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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55화 (56/144)

< # 55화 >

# 55화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데미코프

(Vladimir Petrovich Demikhov).

그는 세계 최초로 인공 장기를 만들어 장기 이식 기술을 만들어낸, 수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소련의 천재적인 의사다.

다만 그런 업적을 달성한 데미코프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친 의사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악마의 실험이라 불리는 ‘키메라 개’의 실험.

머리를 자르더라도, 영양만 공급할 수 있다면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한 비윤리적인 실험.

작은 개의 머리를 분리하여, 성견의 몸에 붙여 생명을 유지시킨 실험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 녀석이 왜 여기에 있지?’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녀석의 존재는 알고 있다.

데미코프 또한, ‘광기’의 타이틀이 붙은 화신들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나오라는 알디니는 나오지 않고, 어째서 데미코프가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꽤나 오래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최초로 알디니와 만나 헤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의 걸작이라며, ‘디아볼로스’를 데리고 있던 녀석이다.

고작해야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만한 존재를 데리고 나타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알디니는 어디 있지?”

“오, 아주 제대로 찾은 모양이구만. 자네가 그 엉터리 괴짜가 말하던 그 녀석이었어.”

다만 데미코프는 알디니와 연관이 있어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쩌다 구한 디아볼로스의 시체로 으스대는 꼴이 얼마나 얄미운지. 그게 박살나고서 이를 갈던 녀석이 얼마나 웃겼는지 자네는 모를 걸세.”

끌끌대며 웃는 데미코프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다만, 정호의 얼굴에는 긴장이 떠올랐다.

녀석이 알디니가 아니라면, 이 기이한 괴물은 언데드가 아니라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망할...!’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숨을 쉬고 움직이는 드래곤.

정확히는 그 머리뿐이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다.

‘자세히 보니, 다 고위급 몬스터들이로군.’

그 조각들이 너무도 뿔뿔이 흩어져 있어 확실하게 파악하기에는 어려웠으나.

몸통은 거대한 사자의 형태로 보아, 만티코어에 가깝고.

꼬리의 기다란 뱀들은 야마타노오로치, 두 쌍의 박쥐날개는 거대 박쥐 몬스터인 스토커로 보였다.

그 외에도 조각조각 묘하게 다른 살점들이 붙어 있었다.

‘이래서야, 진짜 드래곤이나 다름없군.’

정호는 이런 종류의 드래곤을 알고 있다.

상위 던전, 이무기의 쉼터.

그 보스로 군림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드래곤, 무슈마헤(mushmahhu).

녀석은 11마리의 마수를 하나로 혼합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친우의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음? 내가? 그 따위 녀석을 위해서? 전혀 아니지. 아니야.”

데미코프는 미소를 내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사함을 표하러 온 걸세. 알디니. 고 녀석을 혼쭐내준 것에 대해서 말이야.”

“그럼 돌아가면 되겠군.”

“하지만 말이네...”

꽤나 진중한 얼굴로 말을 끊은 데미코프.

그것에 정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다음에 이어질 말이 너무도 훤히 보였던 까닭이다.

“그 허접한 녀석의 걸작보다 이 위대한 나의 걸작이 더 뛰어나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나?”

“쯧.”

소위 천재 과학자라 불리는 녀석들은 자존감과 자긍심이 너무도 강하기 마련이니까.

-별 것도 아닌 걸로 자존심을 세우네.

‘그러게 말이야.’

정호는 검을 꺼내들었다.

전투는 불가피했다.

* * *

정호는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깨닫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내 걸작과 마주하니, 떨리는가? 이 대단한 위용은 쉬이 만날 수는 없을 거니 이해하네! 끌끌!”

그에 데미코프가 자신만만하게 웃어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분명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저토록 여유를 가질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

애당초 녀석은 정호를 이 기묘한 키메라의 등 위에 올라올 때까지 내버려두었으면 안 되었다.

이 키메라의 제작자인 데미코프.

녀석이 바로 코앞에 있었으니 말이다.

스르르릉-.

검을 녀석을 향해 겨누었다.

어떤 소환수라 할지라도, 그 소환자를 처리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오, 나를 직접 노리려고 하는 겐가? 노인 대우가 꽤 심한 젊은 친구구만.”

그에 녀석은 두 손을 번쩍 들기는 했으나, 전혀 당황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필시 알디니, 고 녀석을 쓰러뜨릴 때도 이런 식이었을 테지! 클클. 하지만 어림도 없네! 내 걸작은 싸늘한 시체 따위가 아니네. 언데드가 아니란 말일세.”

데미코프는 들어 올린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정호에게 들이댔다.

