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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46화 (47/144)

< # 46화 >

# 46화

“꺼지라고 해.”

-아니,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횐데요. 선배님. 선배님? 차라리 소재지를 알고 계신다면, 제가...

뚝-.

정호는 신경질을 내며 통화를 끊어내고는, 걸음을 옮겼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도 그럴 게, ‘과금망겜플레이어’는 정호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인터뷰를 하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

언제고 들키고 말 테지만, 그것을 스스로 드러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스텔... 그 놈도 괘씸해.’

정호는 아스텔에 대해 애초에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제아무리 종말이 다가온다고는 하나.

자신이 즐기던 톨비아란 게임을 서비스 종료하게 만든 주범이고.

세계 모두에게 그 능력을 나누어 줄 때도 자신만 쏘옥 빼놓고 주었지 않은가.

심지어 아스텔을 플레이 하지 않은 이에게조차 주었으면서!

‘알고 있다 이거지.’

게다가 이번에는, 인터뷰를 요청했다.

콕 집어서, 정호를 골라서 말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면, 그야말로 멍청이다.

아스텔은 자신이 ‘과금망겜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상태창을 부여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내버려뒀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뭐, 콩고물도 안 주면서 말이야.’

사실, 이게 거절의 가장 큰 문제기도 했다.

랭커들의 인터뷰라면 정호도 어지간히 해왔다.

거기서 자신은 월급을 타 먹을 뿐이지만, 랭커들은 쉬이 그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의 대가로 ‘아스텔’이 막대한 보상을 준 것이 분명해보였으나,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없었다.

‘좋은 기회라고?’

타박, 타박, 타박.

정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많은 포탈을 클리어 하는 게 중요했다.

* * *

정호가 아스텔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다음 던전으로 향했을 무렵.

[불과 하루! 제 2의 클리어 자 등장]

[karien이 속한 길드, ‘가디언’]

[가디언은 더 이상 종말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라고 발언]

-와, 벌써?

┖괴물이 미국에도 있네.

┖과금망겜플레이어도 대단하지만, 저 사람도 시련부터 이상할 정도로 처치 수가 높았었잖아.

불과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과금망겜플레이어를 이어, 새로운 클리어 자가 탄생한 것이다.

첫 시련에서부터 그 두각을 드러낸, 랭킹 2위인 미국의 플레이어, ‘karien’이 그 주인공이었다.

특히 그는 과금망겜플레이어와는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

[속보) 가디언의 대표, ‘karien’ 기자회견]

정체를 꽁꽁 싸매고 있는 랭킹 1위와는 달리, 그는 직접 사람들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매스컴에 그 모습을 직접 드러낸 ‘클리어 자’.

특히나 ‘히어로’라는 것에 동경하는 미국 출신인 탓일까.

그 기자회견은 대대적으로 커다란 홍보를 통해 전 세계에 퍼졌다.

“반갑습니다. 세계의 여러분. 'karien'의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아메리카 가디언 소속의 대표, 칼 매그너입니다.”

칼 매그너.

그는 이목구비가 뛰어난, 훤칠한 외모를 가진 금발의 20대 남성이었다.

마치 언제라도 다시 사냥을 나서겠다는 듯, 육중한 갑주와 함께 거대한 검을 등 뒤에 차고 있는 모습은 동경하는 영웅의 모습에 가까웠다.

“이번 공략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제 파티원들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을 뻔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말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파티원들을 소개하며, 기자회견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공략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입니까?”

“다음 공략은 언제 결정 나 있습니까?”

무난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기자들의 질문 공세.

하지만 그 공세는 시간이 흐르자, 점차 자극적으로 변해 갔다.

시작은 단 한 명의 기자 탓이었다.

“한국의 과금망겜플레이어, 그러니까 ‘Pay to Win Player’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자극적인 기사를 뽑는 것이 주 목적으로 삼는 한국의 기자답게 내던진 질문.

