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9화
행운이라는 놈은 언제나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법이다.
정호가 '무심하게-'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속이려는 이유도, 바로 이 이유에서가 컸다.
“포세이돈? 6성? 좋은 건가?”
그것은 정호가 아직, 톨비아가 게임이었을 무렵에 처음으로 뽑기를 하고서 꺼낸 말이다.
“원래 이렇게 잘 뜨나?”
애초에 뽑기를 몇 차례 돌리지도 않은 마당에 나온 게 6성, 포세이돈이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에 정호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었다.
-만 원만에 떴는데...이거 좋은 건가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이기도 했다.
┖죽을래?
┖님 그거 쓰레기임. 갔다 버리셈.
┖┖쓰레기임. 해양 던전 말고는 쓸데없음.
┖┖진짜 몰라서 묻겠냐? 먹이 금지해.
┖제발 부모님 모두 만수무강하길. 제발. 제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쓰레기라는 둥의 선동은 있었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좋은 화신이라는 것을.
‘아, 좋은 거구나.’
다만, 당시 정호의 반응은 그 뿐이었다.
게임을 막 접했을 뿐, 접을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던 단계였다.
그저 한 번, 딱 한 번 질러보자 했던 것이 좋은 게 떴으니 좀 더 해볼까 정도의 반응에 불과했다.
톨비아의 악독한 확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지 못하기에 나오는 뉴비 특유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어, 어어... 어어어...!”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게임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은 둘째로 치더라도.
정호는 톨비아의 뜨거운 맛, 짠 맛, 매운 맛, 불쾌한 맛들은 죄다 맛 본 상황이었다.
2만을 훌쩍 넘기는 코인을 앞에 두고서, ‘3성이 세 개면 운이 좋은 편이지.’, ‘4성이 하나라도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둥의 작은 목표를 내걸 정도로 말이다.
“오, 오 성?”
오 성이 뽑기로 나타날 확률.
소수점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야 고개를 빼꼼-내미는 녀석! 0.0012%.
그 수치가 얼마나 악독하고, 빌어먹을 정도로 코인이 박살나는지 몸소 알고 있다.
아니, 5성부터는 애초에 뽑으라고 만들어 놓은 녀석이 아니다.
녀석은 3성과 4성.
차근차근 쌓아올린 베이스를 깔아두고서.
합성으로 간절히 기도를 올려도 나오는 것이 불확실한 녀석이다.
짝! 짝! 짝!
정호는 자신의 뺨으로 박수를 쳤다.
부디 이게 꿈이 아니기를. 현실이기를 바라면서!
“어? 어어? 이럼 안 되는데???”
한데, 아프지가 않다!
아니, 통각은 있었으나 그렇다고 힘껏 때린 것과 같은 고통은 없다.
그 과정이 도출해낼 수 있는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이런 젠장!”
쾅!
정호는 힘껏 탁자를 내리쳤다.
이 모든 게 꿈이라니.
말도 안 된다.
정말 목이 떨어져라 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꿈을 바란 건 아니었다.
모든 게 허황된 것이라니!
와장창!
한데 뒤이어지는 소리.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탁자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
“...어?”
그제야 정호는 자신의 힘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아...”
삼 성 등급의 무기, 명품 바스타드 소드다.
단일 체력을 ‘20’이나 올려주는, 맷집을 크게 올려주는 녀석 말이다.
그 말인 즉, 정호는 아직 강신을 풀지 않은 상태였다.
“하, 하하...”
정호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보는 이가 없을 지언데, 괜히 주변을 두리번대며 어깨를 웅크렸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강신 해제’를 외치고 나서야,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짝!
다시 한 번 이어지는 박수 소리.
“아악!”
착 감기는 느낌이 퍽이나 좋았다.
이번에야 말로 가격하자마자 뺨이 얼얼한 기분이 확 올라왔다.
아니, 너무 세게 친 바람에 퉁퉁 부었다.
“현실이다. 현실이야!”
쾅쾅쾅쾅!
쾅쾅쾅!
언제고 이토록 소음공해를 일으킨 적이 있던가.