“내가 죽는다고 이 녀석이 멈출 것 같나? 완전히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 궁극의 과학이란 이런 걸 의미하는 것이지. 오히려 나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완전히 미쳤군.’

정호는 녀석의 말에 하마터면 검을 내려놓고, 이마를 칠 뻔했다.

알디니와 달리,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깨달았다.

결국 자신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었다.

정호는 그런 녀석의 배짱을 인정했다.

“그럼 죽던가.”

데미코프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든다.

몸이 삐걱대며,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호가 감내해야 할 고통에 불과했고, 아틸라의 스탯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쉐에에에엑-!

검을 휘두르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데미코프 또한, 그 검이 목에 닿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카앙-!

아틸라를 강신시킨 이후로 단 한 번도 막힌 적 없던 정호의 검이 틀어 막혔다.

“흐, 흐으...! 정말 형편없는 젊은이로구만. 그래도 쉬이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샤아아아아-!

가로막은 것은 키메라의 꼬리.

야마타노오로치라기에는 조금은 작으나, 충분히 거대한 뱀들에 의해서였다.

다만, 공격을 멈춰 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어 댔다.

쉐에에엑-! 캉!

쉐에엑! 캉-!

하지만 그조차도 번번하게 틀어 막힌다.

여덟이나 되는 꼬리의 뱀들은 상단을 공격하든, 하단을 공격하든 간에 데미코프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뭔가. 이 정도도 뚫어내지 못하면서, 나를 죽이려 했는가?”

데미코프가 그에 비아냥해댔다.

쉐에에엑-!

하지만 그럼에도.

정호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무차별적이라기보다는, 무모하기까지 한.

제대로 된 타격이 먹히지 않는 단순무식한 공격에 불과했다.

한데.

까앙-!

“캬아아아아아아----!”

그 공격이 온전히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키메리의 머리, 드래곤의 아가리에서 비명이 내질러졌다.

“뭐, 뭔가. 무슨 짓을 한 겐가.”

데미코프조차도 그 갑작스러운 반응에, 여유로 가득했던 미소가 싹 사라졌다.

반대로 정호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이제야 터졌네.’

본래라면 검이 막히지 않아, 한 번도 확인할 수 없었던 효과가 나타난 탓이다.

‘세계 6대 살인마 세트 효과.’

그 중에서도 ‘바토리’를 얻으면서 얻게 된, 상태이상 ‘공포’의 효과.

“캬아아아아-!”

키메라가 비명을 내지르며, 공중을 마구잡이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중심을 잡기는 어려웠으나, 적어도 데미코프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녀석은 ‘광기’ 타이틀을 가진 화신답게 그 본신의 무력은 형편없었으니 말이다.

데미코프는 아예 몸을 납작하게 숙여,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으, 으으...! 이 몹쓸 녀석! 뭐하고 있어. 얼른 나를 붙잡아!”

키메라의 꼬리를 향해, 그리 외쳐보지만 이미 공포의 효과로 제대로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처억-.

그 위로 말없이 녀석의 목에 검을 가져다댔다.

“흐, 흐흐...! 그래. 생각보다 강하구나. 하지만 내 목숨을 끊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허장성세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데미코프는 검을 코앞에 두고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넌 그대로 있어.”

한데, 방어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정호는 녀석의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

“거기서 지켜보고만 있으라고.”

입에 잔뜩 미소를 머금은 정호가 검을 회수했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데미코프의 목이 아닌, 키메라의 몸통을 향해 그대로 검을 내리꽂았다.

“흐, 흐흐. 멍청하구나! 이 녀석의 몸은 만티코어! 도검불침(刀劍不侵)의 영역에 있는 무적의...”

콰득-!

“응?”

한창 비아냥하던 데미코프의 입에서 의문이 튀어나왔다.

분명 뱀의 머리도 뚫어내지 못했던 정호의 검이 그대로 만티코어의 몸을 쑤욱-하고 관통하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주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정호는 그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애를 썼다.

‘약점은 뻔하지.’

분명 데미코프가 걸작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키메라는 강력한 존재였다.

자신을 가질 만도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있는 기워져 있는 살점들.

조각조각 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상위 마수일 리가 만무했다.

‘저기도 그렇고.’

그것은 녀석의 꼬리, 야마타노오로치의 뱀이라 하여 다를 건 없다.

듬성듬성, 색이 다른 살점들은 다른 곳에 비해 무르다는 사실 정도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호는 일부러 그곳을 가격하지 않았다.

‘아까워.’

완벽에 가까운 키메라란, 결국 그 하나하나가 ‘상위 몬스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같다.

