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50화 (51/144)

< # 50화 >

# 50화

“과금망겜플레이어?”

갑작스런 정호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랭킹 1위의 회의 참석은 그들로서도 의외의 일이다.

항시 그 모습을 제대로 보인 적이 없던 일이 아닌가.

그것이 비록, 대리 참석이라는 모양새로 나타나기는 했으나, 랭커들의 주목을 이끌어내기엔 충분한 일이었다.

“어떻게 아는 겁니까?”

“녀석은 어디서 뭐하고 있답니까?”

“대리 참석이면, 직접 본 적은 있어요?”

장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래서 고민했던 건데.’

슬쩍 시선을 옮겨 메시지를 확인했다.

[34 : 17 : 49]

고작해야 하루하고도 반나절밖에 남지 않은 시간.

본래라면 참석할 이유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을 할애할 의미는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더 이상의 공략이 의미가 없어졌다.’

오 성급 화신, 아틸라의 존재는 생각보다 컸다.

각성을 위해 아틸라가 떠나게 되면서, 정호의 공략 속도는 크게 줄었다.

물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공략하지 못할 것은 없었기에 지난 시간 동안 진행을 하기는 했었으나.

이제는 그것도 어려워졌다.

-빌리 더 키드 ★☆☆가 수련을 위한 기나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각성 확률 : 30%

-남은 시간 : [21 : 00 : 00]

삼 성급 화신들과 함께 전용 무구를 보유한 키드조차도 각성을 진행 중이었던 탓이다.

무리를 한다면 그림자 지하 성채를 공략 못할 것도 없었으나-.

하나, 둘 정도에 그치는 턱 없이 부족한 전력.

정호는 이 소집에 참가하려 마음을 먹은 것도, 바로 이 탓이었다.

물론···.

“정호 씨? 오랜만에 뵙네요. 잠시 따라오시겠어요?”

거기에 리스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커피는 좋아하시나요?”

“진절머리 날 정도로요.”

“그거 다행이네요.”

회의실에 뒤편에 있는, 휴직실의 내부.

정호와 세정 사이에는 꽤나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렇네요.”

정호는 세정에게 ‘과금망겜플레이어’와의 접점이 일전에 있었던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세정은 납득했다.

스스로도 ‘아스텔’에 의해, 정호와 만난 적이 있지 않은가.

다만, 납득을 한다고 하여 이해를 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는 랭킹 1위의 정체를 정호 씨만 알고 있는 노릇이네요.”

“그렇게 되네요.”

세정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는 않았다.

‘랭킹 1위와 접점이 하필이면, 상태창을 얻지 못한 정호 씨라고?’

묘한, 이상한 낌새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실 따져보면, 가장 먼 둘의 존재가 아닌가.

‘소집 장소를 알았다는 건, 스마트워치로 알람이 갔다는 건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지만.

정호가 스스로 입을 열지는 않는 한, 세정의 의문이 해결될 리가 만무했다.

“대리인인 정호 씨가 여기에 왔다는 건···, 그도 이번에 참가한다고 봐도 될까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지 않은가.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존재 하나로, 이번 침공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 그 전략 자체가 변하게 된다.

“그건 잘 모르겠군요.”

“네?”

“저는 대리인의 신분으로 온 겁니다. 의사를 전달할 뿐이죠.”

다만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회의의 내용은 알고 싶으나, 행동은 각기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과금망겜플레...이어 그러니까, 랭킹 1위가 참가한다면 어디에 배치됩니까?”

“그걸 설명하기 위한 회의였습니다만... 어쩔 수 없죠.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어디까지나 선택권은 상대에게 있다.

그것을 확실히 인지한 세정은 곧장 포탈이 기록된 지도를 펼쳐보였다.

“전국에서도 87곳에 포탈이 존재해요.”

“자세하네요.”

“저희는 이번에 군대와의 연계를 통해, 이들을 유도할 작정이에요.”

주욱- 그어진 지도의 선을 손으로 훑는다.

“고속도로군요.”

