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3화 - 유료 시작 회차입니다. >
# 43화
톨비아에서 그림자 지하 성채는 하나의 룰이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지켜야할 규칙이 아닌, 서로가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그런 룰 말이다.
사람들에게 전해진 톨비아 유저들의 공략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규칙으로 변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너무 큰 소음’은 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구울들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괜한 큰 소음을 내어, 그들의 주목을 이끄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히이이이이이잉-!
그런데, 난데없이 울려 퍼지는 말의 우렁찬 소리.
지하 1층이 길게 뻗어진 일직선으로 된 통로인 탓일까.
그 울음소리가 사방팔방 메아리 쳤다.
“어어? 뭐야?”
“누구야? 여기에 말을 끌고 온 놈이?”
한창 휴식과 사냥을 이어나가던 아스텔 유저들의 의아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어...!”
우르르르르르.
파도다.
난데없는 밀물이 몰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 자리를 수호해야 할 구울들이 모조리 뛰쳐나온다.
“이런 시발!”
“얼른 빠져! 오늘 사냥은 글렀어.”
터져나오는 욕지거리.
넘실거리는 구울의 파도는 빨랐으나, 그런 녀석들을 사냥하는 이들이다.
던전을 빠져나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어떤 미친 놈이 여기에 말을 끌고 온 거야?”
“입구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뭘 하고 있는 건데?”
“아. 두 마리만 잡으면 레벨 업이었는데!”
아쉬운 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리기는 했으나.
목숨을 잃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들은 던전의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 놈이구만!”
그런 그들의 눈에 하나의 말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녀석의 얼굴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반드시 기억해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 가까이 오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가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아니,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 속도는 분명 자신들이 내달리는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푸르르- 푸르르-
말의 투레질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간다.
다그닥- 다그닥-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말이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니, 세차게 내달리고 있다는 것을.
“저, 저...! 죽으려고 환장 한 거야?”
사람들은 아연질색 했다.
말을 타고 온 기세는 좋았지만, 저 구울의 파도는 절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막아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이봐! 돌아, 뒤로 돌라고.”
제아무리 트롤 짓을 했다고 해도, 이곳은 현실이다.
욕지거리를 내뱉을지언정, 사람이 죽으러 간다는데 막지 않을 이가 없다.
한데, 그런 말이 자신들의 코앞에 닥쳤을 때.
“어...”
“무슨 말이...”
그들은 말을 보고서 말을 잃었다.
아니 애당초 말이 맞기나 한 것인가.
자신들의 키를 아득히 넘어서는 거대한 덩치.
길게 뻗은 다리에는 잔뜩 성이 난 핏줄이 근육을 휘감고 있었다.
만약 삼국지의 시대였다면, 여포가 타고 다녔다던 적토마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쉐에에에엑-!
그런 거대한 군마가 자신들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 직후, 벌어지는 사태는 그들의 몸을 멈추어 세우기에 충분했다.
히이이이잉-!
군마는 그 거대한 체구를 앞세워, 하늘 높이 앞다리를 세우는가 싶더니.
콰아아아앙!
구울들의 머리를 박살을 내버린다.
“저게... 뭐야.”
“나도 몰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들이 그토록 힘겹게 사냥하고 있던 구울이다.
한데, 그런 구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캬하아아아악!”
“캬아아악!”
구울들의 울음소리가 비명소리로 들리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몸을 한 차례 웅크리다 앞으로 대가리를 쥐어박고.
화려한 뒤돌려차기부터, 앞차기까지 다채로운 발차기를 구사한다.
구울의 머리를 잡아 뜯더니, 잘근잘근 씹기까지 한다.
그런 말의 안장에 앉아 있는 사람은 또 어떤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거대한 검을 손에 쥐고서, 무겁지도 않은 것인지 쉬지 않고 휘두르고 있다.
마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모양새였지만, 그 결과물은 사뭇 섬뜩했다.
“캬아아아아-----”
“캬아-”
팡-! 팡-!
한 번에 휘두름에 구울들의 목이 폭죽처럼 터져나간다.
썰었다기보다는 그 말 그대로, 터트리고 있다.
고작해야 하나의 말과 사람을 상대하는 족히 백 마리의 구울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다.
“으으...”
“으...”
우두커니 서서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은 말을 잃었다.
분명 저 대단한 모습에는 경이나, 놀라움이 가득해야 했으나, 어째서인지-.
