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8화 >
# 48화
정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코인을 바라보았다.
‘코인은 4만하고도 5천.’
45,000코인.
그것이 가지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최초 클리어를 제외하고서 무려 11개의 그림자 지하 성채를 박살내고서 얻어낸 코인이다.
‘생각보다 적군.’
랭커들이 속속들이 2층의 사냥을 시작한 마당이다.
그만큼 공헌도의 보상과 사냥으로 얻는 코인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나.
아쉬움만은 어쩔 수 없었다.
미국에서 공략된 것처럼,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한국에서도 클리어 유저가 나타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사 성급 이상을 노려봄 직한 코인의 수는 되겠어.’
하지만 그것이 막대한 코인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틸라처럼 오 성급을 노리기는 어렵겠으나, 사 성급의 화신을 저격해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호는 전혀 다른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전용 무구.’
전용 무구는 영웅 등급, 3성 이상의 화신들이 가지는 특혜나 다름없다.
화신과 동시대에 이름을 날린 무기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힘이 된다.
삼국지의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그 이름을 드높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전용 무구는 화신의 힘을 완전히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 마련이지만.
‘얻기가 힘들겠지.’
좀처럼 손에 쥘 수 없는 존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수없이 많은 장비들 중 자신이 보유한, 그것도 주력 화신들의 전용 무구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전용 무구를 손에 쥘 수 있는 화신들이 삼 성 이상의 화신들임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3성 이상의 장비들 중에서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노려봄 직 해.’
다만, 정호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호가 노리는 전용 무구는 삼 성 등급의 화신이 가지는 무기들이다.
‘각성이 가능한 화신들.’
그림자 지하 성채를 공략하면서 얻어지는 것은 코인뿐만이 아니다.
삼 성급 화신을 각성시킬 수 있는 ‘호루스의 그림자’도 그 수를 충분히 쌓아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 각성에 30프로의 확률이 뒤따른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림자 지하 성채가 존재하는 한, 그 각성 재료의 수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으윽. 아파. 아파요...”
구석에서 엉덩이를 붙잡고 있는 키드를 슬쩍 바라보았다.
각성을 이루고 왔다고 하기에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으나.
‘키드.’
-빌리 더 키드 ★☆☆
-힘 : 58 체력 : 43 민첩 : 155 지력 : 65
그 능력치만은 절대로 약자의 것으로 분류될 것이 아니었다.
고작 한 번의 각성으로 이루어진 스탯은 민첩만 40, 나머지가 20이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특히나 단독 능력치가 155라는 점은 벌써부터 아틸라의 발끝을 쫓아오고 있는 수치가 아닌가.
‘이 정도라면, 충분히 키울 수 있어.’
별이 가득 채워진, 풀 각성의 삼 성 등급 화신은 오 성 등급의 화신을 넘어서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키드는 ‘세계 6대 살인마의 세트 효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이다.
‘저격에 실패하더라도 크게는 상관없어.’
물론 그런 생각 따위는 쥐뿔도 있지 않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화신들의 장비는 부실한 수준이었다.
서서가 착용하고 있는 현자의 목걸이를 포함한, 삼 성 등급의 장비는 겨우 3개.
굳이 저격에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삼 성급의 장비 몇 개 정도면 충분한 스펙 업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적은 리스크에 비해, 확실한 리턴이 돌아온다.
그 날, 그 날의 행운에 모든 운명이 결정되는 정호의 입장에서는 지향해야 할 자세기도 했다.
‘당장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것에는 아스텔이 자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는, 극단적인 행동에 묘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했다.
“11회 연속 장비 뽑기.”
[11회 연속 장비 뽑기 : 1000코인]
[잔여 코인 : 45,000코인]
[장비를 뽑으시겠습니까?]
“그래.”
슈우웅- 슈웅-.
길고 긴, 뽑기의 시작은 언제나처럼 맥이 빠진 소리의 물결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빠라밤!
빵파레가 울렸다.
* * *
뽑기류의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작스레 그 운수가 대통(大通)하는 경우가 있다.
행운이란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찾아와, 갑작스럽게 떠나는 그야말로 변덕쟁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찾아왔을 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
그저 단순히 기뻐하는 것만은 아니리라.
