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5화 >
# 45화
지하철 입구의 포탈.
그림자 지하 성채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항시 줄을 서 왔었으나.
지금은 조금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비켜, 비키라니까.”
“여긴 텄어. 얼른 다른 포탈로 가자고.”
“어어. 밀지 마시라니까요.”
“언제 밀었어? 네가 막은 거잖아!”
들어가려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
그 둘이 맞부딪치자, 그야말로 시장통이나 다름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입니까?”
통제를 하는 군인들조차, 처음 있는 일에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으나.
“괴물이 하나 있어. 말 괴물.”
“그 놈이 1층의 구울을 다 잡았다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이해할 수 없는 말.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 일단 여러분들은 자초지종을 막사에서 설명을 해주셔야...!”
“무슨 설명? 이미 했잖아.”
“아유, 비키라니까 그러네.”
위급 사태일 때 내려진 매뉴얼에 따라 그들을 인도하려 하지만, 그조차도 신통치 않다.
아니, 오히려 그 탓에 사람들이 줄어들기는커녕 구경꾼들까지 모여들어 정작 제대로 된 진행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화아악-!
그 상황은 도망치듯 나온 ‘칼날귀족’, 김세오가 나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게 다 뭐야.’
그리 생각하지만, 그 원인은 알고 있었다.
어쩐지 1층에 구울들은커녕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했다.
2층에서도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었던 정호다.
그런 정호가 1층에서 구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바람에 일어난 사태라는 것을 예측하기는 쉬웠다.
‘그림자 은신.’
세오는 몸을 숨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완벽하리만큼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그 괴물이 또 쫓아올지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품으며 자리를 뜬다.
하지만 그것을 막 떠나기도 전에, 기묘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31번 그림자 지하 성채가 침략에 실패합니다.]
[31번 그림자 지하 성채가 그 모습을 감춥니다.]
“어? 어어? 뭐야.”
“31번? 여기가 31번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던전을 빠져나온 인원들은 하나 같이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는 공헌도 순위는 더더욱 그들의 혼란을 가중시켜, 아연실색 하게 만들었다.
[그림자 지하 성채 31]
[공헌도 순위]
1. 과금망겜플레이어 - 740,000점
2. 칼날귀족 - 117,000점
3. 자두맛사탕 - 12,000점
...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과, 과금망겜플레이어?”
“아까 그 말 괴물이 랭킹 1위라고?”
베일에 싸여 있는 랭킹 1위의 과금망겜플레이어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어디야. 어디에 있냐고.”
“나오는 사람을 잘 봐!”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 놀람은 결코 세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뭐, 뭐라고?’
-117,000점의 공헌도 보상으로 790코인을 받았습니다.
떠오르는 그 메시지는 볼 필요도 없다.
세오는 과금망겜플레이어를 알고 있다.
얼굴을 대면하기도 했다.
누군지 알고 있다.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이정호...!’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어째서 그가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협박을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베일에 싸여있는 그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어, 얼른 집에 가야지.’
그림자 은신의 수련을 해야 한다.
숙련도 S가 아니라, SSS는 올려놔야 저 악귀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니,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벗어나야만 했다.
‘이, 있다...!’
세오는 멀리서 사람들 틈에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정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구야? 누구냐고!”
“누구 얼굴 본 사람 없어?”
“뒷모습밖에....말이 너무 커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져가지만, 세오는 그 물음을 외면한다.
‘절대. 절대로...!’
집으로 도망치는 세오의 얼굴은 새까맣게 변했다.
절대로 그의 정체를 밝혀서는 안 된다.
* * *
[다시 나타난, 과금망겜플레이어? 두 번째 클리어!]
‘의외인데.’
집으로 돌아온 정호는 얼굴을 대놓고 드러냈음에도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그것이 살인마의 세트 효과 중 하나인, ‘미약한 공포’가 거들었다는 사실은 깨달았으나.
‘완전한 비밀은 없어.’