“제, 제 모, 몸이 왜 이렇게 떨, 떨리죠?”
기묘한 공포심이 깃들었으니까.
“어, 얼른 가죠.”
“그, 그래.”
그들의 발걸음은 분명 걷고 있었으나, 달리는 것처럼 재빨랐다.
* * *
정호는 그림자 지하 성채 1층의 구울들을 모조리 몰살시켰다.
코인 하나 떨어지지 않는 녀석들을 일부러 끌어 모아 잡은 이유는 당연하게도, 마지막 보상인 ‘공헌도’를 위함이었으나.
“쯧...!”
그것을 해낸 후임에도, 정호는 혀를 차냈다.
‘고작 백인가? 이 백은 남아 있을 줄 알았더니.’
자신의 생각보다 구울의 수가 적었다.
적어도 수백 마리는 있을 구울이 그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아스텔 유저들이 이미 쓰러뜨렸다는 의미다.
‘아쉽지만, 당연한 결과겠어.’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것은 틀린 일은 아니었다.
만약 나중에 찾아왔다면 구울은 이미 씨가 말라 버렸을 테니까.
그러고 나서야, 정호는 안장에서 내려와 말을 쳐다보았다.
‘이러니 무슨, 치트키라도 쓴 것 같군.’
갈기를 쓰다듬자, 푸르릉-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구울들이 그토록 덤벼댔으면서도 상처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아틸라의 군마(軍馬) / 형태 : 소환형
-힘 : 98 체력 : 102 민첩 : 87 지능 : 81
아틸라의 절반에 해당하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군마.
그것의 내용을 확인하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래서야 스킬만 없다 뿐이지 삼 성, 나아가 사 성의 영웅들과 비견될 정도다.
-우리 훈 족의 기마병들은 세계 제일이었지. 음!
아틸라가 자부심을 느낄 만도 했다.
“다음에 보자고.”
푸르릉-.
마치 헤어지기 싫다는 듯, 머리를 털어내는 모습이 안쓰러웠으나 정호는 조용히 ‘소환 해제’를 외쳤다.
2층의 형태는 동굴.
동굴 속에서 저 거대한 덩치의 군마는 들어갈 수 없었으니까.
“그럼...”
정호는 마치 맛있는 식사를 둔,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키드.”
정호가 키드를 불렀으나,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빌리 더 키드☆☆☆는 현재 스스로의 단련을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이 완료되기까지 21시간 28분.
-성공 확률 30%.
기어코 가지 않으려고 떼를 써대는 녀석을 아틸라가 위협하여 겨우겨우 보내놓은 마당이다.
키드를 각성시키는 마당에, 자신이 가진 유일한 오 성급의 화신인 아틸라를 각성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정호는 곧장 그림자 지하 성채로 향했다.
‘아직 아스텔의 유저들이 2층의 꿀을 빨기 전에.’
시간이 곧 코인의 수다.
아스텔의 유저들은 분명 성장할 것이고, 1층을 넘어 2층의 코인을 노리려 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들에게도 코인이 중요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 비해서는 전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경험치라는 부가적인 소득이 있겠지만, 자신은 목숨줄 자체가 이 코인에 달려 있다.
타박, 타박.
그러니 발길을 바쁘게 한 만큼의 소득이 있어야 할 것이다.
2층으로 향하는 정호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한데.
길고 길었던 계단이 끝나고, 좁은 동굴에 첫 걸음을 내딛은 정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조금은 멀리 떨어진 장소.
“캬학-!”
그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 소리.
그 소리는 분명 아귀의 것.
“...누구지?”
던전이 생겨난 것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누군가 2층에서 사냥 중이라는 의미.
랭커가 있다는 말이었다.
* * *
‘후후후.’
세오는 어둠 속에서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코앞을 지나가는 아귀는 코를 킁킁대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자신의 모습을 전혀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세오는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1층의 구울들을 그대로 건너뛰었다.
‘코인도 안 주는 녀석들을 뭐 하러 잡아? 경험치도 여기가 더 짭짤한데.’
스으으으윽-
횃불의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세오는 그대로 아귀의 등 뒤로 다가갔다.
“배고, 배고파?”
곧장 녀석에게서 반응이 왔으나, 이미 암살자인 그의 입장에서는 등 뒤를 제압한 순간 끝이난 마당이었다.
