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8화 >
# 58화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
사상 최악의 대 해적.
카리브 해의 악마.
검은 수염.
해적왕.
티치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을 만큼 대해적의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영웅이다.
‘이 상황에서 검은 수염이라니.’
정호는 그것을 좋아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게, 해적이라는 화신 자체가 공격대에서 그리 선호되지 않는 이들이었던 탓이다.
문제는 그 반항에 있었다.
‘해적들은 운용하기 까다로운데...’
빌리 더 키드와 같은 부류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키드는 애초에 톨비아에서 나이의 설정을 15세로 설정한 탓에, 사춘기에 가까운 반항심을 보여주지만.
해적들은 엄연히 성인.
그것도 그들의 행동은 모두 범죄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 반항심이 키드와 같을 수는 없었다.
한데.
해적이 주구장창 계속해서 튀어나오더니, 그 피날레로 덜컥 해적왕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골치 아픈데.’
차라리 계속 뽑기를 진행하여, 다른 화신을 노려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에, 정호는 녀석의 상세 스탯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에드워드 티치☆☆☆☆
-힘 : 85 체력 : 92 민첩 : 32 지능 : 40
‘...놀랍군.’
다만, 스탯 자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도감처럼 어떤 부가효과도 붙지 않은, 각성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순수한 스탯이 이 정도라니?
그저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인외를 벗어나는 힘과 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형적인 탱커.’
이를 테면, 그림자 지하 성채의 준 보스인 아피스의 돌격을 막아낼 수 있는.
사 성의 탱커 클래스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가장 필요한 녀석이긴 한데...’
한 때는 아쉽기 그지없었던 화신의 존재.
그것을 손에 넣었다는 것은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아직, 아직이야.’
하지만 정호는 쉬이 미소를 내짓지는 않았다.
스탯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 스킬이 엉망이라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함정 카드 같은 화신은 톨비아에서는 흔한 격이었으니까.
슬쩍 [+]를 열어, 스킬을 바라보았다.
+스킬
[럼주, 한 병!]
-럼주를 마시는 것으로 모든 상태 이상을 회복한다.
-일정 시간, 체력 스탯이 증가한다.
-현재 증가량 : 2배 (최대 체력에 비례)
-주의 : 상태 이상 ‘과음’에 걸릴 수 있다.
‘완벽한 탱커 클래스네.’
첫 스킬을 확인하자마자, 정호는 군침을 흘렸다.
최대 체력이 증가하는 버프형 스킬.
그러면서도 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탱커라는 특수 클래스에게는 필수적인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특히나 다음이 해저 던전이라면.’
까다로운 ‘상태 이상’으로 인해서 공략하기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난 해저 던전이다.
예상대로 나타날 것이라고는 쉬이 판단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마음이 놓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과음 상태 이상 정도야, 감안할 수 있을 정도야.’
정호는 시선을 내렸다.
‘두 번째 스킬도 괜찮다면... 정말로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대수롭지 않게 확인한 스킬.
한데, 그 내용을 확인하던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앤 여왕의 복수(The Queen Anne's Revenge)]
-대 해적, 에드워드 티치의 전용함선인 ‘앤 여왕의 복수’호를 소환한다.
-[+]
어떤 부가 스탯 포인트도 없는, 깔끔한 스킬 설명.
하지만 그 단촐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했다.
‘녀석이 준 오 성 급이라고?’
흔히들 그런 존재들이 있다.
사 성에 배치되어 있지만, 오 성에 아슬아슬하게 미치지 못하는.
그렇기에 스킬은 두 개 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 성급의 화신만이 가질 수 없는 필사(必死)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에드워드 티치는 그런 자신의 가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
연계 스킬 : 포탄 세례가 활성화 됩니다.
[포탄 세례(Cannon Barrage)]
-선장이 명령을 내려, 전 함포의 포탄을 일제히 발사한다.
-포탄의 파괴력은 힘에 비례한다.