이번 던전을 통해 확신했다.
정호는 코인을 위해, 다른 포탈들도 다닐 예정이었다.
이번에야 운이 좋아, 들키지 않았다 뿐이지.
이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포탈들의 대부분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그 안에도 수많은 이들의 눈이 있을 테니까.
‘거짓은 진실 속에 숨기는 법이야.’
과금망겜플레이어가 자신이다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장 걱정하는 것은, 톨비아의 시스템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종말의 주체가 같다는 점에서 튀어나온 생각은 아니었다.
‘니네체르.’
-니네체르☆☆☆
-힘 : 12 체력 : 8 민첩 : 30 지능 : 67
이번에 새롭게 얻어 낸, 기묘하기 짝이 없는 화신 탓이다.
‘보스 몬스터가 수중에 있다라...’
사실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니네체르는 역사 속에 이름이 있는 녀석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톨비아의 기준에서는 보스 몬스터로 분류되는 녀석이다.
그런 보스 몬스터가 화신이 되었다.
이 사실은 정호가 꽤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게임이던 시절의 톨비아에서는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능력치는 전형적인 캐스터인데...’
정호는 의문을 떠올렸다.
삼 성급의 화신이 손에 들어온 것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니네체르는 사용할 수 없는 존재였다.
소환을 한다면, 그 얼굴이 보스 몬스터라는 것을 알아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몰래 사용한다 하더라도, 네크로맨서의 니네체르가 그 힘을 내는 던전은 적다.
‘...손해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니네체르를 받아들이면서, 아피스와 니네체르가 떨어뜨릴 코인을 수거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정호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도감.’
혹시나 화신 도감에 니네체르와 관련된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다만.
애초에 화신이 아니었던 니네체르니,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서 확인했다.
“...뭐?”
한데, 새롭게 반짝이고 있는 화신 도감.
그곳에는 분명 니네체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뭐야, 이게.”
[화신 도감]
-보스 몬스터 :
그들은 화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타락했으나, 당신에게 귀속되기를 원합니다.
-니네체르 ☆☆☆ (보유중) / 소환 개체수 1 증가
-???
-???
....
지금껏 본 적 없는.
“소, 소환 개체 수 증가?”
그러나 톨비아의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하는.
짧지만 강렬한 효과가 그 자리에 있었다.
* * *
톨비아에서 소환 개체 수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던전에서 인원 제한이 있는 만큼, 그 하나의 인원이 더 많은 화신을 부릴 수 있다면 난이도가 내려가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톨비아 유저들은 VIP타이틀에 매달린다.
가장 쉽고, 가장 빠르게 얻어낼 수 있는 VIP타이틀은 톨비아에서는 필수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게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건 ‘크라켄의 해저 도시’에서나 가끔 뜨는 럭키 몬스터에게 뜨는 장비 아이템.’
크라켄의 해저 도시는 까다로운 던전이다.
던전 자체가 심해에 있는 탓에, 물에 특화되어진 화신이 아니고서야 저 장비를 구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그 가치가 정말이지 억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포세이돈을 가지고서도, 한참이나 노가다를 해야 했지.’
물에 특화된 육 성, 신 급의 화신을 거느리고서도 그 럭키 몬스터를 찾기 위해 몇 달이나 죽치며 있었던 장소기도 했다.
‘그런데...’
보스 몬스터라는 기묘한 도감.
삼 성급의 화신인 ‘니네체르’를 손에 넣었을 뿐이다.
그런데 고작 그것으로 ‘소환 개체 수 증가’라는 효과를 얻어내지 않았는가.
‘하나의 개체. 그것만으로 전략을 바뀔 수 있어.’
정호는 곧장 자신의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틸라가 있으니 문제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하나의 개체가 늘어난 것만으로도 정호의 파티는 비약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한다.
특히나 사 성급의 화신인 서서의 자리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그 효용성은 넓었다.
“흐흐...”
자신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심취했다.
-주인, 너무 음흉하게 웃는 거 아니야?
