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9화 >
# 59화
정호는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술이 가진 알코올, 그 자체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적당히 달아오르는 그 알딸딸함과 고양감은 묘한 자신감을 주니 말이다.
다만, 그 자신감이란 것이 문제다.
모든 말썽은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오기 마련이니까.
술을 꺼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원인은 거기서 오는 말썽, 씻을 수 없는 실수에서부터 비롯된다.
정호 또한, 그런 기억이 있었다.
그저 일상과 같던 회식.
알코올의 힘으로 잔뜩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정호는 정말이지 뼈아픈 실수를 했다.
‘어쩌자고...내가 월급날에 술을 마셨지?’
다음 날, 아침.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한 달 동안 살아갈 생활비를 모조리 탕진해버리고 만 직후였으니까.
그 내역을 본 정호의 마음은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내 인생을. 톨비아에... 다 박았다고?’
이미 필름은 끊겨, 제대로 된 기억조차도 없는데.
그나마도 건진 것 하나 없이, 무과금이나 다름없는 결과물만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 이후로 정호는 맹세했다.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주인도 한 잔 하라니까?”
“됐다.”
“...재미없어.”
술판이 벌어진 집 안에서, 권유를 한사코 거절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갸하하! 럼주 정도는 아니어도, 이 소주란 것도 목 넘김이 좋구먼.”
“...꽤 마음에 들었어.”
“주인, 정말 안 올 거야? 다 마셔버린다?”
정호는 친목도모를 이유로 거실에서 소주를 연거푸 들이 키고 있는 일남이녀의 해적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미치겠군.’
바다의 지배자, 픽업 찬스의 3배.
그 효과는 분명 놀라울 정도였다.
‘아직 4만 코인이 남아 있으면서도... 3성이 다섯. 4성이 하나라...’
고작해야 2만 코인으로 얻어낼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평상시라면 사 성을 하나 노려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의 극악한 확률.
분명 기뻐해야 할 상황이 분명했으나.
정호가 이토록 골치를 겪는 까닭은.
‘죄다 해적들이라니.’
새롭게 얻은 삼 성 등급의 화신은 둘.
그것이 모조리 해적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나쁘지는 않은데...’
다만, 상황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앤 보니☆☆☆
-힘 : 65 체력 : 50 민첩 : 24 지능 : 20
하나가 앤 보니(Anne Bonny).
저 술판에서도 그 존재감을 뽐내는, 불에 타오르는 듯한 새빨간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 여성형의 화신.
-메리 리드☆☆☆
-힘 : 17 체력 : 15 민첩 : 74 지능 : 40
또 하나가 메리 리드(Mary Read).
앤 보니와 대비될 정도로 차분할 정도로 새파란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 여성형의 화신이었다.
둘은 같은 시기, 같은 배에 승선했던 해적들임을 강조라도 하듯이 머리칼을 제외한다면 쌍둥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 닮아 있었다.
“이봐, 벌써 끝이야?”
“...재미없게.”
“갸, 갸하하. 이까짓 소주쯤이야...!”
성격은 그 반대인 듯 해보였지만 말이다.
‘아직 스킬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둘 다 해적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음에도, 반항의 기운 따위는 없었다.
순수한 스탯도 삼 성 등급의 화신들 중에서는 상위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키워볼만한 녀석들이었으나.
그 스킬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그들을 소환한 까닭은 바로 도감에 있었다.
[화신 도감]
-카리브 해의 해적들 : 카리브 해를 주름 잡던 해적들이 모였다.
-능력치 : 힘 20증가, 체력 20증가.
-조건 :
에드워드 티치☆☆☆☆ (보유중)
벤자민 호르니골드☆☆☆ (미보유)
앤 보니☆☆☆ (보유중)
메리 리드☆☆☆ (보유중)
헨리 모건☆☆☆ (미보유)
-세트 효과 : AHOY!
2세트 : 소환된 해적들은 전투 시 체력이 50 상승합니다.
3세트 : 소환된 해적들은 전투 시 일정확률로 이로운 효과, ‘약탈’이 부여됩니다.
‘이건 탐이 난단 말이지.’
2세트의 효과인 단일 스탯, 체력 50 증가라는 효과는 꽤나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한 내용이었으나.
정호가 주목한 것은 3세트의 옵션.