연계 스킬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사실상 세 개의 스킬을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티치가 왜 인기가 없었던 거지?’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물론, 한정적이긴 한데.’
‘앤 여왕의 복수’는 어디까지나 배의 형태를 지닌 소환 개체.
200톤이나 되는 함선을 사용할 수 있는 던전은 적고, 운용하기에도 꽤나 까다롭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압도적인 스탯과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유저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한데, 정호는 톨비아를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도 티치를 사용하는 이를 본 적이 없었다.
랭커 파티에 속해 있었던 탓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놀라운 힘이지 않은가.
‘...그래, 남성형이었어. 그것도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이내, 그 원인을 찾아낸 정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 성의 화신이라면 제아무리 남성형이라 한들, 미형의 외모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를 테면, 서서처럼.
누군가의 취향에는 맞을 법한, 중년의 미가 물씬 풍기는 화신처럼 말이다.
다만, 검은 수염이라 불리는 티치는 정 반대의 존재다.
현대 해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장본인.
거칠고, 사나우며,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약탈자.
‘좋기만 하구만 뭘.’
정호는 이제야 미소를 내지었다.
오히려 해적이라면 해적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에서 외모를 따지는 유저가 멍청하게 보일 지경이다.
‘직접 봐야겠어.’
다만 거기에 ‘반항’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정호는 녀석을 직접 소환시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해적의 왕이라 불리는 녀석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
“아틸라 소환.”
“무슨 일이야?”
자신이 가진 최강의 카드이자,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아틸라를 소환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키드 소환.”
“왜 불렀...엑!”
“요 꼬맹이가 왜 누님을 보고 놀라는 걸까.”
티치를 소환하기 전.
단 한 줌의 불안도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
“티치, 소환.”
그 속에서 녀석을 부르는 정호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떠올랐다.
* * *
해적왕, 에드워드 티치의 모습은 정호가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어째서 검은 수염이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는지 알려주기라도 하듯.
치렁치렁하게 늘어선 수염은 잔뜩 말려 있어 멀리서 본다면 검은 양초처럼 보일 정도다.
큰 키에 비해서 꽤나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는 티치.
시원한 복장 사이에는 지난날, 그의 삶을 보여줄 정도로 압도적인 흉터가 가득했다.
“...”
티치는 나타나서부터 한 동안 말없이 정호 일행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너, 너! 가만히 있어.”
그런 티치의 분위기가 상당히 위험해보였던 터라, 키드가 먼저 총을 들이대며 위협했다.
‘그렇게까지 쫄지 않아도 되는데.’
키드의 그런 행동을 만류하지는 않았으나, 괜한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었다.
애당초 키드는 두 번의 각성을 마친 상태.
단순한 능력치만으로는 티치에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
“...”
티치는 그런 키드를 무시하고선, 아틸라를 한 번 바라보는가 싶더니···.
마지막으로 정호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
꽤 긴 침묵이 이어지고.
드디어 열리는 티치의 입.
한데.
“반갑수다. 그쪽이 주인장이요?”
그런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에서 티치가 꺼낸 말은 실로 구수하기까지 했다.
“하?”
그것이 어찌나 얼토당토 없었는지, 잔뜩 긴장하고 있던 정호조차도 어깨를 떨어뜨릴 정도였다.
“거, 와 이리 살벌한지 모르겄소. 내 뭐 잘못이라도 했등가?”
“이, 이 아저씨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젠장! 암호인가? 암호인건가?”
그에 키드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런! 여기 작은 전사가 있는 걸 못 봤구먼. 미안허이.”
갸하하!
티치는 웃음을 터뜨리며, 키드에게 다가가 등을 팡팡 때렸다.
“니는 좋은 선원이 될 거여. 벌써부터 전사의 기질이 흐르는 구먼.”
“그, 그런가? 아하하. 내가 좀 용감하긴 하지.”
“갸하하. 그럼, 그럼.”
순식간에 키드와 함께 웃음을 흘리는 티치.
