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9화 >
# 49화
‘한 달.’
본래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은 한 달이라는 유예 기간을 두고 있었다.
전 세계인이 아스텔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강해졌다는 가정 하에 빠듯하게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일부러 그렇게 정해두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긴 시간이다.
-침공이 ‘가속화’ 됩니다.
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림자 지하 성채는 침공을 가속시켜, 그 한 달이라는 유예 기간을 대폭 줄여 일주일로 변경했다.
‘남은 시간은...’
-[119 : 34 : 00]
겨우 오 일 남짓.
그것이 얼마나 난데없는 날벼락인지는 말을 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아직까지 1층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심지어 랭커라 불리는 이들도 2층에 막 진입한 것에 불과하다.
적어도.
아스텔 유저들에게는 종말에 맞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설마···.’
다만, 정호는 그 짧아진 시간에 대해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불과했다.
확신 따위는 없다.
그저, 심증에 불과한 자그마한 추측.
‘나? 나야?’
정호는 지난 이틀 간, 무려 12개에 달하는 그림자 지하 성채를 공략했다.
아직 공략을 완료한 아스텔의 유저라고는 미국의 ‘karien’을 필두로 한 ‘가디언’이라 불리는 파티뿐이다.
‘나 때문이야?’
그림자 지하 성채는 침공을 하려는 당사자다.
그런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계획이 저지되고 있는 것을 마냥 바라만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전력이 더욱 약화되기 전에.
그 전에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쯧...”
정호는 혀를 차냈다.
분명 확신 따위는 할 수 없다.
그저 앞뒤가 맞을 뿐인 내용이었지만,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 행동에 대해 후회는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설령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침공이 가속화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성장을 멈추어 세운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는 말을 할 것도 없다.
남들처럼 올곧게, 차근차근 쌓아간다는 방식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 결과가 이거니까.’
침공이 다가왔음에도 정호에게 큰 위기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만약 앞서 나가지 않아, 최초 공략 보상을 얻지 못했다면. 아틸라를 얻지 못했다면. 공략을 이어나가, 확실한 장비를 손에 넣지 못했다면.
정호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침공에 몸을 떨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틸라.”
하나, 그렇다하더라도 정호는 결단코 방심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세상은 예측이 불가능한 일의 연속이다.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 있는 순간, 파멸로 가는 티켓을 구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인, 불렀어?”
아틸라는 꼬고 있던 다리를 펴고서, 정호에게 다가왔다.
정호는 말없이, 소중히 모셔두었던 하나의 물건을 아틸라에게 건네었다.
두근, 두근.
분명 육체를 잃어버렸음에도, 세차게 뛰어오르는 하나의 심장이 정호의 손 위에서 팔딱 거렸다.
정호에게 있어서는 단 하나 뿐인, 지금으로써는 더 이상 구할 수조차 없는 물건.
-데몬하트.
오 성급의 화신을 각성 시킬 수 있는 데몬하트가 그 주인공이었다.
“주인은 이 누님이 별로 미덥지가 않나봐?”
“설마.”
그 정체를 알아차린 아틸라가 불평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전혀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틸라의 얼굴에 떠오른 가느다란 미소는 오히려 기대와 흥미다.
“구하기 어려운 물건 같은데, 이렇게 덥석 줘버려서야 되겠어?”
“원한다면 다른 녀석에게 주도록 하지.”
“주인에겐 농담도 못한다니까.”
키드가 죽도록 싫어했던 것과는 달리, 아틸라는 각성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래도, 괜찮겠어?”
난데없는 질문.
그에 정호가 고개를 기울이자, 아틸라가 데몬하트를 손에 덥석 쥐더니 말을 이었다.
“주인이 제대로 다룰 수 있겠냐는 말이지.”
“음?”
한 순간, 각성에 성공했을 때 아틸라의 강신에 문제가 있었나 싶었으나.
“이 누님이 더욱 매력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주인이 부끄러움을 느끼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야.”
이어지는 말에 이마를 두들겼다.
“그건 좀 곤란하군.”
“그렇지? 하하.”
“물론, 각성에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데몬하트는 오 성급의 화신인 아틸라조차도 각성시킬 수 있을 정도의 고급 재료.
삼 성 이하는 100프로, 사 성급이라 할지라도 80프로라는 높은 확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오 성급의 화신의 각성 확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키드 같은 경우에는 한 번에 성공했지만...’
같은 확률이라고 하여, 아틸라라고 곧장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이 누님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틸라는 자신의 이마를 쓸어 올리며, 시원한 미소를 내짓고 있었다.
“주인은 그냥, 이 누님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화아아악-.
아틸라의 떠나가는 등이 커다랗게만 보인다.
아니, 실제로 커다랗다.
-아틸라 더 훈☆☆☆☆☆은 수행을 위한 기나긴 여행을 떠납니다.
-각성 재료 : 데몬하트
-각성 확률 : 30%
-복귀 예정 시간 : 120 : 00 : 00
단 한 번의 기회.
30프로에 불과한 확률.
결코 쉬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아니다.
하지만 정호에게 불안감은 없었다.
묘한 일이었다.
* * *
아스텔의 공지.
그림자 지하 성채의 침공이 가속화되었다는 것은 비단 정호만이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5일 남짓한 시간.
더 이상 가볍게 맞이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침공의 시작?]
[세 번째 클리어 유저의 탄생!]
침공을 앞두고서, 랭커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포탈을 줄이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고, 그 효과는 톡톡히 보고 있었다.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그림자 지하 성채의 공략이 고작해야 며칠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금 더 힘을 내라고!
┖얼른 몇 개라도 더 클리어 해 봐!