“쉬이이이이-.”
마치 아기를 달래듯, 아귀의 머리를 붙잡고서.
푸욱-! 푸욱-! 푸욱!
녀석의 복부를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캬, 캬학-!”
고통에 소리를 지르는 것을 힘껏 막아내고서, 한참을 내지르자.
스르르륵-! 짤랑.
코인과 함께 녀석이 사라진다.
유니크 직업, 그림자 암살자.
그림자에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하는 방식은 본래 아스텔에서 PK할 때나 유용했던 스킬이다.
하지만 이렇듯, 하나하나가 강력한 괴물들이 튀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사냥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직업이 아닌가.
‘설마하니, 이렇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스킬 : 그림자 은신]
-등급 : 노말
-숙련도 : B
자신의 모든 스킬 중, 가장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는 그림자 은신.
그저 적에게 발각될 확률을 줄이는 것에 불과한 스킬이었기에 게임에서는 그리 숙련도를 그리 올리지 않았으나···.
일련의 사건, 이정호라는 악마를 만나고서 광적인 집착에 사로잡혀 숙련도를 올린 스킬이었다.
‘후후. 이 정도라면, 설사 나를 죽이러 와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호라는 자가 자신을 죽일 이유 따위는 없었지만-.
첫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에, 사로잡힌 망상과 오해는 풀릴 기세가 아니었다.
‘그럼... 다음 녀석을 찾아볼까.’
스르륵-.
세오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서, 다음 사냥감을 찾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얼마가지도 못했다.
“캬학!”
파악. 파악. 파악!
‘음? 벌써 2층에 온 유저가 있나?’
실로 놀라운 일이다.
제아무리 자신이 솔로로 2층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고 한들, 그것은 유니크 클래스인 그림자 암살자라는 특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빠른 유저라도 3일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헉.’
그 정체를 찾아, 천천히 걸어가 마주하게 되는 장면.
그것은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을 염려할 수준의 것이었다.
“캬하아악!”
“캬학! 배고파!”
“야악! 야악!”
라바와 아귀들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이를 위해 기도를 해주어야 될 상황.
한데.
후우우우우웅-!
그 중심에 선 사내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검으로 녀석들을 도륙을 내고 있었다.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는 좁은 동굴 속에서 이용하기 어려웠던 탓인지 벽에 자꾸만 긁혀댔지만.
그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콰드드드득!
아귀와 라바들과 함께 벽도 긁어내 버린다.
짤랑, 짤랑, 짤랑.
속속히 사라지는 몬스터들.
‘도대체 누구... 어, 어어...어.’
그 정체를 확인하려, 고개를 기울인 세오는 아연질색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바닥에 주저앉으며 숙련도 B인 그림자 은신이 풀려버릴 뻔 했다.
‘이정호!’
잘못 봤을 리가 없다.
분명, 두 번째 시련에서 봤던 얼굴.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못 본 척 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던 인물인 이정호가 틀림이 없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우연이라는 가능성을 떠올리지만, 절대 그럴 리 없다.
시련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고.
이제는 수많은 그림자 지하 성채 중 하나인 이곳까지 나타났다.
그 모든 게 우연이라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인연이란 말인가.
‘나를 찾아 온 거야.’
타인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오는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심지어 정호의 근처는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세오의 공포감을 더욱 극대화 시켰다.
스르륵- 스륵-.
세오는 더더욱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뒷걸음질을 해,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다 덜컥-.
‘아니야. 혹시, 혹시라도.’
아직 저 괴물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저 녀석을 지금 처리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마음 편하게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지 않을까?
극도의 공포심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뒷걸음치던 발을 멈춰 세운다.
‘그런데... 내, 내가 죽여?’
게임에서나 PK를 즐겨, 암살을 즐겨했다고는 하나.
세오는 겨우 막 성인이 된 이에 불과했다.
현실에서 살인이라니, 그런 그가 해낼 리가 없었다.
‘난 못해.’
결국 이정호를 암살하는 것 자체를 무효로 돌린다.
스르륵- 스륵-.
몸을 다시금 되돌려, 빠져나간다.
아니.
빠져나가려 했다.
스르릉-.
섬뜩하기 짝이 없는 나이프가 자신의 목에 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 어떻.”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도둑 아저씨.”
틀림없이 이정호인 줄 알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성숙한 20대 여성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