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0화 >
# 60화
종말이 다가온다며 찾아온 침공.
고작해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불과했으나, 세상은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단 일주일간의 평화로운 시간.
그것을 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한 채, 찾아오는 두 번째 침공.
‘크라켄의 역습이 침공해온다.’
본래라면 비상이 걸려도 무방한 그 상황 속에서.
-크라켄의 역습도 톨비아 맞지? 공략법 좀 알려줄 사람.
┖기사에도 떴다. 조금 정석 루트라서 까다로운 것도 있긴 한데, 저만큼 안정적인 공략법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그 침공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번에는 랭커에 들어 준다. 잘 봐라. 새로운 신성이 등장할 거니까.
┖웃기고 앉아 있네. 그럴 거였으면, 차라리 길드 문의라도 넣질 그랬어?
-길드에 들면, 뭐 데려는 가 준다나? 지들끼리 해먹을 게 뻔한데.
그들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을 막아내고서 얻어낸 보상으로 충분한 레벨 업을 해내고서.
교관 NPC를 통해, 스킬의 숙련도를 쌓아 올린 아스텔 유저들이다.
[흔한 랭커의 수입 공개]
거기에 침공이 끝나고서, 랭커들의 수입이 공개되며 동기 부여까지 되고 있는 마당이다.
그들에게 이번 두 번째 침공은 자신도 그러한 랭커가 될 수 있다는 일발역전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이번에는 누가 가장 먼저 공략할까?
본래 그 이름을 날렸던 랭커들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을 막음에 있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과금망겜플레이어.
-과망플이지.
-과망플 외에 누가 있음?
┖드래곤까지 부리는 놈인데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겠어?
그 중에서도 단연, 그 가치를 입증해낸 것은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였다.
단 한 번의 스킬로 모든 적을 쓸어버리는 압도적인 힘.
더불어, 드래곤의 머리를 한 괴생명체의 갑작스런 출현에도 불구하고 쓰러뜨리지 않았던가.
단 한 사람이 해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업적을 남긴 랭커다.
-나는 ‘가디언’에 한 표 주고 싶은데?
다만, 그런 한 사람의 독주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무슨 개소리임? 영상 보기나 했음?
┖힙스터충 또 납셨네.
사람들의 반발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아니, 생각이란 걸 해 보셈. 아무리 과망플이 잘 나간다 해도 결국은 솔로 플레이어 아님?
┖그렇긴 하지.
-그럼 가디언의 수는? 이미 미국 랭커들 중 절반이 가디언에 들어갔는데? 애당초 한국에서도 레이나가 길드 만들기도 했고.
다만, 그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아무리 랭킹 1위인 과금망겜플레이어가 대단하다고 한들.
그는 홀로 사냥을 이어가는 솔로 플레이어일 뿐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것이 아닌, 스스로도 랭커인 이들이 만들어내는 길드에는 그 힘이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번 ‘크라켄의 역습’은 20인 공격대 던전임. 공략법만 봐도 알 수 있을 거임. 솔로 플레이어인 과망플에게는 지옥이라는 뜻이야.
┖즐. 과망플은 신임.
┖그거 신에 대한 모독임.
인터넷상에서는 이번에 침공하게 될 ‘크라켄의 역습’을 누가 먼저 클리어 하게 될 지에 대해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내 말 기억해라. 절대로. 절대로. 과망플은 이번 던전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있음. 오히려 레이나 필두의 ‘대마법사’ 길드에 가입할 거라고 본다. 이 글은 성지가 될 거임 ㅋㅋ
┖머저리의 성지 on.
┖박제 on.
하나 그 중심에 선 과금망겜플레이어, 정호에게 닿는 일 따위는 없었다.
물론 그 글과 정호가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호는 대마법사라는 길드 대신.
“나와라이. 나와라이. 나와라요. 나와라 이제. 이노무 곤드레 나와라요.”
‘대마법사’를 직접 뽑으려 하고 있었으니까.
슈웅-.
“시발!”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 * *
“아틸라. 조금 만 더... 왼쪽이 아니었을까?”
정호는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혹여 자신이 공황장애가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수롭지 않은 척.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고 있었으나···.
기묘하게도 심장은 쿵쾅쿵쾅 뛰어대고, 손바닥에서는 의도치 않은 진땀이 송송 맺혔다.
‘반드시. 반드시 뽑아야 해.’
그도 그럴 게.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지 않은가.
할인 찬스로 30프로 할인 된 11연속 뽑기는 700코인 밖에 하지 않고.