“예. 아무래도 도시와, 산 속에도 몇 개씩 발견되어 있는 상태라 그들을 하나하나 각개격파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겁니다.”

“그들을 모아야 한다면, 지뢰나 크레모아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확해요.”

언데드들이 소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꺼낸 작전이다.

모든 포탈의 몬스터들을 탁 트인 고속도로 쪽으로 인도만 가능하다면, 전투 그 자체는 수월해진다.

뒤에서 덮쳐질 위험도 없었고, 타 포탈로의 지원도 용이해진다.

“어려운 전투네요.”

하지만 게릴라전을 완전히 배제한, 전면전.

그것은 한 번에 적게는 수 개, 많게는 수 십의 포탈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것과 동일했다.

“물론 과금망겜플레이어에게 그만한 부담을 줄 생각은 없어요.”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정은 정호가 떠올릴 만한 우려를 입에 담았다.

“만약 그가 참가하게 된다면 이 곳, 대전으로 향하는 1번 고속도로의 중심지에 배치될 예정이에요. 주변의 포탈도 두 개에 불과하고, 어느 곳의 지원에도 용이하니까. 물론,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요.”

랭킹 1위란, 그 상징적인 의미로도 충분히 이용이 가능했다.

밀리더라도, 곧 지원이 올 거라는 기대.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전력이 되는 법이다.

“...곤란한데요.”

“네?”

“이렇게 배치된다면, 그는 참가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몰차기까지 했다.

“그럼, 12번 고속도로 쪽은 어떤가요. 이곳이라면 포탈이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으니, 충분히 막아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랭커의 파티도 몇 배치될 예정이니···.”

“아뇨. 그 쪽도 선호하지 않을 겁니다.”

정호는 이미 다 식어버린 커피를 입에 가져다대고서는 말을 이었다.

“무언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세정 씨는 어디에 배치됩니까?”

세정은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순순히 위치를 가리켰다.

서울에 가까운, 포탈이 다섯이나 존재하는, 위험 구역으로 지정된 장소였다.

남들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조금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정호의 언행.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설사 침공을 하더라도, 녀석들은 코인을 주지 않습니까?”

“예?”

“혹시 그를 견제하시는 겁니까? 랭킹 1위니까, 더 이상 강해지지 않아야 한다고...자신이 쫓아야 한다고.”

“그게 무슨...?”

당장 침공을 막아내지 않으면, 세상이 망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호가 하는 이야기는 그것과는 상당히 동 떨어진 일이 아닌가.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세요?”

“물론이죠. 당연한 생각 아닌가요?”

당연하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한데 정호의 얼굴을 바라보니, 정말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제가 너무 심취했었군요. 만약 작전이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아마도 그는 여기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서해안을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15번 고속도로.

“그곳은...”

포탈 8개.

주변 포탈의 수가 너무 많아, 사실상 포기를 선언한 곳이다.

하지만 정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곳도 문제가 많군요. 아직 11개나 남아있다니.”

짚어대는 족족, 위험지역만 골라 찍는다.

“하지만 그곳들은 너무 위험...”

“제가 하는 일은 전달 뿐입니다. 그러니...”

정호는 남은 커피를 후루룩 마시더니,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에게는 이 장소들로 가라고 전해두겠습니다. 배치될 인원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끼이이이익-.

할 말은 끝났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가는 정호.

세정은 그를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벌린 채 한참이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인원수에 차질이 생기지 말라는 의미는 결국.

‘홀로 상대하게 하겠다고?’

방을 빼놓으란 말이었으니까.

* * *

[04 : 51 : 00]

종말로 예고된 시간으로부터 5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은 평화롭기만 했으나.

그 아래의 땅은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드르륵- 드르륵-.

K2 전차부터 시작해, 한국전쟁에나 쓰였던 오래된 고물 M48A2C 전차까지.

바리케이트를 친 장소에 속속들이 도착했다.

“떨리는데...”

“이 정도의 화력인데, 녀석들이 별 수 있겠어?”

“글세... 생각보다 적은 게 아닐까?”

