드부터가 ‘대마법사’라는, 그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이름처럼.
중급 마법 보유자만 하더라도, 총 열 다섯에 이르러 있었다.
꽤나 치중된 전력은 위태롭기만 보였으나.
“파이어 볼!”
“아이스 스피어!”
“어스 어택!”
해상전이라면 근접 딜러나 탱커의 존재감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레이나가 자신감을 가지고서, ‘크라켄의 역습’의 해상 루트를 결정한 것도.
바로 이 압도적인 화력을 지닌 마법사의 존재 덕분이었다.
“으아아악!”
“이런 치사한 놈들이!”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숱하게 많은 마법들에 휩쓸려 나가는 해적들.
캐스팅 시간이 길다는 단점을 지닌 마법사였으나.
애당초 접근을 거의 허용치 않는 해상전에 있어서 이 만한 전력이 없었다.
‘빠르다.’
레이나는 지금 이 공략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경험치는 벌써 두 번의 레벨 업을 경험할 정도였으니까.
‘이 정도라면...!’
레이나는 먼저 앞서 나간, 거대한 브리깃 선을 떠올렸다.
한국 랭커의 소재는 이미 파악이 끝난 마당.
그 정도의 선박이라면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갑작스런 포탄에는 당황했지만.’
포탈에 진입하기 직전 쏘아 올린 포격은 실로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으나.
지금 이 상황만 보아도, 자신의 공략 속도가 결코 그 브리깃선에 뒤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같은 포탈로 진입하는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쏘았다는 생각이 타당해보였다.
실제로.
“레기오로스입니다. 선장님.”
눈앞에 나타난 첫 번째 네임드 몬스터, 레기오로스가 나타났으니까.
레기오로스는 대왕 고래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크기를 지닌 늑대였다.
그런 주제에 자유자재로 수면의 위아래를 자유자재로 내달리는 몬스터.
“캐스팅 준비.”
하나, 그런 레기오로스의 공략법은 이미 인지한 마당이다.
‘녀석은 수면 위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바다 늑대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녀석은 폐호흡을 하는 녀석.
계속해서 수면 아래에 있지 않는 한, 그 토벌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니, 없었어야만 했다.
““파이어 볼!””
저급 마법에 불과했으나, 하나하나가 랭커급의 마법사가 뿜어내는 파이어 볼들.
그것은 지난 해적들과의 전투에서 그 효과를 입증한 마당이었건만.
펑-! 퍼엉-!
“크르르르릉!”
분명 공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가죽에는 그을림조차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공격에 화가 났다는 듯, 배를 향해 돌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콰아아앙-!
녀석의 몸이 선박에 부딪치자, 끼이이익-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선채가 휘청거린다.
“으아아아악!”
“아악! 캐스팅이...!”
곧장 비상이 걸렸다.
‘불이 약점이라고 했는데.’
약점 속성인 불을 맞고도 거뜬한 모습은 절로 머리에 비상이 울려댈 정도다.
다만, 그 공격이 어째서 통하지 않았는지는 알기 쉬웠다.
‘이 정도 불에는 어림도 없다는 거지.’
레이나는 휘청거리는 선박 위에서 이를 갈았다.
파이어 볼은 저급 마법 중에서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불 속성 마법.
하나, 불 속성이 약점인 녀석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한 화력부족.
“중급 불 속성 마법을!”
“아, 알겠습니다.”
적어도 중급 마법 정도는 쏟아야, 레기오로스에게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을 터다.
그리 판단한 레이나의 선택은 옳았다.
다만.
“내게 필요한 것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날개.”
“나의 곁으로 오는 적들에게 뜨거운 심판의 발판을...”
그렇지 않아도 긴 캐스팅 시간이 필요한 중급 마법.
거기에 거친 파도에 의해 넘실거리는 선채 위에서 중급 마법을 펼치리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플레임 윙!”
“파이어 월!”
퍼어엉-!
화르르르륵-!
