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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47화 (48/144)

< # 47화 >

# 47화

정호는 아스텔이 랭커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유를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저들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아스텔의 의도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스스로가 랭커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풀어내는 일이다.

히든 클래스의 소재부터, 스탯을 올리는 비법, 코인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하나 같이 아스텔의 유저에게는 유용한 수단들.

‘나는 답해주지 못하는 내용들이지.’

다만, 정호가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해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정호는 톨비아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었으니까.

‘아스텔도 알고 있을 테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정론’에 가까운 답들 뿐이다.

그럼에도 아스텔이 자신에게 요청한 이유는 뻔했다.

‘아스텔 유저들에게는 위기감이 없어.’

시련마저 주어지며 대비한 종말이다.

한 때는 정말이지, 슈퍼마켓의 모든 필수 용품들이 동날 정도로 대파란을 일으켰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자신의 존재에 의해.

다른 랭커들에 의해서.

그 종말이라는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어졌다.

오히려.

-여기는 과금망겜 안 오나? 2층에 못가도 공헌도 보상타면, 지금보다 훨씬 편할 것 같은데.

던전을 클리어하며, 자신이 혹여나 ‘다른 유저들의 성장’을 막아서고 있는 게 아닐까 양심의 가책마저 느꼈었으나.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도 모자란 상황에, 그들을 두 팔을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톨비아의 던전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 절대 못할 생각이겠지만.’

오 성이라는, 대영웅의 아틸라를 손에 넣으면서도 정호는 자신의 성장세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던전에 필사적으로 돌입하고 있지 않은가.

‘파티 던전이 문제가 아니야. 그 다음이 문제지.’

4인으로 이루어진 파티 던전, 그림자 지하 성채.

하지만 그 다음부터 이루어지는 ‘공격대’ 던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최소 8인 이상, 대부분의 공격대 던전은 20인.

그림자 지하 성채 따위는 맛보기에 불과한 던전으로 전락한다.

코인을 얻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자신에게 있어서, 아틸라를 손에 넣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다.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다.

그런 위기감이 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아스텔의 이런 돌발행동을 할 때는 항상 이유가 있었으니까.’

아스텔의 행동 패턴에는 꽤나 극단적인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 시련이 끝난 뒤.

성장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음 시련의 난이도를 대폭 하향시키는 것을 더불어 랭커들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직후 찾아온 것이 전조.

톨비아의 ‘작은 뿔 고블린’이 직접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행동에는, 먼 미래보다는 철저하게 다음의 상황을 걱정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스텔은 종말을 대비한 게임이다.’

제아무리 정호가 아스텔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아스텔이 나누어준 능력들 덕분에, 지금 종말을 막아내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아스텔은 세계의 편일 터.

‘그런 와중에 나 같은 녀석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레귤러 임에 분명한, 반감을 지니고 있는 자신에게?

그 행동이 얼마나 극단적인지는 말을 할 것도 없다.

그리고.

녀석의 극단적인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지만...’

이런 불안감은 지금껏 빗나간 적이 없었다.

‘녀석이 원하는 건, 랭킹 1위라는 자리에서의 답.’

그렇다면 그 답을 적어 넣는 것은, 본래 자신이 적으려 했던 애매하기 짝이 없는 정론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을 터다.

스스슥-.

인터뷰 내용을 적어가는 손은 거침이 없었으나.

‘결국은 녀석의 의도대로 흘러가는군.’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 * *

[랭킹 1위와의 독대]

소재지를 알 수 없는 랭커들의 인터뷰로 단번에 그 가치를 부상시킨 회사에서 일을 냈다.

항상 베일에만 싸여 있던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인터뷰가 뜬 것이다.

그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항시 랭커들만의 유용한 정보와, 스탯의 분배처럼 까다로운 질문도 제대로 답변을 받아오던 곳이다.

과금망겜플레이어의 비결은 무엇일까- 기대를 하며 그 소식을 접한 이들이었지만.

‘이런 인터뷰에 시간을 할애 하는 것조차 아깝다.’

첫 문장부터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줄줄이 써져 있었다.

뒤이어진 내용.

┖알려주는 건 하나도 없고, 죄다 애매하기만 한데?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던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었냐는 질문에 사냥을 해서 얻어진 것으로 장비를 얻었다. 힘을 얻었다와 같이.

정말이지 애매하고도,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낱말의 전부였다.

마치 수능에서 모두 백 점을 받은 이에게,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는다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라고 답변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강해진다는 것은 축복받은 능력이다. 이틀 차인 아직까지 공략이 안 되었다는 건, 위기감이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닌가?’

‘코인을 현금으로 되팔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들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제 목숨을 가져다 팔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아스텔의 말처럼 종말이라는 녀석이 정말로 한 달이나 기다려줄지 의문이다. 그렇게 정확하게 침공해온다면, 종말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다만 정론이기도 했다.

반감을 가질지언정, 반박은 할 수는 없는 정답에 가까운 원론적인 이야기.

다른 이가 꺼내었다면, 다 알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을 게 분명한 글이다.

하나, 그 말을 꺼낸 당사자는 랭킹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과금망겜플레이어’다.

충분한 성적 위에 그러한 내용을 담긴다면, 전혀 다른 양상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글에 의미가 부여된다.

꿈보다는 해몽.

마치 명작이라 불리는 옛 글이나 그림에 제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평가가 붙는 것처럼 말이다.

“...전조 때 저희가 매입한 코인이 얼마 정도 되나요.”

“52,000코인입니다.”

“되판 코인은요.”

“27,000코인입니다.”

‘코인을 되팔고 있는 것은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 일이다.’

