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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57화 (58/144)

< # 57화 >

# 57화

그림자 지하 성채의 퇴각.

순식간에 찾아온 평화.

집에서 그 평화를 만끽하는 정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

‘이런 시발!’

따위는 없었다.

‘망했다.’

정호는 머리를 침대에 묻고서, 분함을 삼켰다.

계획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본래 정호의 계획은 그야말로 찬란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전 지역의 지원.’

홀로 위험 지역이라 불리는, 12개의 포탈을 상대하고서.

키드와 서서를 다른 위험 지역에 배치한다.

그런 정호의 첫 단추는 정말이지 이상적으로 맞추어졌다.

다만, 그 이후의 일이 문제였다.

정호는 본래, 자신의 지역을 방어한 이후 타 지역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모든 지역의 지원.

거기에는 세계의 구원이나, 희생자의 최소화라는 거창한 목적 따위는 없다.

‘코인의 대량 양산.’

구울은 어디까지나 니네체르의 소환 개체.

그렇기에 코인을 떨어뜨리지 않았으나, 그 외의 녀석들은 다르지 않은가.

마리당 5코인씩 떨어뜨리는 아귀와 라바.

준 보스급답게 천 코인이나 떨어뜨리는 아피스.

보스인 니네체르는 천오백 코인이다.

거기에 부산물로 ‘호루스의 그림자’라는 3성 등급의 각성 재료도 떨어뜨리는.

그야말로 빗자루로 돈을 쓸어 담는 찬스! 기회!

‘왜 퇴각을 하는 거야. 제대로 침공하라고.’

그것이 그림자 지하 성채의 퇴각이라는.

실로 어이없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말로 찾아왔다.

그 분함이 어찌나 컸던지, 도망간 데미코프와 알디니를 다시 찾아내 묵사발을 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게다가...’

정호는 눈을 흘겨,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달리고 있었다.

-와, 이번에 5레벨이나 올랐음. 이제 나 좀 강할지도?

┖쫄보 인증이네. 이번에 방어에 참가 안 했나봐?

┖남들 다 10레벨씩 올랐는데, 5레벨 ㅋㅋㅋㅋㅋㅋㅋ

┖┖겨우 10? 나는 15올랐다 ㅋㅋㅋㅋ

┖어그로 먹이 금지.

‘유저들의 수준이 단번에 상승했어.’

아스텔의 첫 번째 보상으로 주어진 전 유저들의 레벨 상승.

대부분 10레벨에 가까운, 그야말로 대폭적인 성장을 겪었다.

아스텔에서 10레벨이라면, 단숨에 50이라는 능력치가 생겼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50이라...’

정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정도의 능력치라면, 랭커라면 정호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100’이라는 인외의 경지를 단숨에 넘어서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데, 거기서 멈추지도 않는다.

-교관들은 어디서 만남? 아무리 찾아도 없네.

┖홍대역 근처에 검술관 하나 생겼더라. 아스텔 검술관 ㅇㅇ. 검술관련 스킬 숙련도 증가 시켜준다던데?

┖애초에 효율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옛날에 검치라고 하던 그 사람 있잖아. 레벨은 1인데 검술 숙련도 MAX 찍고 무쌍 찍던 사람.

-아스텔 성당 몇 곳이나 생겼음?

┖기도실 몇 개가 생겼다던데, 클레릭은 안 보이더라. 거기서 숙련도 올리면 될 듯? 그렇지 않아도 힐러들은 숙련도 올리기가 힘들었으니까.

┖안 그래도 힐링 숙련도 때문에 고생했는데 다행이네.

그런 그들의 비정상적인 성장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아스텔 교관들의 출현.

-천 코인이면 지금 환율 얼마임?

┖지금 팔게? 늦었어. 이제 5만원도 안함 ㅋㅋㅋㅋ

┖고점에 다 팔았다. 이제 사야지 ㅋㅋㅋㅋ

┖┖와 오만원이어도 오천만원이네.

그들의 장비를 지원할 천 코인이라는, 대량의 코인 분배까지.

아주 인터넷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작 천 코인을 어디 코에 붙이라고.’

다만 정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레벨과 스킬 숙련도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1,000코인이라면 그저 단 한 번, 뽑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수준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그 가격이 높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팔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코인은 자신의 목숨줄이지 않은가.

제 목숨을 파는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수가 옴 붙어.’

애초에 정호는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스스로 그리 생각할 뿐이지, 그 누구보다도 미신에 좌지우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푸후...!”

들썩-.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호가 이토록 다른 이들이 받은, ‘아스텔의 첫 번째 보상’에 관심이 많은 이유.