사뭇, 과금망겜플레이어라는 긴 이름을 영어로 설명하기 힘들었는지, ‘P2W’ 이라 표현한 그의 의역은 실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Oh."

매그너 또한, 그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는지 잠시 파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괜찮습니다. 그는 물론, 놀라운 유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속보) 매그너, 과금망겜플레이어는 존경하는 유저]

한국 기자들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조회수를 빨 수 있는 기사가 완성되기 시작한 마당이다.

그들의 공격적인 질문 공세는 거세지기 시작했다.

“P2W 유저에게 한 말씀이 있으시다면?”

“P2W 플레이어에게...”

그에 매그너는 성심성의껏 답하기는 했으나.

당연하게도, 자신에게 가야 할 주목도가 다른 이들에게 가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물론, P2W 플레이어는 대단한 플레이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솔로로 그림자 지하 성채를 클리어하다니요. 하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한 명의 영웅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매그너는 정면으로 P2W 플레이어와 자신의 가치를 비교했다.

이미 ‘가디언’이라는 길드를 가진 자신, 칼 매그너.

그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가디언은 그 규모를 더더욱 키워갈 게 뻔했으나, 아직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그는 그저 한 명의 솔로 플레이어에 불과하다.

그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니요. 공개선상에 아예 등장하지 않은 그는, 솔로로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 아닙니다. 이것은 없던 이야기로 하지요. 다음 질문 주십시오.”

흠흠.

헛기침으로 자신의 말을 얼버무리기는 했으나.

그것을 놓칠 한국의 기자들이 아니다.

[속보) 매그너, 과금망겜플레이어는 편법을 쓰고 있다]

[속보) 매그너, 랭킹 1위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제멋대로 해석해서 써내려가는 것이 실로 한국의 기사다웠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한국의 유저들의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묘하긴 하지.

-목격담이 꽤나 이상했으니까.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과금망겜플레이어의 목격담이 꽤나 기괴했던 탓이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공포스러운 말을 이끌고서, 구울들을 밟아 터뜨렸다.

그런 괴담과도 같은 이야기가 퍼져 있는 마당이다.

그러면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편법에 가까운 무언가 보다는, 앞으로 나설 수 없는 이유가 분명 있어 보였다.

“언제든 저희 가디언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새로운 사냥꾼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는 일도, 우리와 함께라면 가능할 겁니다.”

한 번 더 솔로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자회견을 마무리 지은 매그너는 만족스럽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 짝.

한데, 환호해야 할 박수소리가 적었다.

매그너가 고개를 기울이며,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어. 어어...?”

“이게 다 뭐야?”

웅성대는 목소리.

꽤나 혼란스러운 장내의 모습은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생중계되던 인터넷의 댓글도 난리가 났다.

-뭐임? 미쳤음?

-홈페이지 버그 난 것 같은데?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아스텔의 공식 홈페이지.

그 중에서도 랭킹 페이지다.

[그림자 지하 성채]

1위 : 과금망겜플레이어 - 2

2위 : Karien - 1

2위 : Akan - 1

2위 : Fallin - 1

...

분명 2위에는 매그너가 속한 가디언의 멤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1위인 과금망겜플레이어의 숫자가 2에서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2, 3, 4, 5, 6...

마치 미루어진 것을 한 번에 올리는 듯, 바삐 움직이는 움직임.

기어코 그 숫자는.

-1위 : 과금망겜플레이어 - 12

‘10’을 넘기고서야 멈추어 섰다.

-아무래도 2위 따위가 덤벼드니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데?

* * *

달이 빙긋 웃음 짓고 있는 깊은 새벽.

“으흠흠~.”

콧노래를 흘리며 집으로 향하는 정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니, 가볍지는 않았다.

아틸라를 강신시키지 않고서야, 들 수 없을 정도의 무게의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으니까.

절그럭-, 절그럭-.

다만, 마음은 가볍다.

들뜨는 것도 당연했다.

그 안에는 자그마치 던전 12개분의 보상이 가득했으니까.