‘약탈.’
-약탈 : 아직 쓰러지지 않은 적에게서 강제로 재산을 빼앗는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코인 복사기.
특히나 약탈이라면 맡겨달라던, 검은 수염의 호언장담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맞나?’
다만, 그것을 쉬이 손에 거머쥐지 못하는 까닭은 당연하게도.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림자 지하 성채 정도라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림자 지하 성채는 어디까지나, 4인 파티 던전.
하지만 톨비아에서 파티 던전이란 어디까지나 튜토리얼에 불과한 컨텐츠다.
메인은 어디까지나, 최대 20인이 참가하는 공격대 컨텐츠.
정호가 예상하고 있는 해상전 또한, 모두 그 공격대 던전에 해당하지 않은가.
‘20인의 분량을 혼자 해내야 한다.’
4인에서 20인.
그 난이도가 대폭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틸라라는, 한 번의 각성을 이루어낸 오 성급의 화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쉬이 공략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난이도.
위험부담이 배 이상으로 커진 상황에서, 녀석들을 활용하겠다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어려웠다.
‘각성이라...’
해결책은 분명 있기는 했다.
각성을 이룬 화신과 그렇지 않은 화신의 격차는 크다.
풀 각성을 이루어 낸 삼 성 등급의 화신이라면.
순수한 오 성 등급의 화신을 ‘스탯’만이라면 충분히 비벼볼 만 했으니까.
‘남은 호루스의 그림자는 23개.’
3성 이하의 화신 각성 재료, 호루스의 그림자.
30프로의 확률에도 불구하고, 키드를 비롯한 화신들이 빠르게 각성했던 탓에 그 수는 그리 줄어있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에도 앤 보니와 메리 리드. 두 명을 각성 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음...”
정호의 고민은 깊었다.
“갸. 하, 하, 하.”
“드르렁.”
“...”
그 고민이 얼마나 길었던지.
그토록 술을 찾아대던 녀석들은 상태 이상, ‘과음’ 상태에 걸려 곯아떨어지기까지 했다.
‘...포기하자.’
정호는 결국 물러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용할 방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약탈이라는 효과를 검은 수염 혼자서 해낼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극한의 이득을 취하려면 지금이 적정기라 판단했으나, 그 이득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스킬은 확인해야지.’
그래봐야 삼 성 등급의 화신.
자신의 마음이 바뀔 리는 없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보니와 메리의 스킬 창을 확인하려던 그 때.
“주인, 저 녀석들 아무래도 나쁜 녀석들인 것 같아. 그냥 처내자.”
“음?”
갑작스레 들린 소년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키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있었지.’
소환 개체 수가 정해져 있기에, 아틸라를 소환 해제하는 과정에서 빠졌던 모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녀석을 소환 해제하려던 그 때.
“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정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하나, 둘, 셋...”
곯아떨어진 해적들의 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어간다.
“넷.”
그 손가락의 마지막 종착역은 키드였다.
이상했다.
메리와 보니, 티치. 그리고 키드까지 소환되어 있는 상황.
‘최대 소환 개체 수는 셋 일 텐데.’
이번 니네체르를 손에 넣게 되면서 보스 도감으로 얻어진 소환 개체 수 증가.
그것을 통해 최대 셋까지 소환 가능하게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넷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그게 무슨 소리야...요. 주인.”
그 원인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다.
정호는 황급히 메리와 보니의 스킬 창을 열었다.
-연계 스킬
[일심동체(一心同體)] : 메리와 보니를 보유 중 일 때, 둘은 하나의 화신으로 취급된다.
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그보다 저 녀석들 얼른 처내자니까?”
칭얼대는 키드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친하게 지내라.”
“아니 왜! 나 죽이려고 했다니까?”
키드가 발작을 일으키긴 했으나, 그건 정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이런 취급은 더 이상 못 버텨! 하다못해 저 검은 수염 괴물만이라도...”
“사이좋게 지내라고.”
“아, 넵!”
키드가 울상이 되었다.
물론, 그것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정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지난 일주일.
정호는 휴가를 끝내고서, 회사에 매일 출근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먼저 퇴근해보겠습니다.”
“오늘도 교관한테 가나?”