지금껏 조심했던 층간 소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지금쯤이면 난리를 피워야 할 아래층 사람의 목소리와 초인종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정호의 발길질을 버티다 못해, 이사를 간 탓이다.
“됐어, 됐다고!!”
하지만 정호는 그런 사소한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관심이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그 이름을 부르짖을 시간이었다.
“아틸라!”
아틸라 더 훈(Attila the Hun).
전 유럽을 떨게 한, 정복자의 이름이었다.
* * *
아틸라 더 훈(Attila the Hun).
훈 족 최후의 왕이자 가장 강력한 왕.
러시아를 비롯하여 서아시아, 갈리아를 정복하고 나아가 제국인 서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장본인.
광활한 영토를 제압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은 5세기의 대영웅의 이름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영토를 넓히고 최후의 왕이기에 대영웅으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다.
재위기간은 고작해야 8년.
고작 그 시간으로 유럽에서 최대의 제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건 압도적인 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틸라를 향해 ‘신이 내린 재앙’, ‘신의 채찍’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말이다.
‘징기스칸이랑 비교될 정도니까.’
정호는 이토록 심장이 두근거리는 적이 있는지 떠올렸다.
아니, 적어도 톨비아 때에 이토록 기대한 적은 없었다.
현실이기 때문에, 아틸라의 이름은 더 없이 커다랗기만 했다.
지금껏 계획하고, 준비했던 모든 과정을 박살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불합리함!
한데, 그 불합리함이 너무도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아틸라.”
떨리는 목소리로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아틸라 더 훈☆☆☆☆☆
이보다 빛날 수 있을까.
넘쳐흐르는 별에 눈이 부셔서 도저히 뜰 수가 없다.
정호는 그 빛을 피하기 위함인지, 곁눈질로 천천히 그 아래를 향했다.
-힘 : 134 체력 : 145 민첩 : 110 지능 : 101
‘미, 미쳤어.’
한 눈에 들어오는 그 스탯들은 정호의 눈을 어지럽혔다.
믿기 어려웠다.
모든 스탯이 ‘100’을 넘어서 있다.
‘이게...이게 순수 능력치라고?’
아직 녀석을 소환하지 않았기에 도감에 의한 능력치 증가가 적용되지 않았다.
최초 클리어로 얻은 ‘모든 능력치 10증가’라는 보상을 포함하지 않아도 그렇다.
3성. 민첩 특화인 키드가 영약을 두 개나 먹고.
4성. 캐스터인 서서가 지능에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도달하기 어려웠던.
인외의 영역을 거의 모든 스탯을 가뿐히 넘어서고 있었다.
‘아니, 아예 인간이 아니군.’
괜히 신의 채찍으로 불렸겠는가.
아틸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정호를 향해 그리 말을 내걸고 있었다.
‘스킬, 스킬을 봐야지...!’
단순히 스탯을 확인했을 뿐인데도 이 정도.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눈을 내렸다.
+스킬
[군마소환(軍馬召喚)]
-세상을 호령한 훈족의 군마를 일 체 소환한다.
(군마의 능력치는 아틸라의 능력치의 절반이 된다)
“흡...!”
처음부터 숨이 막힌다.
고작해야 말을 한 마리 소환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틸라의 능력치의 절반이라니?
저 능력치의 절반이라면, 고작해야 말 한 마리가 정호가 사용하는 ‘유능한 용병’을 넘어서 있었다.
[전투광(戰鬪狂)]
-적과의 전투가 지속될수록 모든 능력치가 상승한다.
-5분마다 모든 능력치가 5%씩 상승한다.
‘...’
두 번째 스킬을 보았을 때에는 숨이 넘어간다.
톨비아에서 보스들과의 전투 시간은 대부분 20분 전후.
전투 시간이 길다면, 그야말로 무한히 강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스킬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꿀꺽-.
정호는 마지막 스킬을 확인하기 전에 자신의 심장을 다독였다.
삼 성의 화신은 스킬이 하나.
사 성의 화신은 스킬이 둘.
오 성의 화신은 스킬이 셋.
