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화 >
# 61화
두 번째 오 성급 화신, 멀린.
결과적으로 볼 때, 그 저격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정호의 얼굴은 그리 좋지 않았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게.’
그도 그럴 게.
실질적으로는 3만 코인이나 되는 코인을 투자하고서, 얻어낸 것은 없다.
고작해야 도감 두 개 정도.
스탯으로는 전체 스탯 15정도를 올렸을 뿐이다.
난데없이 단일 픽업이 아닌, 무료인 프리미엄 뽑기에서 튀어 나올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코인을 장비 뽑기에 사용하는 건데.’
뽑기라는 것이 항상 이렇다.
늘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
효율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을 거듭하여 최대의 이득을 보겠다고.
극악의 확률이라는, 현실의 벽은 그따위 계획을 아무렇지도 않게 쥐어 패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정호의 마음을 달래는 것은, 뽑아낸 녀석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스탯이다.
-대마도사 멀린☆☆☆☆☆
-힘 : 18 체력 : 30 민첩 : 28 지능 : 225
‘이런 미친.’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는 스탯이 눈에 떠오른다.
힘과 체력, 민첩의 능력치는 그야말로 비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을 정도다.
‘캐스터의 왕이라고 불릴 만 해.’
아직 도감 스탯이 적용되지도 않았음에도, 순수한 지능 능력치가 ‘225’.
캐스터 계열에서는 그야말로 견줄 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탯이지 않은가.
‘스킬도 알고 있는 대로고.’
그 스킬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비틀렸던 정호의 입에서 드디어 미소가 번졌다.
[앤 보니★★☆가 스스로의 단련을 위한 여정에서 복귀합니다]
[메리 리드★★☆가 스스로의 단련을 위한 여정에서 복귀합니다]
“주인은 꽤나 사람 굴리는 걸 좋아하나 봐?”
“...재미없었어.”
앤 보니와 메리 리드까지 성공적인 각성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당.
‘됐어.’
한 때는 어떻게 할지 전혀 갈피가 안 잡히던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이 절로 사그라들었다.
‘남은 것은 영약.’
생각보다 악독한 상황에 그것을 모두 가격이 싼, ‘랜덤 영약’을 선택하려 했으나.
이제 그럴 필요 따위는 없다.
“멀린.”
금빛의 카드.
멀린이 자신에게 찾아왔으니까.
화아아아아악-.
녀석은 그러한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남성형의 화신임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은발을 늘어뜨린 미청년의 모습은 시선을 한 번에 모으기에 충분했다.
‘역시 재수 없게 생겼네.’
정호의 입이 다시금 뒤틀렸다.
‘기생오래비 같이 생겨가지고.’
남자가 남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마이 로드.”
녀석은 그런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는 듯.
가슴에 손을 올리고서 작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오. 괜찮은 녀석이 왔네.”
“...난 별로야.”
앤과 메리가 곧장 감상을 늘어놓을 정도로 말이다.
‘메리가 정확하군.’
정호는 그런 화신들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멀린은 톨비아에서도 그 성능만큼이나 성격도 유명한 녀석이었으니까.
“레이디 분들이 계셨군요.”
멀린은 앤 보니와 메리 제인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조그마한 안경을 들어 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다만, 조금 전의 그 성스러움은 어디로 갔는지.
그 눈이 살짝 맛이 가 있다.
“죄송합니다만, 레이디. 저에게 잠시간의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꿈틀꿈틀.
마치 크라켄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불순한 손가락이 앤 보니에게 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정호가 외쳤다.
“소환 해제.”
“잠시, 마이 로드. 저는 아무 것도.”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사라지는 멀린.
“저, 저 새끼 뭐야.”
“...변태처럼 생겼어.”
정호는 이마를 짚었다.
‘하아.’
메리의 말처럼.
녀석은 분명 성능적인 면에서 흠 잡을 것이 없었으나···.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이 있었다.
* * *
‘크라켄의 역습’이 찾아온다는 아스텔의 알림이 울려 퍼진지는 얼마 되지는 않았다.
다만.
‘기묘하군.’
묘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세상에 깔려 있었다.
분명 그림자 지하 성채 때에는 곧장 나타난 수없이 많은 포탈들로 떠들썩했던 것과는 반대의 상황이었다.
-왜 아직 포탈이 나타나지 않는 거임?
┖내가 알겠음?
┖안 오면 좋은 거지 뭘.
┖┖나 사직서 냈는데, 뭐가 좋아. 콱 마.
분명 알림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던전의 입구, 포탈이 발견되지 않은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단단히 벼르고 있던 유저들이다.
