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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65화 (66/144)

< # 65화 >

# 65화

사실 아스텔 유저들에게 있어서 해상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보스에게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외한다면.

적들의 수도 많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해상 루트는 위험 부담만 늘릴 뿐이었으니까.

아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상 루트를 선택하려는 입장에서도 그것은 불가한 일이었다.

‘따라오면 쏘겠다는 뜻인가?’

던전의 밖에서 난데없이 쏘아지는 포격.

음산하기 그지없는 거대한 브리깃 선이 쏘아대는 그 포격들에 의해 아스텔 유저들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진 것이나 다름없다.

안전하고, 가장 정석적인 공략 방법.

해저 루트다.

“해파리?”

“스팅거다!”

“상태 이상, 감전에 주의하면 문제가 될 건 없다!”

“스팅거의 촉수를 조심해!”

과연 해저 루트라고 할까.

던전 초입부터 등장하는 거대한 해파리, 스팅거를 마주하는 유저들의 낯빛은 밝았다.

이미 첫 번째 침공을 통해 숱한 경험과 레벨을 쌓아 올린 그들이다.

게다가 완전한 공략법까지 존재하는 마당에, 그들의 앞길을 막아세울 수는 없었다.

“케헤에에엑!”

한 마리의 스팅거를 공략해나가는 스무 명의 유저들.

“으윽! 감전에 걸렸어!”

“힐! 하이 힐!”

“모두 후퇴한다!”

녀석의 공격 중 가장 주의해야 할, 촉수가 뻗어져 나오려나 싶으면 일제히 빠져 그 공격을 회피해 낸다.

저 레벨의 유저들이라면 할 수 없었던 일.

“하하, 해저 루트가 편하다고 하더니. 이 정도면 해상 쪽으로 가도 되지 않아요?”

“맞아. 스팅거는 꽤 까다로운 적이라고 공략에 적혀 있었는데.”

아스텔 유저들의 얼굴에는 여유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톨비아’를 알지 못하기에 나오는 무지이기도 했다.

분명 해저 루트는 톨비아 내에서도 안전하다고 평정이 난 공략이었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20인 공격대 컨텐츠’라는, 악독한 난이도의 던전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아아아악! 이게 뭐야?”

탄탄대로 진행되는 공략 도중 의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그 때였다.

심해로 향하는 동굴의 내부에는 곳곳에 물웅덩이가 존재했다.

한데, 그곳에서 갑작스레 삼지창이 튀어나와 아스텔 유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저인족!”

“아직 초입인데도 벌써 나오는 거야?”

공격대가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였다.

“이런 젠장!”

해저 루트에서 가장 까다로운 적이 바로 이 저인족들의 존재였다.

가까이가면 삼지창을 내밀고.

멀리 떨어지나 싶으면, 그 자리에서 물로 이루어진 총탄을 쏘아낸다.

그런 주제에 쓰러뜨리려고 달려들면, 상체만 내놓은 몸을 다시 웅덩이 속으로 숨어버린다.

꽤나 비열한 공격 방식이었으나.

“아악!”

그 공격은 결코 우습게는 볼 수 없었다.

쏘아지는 삼지창과 물속에는 청산가리의 10배나 달한다는 파란고리문어과의 괴물 ‘하팔로클루에’의 맹독이 묻어 있었으니까.

“제, 젠장! 후퇴한다!”

“저 녀석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순탄대로 진행되어 지던 공략은 완전히 멈추어 섰다.

고작해야 수 명의 저인족이 적의를 드러낸다는 것 하나만으로 말이다.

한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인간?”

저인족들의 왕을 포함한 모든 저인족들을 단번에 적으로 돌린 정호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미치겠군.’

설마하니 ‘부모’를 잃었다며 찾아온 저인족의 아이.

한데 그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을 넘어서···.

‘저인왕’을 아비로 두고 있는 왕자라니?

이것은 정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다.

‘싸운다?’