거기에 단독, 단일 픽업 찬스로 10배나 되는 확률까지.
아예 먹으라고 입 안으로 넣어주기까지 하는데, 그것조차 입에 가져다 대지 못하면 앞으로의 뽑기는 틀린 일이나 다름없다.
‘멀린이라고. 멀린.’
심지어 그 저격 대상은 멀린(Merlin).
아서왕 전설에서 등장하는 대마법사이자 현자.
그 유명세만큼이나, 톨비아에서도 각별한 취급을 받는 녀석이기도 했다.
‘1티어.’
신들이라 불리는, 육 성 등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오 성 등급의 화신이 1티어라는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멀린은 남성형의 화신.
과금 게임답게 그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톨비아 유저들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5성의 남성형 화신을 1티어로 올려둔 까닭은 당연하게도, 그 멀린의 사기성 짙은 스킬셋 덕분이다.
‘팔방미인 멀린.’
캐스터 계열에서는 으뜸이라 불리는 멀린.
팔방미인이라는 이명에서 알 수 있듯, 멀린은 다방면에서 뛰어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광범위에 펼쳐지는 사냥용의 마법 스킬.
대체로 방어력이 높은 보스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방어도 하락의 디버프 스킬.
아군에게 이로운 효과를 제공하는 버프 스킬 겸 체력 회복의 스킬.
게다가, 멀린의 필사(必死) 스킬은 대 보스전의 특화된.
단일 개체 최강의 화력을 뽐내는 궁극기마저 존재한다.
‘방깍 하나 때문에라도, 공격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녀석이니까.’
같은 오 성급인 제갈공명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는 있었지만, 멀린의 위용에는 도달하지도 못한다.
‘특히나 이번 보스는 크라켄이니까.’
정호는 이를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 분기점이라고 보았다.
이번 던전은 ‘크라켄의 역습’.
크라켄은 특히나 높은 방어도로 인해, 파티의 화력이 중요한 보스다.
방어도를 깍는, 방깍 스킬이 있는 멀린은 그것 하나만이라도 반드시 쟁취해야 할 녀석이기도 했다.
하지만.
슈우웅- 슈웅- 슈웅-.
“왜. 왜... 안 나오는데.”
정호는 절망하고 있었다.
잔뜩 기대를 머금고서, 집으로 향하던 걸음이 바로 몇 분 전이었건만.
‘2만... 2만 코인이 녹았어....!’
그 많던 코인이 단숨에 삭제되고 있는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용무구를 뽑아야 한다고...’
특히나 남은 코인으로 사냥용으로 결정된 해적들의 전용무구까지 뽑아주려고 했던 정호로써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틸라... 잡지가 거꾸로가 아닐까?”
“주, 주인? 조금 쉬는 건 어때?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지.”
그런 정호의 상태가 어찌나 안 좋아 보였던지.
침묵을 지키며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아틸라조차도 걱정스러운 듯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안 돼.”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간 정호의 귀에 들어 올 리가 만무했다.
지금이 흐름이 아니라는 사실은 정호도 잘 알고 있었다.
빰빠람-!
-빌헬름 텔☆☆☆
-힘 : 30 체력 : 44 민첩 : 60 지능 : 40
가끔씩 울려 퍼지는 빵파레에서도 느낌이 전혀 오지 않는다.
스위스의 건국 영웅이자, 석궁의 명인인 빌헬름.
로빈 후드와 비교되는 영웅이 떴으나.
멀린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지 않은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지만 정호는 멈출 수가 없었다.
당장 ‘30프로 할인의 찬스’는 오늘 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주작질. 개 같은 주작질.’
이 즈음 되니, 이를 갈 수밖에 없다.
요즘 톨비아의 악독하기 짝이 없는 확률을 맛보지 않아서 너무도 가볍게 생각했다.
아니, 어느 순간 운수가 트인 것 마냥 탄탄대로 나아가는 자신의 운을 너무 맹신했을 지도 몰랐다.
‘병신. 머저리!’
스스로에게 채찍질한다.
5성 화신의 확률은 0.0012%.
그것이 10배가 되어 봤자, 0.012%이지 않은가.
‘기댓값만 해도 8만 3천 코인.’
그것을 고작해야 4만 코인.
제아무리 30프로 할인이라고는 하지만.
반도 되지 않는 코인으로 날로 먹으려고 했으니, 이러한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줄 때는 됐잖아.’
슈웅- 슈웅-.