기나 긴 캐스팅을 끝내고서 중급 마법이 터져 나왔을 때.
이미 레기오로스는 수면 아래로 그 모습을 감추고 난 이후였다.
“녀석이 수면 위로 나올 때를 노리세요!”
내릴 수 있는 지휘라고는 고작해야 그것뿐이었다.
그런 패턴이 벌써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레이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중급 마법은 상당한 집중력과 마력을 소모했던 탓에,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약점이 맞기는 한 거야?’
애당초 지속성이 가장 큰 장점인 불 속성 마법이다.
한데 녀석의 몸에 그 불을 붙인다 한들, 바다 속에서 그것을 훌훌 털고 나와 버리니 약점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만, 녀석에게 치명상이 되지 않았으나 아예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던 것인지.
녀석 또한 점점 수면 위로 나타나는 횟수가 줄어 들고 있었다.
‘한 번.’
자신에게 주어진 마력이 딱 그 정도라는 것을 확인한 레이나는 곧장 마법을 시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홍련의 화살.”
캐스팅하는 것은 중급 마법 따위가 아니다.
상급 마법.
본래라면 보스 몬스터인 ‘크라켄’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그 가격만 하더라도 2만 코인을 훌쩍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마법.
‘지금 사용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레이나의 레벨은 48.
랭커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높은 레벨.
하지만 상급 마법의 레벨 제한은 50에 달한다.
그것으로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그야말로 도박 수나 다름없는 마법을 시전 했다.
촤아아아악-!
이윽고 나타나는 레기오로스의 얼굴.
“크와아아아앙!”
꽤나 오래 잠수한 것인지, 크게 숨을 들이키는 녀석의 모습에 레이나는 곧장 마법을 날렸다.
“붉은 신성(Vermillion Nova)!”
형태는 파이어 볼과 같았으나, 그 크기와 열기는 그 따위 저급 마법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새빨간 빛을 내는 거대한 구가 녀석을 향해 쇄도했다.
“맞아라!”
혹시나 했던 상급 마법이 제대로 시전 되었음을 확인한, 레이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런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첨벙-!
참으로 잔인하게도 레기오로스는 다시금 수면 아래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아, 안 돼...!”
녀석을 향해 조준한 상급 마법은 안타깝게도 녀석이 들어간 파도 위로 거칠게 떨어져 내렸다.
‘틀렸어...!’
마지막 희망인 상급 마법이 허투루 날라가고야 말았다.
완전히 틀렸음을 직감한, 레이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마법을 시전할 여력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한데, 그 순간.
“깨개앵-!”
분명 수면 아래에서 자신의 행태를 비웃고 있을 레기오로스가 마법이 날아드는 장소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희망의 불길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곧장 녀석을 향해 떨어지는 상급 마법, 붉은 신성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돼, 됐어...!”
녀석을 향해 정확하게 떨어지는 붉은 신성.
상급 마법의 파괴력은 중급 마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제아무리 녀석이라 할지라도, 치명상을 입을 것이 ···.
아니,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촤아아아악-!
“...어?”
한데, 거기에 문제가 생겼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레기오로스만이 아니라는 것.
우우우웅-.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거대한 선박 한 채가 수면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윽고, 떨어지는 붉은 신성.
퍼어어어어어엉-!
그 강렬한 일격이 레기오로스에게 떨어지자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바다 위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와아아아아아!””
“해치웠다! 해치웠다고!”
폭풍이 휘몰아치고 난 직후, 더 이상 목숨을 위협하는 레기오로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다만, 그 환호를 내지르는 가운데.
“...”
레이나만이 기쁜 함성을 내지르지 못했다.
아니, 말을 잃었다는 듯 한참이나 후폭풍에 의해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두 손을 펼쳐 보이는 레이나의 얼굴에는 당황, 혼돈, 슬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맴돌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레기오로스와 함께 떠올랐던 선박은 레이나로써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배였으니까.