아직까지 퀘스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녀석에게서 완전한 적의, 그러니까 저인족이 ‘적’으로 돌아서지는 않았다는 말.

그렇다면 이 공기 방울이 사라지기 전에, 한 번 정도의 전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위험하겠는데.’

다만, 여기는 바다 위가 아닌 심해 속이다.

설령 녀석들을 쓰러뜨린다 하더라도, 녀석들의 기술이 없는 한 다시 바다 위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호랑이 굴에 제 발로 찾아온 격이 아니던가.

‘그래도, 하려면 지금 뿐.’

정호는 게슴츠레 뜬 눈을 빛냈다.

단 한 번의 일격.

아틸라의 광역 필사 스킬인, ‘군신의 검’과 더불어 캐스터 계열 중 가장 강력한 단일 필사 스킬을 가지고 있는 멀린이라면.

그 한 번의 일격이라면.

녀석들의 공기 방울이 사라지기 전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떠오를 무렵.

“아버지. 제가 부탁했습니다.”

“...음?”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이 튀어 나왔다.

“이번 ‘제물의 날’, 참가하기 위해서 직접 납치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서,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제가 아버지의 왕관을 받아내기 위해서!”

“...뭐, 뭐라!”

애초에 ‘부모’가 없다고 거짓을 늘어놓던 녀석 답게.

패륜도 서슴지 않고 떠들어 댄다.

“사, 사실인가? 인간?”

믿을 수 없다는 듯,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정호에게 물어오는 저인왕.

그에 정호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 * *

저인족들과의 전면전까지 갈 뻔했던 진땀이 나는 상황.

하지만 갑작스레 난입한 왕자의 폭탄 발언에 꽤나 묘하게 변했다.

성대한 환영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한 바탕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정호에게 주어진 처벌이라고는 ‘제물의 날’까지 지저인들의 도시인 아틀레타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추방 명령뿐이다.

“음, 인간들의 음식도 꽤 맛있군!”

애초에 추방이라고는 하나, 그저 겉모습에 불과한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자님, 저들은 위험한 자입니다.”

“알고 있어! 저인족을 납치하는 녀석들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야 나도 잘 알고 있다니까.”

지켈과 왕자.

녀석들은 추방 명령과 동시에,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정호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두 녀석을 지켜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는 알려주지 않을 건가?”

“말했지 않나?”

왕자는 자신의 손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더니, 정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버지의 왕관이 탐이 난다고.”

꽤나 비약적인 설명에 정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대로 널 묶어서 다시 바다 위로 올라가는 수가 있다.”

“이 지켈의 눈에 육지의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수작질은 통하지 않는다!”

“됐어. 지켈. 설명을 하지 않은 건 내 탓도 있으니까.”

왕자는 다시금 정호를 향해 몸을 돌려, 꽤나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레클리스 더 켈린. 켈린왕의 아들이다.”

“부모가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물론 자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 거짓을 조금 섞은 것뿐이지.”

“그래서?”

“제물의 날이 수십 년 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그 가증스러운 문어를 막아내는 날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테지.”

“물론.”

“그 날에 참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성스러운 일이지. 동포를 위해서 자기 한 몸을 희생하는 것이니 말이야.”

왕자, 레클리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남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스러운 희생이 강인한 자의 훈장이 되니까.”

정호는 따분한 표정으로 녀석의 말을 들었다.

사실 녀석의 사연 따위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미 정호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추방이라는 묘한 처벌을 받기는 했으나, ‘제물의 날’ 퀘스트는 아직 살아있는 마당이지 않은가.

“나는 수백의 왕족 중 가장 막내에 불과하지. 절대로 왕이 될 수는 없는 몸이야.”

“어떻게 이렇게 깊은 뜻을...!”

그 내막을 알게 된 지켈이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정호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흐름은 이해했다.

왕족에서도 계승권이 낮은 녀석은 어떻게 해서든 다음 대의 왕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만큼의 업적을 쌓아야 가능한 일.