[신속의 귀걸이☆☆☆]
-이름 없는 도적이 품에 쥐고 있던 귀걸이.
-능력치 : 민첩 25증가.
-특수 능력 :
[신속(迅速) - 스스로의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를 대폭 증가시킨다]
대뜸 처음부터 튀어 나오는 삼 성 등급의 장비.
물론 저격을 하려던 전용 무구와는 그 거리가 멀었으나.
‘좋았어...!’
다만 그것이 민첩 특화의 화신인 키드와 어울리는 물건이었기에, 주먹을 쥐기는 했다.
슈웅- 슈웅- 빠라밤 - 슈웅-.
하지만.
[천사의 잃어버린 나이프☆☆☆]
-샤를로트 코르데가 장 폴 마라의 암살에 사용한 나이프.
-능력치 : 無
-특수 능력 :
[천사(天使) : 적의를 낮춘다. ‘상태 이상’이 걸릴 확률을 대폭 낮춘다]
+···.
두 번이면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어.”
정호는 말을 잃었다.
‘사용한 코인이 얼마였지?’
일단 지금 이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거대한 파도에 몸이 휩쓸려 버릴 것만 같았다.
‘5천...’
고작해야 5천 코인.
그것으로 얻어낸 것이 삼 성 등급의 장비가 둘.
그 중에서도 하나는...
저격하려던 삼 성 등급의 화신, 샤를로트 코르데의 전용 무구였다.
‘특수 능력은 샤를로테 전용의 옵션이지만...’
빠르게 손에 넣은 전용 무구의 존재.
그 능력의 진가는, 화신 본인이 쥐었을 때 더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코르데.”
정호는 곧장, 코르데를 소환했다.
“어머, 주인님. 오랜만에 뵙네요.”
코르데는 여유로운 자태로 나타나서는, 정호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하지만 정호의 손에 쥐어진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하자 그 여유로움은 온데 간데 사라졌다.
“주, 주인님. 그거 어디서 나셨어요? 잃어버린 뒤에 한참을 찾았는데...”
마치 오래된 연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애잔한 눈빛으로 ‘천사의 잃어버린 나이프’를 바라보는 코르데.
그것을 건네주자, 곧장 [+]창이 해금되어 정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전용 스킬 :
[만인을 위한 암살 : 적에게 완벽하게 암살이 성공했을 시, 일정 확률로 적을 즉사시킨다. 실패 시 상태 이상 ‘과다출혈’에 처한다]
‘...뭐?’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즉사(卽死).
물론 그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기는 했다.
완벽한 암살이라면, 적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해야만 한다.
적과 조우했을 때나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일정 확률이라 하면, 삼 성 등급의 무구답게 그 수치는 매우 낮을 터.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즉사’는 고작 삼 성 등급의 화신이 가질 만한 스킬의 옵션이 아니다.
‘상태이상, 과다출혈.’
뒤이어지는 내용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과다출혈이라면, 체력이 상당히 높은 보스의 적과의 전투에서 유용한 상태 이상이다.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공격.
실패 시의 리스크조차 없다.
오히려 리턴만 있는 꼴의 전용 무구였다.
정호는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섭다.’
스스로가 두렵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상황이 무서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공포는 마냥 기뻐하며 발을 구르는 정호의 행동을 막아선다.
최근의 정호가 가지는 기이할 정도의 행운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얼마나 망하려고...!’
정호는 모든 운은 결국 평균으로 회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톨비아에서 육 성급의 화신인 포세이돈을 얻고서, 돌아오는 평균회귀의 늪에 한참을 허우적대지 않았던가.
지금 느끼는 감정도 그리 다를 바는 없다.
다음에 찾아올 지옥 같은 심연의 구렁텅이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빠드득-.
정호는 이를 갈았다.
‘두려워하면 어떻게 해.’
지금 만큼은 자신의 콩알만 한 간이 원망스러워진다.
당장의 행운보다도 다음에 찾아올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지다니.
“11회 연속 장비 뽑기.”
설령 이것이 망하기 직전의, 상가의 바겐세일처럼.
다음에 찾아오지 않을 기회라면.
그것을 쟁취해야 하는 법이다.
슈우웅- 슈웅- 슈웅-.
룰렛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빰바람-!
