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4화 >
# 54화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은 여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서울, 수도로 향하는 제 3 방어 지역에서도 구울과의 사투가 이어졌다.
“조금만 더 버텨!”
“밀어! 밀어라고!”
구울의 군단과 맞서는 사람들의 얼굴은 전투의 긴장과 고양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하나, 그런 얼굴에 패배의 기색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제 3 방어 지역이 겨우 다섯의 포탈이 위치한,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위험도가 높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무엇보다 든든한 하나의 존재가 있었던 탓이었다.
“쏟아지는 비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캐스팅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온다! 다들 빠져!”
“후퇴! 후퇴! 광역 마법이야!”
“벌써? 조금 전에도 썼잖아.”
그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사람들은 우르르 방어선을 뒤로 물린다.
덕분에 한참은 후퇴하게 되는 형세였으나.
“이번에도 시원하게 한 방 부탁드려요!”
전선을 뒤로 물리는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감 따위는 없었다.
몇 번이고 이런 상황이 있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 캐스팅 목소리만 들어도 환호를 이어나가는 마당이었다.
“희망하는 것은 적들의 발을 묶고, 심장이 멈추게 하는 동(凍)의 시간.”
사람들이 전부 빠졌을 때 즈음, 기나 긴 캐스팅이 끝나고서 나오는 마법.
“아이스 레인!”
곧장 허공에 자그마한 얼음 창들이 수십 개가 생겨나더니 그대로 적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파파파파팍!
꼬챙이가 되듯, 온 몸에 얼음 가시가 틀어박힌 구울들이 백에 달하는 숫자가 곧장 그 자리에 쓰러진다.
걔 중에는 뒤에서 달려오던 아귀도 숨통을 끊을 정도의 강렬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환호가 쏟아졌다.
현 시점에서 광역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사의 존재란 그 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다.
“아이스 레인이면 백마법사의 중급 마법 아니야? 레벨 제한은 그렇다고 쳐도, 그 가격이 장난이 아닐 텐데.”
“말도 마. 나도 백마법사로 전직했다가 그 가격보고 놀랐다니까.”
“얼만데?”
“삼천 코인이야. 삼천 코인.”
“뭐?”
삼 천 코인.
침공 직전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무려 삼십 만원까지 치솟아 올랐던 코인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무려 저 마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현금 9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튀어나온다.
“미치겠네. 게임에서는 분명 할만 했던 것 같은데.”
“마법서들은 애초에 가격이 높으니까.”
당연하게도 그만한 코인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랭커의 위치에 올라선 자던가.
돈을 물 쓰듯이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던가.
둘 중 하나다.
“레이나가 아니면 손도 못 댔겠어.”
“여기로 오길 잘 했다니까. 다른 곳은 꽤나 고생하는 모양이던데.”
다만, 그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쥐고 있는 이가 제 5 방어 지역에 배치된 랭커였다.
랭킹 3위 백마법사, 레이나.
삼정전자 회장의 손녀인 김세정이 그 주인공이었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어.’
상황은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보스인 니네체르가 계속해서 구울들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그보다 빠른 속도로 언데드들을 쓰러뜨려 나가고 있다.
‘다른 지역도 순조로운 마당이고.’
그것은 비단 이곳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각 지역의 랭커들은 수시로 진행 현황을 보내고 있었으나,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소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나 다름없다.
방어 지역은 꽤나 많았기에, 그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랭커를 적재적소에 배치했지 않은가.
‘조금은 걱정했지만.’
걱정이라면.
제 5 방어 지역에 배치될 인원이 부족했던 탓에 상위 랭커는 세정, 혼자 뿐.
하위 랭커들 대부분이 경호원들으로 이루어져, 사실상 홀로 막아서게 되는 모양새가 되었다는 점이다.
‘나라고 못할 건 없지.’
인재의 부족이라는 부득이한 상황이긴 했으나.
거기에 자그마한 오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
대리인인 정호가 와서 전달하기는 했으나...
위험 지역을 홀로 맡겠다고.
왜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느냐고 물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듯 했다.
‘이래서 원했던 거였어.’
고통 없이는 얻는 것 또한 없다.
그 사실을 세정은 뼈가 사무치도록 느끼고 있었다.
안전하게 던전을 공략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레벨 업 속도.
어째서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지금껏 그 누구보다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듯 했다.
“다음 마법까지 휴식을 취하시지요.”
“알겠어요.”
경호원의 말에 세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사로 향했다.
‘그렇다고 무리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에 대한 방어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마당이다.
이미 적들의 상세 정보부터, 그 숫자까지 모두 파악이 끝난 상황이지 않은가.
이대로 진행만 한다면, 확실하게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캬아아아아아-!
그 괴상한 울음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뭐야?”
“저게 무슨 몬스터야?”
혼란스러운 상황.
그에 세정 또한, 막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괴성의 정체를 확인했다.
“어...?”
하늘을 날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있었다.
그림자 지하 성채는 이름처럼 ‘지하’에 있는 던전이다.
그 탓일까.
구울과 아귀, 라바, 아피스부터 인간형인 니네체르까지.
모두 땅에 두 다리를 내리고 있는 존재들이다.
지하에서 날개를 달고 있을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롭게 나타난 녀석은 달랐다.
펄럭- 펄럭-.
족히 10m는 되어 보이는 몸체.
등 뒤에서 뻗어 나온 한 쌍의 날개가 그 거대한 몸을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어...어어.”
“저걸 어떻게 쓰러뜨려?”
사람들은 아연실색 했다.
크기만 해도 공포로 물들 지경인데, 아예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이라니!
‘드래곤?’
다만 그 속에서 세정만이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머리는 분명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드래곤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한데, 기묘하게도 몸은 사족 보행의 동물에 가까웠고.
