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3화 >
# 63화
20인 공격대 던전, 크라켄의 역습.
그곳에 발을 디디게 되면, 곧장 마주하게 되는 녀석들이 있다.
“인간이다. 인간.”
“인간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래?”
바로 저인들.
반인반어의 모습을 한 녀석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몸뚱아리만한 삼지창을 들고서 바다 위로 쏘옥 그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여, 주인장.”
“무시하고 달린다.”
“꽤 희귀하게 생긴 것들인디. 아깝게 시리.”
쩝.
검은 수염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기는 했으나, 그 말이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그냥 가는데? 어떻게 할까?”
“장난이라도 칠까?”
“아냐. 저 배를 봐. 우리 창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걸?”
작당 모의를 하는가 싶었으나.
수십에 달하는 저인족들은 정호의 배를 상대로 덤벼들지 않았다.
‘적어도 이 정도의 선박에는 적의를 가지지 않는군.’
녀석들은 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존재다.
특히나 물 밑에서 자유자재로 숨을 내쉬며, 언제 공격을 가할지 모르는 녀석들의 존재는 꽤나 까다롭기 그지없다.
‘해저 루트에서는 꽤 고생하니까.’
크라켄의 역습은 최초로 선택지가 주어지는 던전이다.
해상과 해저.
그 둘 중 하나의 선택에 의해, 그 스타트 지점이 달라진다.
해상이라면 바다 위에서.
해저라면 수 없이 많이 존재하는 섬들 중 하나로.
해저 루트는 그러한 섬들에 존재하는 동굴을 통해, 심해로 나아가는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문제가 없었으나.
‘그 섬들의 아래가 녀석들의 집이란 게 문제지.’
저인족들은 분명 적으로써 등장하기는 했으나, 완전한 적의를 가지고 들이대는 단순한 몬스터 따위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터전에 찾아온 이방인, 침략자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는.
꽤 그럴 듯한 명분으로 덤벼드는 녀석들이다.
촤아아악- 촤아아악-.
단순히 파도를 헤치며 지나가는 거대한 배를 향해 창을 내던지는 멍청한 짓거리를 할 명분은 그들에게 없었다.
‘오히려 NPC에 가까운 녀석들이니까.’
정호는 미소를 내지었다.
대부분의 톨비아 유저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게.
가장 정석적인 공략법은 해저.
저인족들과는 완전히 적으로 돌아서게 되는 루트였으니까.
하지만 정호는 해상 공략이 처음이 아니었다.
‘포세이돈은 녀석들의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
괜히 그 이름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릿하게 아려오기는 했으나 정호는 고개를 내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6성 등급의 신 등급 화신, 포세이돈.
바다 위에서는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다는 그 화신을 거머쥐었던 정호다.
고작해야 4인 파티 던전에 불과한 그림자 지하 성채보다는 오히려 20인 공격대 던전인 크라켄의 역습이 더 편하다고 느낄 정도로.
정호는 이곳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쉽구려. 주인장. 저 특이하게 생긴 삼지창은 소장용으로 딱인데 말이여.”
약탈을 떠올린 것일까.
입맛을 다시며, 멀어지는 저인족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검은 수염.
그에 정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저 삼지창은 이 성급 중에서도 성능이 상당한 것으로 정평이 난 장비이기도 했고.
심지어는 저인족들은 코인도 꽤나 괜찮게 주는 녀석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호는 녀석들을 쓰러뜨리지 않았다.
그것은 까다로운 적들과 싸우기 꺼려져서, 혹은 무서워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걱정 마.’
오히려 반대다.
정호는 녀석들이 쥐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전부 가져 올 테니까.’
그 모든 것을 빼앗을 생각이었으니까.
* * *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의 인간에게나 두려운 적은 자신의 재물을 탐하려 하는 또 다른 인간이다.
산에서는 산적이.
바다 위에서는 해적이 그 원흉이 된다.
촤아아아아아-.
촤아아아-.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던전 밖에서나 보았던 A1 갤리온 선, 하인츠 호와 비슷한 크기의 선박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케헤헤헤. 우리 구역을 어떤 간 큰 녀석들이 찾아왔나 했더니, 얼뜨기들이로군!”
“그 배는 우리 꺼야. 당장 내놓고 저리 꺼져!”
그 선박들을 조종하는 해적들의 일갈이 멀리서 들려왔다.
20인 공격대 던전, 크라켄의 역습.
그곳에서 해상 루트로 통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바로 이 해적들에게 있었다.
‘다섯 척. 적의 수는···.’
족히 이 백에 달하는 해적들의 수.
하나, 하나가 일 성, 이 성 등급의 화신과 맞먹는 녀석들.
게다가 그들을 지휘하는 이들조차도, 범상치 않은 놈들이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프랑수아 롤로네, 바솔로뮤 로버츠.’