그 중에는 아스텔의 유저들이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자신의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다.

‘...어디 있지?’

그런 이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세오는 몸을 숨기고 있었다.

‘과금...아니, 이정호.’

세오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소집에 참가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정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하더라도 덜컥- 심장이 내려앉을 뻔만 했다.

대리인이고 자시고 본인이 직접 찾아왔지 않은가.

하지만 그 직후 이어지는 회의.

-과금망겜플레이어는 독자적으로 이곳들을 공략할 겁니다.

각각의 랭커들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이야기.

그것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족히 수십 개의 포탈을 홀로 막아서는 것이나 다름없는 모양새.

-대변인의 말로는, 지원은 필요 없다고 했으나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레이나, 김세정은 그리 말하며 자발적 지원자를 뽑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거기에 손쉽게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제아무리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열 개가 넘는 던전을 공략했다한들, 그 위험을 아득히 뛰어넘는 위치가 아닌가.

‘왜 안 따라가는 거지?’

그런 와중에, 세오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세오는 랭킹 1위, 그러니까 정호의 무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위험 지역이라느니, 그 따위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번 침공이 종말이라고 한다면, 정호가 있는 장소만이 안전 지역이다.

결국 랭커들 중에선 세오 만이 유일하게 지원자로 뽑히기는 했으나,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내 선택이 정답이라고 해줘...’

시간은 째깍째깍 계속해서 흘러만 가고 있음에도.

나타나기로 한 정호의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으니까.

[01 : 37 : 00]

시간이 좁혀져 올수록, 가슴이 바짝바짝 타오른다.

‘조급해 하지 마.’

그렇게라도 마음을 다스린다.

애당초 정호가 도망을 쳤을 리가 없다.

정호는 이미 그림자 지하 성채를 몇 번이고 공략한 괴물이지 않은가.

이번 침공도 그에게 있어서는 한 번에 나와 주어서 고맙다고 두 손을 번쩍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00 : 55 : 47]

하지만 그 시간이 줄어감에 있어서, 점점 세오의 마음이 변했다.

‘조금, 준비해야 될 것이 많나?’

그런 자그마한 추측으로 시작한 의문.

[00 : 33 : 27]

시간이 줄어가자, 의문이 의구심으로 변하고 점차 의심으로 번진다.

[00 : 10 : 44]

‘서, 설마...!’

혹여 이렇게 이곳에 올 줄 알고, 정체를 아는 자신을 언데드들을 통해 손도 쓰지 않고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

‘그럴 리가 없잖아.’

생각해보면, 자신이 지금껏 과민반응을 했을 뿐이다.

첫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를 피에 미친 악귀로 오해했다.

실제로 그가 자신에게 무언가 큰 해코지를 한 적은 없었다.

‘기억이 모호하긴 하지만...’

던전에서의 기억이 잠시나마 날아가긴 했지만.

적어도 상처 하나 없다.

[00 : 00 : 10]

하지만 단 10초를 남겨둔 상황.

“이런 젠장!!!”

자신의 멍청함을 탓한다.

몇 번 놓아 주었다고 해서, 랭커 소집에 응했다고 해서.

그를 잠시나마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되었다.

아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되었다.

첫 인상이 맞았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다.

10...9...8..7..6

마침내 카운트다운의 끝.

[00 : 00 : 00]

-그림자 지하 성채가 침공을 시작합니다.

퍼엉-! 퍼엉-!

멀리서, 이곳까지 유도하기 위한 폭탄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루르르르르-.

산등성이에서, 나무들 사이로 시꺼먼 물체들이 그 폭탄의 소리를 따라 내려온다.

정호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명백했다.

‘아직 조금 남았네.’

-아틸라 더 훈☆☆☆☆☆은 수행을 위한 기나긴 여행을 떠납니다.

-각성 재료 : 데몬하트

-각성 확률 : 30%

-복귀 예정 시간 : 00 : 25 : 55

아직 아틸라의 각성 예정 시간이 26분이 남았으니까.

“아아아아!"

다만, 절규하는 세오는 절대 모를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