태풍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 * *
“하? 하하하! 하하하! 나는 무적이야. 무적이라고!”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이 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키드는 그런 건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자신이 든 기다란 총에 키스를 날리고 있었다.
[휘트니 더블 배럴 해머 산탄총☆☆☆]
-서부 최악의 총잡이 빌리 더 키드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게 만든 총.
-능력치 : 無
-특수 능력 :
[산탄(散彈) : 전방에 적들에게 강력한 산탄을 날린다. 그 파괴력은 거리에 반비례한다.]
-전용 스킬 :
[집중포화(集中砲火) : 산탄에 키드의 스킬, 속사(速射)가 부여된다. 지속 시간 동안 재장전을 필요치 않게 된다. 지속 시간 : 1분]
“주인. 고마워. 정말 고맙다고.”
언제 원망을 했냐는 듯, 키드는 정호에게 쪼르르 다가와, 뺨에 키스라도 날릴 기세였다.
“커헉.”
그것을 단숨에 막아낸 정호의 얼굴은 심각했다.
“...”
키드를 빤히 바라본다.
녀석에게는 전용 무구인 ‘휘트니 더블 배럴 해머 산탄총’을 제외하고도 수없이 많은 장비가 걸려 있었다.
대부분이 삼 성급임을 감안하면, 지난 뽑기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삼 성급의 장비만 6개. 그 중 전용 무구가 두 개.’
게다가···.
[진군의 깃발☆☆☆☆]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려, 적에게 뒤처지지 않을 용기를 주는 깃발.
-능력치 : 지능 50증가
-특수 능력 :
[진군(進軍) : 착용한 화신의 지능에 비례하여, 아군의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킨다]
[등용문(登龍門) : 스킬로 생성된, 소환체의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킨다]
사 성급의 장비마저 손에 넣었다.
특히나 소환하는 스킬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
‘서서의 몫이군.’
본래라면 네크로맨서 계열인 니네체르에게 주기 딱 좋아보였으나.
정호에게는 ‘구원대’라는 스킬, 언데드가 아닌 화신을 소환하는 서서가 존재했다.
전용 무구가 아니라는 것은 아쉬웠으나, 등용문의 효과만큼은 이 만큼이나 걸맞는 화신이 없다.
‘소환 개체들은 도감의 효과는 받지 못하겠지만, 등용문의 효과라면...’
본래 일 성급의 화신을 다섯 소환할 뿐인 구원대.
그저 적의 공격을 몇 차례 막아주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스킬.
추가된 능력치를 도합 하면, 이 성급 화신이 도합 여섯이나 소환되는 사기적인 스킬로 변모한다.
서서의 무과금, 소과금 유저에게 으뜸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
정호는 슬쩍 남은 코인의 수를 보았다.
아직까지 본래 저격하고자 한 장비를 모두 얻어냈음에도, 6천 코인이나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행운의 연속!
그 행운을 받아들이고자,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스믈스믈 닥쳐오는 불안감이 몸을 옥죄었다.
현재 종말, 침공의 대상은 ‘그림자 지하 성채’.
공격대 던전이라면 모를까.
더 이상 파티 던전 따위는 정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한 때는 원망했던 자신의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감사함마저 느낄 정도다.
하지만 이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묘하단 말이지.’
그도 그럴 게.
정호가 원했던 물건은 전용 무구였다.
4만 5천이라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코인으로도 하나를 얻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확률.
그것을 보유한 화신들, 그 중에서도 집중 케어 할 것이 분명한 두 명의 유력 화신에게 주어졌다.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인위적인 자태가 아닌가.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자신을 끌어올리려는 수작질과 같이 느껴진다.
“그럴 수 있다면... 화끈하게 아틸라의 검을 주던가.”
“응? 누님에게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다.”
불만도 섞이지만, 의미가 없는 중얼거림이다.
아틸라의 검, 그러니까 ‘마르스의 검’은 육 성급의 전용 무구.
그것을 손쉽게 얻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정도의 무구 정도를 주었으면, 이리도 불안해할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알려드립니다.
그래, 이런 돌발 상황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감을 채워넣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
-‘그림자 지하 성채’가 침공을 가속화 합니다.
-[남은 시간 : 119 : 59 : 57]
진짜로 오라는 말은 안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