차라리 3배 이벤트가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정하기 그지없는, 룰렛 소리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슈웅- 슈웅- 슈웅-.
피땀을 흘려 모은 코인이 삭제되고 있다.
코인들과 함께 목욕을 즐기고, 산책을 나가는.
망상에 불과한 추억들이 박살이 나고 있다.
마차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정호는 아예 눈을 감았다.
슈웅- 슈웅- 슈웅.
빰빠람-!
드디어 그 개 박살 나던 코인들이 한 건 올렸다.
‘이거다.’
눈을 감고 있는 정호였으나, 기회는 지금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1만대까지 추락한 코인의 수.
앞으로의 빵파레에서 멀린이 나올 확률은 없다고 판단했다.
힐끔.
정호는 간신히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는, 그 내용을 확인했다.
Merlin.
당장 보이는 것은 분명, 멀린의 철자.
정호의 태도가 돌변했다.
“됐다! 됐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눈을 활짝 뜨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래! 뜨지 않는 게 이상하지!’
현재의 자신은 행운의 여신이 들러붙어 있다.
운수가 대통이란 말이다.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멀린의 능력치를 확인하는 것을 놓치진 않았다.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남성을 위해서 자신의 피땀 어린 코인이 투자되지 않았던가.
“멀린!”
그리 외치면서, 멀린의 스탯을 확인하는 정호.
한데.
-메를린 암브로시우스☆☆☆
“메를린?”
메를린 암브로시우스(Merlin Ambrosius).
로마-브리타니아 전쟁의 지도자가 그곳에 있었다.
“넌 누구야아아아아아아아!”
정호의 참담함은 말을 할 것도 없다.
꿈과 희망.
코인까지.
모조리 박살이 났다.
* * *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 장작은 새하얗게 변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람이라고 하여 다를까.
“주인? 주인? 괜찮아?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
정호는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탓에 머리에서는 김이 올라오고 있다.
‘난 끝났어.’
아직 1만 코인이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멀린을 뽑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괜찮아. 사실 나쁘지 않잖아?’
고작해야 저격에 실패했을 뿐이다.
완전히 무과금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두 개 정도의 삼 성 도감이 완성되어, 스펙 업 자체는 성공한 것이나···.
‘망했어.’
전혀 아니다.
그리 자위한다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이성을 찾아야 해.’
하지만 그렇다하여, 정호가 인생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1만 코인.
멀린의 확률인 0.012%를 뚫기는 어렵다.
지금이라도 멈춰 세워야 한다.
‘어디에 쓸 지는 정했어.’
그렇다면, 남은 코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해 떠올려야 한다.
그렁그렁.
괜히 눈에 눈물이 고이지만, 그것을 가까스로 이겨낸다.
‘조금 빠듯하긴 하겠지만, 뽑기가 전부가 아니니까.’
정호는 차차, 마음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영약도 있고. 장비도 뽑아줘야 하고.’
전용무구 정도의 저격은 무리였으나, 검은 수염을 필두로 한 해적들의 ‘약탈’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 그 때, 정호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하나.
[VIP 프리미엄 뽑기]
[3성 이상의 화신이 등장합니다]
한 달마다 찾아오는, VIP전용의 프리미엄 뽑기의 메시지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로 딱 한 달 째였던가.’
정호는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큰 감흥을 가지지는 못했다.
애당초 프리미엄 뽑기라 하여, 고 등급 화신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고작해야 삼 성 등급이 전부겠지.’
지난번에는 사 성 등급의 서서가 나타나긴 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일인지는 정호도 잘 알지 않은가.
“VIP 프리미엄 뽑기.”
휘리리릭-.
정호의 말에 따라, 돌아가기 시작하는 룰렛.
하지만 정호의 시선은 가지도 않았다.
‘먼저 상점부터 들려서, 영약을 구해야겠어.’
이미 관심은 저만치로 떨어져 있다.
오히려 영약을 랜덤으로 할지, 아니면 정가 구매를 할 지가 더 고민인 마당이다.
빰빠람-!
프리미엄 뽑기이니, 당연하게 울리는 빵파레.
“도감이나 채웠으면 좋겠네.”
그리 말하며, 내용을 확인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행운이란.
“어...?”
기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법이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어이가 없었다.
Merlin.
분명 그 철자가 분명했다.
다만, 이번에는 메를린이 아니었다.
-대마도사 멀린☆☆☆☆☆
0.012%에서도 뚫지 못한, 그 녀석이.
0.0012%에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