“아.”
지켜보는 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 * *
그림자 지하 성채 4층.
게임이었던 시절에는 몇 번이고 온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종말이 되어 돌아왔을 때에는 처음 발을 놓는 곳이다.
지하 4층은 니네체르가 잠들어 있는 방.
그곳은 콜로세움에 비해서는 좁았으나, 방이라고 하기에는 넓었다.
“크크크, 이 니네체르님의 단잠을 깨우다니! 나오너라. 나의 충직한 노예들이여!”
니네체르의 말에 따라, 일어나는 구울의 수는 지난 전투와 비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는데?”
“...조금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네. 내 얼굴과 목소리를 하고서 저런 추잡한 이야기를 꺼내다니.”
정호의 옆에는 이제는 화신이 된, 니네체르가 서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인가?’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떠올렸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는 그림자 지하 성채가 존재했다.
그곳의 보스 몬스터는 여전히 니네체르다.
그렇다면, 그 녀석들도 손에 넣어 ‘중복 화신’으로써 손에 넣을 수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 성급의 화신을 뽑을 때까지 계속해서 합성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확인 한 4층은 그저 제정신을 차리지 않은, 게임 속의 니네체르만이 방 안에서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쯧.”
정호는 더 이상 감흥이 떨어졌다는 듯, 무심하게 구울의 파도 속에 몸을 던졌다.
“캬하아악!”
“캬학!”
구울들이 몸 이곳저곳을 깨물기는 했으나, 이미 체력을 200이나 넘어 선 정호다.
아틸라는 고작 그 정도의 공격에 타격을 입을 정도로 허약하지 않았다.
곧장 눈앞에 도달하는 니네체르를 향해, 검을 한 차례 휘두른다.
쉐에에에엑-!
“어, 어떻게...! 바로 찾을 수...”
“운이야.”
사방에 퍼져있는 네 명 중 하나의 니네체르를 쓰러뜨리자, 곧장 구울들이 사라진다.
떠오르는 공헌도 보상을 챙긴 정호는 무너져 내리는 그림자 지하 성채를 빠져나갔다.
“후우...”
이번에는 확인 차 일부러 외진 곳에 위치한 포탈을 골랐던 탓인지 몇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기울이며 떠나갔다.
‘아쉽네.’
아쉽기는 하지만, 그 뿐이다.
애당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일이다.
니네체르가 구해 달라 요청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원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그저 가방에 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지는 묵직한 코인들이 정호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뿐이다.
띠리리리-.
그런 정호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확인 해보니, 실로 오랜만에 보는 듯한 동하의 연락이었다.
“연차를 냈는데...”
투덜대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네, 선배... 아니 부장님. 잘 쉬고 있어요?
“그래, 너도 던전은 잘 다니고 있고?
-당연하죠. 조금만 더 있으면 저희 파티가 2층에 갈 것 같다니까요.
“그래? 다른 유저들은 일주일은 걸린다더니.”
랭커도 아닌 동하가 벌써 2층에 돌입한다는 소식은 꽤나 놀라운 소식이었다.
‘생각보다, 유저들의 수준이 빠르게 오르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저도 톨비아랑 아스텔 둘 다 해본 유저잖아요. 딱 각이 보이죠. 파티에 랭커도 이미 영입해뒀지만, 그 사람 덕분은 아닐 겁니다.
“그 녀석 덕분이네.”
-아하하... 아, 아무튼 그것 때문에 연락드린 게 아니고요. 아스텔에서 일 하나가 내려왔더라고요.
“인터뷰? 나는 안 간다. 휴가 내놨는데.”
단칼에 거절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게... 조금 곤란하거든요.
“뭐가?”
-아스텔이 이정호 부장님께 직접 내린 인터뷰 요청이에요.
“뭐? 누군데?”
이어지는 동하의 말.
그것에 정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저는 선배가 부럽다니까요? 인터뷰 대상이 무려 ‘과금망겜플레이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