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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62화 (63/144)

< # 62화 >

# 62화

수많은 유저들과 상인들로 뒤엉킨 항구는 소란스러웠다.

이 교역 상단들이 가져 온 선박은 분명 대단하기 그지없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겨우 포탈에 들어가는 용도로 사용하는 데 몇 천 코인이나 쓰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 높은 가격은 불협화음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잘 생각해보면, 포탈에 진입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어떤 형식으로든 가능하지 않은가.

그들이 가져온 갤리온 선이나, 브리깃 선처럼 옛날 방식으로 짜여 진 구식의 선박들 보다야.

21세기의 조선 기술이 뛰어난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니, 이봐. 설마 입구에 들어가는 것만 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받아먹겠나? 멍청하긴, 쯔쯧. 도대체 이런 녀석들이 어떻게 침공을 막아낸 것이야?”

상인들은 그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이봐, 너희들은 던전 내로 들고 갈 수 있는 특수 처리를 할 수 있어? 없겠지!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요청 따위는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림자 지하 성채에서, 군인들이 제 힘을 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들의 현대 화기인 총은 던전 내에서 그 효력을 내지 못했다.

아니, 아예 발포조차 되지 않은 마당이다.

상인들은 그것을 비꼬고 있었다.

딸랑. 딸랑!

그런 와중에, 하나의 종이 울려 퍼졌다.

“거봐, 저 아가씨는 우리의 선박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잖아.”

옥신각신하는 사이, 첫 선박의 구매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종을 울려댈 정도로 비싼 가격의 선박.

우우우웅-!

거대한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S1 갤리온 선, 아리아의 눈물. 2만 코인이나 하는 물건이지. 뭘 좀 아는 유저가 없지는 않구만!”

“2만 코인이라고?”

“2만? 도대체 코인이 얼마나 남아도는 거야?”

그 배를 바라보며 유저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자신들에게 소개하던 선박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

새하얀 모습의 배는 옛 선박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됨을 지니고 있었고.

갤리온 선 특유의 날렵한 뱃머리에는 여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도대체 누구야?”

“저런 선박을 바로 대여한다고?”

사람들은 그 정체를 궁금해 했다.

2만 코인이라면, 지금 가격이 많이 떨어진 마당에도 현금 가치로 40억에 달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후회 없는 선택일거요.”

“고마워요.”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고 있는 당사자는 다름 아닌 랭킹 3위의 레이나였다.

‘2만 코인은 꽤 큰 지출이지만.’

그녀는 던전, ‘크라켄의 역습’ 공략에 코인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 ‘대마법사’ 길드의 첫 출진이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과금망겜플레이어...’

지난 그림자 지하 성채 침공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탓이 컸다.

솔직히 말해, 레이나는 랭킹 1위와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남들보다 빠르게 공략을 이어나가고 있다고는 하나.

‘레벨이 높으면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충분한 레벨이 뒷받침되었을 때.

그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야 말지 않은가.

처음 한 번이 힘든 법이지, 그 이후로는 높아진 레벨로 충분히 빠른 공략이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직접 그를 두 눈으로 보게 된 그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혼자서는 이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홀로 키메라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그 모습은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흑심을 품고서 자신들을 적으로 돌린다면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 그를 독주하게 만들어서는 안 돼.’

통제가 되지 않는, 그 정체조차 드러내지 않는 랭킹 1위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그렇기에, ‘대마법사’라는 길드를 만들었다.

‘마법사 위주로 편성 된, 극강의 화력 부대.’

혼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부족한 만큼의 화력을 다른 이에게서 얻으면 되는 일이니까.

“이게 가장 비싼 물건인 건 확실하겠죠?”

“아, 물론입죠. 이곳에 가져온 물건들 중엔 가히 최고의 성능을 자랑합니다.”

“좋아요.”

세정은 ‘크라켄의 역습’이라는 톨비아의 던전을 잘 알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선박’이 중요하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최초 클리어 업적.’

과금망겜플레이어, 그가 어떤 방식으로 강해졌는지는 이미 분석이 끝났다.

톨비아를 즐겼던 유저들로부터 알게 된 최초 업적.