‘인류의 희망을 죽여 버렸어.’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
그가 타고 있던 음산한 브리깃 선은 레기오로스의 사체와 함께 깊은 심해로 처박혔다.
자신의 손에 의해서.
* * *
‘깜짝 놀랐네.’
정호는 레기오로스가 떨어뜨린 코인을 매만지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갑자기 공격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수면 아래로 내려온 레기오로스에게 정호는 곧장 총 공격을 펼쳤다.
녀석 또한 설마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던 심해 속에서 적이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지, 정호가 휘두르는 검에 상처를 입었다.
‘거기서 도망갈 줄이야.’
예상치 못했던 점은, 아틸라를 강신시킨 정호의 검이 상상 이상으로 녀석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아가리부터 길게 치명상을 입은 레기오로스는 곧장 바다 위로 도망쳐 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정호로써는 곧장 녀석을 따라, 수면 위로 향했다.
‘거기서 파이어 볼이 날아올 줄이야...!’
단순히 파이어 볼이라고 하기에는 그 열기가 심상치만은 않았으나.
아스텔을 직접 플레이 한 것이 고작해야 레벨 12정도에 불과한 정호로써는 합당한 감상이었다.
“...나, 잘했어?”
“그래, 잘했다.”
정호는 메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아무리 파이어볼에 불과한 마법이라 해도, 갑작스레 날아온 마법에 당황한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군신의 검을 이곳에서 사용할 뻔 했으니까.’
아틸라의 필사(必死) 스킬, 군신의 검.
분명 대단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한 번 시전에 무려 일주일이라는 쿨타임.
거기에 그 반동으로 상당한 고통을 유발한다는 점은 고작해야 네임드 몬스터에게 쓸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 심상치 않은 파이어 볼은 때마침 발동한 메리 리드의 스킬에 의해서 처내졌다.
-스킬 : 대구경 탄환
-거대한 탄환을 발사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상당히 멀리 밀어냅니다.
(스킬의 파괴력은 화신의 민첩 스탯에 비례합니다.)
‘그런데, 얼마 밀쳐 내지는 못했는데.’
상당히 멀리 밀어낸다는 표현과는 달리, 그 파이어 볼은 피해가 입지 않는 선에서 그쳤기에 의문을 가지기는 했으나.
‘뭐, 됐나.’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마당에, 거기까지 신경 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작 따로 있었으니까.
‘스틸했다고 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손에 쥔 코인을 쓸어보는 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내지어졌다.
‘5천 코인에, 4성 각성 재료라...’
[레기오로스의 심장]
-바다에 서식하는 바다 늑대, 레기오로스의 심장이다.
-4성 이하의 화신 각성 재료.
삼 성 등급의 화신 각성 재료는 그림자 지하 성채를 통해 충분히 습득한 마당이었으나.
사 성 등급의 화신을 각성시킬 수 있는 재료는 턱 없이 부족했다.
‘신수(神獸)는 뺏기지 않아.’
정호는 항해를 서둘렀다.
막대한 양의 코인과 재료를 수급할 수 있는 네임드 몬스터.
레이나의 마법은 그런 신수들을 처리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위기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우우우우우-.
바다의 아래까지 울려 퍼지는 거대한 울림.
위를 쳐다보니, 레기오로스 따위는 한 마리의 개에 불과할 정도로 거대한 형체.
섬을 등에 지고 있는 거대 거북, ‘아스피도켈론’ 임에 틀림이 없었다.
“다른 유저들이 오기 전에 처리한다!”
지금도, 빠른 속도로 공략해나가고 있을 레이나를 떠올리며 그리 외쳤다.
다만 그것은 정호의 괜한 걱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레이나의 일행은 지금.
우우우우우우-.
아직도 레기오로소와 접전을 벌였던 바다 위에 있었으니까.
“그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편에서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입니다.”
휘익- 휘익- 휘익-.
바다 위로 꽃이 던져진다.
“그런 그가 여기서 잠들었습니다.”
레이나의 주도 하에.
간단한 장례식이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