만약 그들이 화신이 되었다면, 삼 성 등급의 판정을 받았으리라고 예상되는 네임드급.
대서양의 해적들이 바글바글하지 않은가.
‘잘못 선택했나?’
자신만만하게 해상 루트를 선택한 정호조차도.
아주 잠시나마 그런 생각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병력과 수없이 많은 네임드들의 출현은 절대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하? 허? 얼뜨기? 개 자슥들이···. 저게 시방, 내한티 뭐라는 거여?”
“왜? 좋은데 뭘, 이런 취급은 꽤 오랜 만인걸.”
“...바보들.”
그런 해적들을 맞이하는 카리브 해의 해적들.
검은 수염과 앤 보니, 메리 리드는 마치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퍼엉-!
가장 먼저 선제공격을 날린 것은 적들로부터였다.
그 포탄은 내달리는 ‘앤 여왕의 복수’ 호에 닿지도 못한 채, 파도에 그 자취를 감추었다.
“캬하하하!”
“케헤헤헤헤! 벌써 쫄은 것 같은데?”
아직 사거리에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포탄을 마구잡이로 쏴대는 녀석들의 도발.
“기다린다.”
정호는 혹여나, 다혈질인 검은 수염이 그 도발에 넘어갈까 싶었으나.
“알고 있으이. 주인장.”
오히려 티치는 잔뜩 가라앉은 눈으로 그 말을 받았다.
“주인장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네. 저들의 도발에 넘어가, 포탄을 소모하고 만다면 다음이 문제라는 말일 걸세. 하나, 걱정하지는 말게.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지금까지의 그 어투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티치는 자신의 검은 양초 모양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비릿한 미소를 내짓고 있었다.
‘컨셉이었다고?’
그게 참으로 어이가 없어, 잠시나마 허탈하기 그지없는 시선을 내보기는 했으나.
“주인. 한 번, 해적들끼리의 공화국이 세워진 적이 있다네.”
검은 수염은 진지한 얼굴로 적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한데, 고작 10년도 안 되어서 무너졌지. 그게 왜 인지 알고 있나?”
“해군에 의해서가 아니었나?”
“아니네. 그게 아니라네. 애초에 우리는 뭉칠 수 없는 족속들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흩어진 걸세.”
끄응차.
커다란 대포알 두 개를 어깨 위로 거머쥔, 검은 수염이 말을 이었다.
“해적이란 이기적인 놈들이야.”
기잉-. 텅.
대포알을 포문에 집어넣은 검은 수염의 얼굴에 커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 그런 쓰레기들이 모인 곳이 해적이라는 말이여.”
천천히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해적들.
그에 검은 수염이 포문에 불을 붙였다.
“시방, 그럼 좀 얕보여야 오지 않겠는감?”
퍼어어어엉-!
50문이나 되는 포문 중 고작해야 하나.
그것이 불을 뿜으며 녀석들의 배에 구멍을 뚫었다.
“갸하하하하! 어미의 젖을 아직 덜 빤 멍청이덜 아인교. 어디 올 수 있으믄 들어 와 보등가!”
검은 수염이 어눌한 말투로 녀석들에게 도발을 내걸자.
“저, 저 시발 새끼가!”
“고작 다섯이다! 얼른 붙어! 저 커다란 배는 우리 차지다!”
““와아아아아아!””
상태 이상에 걸린 것도 아닐 진데.
녀석들의 뱃머리가 곧장 ‘앤 여왕의 복수’로 향한다.
“성능 하난 확실하지 않은감? 주인장.”
의기양양한 검은 수염의 말에 정호 또한 미소를 내지었다.
녀석들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배에 타고 있는 이는 정호를 포함해도 고작해야 다섯.
거기다 어눌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얼뜨기 선장까지.
녀석들이 쏘아올린, 도발용이라고 생각했던 포탄들은 그저 이 배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티치.”
분수에도 맞지 않는 거대한 배를 상처 없이 약탈하기 위해서.
“스킬, 포탄 세례.”
물론 녀석들의 해적선 따위는.
정호에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갸하하하하하!”
퍼퍼퍼퍼퍼퍼펑-!
카리브 해에서 그 악명을 떨친 앤 여왕의 복수(The Queen Anne's Revenge).
그 악마의 브리깃 선에 내장된 무려 50문의 포대가 단번에 불을 내뿜었다.
“으, 으아아아! 저 새끼들 뭐야!”
“얼른 붙어! 갈고리를 걸어야 한다고!”
퍼퍼퍼퍼퍼퍼펑-!
충분히 가까이 온 적들에게 빗나갈 이유 따위는 없다.
일방적인 학살의 현장이었다.
* * *
거대한 선박들이 차례차례 심해의 깊은 속으로 잠든다.