그 친화력은 도저히 그 반항심 많다던 해적의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행이군.’
한시름 놓았다.
사실 티치가 반항을 한다하여, 정호에게 큰 위기가 찾아오지는 않는다.
지금에 와서 사 성급 화신 하나가 반항한다하여, 그 힘에 밀리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다만, 기껏 뽑은 화신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은 정호에게는 뼈아픈 손실이었던 탓에 걱정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조금, 김이 새는데.’
어디 출신인지 모를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해적왕이라니.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묘한 카리스마를 보이던 모습과는 상당히 대비되어 사뭇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저 녀석. 꽤 하는데 주인?”
“음?”
그 평가가 바뀐 것은 아틸라의 말 덕분이었다.
아틸라는 흥미롭다는 미소를 내지으며, 티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력을 먼저 확인하고, 그 중에서 가장 경계하고 있는 키드를 향해 갔어.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키드를 말이야. 흐응,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는 몰라도 상당한데.”
그 말에 정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키드는 먼저 총부터 들이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행동이 익숙한 정호로써는 그것이 단순한 위협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검은 수염, 티치에게는 아닐 터다.
그렇다면 티치의 입장에선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자신들이 아닌, 키드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게 니 총인겨? 이쁘구먼. 내도 총은 많지만 이런 멋들어진 녀석은 본 적도 없으니께. 하나 쯤 가지고 싶을 정도여.”
“흐흥, 별 거 아니야. 아! 거기 탄알 집에는 내 사인도 들어가 있다고.”
“오, 그렇구먼! 갸하하하하.”
실제로 티치는 키드의 애총인 콜트M1877을 손에 쥐고서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방법, 어떤 경로든 간에.
분명 자신에게 겨눠졌던 총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장난꾸러기 꼬마는 나중에 엉덩이를 때려줘야겠는걸.”
아틸라는 그리 말하면서도, 티치에게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정호도 그런 경계를 충분히 이해했다.
‘움직인다면...’
자신을 적대시하던 이의 총을 빼앗았다.
만약 녀석이 기만책을 펼치며,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이지.’
정호의 그 생각과 맞물리면서.
“헌데, 자네는 꽤 유하구먼. 너무 유해. 이래서야 제대로 된 전사가 될 수 없으이.”
“그건 무슨 암호야? 전혀 모르겠는데.”
“갸하하하. 이런 의미여.”
돌연 검은 수염의 눈빛이 날카롭게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휘리릭-, 철컥-!
마치 자신의 총이라도 되는 양.
능숙한 손놀림으로 총을 한 바퀴 돌려 낸 콜트M1877의 총구를 키드를 향해 들이댔다.
“...”
말 한 마디 없는 티치.
순식간에 돌변한 그 모습에는 살벌함마저 흘러나왔다.
다만 그것이 발포되는,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거기까지 하는 건 어때?”
언제 튀어나갔는지, 아틸라가 그 앞을 막아서고 있었으니까.
“알고 있구먼. 이런 게 통할 리가 없다는 것도.”
티치는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한 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익...! 내 총 돌려줘!”
“갸하하하하!”
울상을 짓고 있는 키드에게 총을 돌려 준 티치.
녀석은 정호를 향해 고개를 한 차례 주억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거, 주인장 앞에서 몹쓸 모습을 보여 주구 말았구만!”
갸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한 차례 터뜨린 티치가 말을 이었다.
“믿음직스러운 부하는 못 되어도, 약탈 하나는 자신 있으니께. 언제든 불러만 주소.”
정호는 이마를 잡았다.
분명 걱정했던 적의나 반항심 따위는 없다.
“그란디, 술은 없는감? 갸하하하하!”
다만, 종 잡을 수 없는 녀석 임에는 확실했다.
정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검은 수염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성능의 화신이기는 했으나.
'뭐... 코인이라면 아직 남아 있으니까.'
녀석을 활용할 지, 안 할지는 그 결과를 보고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