이 사실은 시련의 랭킹 3위 레이나, 김세정에게 있어서는 꽤나 중요한 내용 중 하나였다.

시련 때만 하더라도, 그 코인의 가격은 5만 원 대에서 서서히 오르고 있었고.

전조인 고블린이 나타나고서 10만 원 대에서 동결되었다.

한데, 현재 코인의 가격은 1코인에 30만원을 호가하는 중이다.

2층에서 사냥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랭커들 외에는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모두 팔아야겠지만.’

차차 2층에서 사냥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최고점인 지금, 코인을 팔아야 한다.

남은 코인으로만 얻어내는 차익이 50억 원이 넘는다.

한데, 저 인터뷰의 내용이 막아 세웠다.

‘과금망겜플레이어가 클리어 한 던전은 12개.’

공헌도 보상이라는 내용은 이미 확인한 바가 있다.

지금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코인들도 공헌도의 보상으로 얻어진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공헌도가 높은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쥐고 있는 코인의 수는 상당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을 팔지 않고, 손에 쥐고 있다.’

코인 하나에 30만 원.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목숨 값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종말이 쉬운 존재가 아님을 다시 일깨워 준다.

‘안일했어.’

세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재벌가에서 태어난 자신이다. 쉬이 거머쥘 수 있는 돈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하나, 그것은 잘못된 길이다.

랭킹 1위라는, 아마도 현재 이 시점에서 가장 종말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이도 경계를 하는 마당에.

자신이 한낱 지폐 쪼가리에 놀아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코인 매도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세정의 성장은 정체된 상태였다.

백마법사의 성장은 마법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았다.

보다 높은 등급의 마법서를 얻기 위해서는 그 만큼 많은 코인이 필요했고.

‘한 달.’

아스텔의 한 달이라는 기한을 굳게 믿고서, 그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애초에 종말이라는 침공에, 한 달이라는 정확한 시간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가.

지금은 움직여야할 때였다.

“상점창 오픈.”

정호의 생각처럼.

아스텔의 의도는 일부의 랭커들부터 비롯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 * *

도박에는 여러 징크스가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습관은 하나로 끝나는 법이 없다.

뜻하지 않은 행운을 불러일으킨 상황.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징크스는 많아지기 마련이다.

“아틸라. 조금 더, 왼 쪽이 아니었을까?”

“왼 쪽? 여기 말이야?”

정호는 자신의 검지와 엄지를 펴, 카메라 모양을 만들고서 아틸라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잡지는 몇 페이지였지? 중간쯤은 되었나? 시간은?”

조금은 과한 집착이 아닌가 싶었으나.

정호는 한없이 진지했다.

‘지난 번 합성에서 분명, 이 각도였던 것 같은데.’

떠올리는 것은 지난 ‘화신 합성’에서의 기억.

정말이지 손쉽게 손에 넣은 그 뜻하지 않은 행운이 정호에게 징크스를 부여했다.

‘아틸라를 소환했고... 잡지를 읽고 있었으니까.’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속셈이었다.

시간도 마침 새벽.

큰 건수를 앞둔 정호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깃들었다.

“주인, 이 정도면 됐나?”

“음? 그래. 충분해.”

완벽하다.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으니, 마음이 편안해질 터다.

“아니. 잠시만.”

한데,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당시와 똑같았으나, 무언가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신만 살고 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한 명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래, 구석에서 누군가 울고 있었던 것 같은...”

그에 대해서 생각에 잠길 무렵.

정호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빌리 더 키드가 수행을 위한 기나긴 여행을 끝마쳤습니다.

-빌리 더 키드☆☆☆의 각성에 성공하였습니다.

-빌리 더 키드★☆☆가 귀환합니다.

“주인, 정말 너무한 것 아니에요? 그렇게 가기 싫다고 했는데...! 수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하기도 힘들 거에요.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요! 쉬려고만 하면 적들은 매번 찾아오지,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뒤통수를 갈기려 하지, 아주 ...”

나타나자마자 키드는 불평불만을 토해내며, 정호에게 달려들었다.

“파업이야. 파업. 나 더 이상 일 안 해! 그때 그 고릴라가 막아선대도... 이젠 내가 이길 지도? 어라? 그러네. 확! 그냥!”

‘대견하군.’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조금 과하게 달려들기는 했으나.

정호는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겨우 30프로에 불과한 확률.

녀석의 말처럼 각성이 ‘화신’, 스스로가 수행을 떠나는 것이라면, 30프로의 확률이란 높은 난이도의 수련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오늘만은 저 녀석이 무슨 짓을 하던 간에 보듬어 줄 수 있었다.

‘미안하다.’

하나, 그렇기 때문에서라도.

정호는 녀석에게 속으로나마 미안함을 표했다.

“아틸라.”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틸라를 부른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정호가 무엇을 원하는 지는 아틸라도 알고 있는 듯 했다.

말없이 키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내가 얼마나 대단... 아?”

그에 키드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는, 입을 닫았으나...

이미 늦은 마당이었다.

‘미안하다.’

다시 한 번 속으로 사과한다.

징크스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킬 수 있다면, 하는 편이 나은 편이다.

“고생 많이 했구나. 우리 키드.”

아틸라가 손바닥을 풀며 다가오자, 키드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아하하, 내가 너무 과했나? 사실 그 정도로 힘든 수련은 아니었는데 주인이 내 고생을 좀 알아줬으면... 아, 아니? 어? 이럴 수는 없는데? 나 열심히? 했는데? 정말인데?”

키드의 절규가 뒤따랐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키드가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전용 무구.’

이번의 저격은 키드에게도 좋은 의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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