그것은 자신이 받은 것과는 전혀 달랐으니 말이다.

‘톨비아의 축복이라...’

정호의 입이 비틀렸다.

‘도대체 이게 뭐야?’

아스텔이 아닌, 톨비아가 직접 자신을 향해 ‘축복’을 내렸다.

종말의 주체가 자신에게 말이다.

* * *

[톨비아의 축복]

-‘할인 찬스! 지금이 아니라면, 뽑을 수 없다.’가 적용됩니다.

-‘픽업 찬스! 해당 화신 확률 업!’이 적용됩니다.

뽑기란 철저하게 사람들의 지갑을 노리고 설계된, 도박성이 짙은 녀석이다.

특히나 ‘할인 찬스’ 따위의 이야기는 말을 할 것도 없다.

게임을 조금 즐기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놈.

마치 지금이 아니라면, 할인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아니, 아예 공짜인 것처럼 포장을 하기도 한다.

‘욕을 많이 먹었던 놈이지.’

하도 시시때때로 뜨는 바람에, 던전에서도 나타나는 마당.

도대체 누가 던전에서 뽑기를 하느냐고 질타를 한 덕분에 아예 던전 내 뽑기 불가 시스템이 떨어지지 않았던가.

‘그게 오히려 해가 됐고.’

현실이 되어 찾아온 던전에선 그게 오히려 정호의 앞길을 막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할인 찬스가 지금, 정호에게 찾아온 것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나 다름없다.

“...”

정호는 시선을 옮겨, 다음의 메시지.

‘픽업 찬스!’를 바라보았다.

‘이게 가장 중요하긴 한데...’

뽑기 게임에서는 흔히들 ‘저격’한다는 표현을 자주사용한다.

자신이 원하는 소환수나 화신을 얻기 위해서 뽑기를 돌린다는 의미다.

다만, 그것이 쉬이 될 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뽑기란 확률에 의한, 운에 의해 결정되는 우연의 산물이다.

정호가 검의 화신을 원한다하여, ‘아틸라’를 저격했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우연의 산물을 ‘저격’의 성격에 가깝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픽업 찬스!’다.

‘해당 화신의 등장 확률 3배 증가.’

톨비아에서는 그게 무려 3배!

높은 등급, 고성능의 화신의 등장 확률은 너무도 낮다.

소수점을 한참 내려가는 확률.

그것에 학을 떼고서, 아예 손을 대지 않는 유저들조차도 ‘어? 3배? 엄청 크네?’ 하고 뽑기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제아무리 3배라도, 그 확률이 낮은 것은 변함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문제라면...’

정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시스템은 분명 톨비아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축복’이라는 형태로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종말의 주체는 톨비아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톨비아는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으로 실패했다는 말이다.

실패했음에도 보상을 자신에게 쥐어준다.

이는 상당히 이상한 흐름이다.

그도 그럴 게, 실패의 원인은 사실상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알 수가 없군.’

정말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톨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 않은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

‘내가 침공을 막아내는 것에 불만이 없다는 점.’

그것만이 정호의 마음을 덜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야 하는 일은 하나 뿐이다.

‘최대한 이용할 것.’

정호는 ‘픽업 찬스!’에 떠오른 뽑기를 바라보았다.

‘로테이션은...’

하나는 바다의 지배자, 픽업 찬스.

또 다른 하나는 어둠의 지배자, 픽업 찬스.

‘최종 픽업은 포세이돈이랑 하데스.’

하지만 정호는 그 3배의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포세이돈과 하데스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0.00016%를 3배 한다고 하여, 0.00048%가 될 뿐이니까.

‘오히려 그 아래.’

그렇기에 조금 더 아래의 화신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어둠의 지배자는 어둠 속성의 화신.

‘대부분이 암살자일 확률이 높지.’

현재 정호가 가진, ‘샤를로테 코르데’와 같은 선상에 위치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코르데는 삼 성 등급의, 그것도 풀 각성이 확실시 되어있다.

전용 무기까지 가지고 있는 마당에 코르데 이상의 존재를 뽑기 위해서는 ‘오 성 등급’이 아니고서야 그 역할군이 겹쳐지고 만다.

‘역시 바다의 지배자 쪽이지만...’

그리 말하면서도 정호는 입술을 비틀었다.

사실 바다의 지배자 픽업 찬스는 굳이 유저들이 지르려고 하지 않는 부류에 해당했다.

물 속성의 화신.

육 성 등급의, SSS등급의 평가를 받는 포세이돈이라면 그 지형에 관계없이 헤일과도 같은 파도를 일으켜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부분이 물 밖에서 힘을 내지 못하니까.’