“네, 그래야죠. 요즘 부쩍부쩍 숙련도가 오르고 있거든요. 스탯도 오르고 있고. 이거 보세요.”
동하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스테이터스가 담긴 스마트워치를 들이댔다.
“...그래, 얼른 가 봐라.”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휘 내젓자, 김이 빠진 듯 동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옙! 일도 없는데 선배님도 얼른 퇴근하십쇼.”
끼이이익- 달칵.
오래된 경첩의 비명소리와 함께 동하가 떠나자, 정호만이 남게 된 회사 내부는 침묵이 깔렸다.
“후우...”
정호가 매번 이렇듯, 회사로 출근하는 까닭은 동하라는 존재를 통해 아스텔 유저의 성장을 확인하고 있는 것도 있었으나.
‘도대체 언제 바뀌는 거야.’
그보다는 눈앞에 있는 메시지 창.
[픽업 찬스! 바다의 지배자!]
[픽업 찬스! 어둠의 지배자!]
저 픽업 찬스가 바뀌기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함도 있었다.
아직 남은 4만이라는 대량의 코인.
그것을 쓰지 않고 버티려면, 이러한 일상이라도 보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2군은 결정했어.’
수집형 RPG가 그렇듯, 항시 같은 소환수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톨비아에서는 화신들을 ‘사냥용’과 ‘보스용’으로 나누어 운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체력적 안배도 그렇고, 역소환 되었을 시에 대처방안도 있어야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앵벌이 겸 사냥용.’
흔히들 앵벌이라고 표현하는, 재화 수급의 사냥용 2군은 해적들로 결정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착착 진행되고 있는 각성은 마음이 든든해질 정도.
다만, 문제는 공격대 보스의 존재다.
녀석들은 정호에게 있어서 직접적으로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
‘아틸라가 제아무리 각성했다고는 해도... 하나로는 무리지.’
말이 20인 공격대 던전이지.
정호가 해내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솔로 플레이다.
모든 코인과 재료들을 독식해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은가.
‘3배로는 어림도 없어.’
그렇기에, 정호는 참을 인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3배의 확률은 분명 대단하기 그지없지만.
고작해야 4만의 코인으로 5성 급 화신을 뽑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5배...아니, 10배는 줘야지.’
픽업 찬스의 로테이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바다의 지배자’나 ‘어둠의 지배자’처럼.
모든 삼 성 등급 이상의 화신이 등장할 확률이 높아지는 픽업 찬스에는 그 한계란 게 존재하는 법이다.
‘5성 등급 이상의 단일 픽업.’
노리는 것은 몇 명의 화신만이 확률이 올라가는 픽업 찬스.
혹은 단 하나만을 내세우는 단일 픽업.
만약 이 ‘픽업 찬스!’가 톨비아가 아직 게임이었을 시절과 같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는 그 타이밍을 노려야만 했다.
탁. 탁. 탁. 탁.
째깍째깍 거리는 시계의 초침과 함께, 정호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들겼다.
인고의 시간은 점점 그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으나, 그만큼 조급함이 떠올랐다.
탁탁탁탁탁탁.
“빨리...빨리...빨리...”
이윽고.
[픽업 찬스! 바다의 지배자가 종료됩니다]
[픽업 찬스! 어둠의 지배자가 종료됩니다]
“돼, 됐어!”
그 끝이 찾아오고, 새롭게 바뀌어 지는 픽업 찬스.
한데, 그것과 동시에.
-지구의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아스텔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크라켄의 역습이 지구를 침공합니다.
정호의 예상처럼.
20인 공격대 던전이 찾아왔다는 알림.
하지만 그 따위 것은 이미 정호의 귓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됐다!!! 됐어!!!”
정호는 아무도 없는 회사 내에서 소리를 내질렀다.
이미 눈은 완전히 돌아가, 실신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정도.
하나,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할인 찬스! 11회 연속 뽑기의 가격이 하루 간 30프로 인하됩니다]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단일 픽업!]
[대상 화신의 등장 확률이 10배가 됩니다]
아니, 이건 해일이다.
거대한 해일.
그것이 정호의 등을 완전히 떠밀며, 당장 쟁취하라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픽업 찬스! 대마법사 멀린(Merlin)이 찾아옵니다]
“멀린!!”
그 이름을 부르짖는 정호의 얼굴에는 광기가 서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