“그러다 자네가 싸우는 걸 봤지. 좀 더 확실히 하고 싶어서 해적의 처리를 부탁하기는 했지만···, 고작 납치 한 번에 왕에게 도달한다면 충분히 합격점이야.”

한 마디로 녀석은, 저인족의 왕이 되고자 정호를 이용하겠다는 의미였다.

“그저 살아남는다고 왕이 될 수는 있고?”

“가능한 일이지. 나의 아버지, 켈린왕도 그런 식으로 왕이 되었으니까.”

“그래.”

정호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짜증이 날 지경이다.

혹이 하나 늘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녀석은 지금 자신에게 호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보스전에서 호위를 하라고?’

정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크라켄의 목숨 그 자체였다.

그것을 약하디 약한 왕자의 안전까지 책임지라니.

관심도 없거니와, 보상도 없는 일에 힘을 쓸 이유가 없다.

정호는 단호히 이 부탁을 거절하려 했다.

한데.

“아버지는 자네에게 ‘크라켄의 처치’를 부탁했지. 막대한 보상과 함께.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수백 년간 우리 저인족을 괴롭힌 녀석이야. 아버지도 아마 기대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걸. 다만... 나는 달라.”

입을 열기도 전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하나.

[Q. 왕이 되기 위해서]

-저인족의 왕자, 레클리스는 ‘제물의 날’에 참가하여 훈장을 얻고자 합니다. 그를 호위하여, 왕이 되려는 레클리스를 보좌하십시오.

-목표 : 제물의 날에서 레클리스를 보호.

‘이건 뭐야?’

숱하게 ‘크라켄의 역습’을 클리어 한 정호로써도 처음 보는 퀘스트가 떠올랐다.

톨비아에서 알려지지는 않은 퀘스트가 있다는 것도 놀라울 진데.

그 보상의 내용을 확인한 정호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이봐, 이 보상. 확실한 것 맞나?”

“맞아. 나는 이 제물의 날에서 살아남아, 왕이 될 거니까.”

“확실하다는 말이지...”

“그렇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녀석의 보상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녀석이 제시한 보상.

-보상 : 10,000코인 / 저인족의 보물 택 1

그것은 저인족들의 왕, 켈린왕이 제시한 보상과 완전히 동일한 보상이지 않은가.

“그러니, 확실하게 나를 지키도록 해.”

손을 벌벌 떨어대는 꼴은 보니,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반쯤은 도박이었던 모양이다.

‘이야, 이 새끼.’

정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아직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도 않은 물건을 당당히 보상으로 제시하다니.

어이가 없음을 떠나서, 말도 흘러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좋아. 호위해주지.”

물론 덥석 물기엔 충분한 떡밥이었지만 말이다.

“정말인가?”

“당연하지.”

녀석의 파르르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겨우 호위정도로 이 보상을 제시한다라.’

그 작은 의문에서 떠오른 생각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해내었을 때.

정호의 눈이 음습하게 빛났다.

“한데, 겨우 살아남는 것 정도로 만족하나?”

“음? 그게 무슨 소리지?”

묘한 말에 고개를 기울이는 레클리스를 향해, 정호가 미소를 내지었다.

녀석은 상당히 권력욕에 목마른 녀석이다.

게다가 그 목표로 향하는 수많은 길 중 ‘명예’를 택하는, 실로 어리석은 왕자.

그렇다면.

“최초로 크라켄을 쓰러뜨린 위대한 왕.”

“뭐라고?”

“만약 왕이 된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 그게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최대한 녀석을 이용해 먹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네 안전 여부에 대한 보상은 됐고.”

아직 정호와 레클리스의 합의는 끝나지 않았다.

정호는 최대한 살가운 미소를 내지으며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그 위대한 왕이 되는 조건의 보상을 함께 구상해보자고.”

봉이 있으면, 철저하게 빼먹는 것이 순리이며, 도리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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