그들은 한 시라도 빨리 던전으로 입성하고 싶어, 몸이 달아올라 있는 상태.
-단순히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겠지.
그런 낙관적인 시선이 있기는 했으나.
‘그럴 리가 없지.’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찾지 못한 것뿐이야.’
아스텔의 대응은 한 발자국 정도 빠른 경향이 있었으나.
시련과 침공에 대해서만큼은 꽤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 침공의 대상은 20대 공격대 던전인 ‘크라켄의 역습’.
녀석들의 필드가 어디인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바다다. 이거 바다에 포탈이 있을 게 분명함.
┖크라켄의 역습이면... 맞는 말인 것 같은데?
해양 던전인 크라켄의 역습의 포탈이 바다 위에 있다는 걸 예상하기란 쉬운 법이다.
다만, 보통의 유저들이 아직까지 찾지 못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어디 선박이라도 빌려야 하나?
┖데려다 주려는 배는 있긴 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꽤나 컸다.
그제야 사람들은 상황이 심각해졌음을 깨달았다.
만약 정말로 바다에 포탈이 열리고 말았다면.
그들로써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런 불안감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현실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동해 인근, 포탈 발견]
그들의 불안대로.
바다 위에 나타난 포탈.
-아, 진짜. 어떻게 저걸 공략하러 가라는 거임?
┖해군이나 공군에서 지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유저들은 그 포탈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빨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런 그들에게 희소식이 하나 존재했다.
[세계 각지에 나타난 상인들?]
-야, 이 교역 상단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이 선박 파는데?
아스텔의 첫 번째 보상.
그 중 하나였던 이 교역 상단들이 나타났으니까.
* * *
“이쪽으로 오시게.”
정호는 자신의 손을 잡고 이끄는 이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를 처음 봤을 때부터 거물임을 잘 알 수 있었다네.”
살랑살랑.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것은 쥐의 꼬리를 달고 있는 상인이었다.
‘이 녀석이 이 교역 상단인가?’
아스텔의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교관 NPC만이 아니다.
이 교역 상단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으나, 이런 방식으로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녀석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항구에 수없이 많은 선박을 대고서는 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보게. 라크레시아 지역의 범선 M774라네. 적재량 20톤가량에 함포는 무려 2개가 부착되어 있고, 항해사 용병도 하나 붙여주지. 어떤가.”
비단 그것은 정호뿐만이 아니라, 항구에 도착한 유저들을 향해 건네지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와, 얼마에요?”
유저들은 하나 같이 눈에 불을 키고는 그들의 손에 이끌렸다.
“단 2,000코인만 내게. 그걸로 한 달은 빌려주지.”
“엑? 뭐가 그렇게 비싸요?”
다만 그 선박들의 가격은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온전히 주는 것도 아니고, 대여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가격을 요구하는 선박들.
“아니, 아니. 잘 생각해보게. 부서지지만 않는다면 반납할 때 그 돈의 절반을 되돌려주지.”
“그, 그건 좋지만. 제가 코인이 그만큼 없는 걸요?”
“뭐? 그걸 먼저 말을 했어야지! 당장 꺼져!”
그들은 꽤나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코인이 없는 이들에게는 가차가 없었다.
“어떤가? 구매하겠는가?”
그것은 정호에게도 같은 제안을 내걸고 있었다.
“더 비싼 건 없나?”
그 반응은 아스텔 유저들과 달랐지만 말이다.
쥐꼬리를 달고 있는 상인은 갑작스런 정호의 요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함박웃음을 내지었다.
“그래! 첫 번째 침공을 막아냈다고 하기에, 분명 이 지역의 녀석들은 코인이 많을 걸로 알았는데 영 신통치 않았거든. 역시 내 눈은 틀림이 없었어.”
싱글벙글 미소를 내지으며, 정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런 코인은 없지만 말이야.’
이미 모든 코인을 탕진한 정호다.
선박을 살 만한 코인 따위는 남아있지도 않았지만, 그것을 알려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이건 어떤가. 라크레시아 지역의 걸작. 80톤 급 갤리온 선, A1 하인츠 호네. 해상전이라면 이 녀석만큼 대단한 녀석이 없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두 팔을 활짝 펼쳐 보여주는 선박은 상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 대여한다면, 솜씨 좋은 항해사를 둘. 가격도 1만 코인으로 해주겠네.”
“일 만?”
“역시 너무 비싼가? 그래도 손상 없이 돌려주기만 한다면, 8천 코인이나 되돌려주겠네.”
상인은 인심 썼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자신의 쥐꼬리를 흔들어댔다.
‘대여가 아니라, 그냥 강매였군.’