망망대해에 몸뚱아리 하나만 내던져진 해적들에게 승기 따위는 없었다.
다만, 해적들이 어째서 지난 역사에서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었던가.
그들은 포기하지 않은 채, 앤 여왕의 복수 호에 갈고리를 걸었다.
“어머, 왔어?”
다만 그런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더한 악몽이다.
“그럼 잘 가.”
퍼억-!
정호와 화신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올라오는 녀석을 족족 바다 속으로 밀어 넣는 일에 불과했다.
“이, 이 미친놈들! 지금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어!”
그럴 때마다 녀석들은 하나 같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저 죽이는 일이라면 간단한 일이나 다름없다.
올라오는 녀석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내면 되는 일.
하지만 정호는 그것을 완전히 금지했다.
‘아깝게 그러면 쓰나.’
이미 승리가 확정된 마당에, 그들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네 녀석들을 저주하겠다!”
“응, 다음에도 꼭 그 말 들려줘.”
퍼억-.
녀석들을 비정하게 밀어낸다.
“으아아아악! 절대 용서치 않을 거다!”
“오, 이 녀석은 꽤 네임드 급이었나 봐. 주인. 5 코인이나 떨어뜨렸는데?”
짤랑-.
그와 동시에 떨어지는 코인이 몇 개.
도감 ‘카리브의 해적’의 3세트 효과, 약탈이 발현된 탓이다.
‘공장이네. 공장.’
배를 잃은 해적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악으로 깡으로 이 ‘앤 여왕의 복수’에 타는 방법 밖에 없다.
‘평생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야.’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작업.
약탈만으로 얻어낸 코인만 하더라도 무려 3천 코인이나 달했다.
이 짓이라면, 화신들의 체력을 크게 소모하지도 않고서 코인을 쉬지 않고 뽑아내는 것도 가능할 터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죽었어.”
“뭐야, 두 번은 더 올라 올 줄 알았는데.”
제아무리 바다 위의 바퀴벌레라 불리는 녀석들이라 할지라도.
수십, 수백 번에 달하는 등반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체력은 없었으니까.
“주인, 이제 가도 좋을 것 같은데? 몇 명 남지도 않았어.”
앤 보니가 정호에게 그리 말을 내걸었다.
‘확실히···.’
무려 이 백에 달했던 해적들의 수는 첫 포격과 함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남은 녀석들을 통해 코인과 물품들을 약탈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스무 명 정도인가.’
이제는 그 수가 안타까워질 정도.
“조금만 더 진행하지.”
하지만 정호는 배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비단 쉬이 코인을 얻어낼 수 있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정호는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압도적인 전력을 단숨에 파괴하고서, 그들을 농락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또 다른 녀석들을.
촤아아악-.
“...주인, 이 녀석... 떨어뜨려도 돼?”
“으아아악! 저는 적이 아니라니까요?”
그런 정호에게 들려오는 메리 리드의 목소리.
그 뒤에 이어지는 하나의 비명 소리에 정호가 미소를 내지었다.
고개를 돌려, 그 방향으로 시선을 두니 보이는 것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모양새.
팔딱팔딱-.
녀석은 메리 리드의 손에 의해 멱살을 잡힌 채, 쉬지 않고 자신의 꼬리를 팔딱 거리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실로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와 같은 형태라 검은 수염이 침을 줄줄 흘리기까지 했다.
“오, 그 놈 참 맛있게도 생깄네!”
“히, 히익! 저는 그저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을 뿐이라니까요.”
반인반어의 모습.
저인족이었다.
생각보다 작기는 했으나, 정호가 기다리던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무슨 부탁이지?”
“해적들이 저의 부모를 죽였어요. 그 복수를 제발 도와주세요!”
그 말과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하나.
[Q. 저인족 아이의 부탁]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저인족의 아이는 망망대해에 해적들에 의해서 부모를 잃었습니다. 증오하는 해적, ‘레이스’를 쓰러뜨리고서, 아이의 복수를 이루어 주십시오.
-목표 : 대서양의 해적, ‘무라트 레이스’ 사살.
-보상 : 500코인
그 내용은 분명, 정호가 기다리던 저인족의 퀘스트임에 틀림이 없었다.
“거절하지.”
하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어, 어째서...”
그에 저인족 아이는 충격이라도 먹은 것인지, 말을 잃고서는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미소년의 모습을 지닌 저인족의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대니 절로 마음이 약해지는 기분이었으나.
‘안 속아.’
그 속셈을 뻔히 알고 있는 정호에게 통할 리가 만무했다.
“네 부모는 멀쩡히 살아 있을 것 같은데.”
“네? 아, 아닌...”
“괜히 떠보려, 헛소리 하지 말고.”
정호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녀석의 말을 잘라내고선.
엄지손가락으로 바다 속을 가리켰다.
“네 잘난 왕한테나 안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