그보다 아래의 화신에서는 영 제 힘을 내지 못하는 까닭에 선호되지 않는 픽업이기도 했다.

고민은 길었으나.

‘역시 이것 밖에 없어.’

정호는 지체할 것 없이 바다의 지배자를 선택했다.

[픽업 찬스! 바다의 지배자.]

[1회 화신 뽑기 : 100코인]

[11회 연속 화신 뽑기 : 1,000코인]

그것은 어둠 속성의 화신이 코르데와 겹친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크라켄의 역습, 심해의 도시, 서펜트의 쉼터.”

톨비아에서 모두 던전의 이름.

정호는 하나, 하나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다음으로 등장할 던전이라면 이것들 중 하나 일 수 밖에 없지.’

그도 그럴 게.

그림자 지하 성채 다음으로 나오는 컨텐츠들은 연속적으로 해상전이 이루어졌으니까.

“11회 연속 뽑기!”

슈우웅- 슈웅- 슈웅-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빰빠람-!

빵파레가 터져 나온다.

정호는 실로 오랜만에 시원시원한 맛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뽑기지! 이게 맛이지!”

픽업 찬스의 등장 확률 3배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였다.

단순히 사 성 등급 이상의, 고 등급의 화신을 뽑는 것을 제외한다면.

삼 성 등급의 화신 정도는 쉬이 뜰 정도였다.

빰빠람-!

-앤서니 셜리☆☆☆

-힘 : 18 체력 : 22 민첩 : 54 지능 : 33

앤서니 셜리(Anthony Sherley), 16세기의 해적으로서 계속된 실패로 인해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진, 불행의 아이콘.

“아니, 잠시만.”

다만, 그 빵파레의 맛이 이상했다.

빰빠람-!

-윌리엄 키드☆☆☆

-힘 : 60 체력 : 54 민첩 : 30 지능 : 20

윌리엄 키드(William Kidd), 17세기의 해적으로써 ‘캡틴 키드’로 알려져 있는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해적.

“어어, 이게 아닌데...”

흐름이 이상했다.

‘잠시만, 이거.’

앤서니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캡틴 키드라니?

‘아무리 물 속성 화신이라지만.’

해적들은 하나 같이 그 일생의 마지막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 해적만 주구장창 나오고 있다는 것도 좋지 않은 신호이건만, 불운의 아이콘에 불쌍하기까지 하단다.

심지어는.

슈우웅- 슈웅- 슈웅- 슈웅-.

캡틴 키드가 뜬 이후로는 그토록 빵빵 터져나가던 빵파레가 울리지도 않는다.

‘최근에 운이 좋다고는 하지만.’

정호는 흘깃, 자신이 가진 코인의 수를 바라보았다.

[잔여 코인 : 51,700코인]

‘아직...아직은 괜찮을 거야.’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으로 정호가 얻어낸 코인은 무려 6만 코인.

지금껏 손에 쥔 적 없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코인이었지만, 계획에는 턱도 못 미치는 것에 불과했다.

“쓰읍...”

슈우우웅- 슈웅-.

단번에 반전된 기운에 정호의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이번 6만 코인은, 뽑은 화신의 전용 무구까지 쥐어줄 생각이었기에 모두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슈웅- 슈웅- 슈웅-.

‘여기서 평균회귀를 할 수는 없어.’

아스텔의 유저들은 거대한 보상을 받고서, 등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지 않은가.

아니, 쫓아오는 것은 상관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던전이 다음에 찾아올 침공이라면, 여기서 멈춰 서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아!”

정호는 돌연 깜빡했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축복’이라는 키워드에 정신이 팔려 아틸라도 소환해놓지 않았다.

자신의 징크스를 어긴 것이다!

‘평균을 넘었잖아.’

그리 생각하는 동안에도 룰렛은 쉴 새 없이 돌아가, 사용한 코인은 1만 하고도 4천 코인.

그 중에서 삼 성의 화신이 3명이 떴으니, 평균을 넘어섰다.

지금이라도 멈춰 세워야 한다.

“머, 멈...!”

그런 정호의 말이 끝나기 직전.

빰빠람-!

드디어 악독하기 그지없었던 ‘슈웅-’소리가 멈추고, 빵파레가 울렸다.

“...춰?”

한데, 그 멈추어 선 룰렛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이 기울어졌다.

‘기, 기우였나?’

☆☆☆☆

별은 네 개.

평균을 아득히 넘어서는, 소수점의 화신.

“그런데...”

그 화신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묘한 표정이 되었다.

“또...해적이야?”

그 주인공은 이번에도 해적이었다.

다만.

-에드워드 티치☆☆☆☆

해적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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