그에 정호는 눈썹을 한 차례 들어 올리고는, 입술을 비틀었다.
‘해상전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 손상 없이 돌려주기는.’
흔한 상술.
이 이 교역 상인들은 애당초 대여를 해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정호가 이 선박을 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왜 그런가? 구매할 텐가?”
그런 정호의 낌새를 눈치라도 챈 것일까.
쥐꼬리 상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여, 코인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더 비싼 건? 가장 비싼 걸로 보고 싶은데.”
“으힉? 저, 정말인가?”
태도가 확 돌변한다.
정호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녀석들이 가진 가장 좋은 선박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그럼 따라오게! 이거 봉을...아니, 봉황님이 오셨구만!”
녀석은 정호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곧장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 때.
딸랑딸랑-!
“이곳의 아리따운 누님 분께서 120톤 급의 최고 등급 S1 갤리온 선, ‘아리아의 눈물’을 대여하셨습니다! 캐시 온리! 2만 코인!”
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외침.
그와 동시에 여러 유저들의 손을 붙잡고 있던 상인들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팽팽-!
그들이 가진 쥐꼬리가 마치 헬리콥터처럼 돌아갔다.
“이야! 누님 아쉽지 않은 선택이야!”
“아리아의 눈물! 아리아의 눈물!”
“신의 걸작품을 산 자네야 말로 신일세!”
“신! 신!”
실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모습이었다.
“저 사람 레이나 아니야?”
“하긴, 저런 정신 나간 가격을 살 정도면 레이나 밖에 없지.”
사람들은 곧장 그 아리아의 눈물을 구매한 이가 누군지 깨달았다.
랭킹 3위의 레이나, 김세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와아아아!”
“레이나! 레이나!”
분위기에 취해,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아, 아니 저 녀석이...! 내 실적을!”
다만, 정호를 이끌고 있던 상인의 얼굴은 침울해졌다.
자신이 팔려고 했던 물건이 바로 저 아리아의 눈물이었던 탓이다.
“미안하네. 가장 비싼 물품은 방금 나간 모양이네. 그래도 A1 하인츠 호 정도라면...으잉?”
말을 이어가던 상인의 머리가 기울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따라오던 봉, 아니 봉황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어디? 어디 갔지?"
꽤나 당황했는지, 한참이나 그리 외치던 상인은 이내 깨달았다.
“젠장! 거지였었군!”
자신이 봉이라고 생각했던 손님이 도망친 것임을.
“카악! 퉤! 에라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땅에 침을 거하게 뱉어버린 쥐꼬리 상인은 미련 없이 정호의 존재를 금세 잊었다.
“좋은 선박이 있는데 어떤가?”
그저 다음 봉을 찾으러 나설 뿐이었다.
* * *
정호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항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아리아의 눈물이라는 갤리온 선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선박에 달린 함포만 하더라도 8문에 달해 있었고, 상인들이 말하던 용병도 5명은 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2만 코인은 너무했지.’
아무리 파티 단위 이상의, 공격대를 위한 선박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일반 유저가 사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레이나 정도의 자금력이 아니라면 말이지.’
하지만 그것을 레이나가 가져갔음에도, 정호에게는 전혀 불안감이 들지 않았다.
이 교역 상단들이 가져온 선박은 분명 대단하기 그지없었으나.
이리 비교하고, 저리 비교해도.
자신이 손에 쥔 것에 미치지는 못했으니까.
“에드워드 티치.”
“으으, 무슨 일인교. 주인.”
아직 숙취가 해소되지 않았는지, 앓는 소리를 하는 검은 수염을 향해.
정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스킬, 앤 여왕의 복수.”
“으응? 정말인교? 그게 사실이여?”
곧장 검은 수염의 얼굴이 돌변했다.
언제 속이 안 좋았냐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갸하하하하하! 출항의 시간이여. 출항~!”
타앙-! 타앙-!
신이 난 듯, 총을 연거푸 하늘을 향해 쏘아낸다.
처얼썩-!
그와 동시에 바다 아래에서 떠오르는 선박이 한 채.
그 ‘아리아의 눈물’ 선이 조그마한 어선으로 전락할 정도의 위용을 뽐내는 200톤 급의, 함포만 50문에 달하는 프리깃 선이 떠오른다.
“약탈의 시간이여!”
카리브 해의 악몽이라 불렸던.
‘앤 여왕의 복수(Queen Anne's Revenge)’가 21세기에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냈다.
“Ahoy!"
검은 수염의 의미 모를 외침과 함께.
펄럭-.
섬뜩하기 짝이 없는 해골이 바람에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