‘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하루에 12개 정도면 충분하지.’

아직 수백에 달하는 던전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시간은 충분했다.

녀석들이 모조리 튀어나와서, 세상이 박살나는 것은 아직 한 달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지 않은가.

그 동안 쌓아 올릴 코인들은 그런 비상시의 사태를 막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번에는 화신들보다는 장비를 뽑아야겠어.’

물론 지금의 바스타드 소드는 흠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좋은 검이었으나, 오 성급의 아틸라가 쓰기에는 그 급이 너무도 낮았으니 말이다.

장비 강화 재료도 있겠다, 단단히 준비해 오 성급의 장비를 뽑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집 앞에 도달한 정호.

덜컥-.

한데,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정호의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음...?”

구석 한편에 신문과 택배로 보이는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신문을 구독한 적은 없는데.’

그리 생각하며 쪼그려 앉아, 그 신문의 내용을 확인하자.

[두 번째 클리어 자들]

‘음... 벌써?’

미국의 랭커 파티가 그림자 지하 성채를 격파했다는 소식이 있는 신문이었다.

그 외에도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것도.

‘확실히... 2위가 Karien이라고 했나? 두 번째 시련에선 천 마리에 가깝게 쓰러뜨렸었으니까.’

그 만큼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보상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그와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시선을 돌려, 상자를 확인하는 정호.

와락-!

대번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보낸 이는 아스텔이었다.

신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칼 매그너, 과금망겜플레이어는 편법을 쓰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내용.

거기에 아스텔에서 찾아 온 택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다.

‘거절했다고 지금, 나한테 항의라도 하는 거야?’

* * *

집으로 돌아 온 정호는 인터넷을 통해 자초지종을 깨달았다.

자신이 던전에 틀어박힌, 12시간이란 동안 세상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새끼가...’

물론 모든 일이 우연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양새가 정호에게 있어서 얼마나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다가오는 지는 말을 할 것도 없었다.

“...”

시선을 옮겨, 아스텔에게서 온 택배를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그것을 부숴내고 싶었지만, 꾹 참아냈다.

‘내가 확인을 못한 거였군.’

그저 약간의 오해에 의해서, 이뤄진 일.

아스텔에게서 온 택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내용물에 따라 자기 자신을 인터뷰할 생각은 있었다.

찌이익-.

상자를 뜯어, 그 내용물을 확인했다.

“오.”

-갈기 늑대 코트☆☆☆

눈앞에 떠오르는 별의 개수를 확인하고는, 곧장 감탄사를 날리기는 했다.

-특수 효과 : 늑대들의 울음

-적의 이목을 잠깐 집중시킨다.

“음...”

이어지는 것은 약간의 아쉬움이다.

분명 상당한 물건이긴 했다.

삼 성급의 장비는 분명 정호조차도 아직, ‘현자의 목걸이’ 외에는 보유하고 있지 않은 물건이다.

하지만 이번에 장비 뽑기를 진행할 예정인 정호의 입장에서는.

‘애매해.’

특수 능력이 꽤나 애매했다.

잠깐의 주목을 끄는 것 정도라면, 상태이상 ‘도발’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보상을 무시한다라.’

아스텔의 행태는 정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보상도 그저 그럴 뿐, 크게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니, 주인. 이, 이 누님은 저 코트가 참 탐나는 걸? 하하. 그, 그렇다고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본래부터 늑대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아틸라의 마음에는 쏙 드는 모양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덥석.

긴 고민이 있었으나, 정호는 늑대 코트를 집어 들었다.

-고마워. 주인.

아틸라의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물론 아틸라를 위해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이유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스텔의 의도대로 순순히 따라 줄 생각도 없었다.

“그럴 거면 인터뷰 내용도 함께 가져다 줬어야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애매한 보상에는 애매한 답이 최고다.

“불만은 없을 거야.”

펜과 수첩을 꺼내어, 휘갈긴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질답을 내거는, 침묵으로 가득찬 인터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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