하나 같이, 아틸라가 있는 지금 당면해도 쉬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녀석들이지 않은가.

그런 녀석들의 소재를 얻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괜한 상처를 입히는 짓 따위는 할 수 없었다.

콰득, 콰득!

정호가 해야 할 일은, 공포의 효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키메라의 위에서 다른 살점만 골라 찍어내는 일 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안 된다!”

데미코프의 얼굴이 삽시간에 울상으로 변했다.

당장이라도 정호에게 달려들어, 팔이라도 붙잡을 기세였으나.

휘이이이잉-!

“으으...!”

상태이상, ‘공포’에 빠진 키메라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탓에 그것을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를...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이를 가는 소리가 정호의 귓가로 들려왔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적 타격 시, 일정 확률의 공포 효과.

일정 확률이라는 것이 얼마나 낮은 확률인지 잘 알고 있는 정호로써는 최선의 판단을 했을 뿐이다.

살점을 이곳, 저곳 찌르다 키메라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 소재를 수거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실제로.

키야아아아아아-!

공포의 효과로 완전히 눈이 돌아버린 키메라의 날갯짓.

등 위에 타고 있는 정호로부터 떨어지려는 그 필사적인 움직임은 그저 신형은 이리저리 옮기는 것으로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다만 계산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돌연 키메라의 머리.

그러니까 드래곤의 입에서 새빨간 화염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이런 미친. 브레스도 써?”

그것은 정호로써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어째서 드래곤의 머리를 가져다 썼는지 의문이었으나,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은 쾌거였다.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멀어진 탓에 키메라의 브레스는 전혀 다른 곳에 떨어졌으니까.

“캬아아아악!”

“키아아악!”

구울과 아귀, 라바.

그리고 적들의 보스가 있는 니네체르의 위에 거대한 불꽃이 쏟아져 내렸다.

고속도로 위가 마치 지옥 중 하나인 초열지옥이나 다름없는 모양새로 불타올랐다.

‘이 미친...’

절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 브레스를 통째로 맞았다면, 제아무리 아틸라의 강신을 펼치고 있는 정호라 할지라도 쉬이 생존을 장담하긴 어려워 보였으니까.

“아, 안 돼...!”

하지만 그것은 데미코프의 입장에서도 좋지 않은 모양새였던 모양이었다.

“당장 저 브레스를 멈춰 세워! 내 걸작이. 내 걸작이...!”

정호가 색이 다른 살점을 향해 공격을 할 때보다 절박해보이는 녀석의 모양새.

후끈-!

동시에 발 밑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그렇군.’

곧장 알아챘다.

이 키메라는 드래곤처럼 브레스를 쏴댈 수는 있어도, 그 화염을 감당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브레스를 쏘아대면 댈수록, 스스로 자멸하는 모양새.

이내, 입에서 불꽃이 꺼지자.

휘이이이이잉-!

키메라의 눈도 같이 불이 꺼졌다.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하던 박쥐의 날개가 멈추자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 으으으!”

자신의 머리를 붙잡으며 절망에 빠지는 데미코프.

콰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키메라의 거대한 몸체가 고속도로에서 조금은 떨어진 산중에 떨어졌다.

* * *

“죽여라. 날 죽여. 내 평생의 위업이... 위업이...!”

자신의 걸작이 박살이 난 상황.

데미코프는 알디니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반응을 보였다.

바닥에 大자로 누워 있는 데미코프.

그런 녀석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정호는 키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다 고급 재료란 거지.’

검을 몇 번 꽂아 넣기는 했으나, 깨끗한 상위 몬스터들의 사체가 눈앞에 있는 꼴이다.

그것을 한 번에 벌어들인 꼴이니, 정호의 입가에 만족감이 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디...’

조심스럽게 작업해야 하는 순간.

그 어떤 때보다도 정호의 눈이 신중하게 변했다.

필요한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를 확실하게 나누고서는.

스르르릉-.

검을 녀석에게 가져다 대려 했다.

“크크! 고생이 많았다!”

그런 그 때.

익숙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호가 심드렁한 얼굴로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봐. 말코 의사. 이 녀석은 이미 죽은 시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

지오바니 알디니가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흘흘. 2차 전을 시작하자고.”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곧장 손에서 전기를 뿜어대는 녀석.

하지만 정호는 그런 녀석을 한참이나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내 목숨을 끊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 말했다!”

번쩍-!

키메라의 눈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한다.

그에 정호가 혀를 차고선 입을 열었다.

“코르데.”

“어, 어어?”

순식간에 알디니의 목에 나이프가 걸린다.

정호가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딱 좋을 때니까. 방해하지 말고 거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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