겨우 하나의 스킬이 늘어날 뿐이었지만,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오 성급의, 대영웅에게는 그 하나의 스킬이 매우 특별했던 탓이다.
‘대영웅이 될 수 있었던 근간(根幹).’
삼 성과 사성의 화신들도 충분히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을 정도의 활약을 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오 성의, 대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서사’가 부족하다.
오 성의 화신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스킬은, 그 존재의 뿌리가 되는 전설을 품고 있다.
대영웅 아틸라 또한 전설을 품고 있었다.
[군신(軍神) - 마르스의 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의지를 이어받은 검을 휘두른다.
단순한 설명.
그 외에 어떤 표기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정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아틸라만이 가진, 필살(必殺)의 기술이라는 것을.
“파하...!”
정호는 참았던 숨을 한 번에 훅 내뱉었다.
어찌나 참았던지, 자신이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이 아닌지 생각할 정도였다.
‘잠시만...’
한참을 아틸라의 능력치를 확인하는데 힘을 쏟던 정호.
한데, 그 내용을 찬찬히 읽고 기억을 거슬러 떠올리던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어...?”
완벽한 육각형을 이루는 화신.
자신이 강신시키는 ‘유능한 용병’ 따위는 타고 다니는 말에 비교할 정도로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한데, 그런 이가.
“그래, 검의 화신이었어.”
아틸라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검의 화신이었다.
* * *
‘아틸라가 왜 고평가되는지 알겠어.’
아틸라는 평가가 박하기로 소문난 톨비아 내에서도 알아주는 화신 중 하나였다.
고작해야 남성형 화신이라는 것 하나로, 포세이돈을 저평가하는 곳에서 말이다.
‘단순히 취향인 사람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더니.’
톨비아는 게임이기에, 영웅급 이상의 화신들은 여성형이 많다.
지금껏 정호가 남성형만 뽑아댄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보통은 여성형이다.
아틸라라 하여 다를 것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정호는 그런 취향 가득 섞인 이들을 비웃었다.
화신은 화신일 뿐이다.
게임에서 눈요기꺼리로 쓰려면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
화신이란, 그 무엇보다 ‘성능’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화신의 외모가 뛰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제작자가 공을 들였다는 것과 같다.
그런 화신이 성능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직접 손에 넣고 나니 그것이 확 와 닿았다.
“아틸라...소환.”
정호는 아틸라의 모습에 압도되지 않도록, 마음은 굳게 먹고는 녀석을 불렀다.
화아아악-.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틸라가 그 빛에서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군.’
그 그림자가 드러나자마자 감상이 흘러나왔다.
178cm인 자신이 작아 보일 정도의 키를 지니고 있었다.
족히 190cm는 되어 보였으나,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라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었다.
키가 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거인처럼 거대한 것은 아니었다.
‘늑대?’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며, 나타나는 아틸라의 형체.
어째서인지 머리 위에는 가죽을 통째로 벗겨낸 늑대의 머리가 놓여져 있다.
온통 짐승들의 가죽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아틸라.
어울리지 않게 머리칼이 금발이기는 했으나.
여성형 화신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뚜렷한 이목구비와 강인해 보이는 체구는 절로 마음이 든든해 질 정도다.
“...”
나타난 아틸라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저 지긋이 정호를 바라볼 뿐, 꽉 다문 입술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아...설마.’
괜한 불안감이 샘솟는다.
오 성급의 화신은 분명 대영웅이라 불릴 만 했지만, 스스로 쌓은 업적이 많은만큼 그 자존심이 매우 강한 부류였다.
아틸라는 훈족 최후의 왕으로써 자긍심을 품고 있을 터.
괜히 키드의 사례가 떠오르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한데.
탕탕-.
마침내 아틸라가 입을 열며, 꺼내는 이야기는 정호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렇게 빈약해서야 어디 몸 성히 다니기나 하겠어?”
커다란 가슴을 두들기며, 아틸라가 시원한 미소를 내짓고 있었다.
“걱정 마. 이 누님이 적들의 가죽을 찢어발겨 줄 테니까.”
아틸라의 금발이 늑대의 대가리 아래서 흔들렸다.
꽤나 화끈한 첫 인사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