그 꼬리는 뱀의 머리를 달고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박쥐처럼 얇은 날개를 연신 펄럭인다.
‘키메라?’
그 정체만 알 수 있다면, 어떻게든 대책법이 나올 터다.
그런 생각으로 녀석을 찬찬히 바라보았으나.
하지만 녀석의 형체를 계속해서 파악하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에 경종이 울려댔다.
‘위에 누군가 타고 있어.’
괴물도 문제였지만,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보스급으로 보이는 노인 한 체가 그 괴물의 위에 앉아 있었다.
캬아아아아-!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그 키메라를 닮은 녀석이었다.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공중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으아아악!”
“으으으!”
그저 공중에서 스쳐지나갔을 뿐 일진데, 돌풍이 일어날 지경이다.
“앞! 앞을 막아!”
“뭐하고 있어! 탱커들!”
그 탓에 전선이 무너지고 있었다.
녀석에게서 공격의 낌새는 없었으나, 그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공포에 물든 이들이 다수 생겨났다.
“나,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애초에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예 전선을 이탈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부상자는 얼른 빠져! 전선을 지켜!”
‘이런...!’
순식간에 상황이 꽤나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아직 녀석이 공격다운 공격을 한 적이 없다는 것뿐이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지원은 어떻게 됐나요?”
“몇 명의 랭커가 수신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쯧. 알았어요.”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란 말이었다.
“...”
곧장 떠올리는 스킬은 자신이 가진 마법 중 가장 강력한 단일 화력을 자랑하는 중급 마법, ‘붉은 신성’.
공중에 있는 녀석이니만큼, 맞추기는 어렵겠으나.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충분히 효과가 있으리라.
그리 판단한 세정은 그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으아아악!”
“부상자는 빠져! 얼른!”
“돌풍에 주의해!”
녀석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내 손은 불타는 그릇이 되어, 적들을 불사를 테니!”
벌써 세 번째 배회다.
타이밍의 계산은 이미 진작 마친 마당이었다.
세정은 곧장 캐스팅을 시작했다.
“적에게는 파멸을! 전장에는 화마를! 신성과 함께하는 불꽃은...”
후우우우웅-.
공중을 배회하던 괴물이 정확하게 자신의 머리 위에 도달하기 직전.
캐스팅의 마무리로 향해갔다.
“붉은 신...”
한데, 그 외침이 끝나기 직전.
“비켜!”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에 세정의 캐스팅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후우우우웅-!
덕분에 마지막 기회였을 지도 모르는 상황을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짓...”
곧장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세정이 타박을 하려 했으나.
타앗!
이미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발을 박차, 공중을 날고 있는 괴물을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사내였다.
* * *
‘이런 젠장!’
정호는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다리를 박차면 박찰수록, 온몸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으나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거대한 생명체라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반신반의 했다.
위에 ‘노인’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뿔싸 싶었다.
‘알디니...! 반드시 나를 찾아온다고 해놓고선!’
녀석이 그림자 지하 성채의 히든 피스, 지오바니 알디니일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정호는 알디니를 일부러 놓아주었다.
녀석이 시체를 움직일 때 사용하는 스킬은 ‘언럭키 언데드’.
당시 고작 이 성급인 유능한 용병을 강신시킨 정호로써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디아볼로스를 상대로 대등하게 만들어주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스킬.
녀석이 복수를 위해 찾아온다 한들.
그저 다음에는 어떤 보상을 줄 것인가 하는 기대감만 생겼다.
한데.
‘어째서 이 시점에서.’
아드득-.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을 데려왔다고 한들.
겉만 번지르르한, 속은 텅 빈 괴물일 뿐이다.
다른 랭커들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토벌될 것이 뻔했다.
그랬기에 필사적으로 달렸다.
‘빼앗길 수는 없어.’
자신이 뿌린 씨앗이다.
수확할 때가 되었는데, 다른 녀석이 서리해간다면 그만큼이나 열받는 일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참고서, 내달린 곳에 존재하는 거대한 형체.
그리고.
“적에게는 파멸을! 전장에는 화마를! 신성과 함께하는 불꽃은 철퇴와 같으니!”
그 중심에서 거대한 불꽃을 손에 머금고 있는 랭커가 있었다.
‘하필이면!’
제 5 방어 지역의 랭커가 랭킹 3위의 레이나라는 사실은 정호에게 다급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단숨에 녀석을 향해 뛰어들었다.
터업-!
다리를 붙잡고, 그 몸체를 향해 올라섰다.
“휴우...!”
정호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마터면, 눈앞에서 다른 이에게 이 귀한 녀석을 빼앗길 뻔 했다.
‘음, 드래곤이 아닌가?’
이제야 녀석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머리가 드래곤이었기에, 당연히 알디니가 자신의 바람대로 데려온 줄만 알았으나.
직접 올라서고 나니 그게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쯧...!”
아쉬움에 혀를 차냈다.
드래곤이면 드래곤이지, 왜 머리만 드래곤이란 말인가.
드래곤의 진가는 심장에 있었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추가적인 능력치가 붙는.
그럼에도 재료로도 최상급에 해당하는 녀석이지 않은가.
“클클, 반갑군.”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호는 그것이 알디니라고 판단했다.
이 괴물의 위에 노인이 한 체 타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봐, 이 녀석은 어디서 구했지?”
그렇게 말하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한데.
“내 걸작이지.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그 얼굴을 바라본 정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넌 누구지?”
분명 노인은 맞았으나,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블라디미르 데미코프라고 하네.”
“그러니까...”
정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되물었다.
“누구냐고. 너.”
맹세코.
기억에 없는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