현실이 된 이후, 그 누구도 확인한 적이 없기에 확실치는 않았으나.

적어도 과망플의 저 무력은 그것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다.

‘뒤쳐질 요소는 없어.’

랭커들로 구성된 공격대.

거기에 가장 우수한 성능을 지닌 선박까지.

“식량과 무기를 모두 실으면, 바로 출항하겠어요.”

“예. 길드장님.”

20명에 달하는 선발된 랭커들이 선박, ‘아리아의 눈물’에 오르기 시작했다.

‘길드장보다는 선장이 좋은데.’

세정은 괜히 자신의 모자를 만지작댔다.

아스텔 상점에서 구한, 마법사 클래스 전용의 새하얀 모자.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것이 해적의 모자와 흡사한 모습이다.

‘뭐, 던전에 가는데 그런 호칭 정도야.’

자신은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번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공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준비되었습니다. 선장님.”

하지만 마음은 정확한 법이라, 누군가의 말에 함박웃음을 지은 세정.

“조, 좋아요. 출항하겠어요.”

드르륵- 드르륵-.

닻이 올라가며 묘한 고양감을 선사한다.

‘따라올 수 있으시면, 따라와 보세요.’

만약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면 그리 말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벅차오른다.

한데 그런 생각과 함께.

퍼엉-!

퍼엉-!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라도 하듯.

난데없이 포탄들이 바다에서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저기!”

“아니 저게 무슨 배야?”

순식간에 혼란스럽게 변하는 항구.

그것은 레이나, 세정이라고 하여 다를 것은 없었다.

“자, 잠시만요. 이게 가장 비싼 선박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예? 예에. 무, 물론입죠. 이곳에 가지고 온 물건들 중에는 최곱니다.”

“그럼 저건 뭔데요!”

당장 쥐처럼 생긴 상인을 향해 닦달해보지만, 그도 당황스러운지 바다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선박은 저도 본 적이 없다니까요? 믿어주십쇼.”

세련됨을 강조하는 갤리온 선, ‘아리아의 눈물’과는 달리.

이리저리 헤진 돛대와 당장이라도 가라앉을 듯이 반파된.

난파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거대한 브리깃 선이 바다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상인이 알지 못하는 선박?’

당황하기는 했으나, 세정은 그 정체를 알아내는 데 큰 수고를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 남자가 분명해.’

그렇지 않아도 과금망겜플레이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저런 선박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 정도의 거대한 브리깃 선을 구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 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길드장님!”

“선장이라고 부르세요!”

“아, 아! 옙 선장님!”

“바로 출항하겠어요. 전속력으로 저...”

펄럭이는 해골을 바라 본 세정이 잠시 멈추고는 말을 이었다.

“저 해적선을 쫓아요! 얼른!”

부우우우웅-!

뱃고동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어? 어어, 출항인가 본데?”

“잠시만. 이거 뒤처지면 안 되는 건가?”

서두르는 그 모습을 바라 본 아스텔 유저들에게서도 변화가 왔다.

“F17 범선 함께 대여하실 분 구합니다!”

“이, 이거 줘요. 얼른!”

부우웅- 부우웅-!

항구에 뱃고동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때 아닌, 대항해시대의 시작이었다.

* * *

촤아악-! 촤아아악-!

단 한 줌의 바람에 의지하여, 파도를 헤치고 나간다.

절로 흥겨운 노래에 몸을 맡기고서.

앞서 나가는 새의 날갯짓을 여유롭게 관찰하는.

“우웨에에에엑!”

“Ahoy! Ahoy!”

“갸하하하하!”

“...너희들 너무 시끄러.”

그 따위 낭만은 없었다.

‘미치겠군.’

정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거센 파도는 절로 속을 울렁거리게 하고.

철썩 대며 뺨을 때리는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은 아프기까지 하다.

“으으, 나 죽을 거 같아. 주인. 살려줘...우웩! 웩! 웩!”

특히 키드의 상태가 심각했다.

지독한 뱃멀미를 앓는 것인지, 녀석은 갑판 밖으로 머리를 박고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정호는 ‘크라켄의 역습’ 던전에 앞서, 약탈을 할 멤버에 키드를 넣어놓은 입장이었다.