사람들은 그런 랭커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포탈이 없는 곳으로 피난을 하는 등 세상이 바쁘게 돌아갔다.
-과금망겜은 뭐하고 있는 건데?
┖하루 만에 열 개 정도는 없앨 수 있잖아!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그건 절대 아님. 랭킹 페이지를 봐.
한데, 기묘한 일은 그런 바쁘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소식이 뜸했다는 사실이다.
[그림자 지하 성채]
1위 : 과금망겜플레이어 - 18
분명 그 공략을 완료하며 그 숫자는 늘려가고 있었으나, 지난번보다 훨씬 늦어진다.
하루 만에 10개 이상을 공략했던 그 위용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이틀간의 시간동안 그 공략 수는 점차 줄어만 갔다.
-부상이라도 입은 게 아닐까?
그것에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침공이 이루어진다면,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존재는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그들에게 위기감이 없었던 까닭도 바로 이 부동의 랭킹 1위가 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불안과 응원 속에서 남은 시간은 단 3일.
드디어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 진돗개 하나 발령]
그야말로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처럼.
고요하지만 재빠르게 침공에 대비했다.
거기에는 당연하게도-.
[랭커들 비밀리에 소집?]
이번 침공에 없어서는 안 될 랭커들의 소집은 당연하게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그림자 지하 성채 침공 대책 회의-
그런 현수막이 걸린 회의실의 내부에는 속속들이 랭커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이거, 빙백금창과 빙백은창 형제분들 아니십니까. 이번에 공략에 성공하셨다면서요.”
“꽤 힘든 일이었죠.”
그들은 대부분이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랭커들의 수.
그림자 지하 성채 2층에서 사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이들은 그들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입니다. 저희 파티로는 침공에 맞설 수는 없었거든요.”
“뿔뿔이 흩어지면, 그만큼 힘들지 않겠습니까?”
분명 갑작스러운 모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랭커들은 그 자리에 대부분이 참석했다.
제아무리 그들이 랭커라 할지라도, 현대에 나타난 포탈의 개수는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다.
그렇다면 랭커들끼리 모여, 그 침공에 맞서는 것이 더욱 막아서기 편할 것이 분명했다.
하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모인 이들의 수는 족히 수 백.
“설마, 삼정전자의 김세정 씨가 그 ‘레이나’였다니 안 모일 수가 있어야죠.”
“레이나가 후위에 있어주면 든든하죠.”
그 소집을 한 이가 바로 랭킹 3위의, 세 번째 클리어 유저로 유명해진 레이나였던 탓이다.
애당초 그녀는 법에 아슬아슬하게 걸리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소재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이것 참... 스마트워치가 갑자기 울려 대길래 뭔가 싶었다니까요.”
레이나가 활용한 것은, 일정 이상의 스탯을 넘어선 유저들에게 알림을 주는 일이었다.
웅성웅성-.
그런 알람은 한국의 대다수의 랭커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침공이 갑자기 빨라지다니, 까닥하면 레벨 업 하다 죽을 뻔도 했다니까요.”
“아피스 말이죠? 어우, 끔찍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렇기 때문일까.
주변이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
본래라면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 누군가가 나서야 했다.
침공을 막기 위해, 스마트워치에 알람까지 준비하는 철저한 준비성.
본인조차도 세계에서 세 번째 공략 유저로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레이나, 김세정.
“...”
하지만 세정은 쉬이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랭커들의 주목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 따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위험해.’
이번 사태를 위해 단단히 준비했다.
누군가의 존재에 의해, 오류까지 발생한 스마트워치를 빠르게 배포한 것도 이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온 침공은 그런 세정의 계획을 완전히 박살내었다.
‘최소한 모두의 레벨이 30이상은 맞췄어야 했어.’
랭커들의 수준은 결코 낮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부족하다.
그림자 지하 성채의 공략을 완료한 이가 몇인가 붙어 있기는 했으나.
그것으로는 백을 넘어서는 모든 포탈을 막아 세우기란 무리가 따른다.
‘막아 세울 수는 있다.’
고작 침공 한 번에 무너질 정도로 이 현대의 사회는 녹록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그 피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몇 개의 도시는 포기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터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사람들에게 납득시킨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1위가 참석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쉬움을 흘렸다.
아직까지도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
‘추정 레벨 50 이상.’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다.
그라는 단 하나의 존재만으로도 시뮬레이션 결과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압도적인 스탯을 지닌 유저는 스마트워치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정말, 가상의 존재일 수도 있겠어.’
그가 솔로 플레이어라는 것을 감안하면 스마트워치를 구매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나, 그런 불확실한 존재에 기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꽈악-!
세정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테스트 겸, 입을 열었을 뿐일진데.
어수선한 분위기가 단번에 사라진다.
침묵 속, 모두의 주목이 자신에게 향했다.
앞으로 벌어질, 경악에 찬 목소리에 대비하여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인사말을 시작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모여주신 랭커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한데, 그런 세정의 말은 단 한 마디를 채 끝내지도 못했다.
끼이이이익-.
“제가 좀 늦었습니까?”
지각생이 찾아왔던 탓이다.
당연하게도 세정에 의해 침묵으로 가득 찼던 랭커들의 시선이 지각생에게 모였다.
어째서 이토록 늦게 왔느냐고 타박하듯이 말이다.
‘왜 저 사람이?’
하지만 세정만은 전혀 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타난 사내.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꽤나 평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분명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정호 씨?”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스텔의 상태창을 부여받지 못한 불운한 이, 이정호였다.
랭커들이 모인 이 자리에 어째서 저 사내가 이곳에 나타났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정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어진 말은 세정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과금망겜...플레이어의 대리 참석입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