-빌리 더 키드★★★

-힘 : 95 체력 : 75 민첩 : 250 지능 : 92

정호의 화신들 중에서는 최초로 삼 성 등급의 풀 각성을 이루어낸 화신이었으니까.

‘해상전에서는 원거리 사냥이 될 확률이 높은데.’

민첩이 250이나 되는, 전용무구를 가진 화신이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정호에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뱃멀미쯤이야 한 삼 일 고생하면 싹 낫는다 아인교.”

다만, 검은 수염의 말처럼.

-상태 이상 : 멀미

-대상 화신의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지속 시간 : 21시간.

시간이 문제였지, 그리 큰 문제가 아니기는 했다.

“으으, 주인 나 돌아가고 싶어.”

“안 돼.”

“진짜... 나한테만 너무하다니까... 흑. 서러워. 나는 너무 서러워.”

감내해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키드의 몫이다.

‘뭐, 전투할 때 즈음이면 낫겠어.’

정호는 그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벌써 눈에 보이기 시작한 포탈은 분명 그림자 지하 성채와 같은 구조.

20인 공격대 던전, ‘크라켄의 역습’임에 틀림이 없었다.

“주인장, 그란디 저 짝에 어선들이 쫙 따라오는데, 약탈 좀 해도 되유?”

“음? 어선?”

검은 수염의 말에 정호는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저게 다 뭐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갤리온 선, ‘아리아의 눈물’을 필두로 수십 여 채의 선박이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뭐지?’

그에 곧장 떠오르는 것은 의문이다.

‘다 해상전으로 가겠다고?’

정호는 아스텔 유저들이 당연하게도 ‘정공법’을 택하리라 생각했다.

‘크라켄의 역습’은 두 가지의 공략법이 존재하는 던전이었으니까.

‘해상 루트’와 ‘해저 루트’.

그 중에서도 정석적인 공략이 바로 해저 루트다.

해저 루트는 딱히 선박 따위가 필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던전 내에 진입해서, 동굴처럼 길게 이어진 길을 일직선으로 돌파하면 되는 일이니까.

‘크라켄의 약점이 있는 장소기도 하니까.’

그 끝에 크라켄의 심장이 있어, 톨비아 유저들이 즐겨 사용하던 공략 루트였다.

실제로 기사에서도 해저 루트가 소개되기도 했으니, 당연하게도 그 쪽으로 갈 줄만 알았다.

‘다만 느리지.’

분명 보스의 약점이 존재하고, 안정성을 기대할 수는 있었으나.

그럼에도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흠인 공략법이었다.

정호가 해저 루트를 고르지 않은 까닭도 바로 이것이었다.

‘레이나는 그렇다 쳐도, 일반 유저들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해상 루트는 언제 바다 밑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몬스터들과 해상 위의 해적들을 상대하는.

꽤나 까다로운 루트에 해당했다.

단순히 ‘공략이 빠르다’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장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A1이라고 했던가? 그 정도의 선박이 아니면...’

정호가 생각했을 때에는, 이 교역 상인들이 팔던 선박들 중 하인츠 호 이상의 선박이 아니고서야.

해상 루트에는 발도 디딜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쯧...”

혀를 차냈다.

한 마디로, 저들은 스스로 생지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유저들을 구해줄 이유 따위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바라만 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지 않은가.

“주인장. 바다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만 허는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니께? 조금 신사적이진 못해도...”

그런 검은 수염의 조언이 이어지고.

촤아아악-.

[크라켄의 역습 12]

-고대 시대에 토벌된 크라켄. 그런 크라켄을 ‘새뮤얼 밸라미’가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부활시켰습니다.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크라켄을 막고, 해적들의 역습에 대비하십시오.

-파티 구성 : 1인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해상 루트] / [해저 루트]

어느새 포탈에 도달한 정호의 눈에 떠오르는 메시지.

그것을 단번에 ‘해상 루트’를 선택한 정호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 선물은 주고 가야겠지.”

정호는 비정한 사내가 아니었다.

“최대한 닿지 않을 정도로...”

생지옥을 향해 나아가는 저들에게 경고의 의미를 남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발포.”

다만, 검은 수염의 말처럼.

신사적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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