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38화
집으로 돌아온 정호는 침대 위에 그대로 몸을 날렸다.
차르륵-하며 가방 위로 튀어나와 있던 디아볼로스의 뿔을 비롯한 수많은 전리품들이 쏟아졌다.
“푸흐...”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 푹신한 침대가 실로 오랜만에 느껴졌다.
노곤한 몸과 푹신한 침대가 어울리자, 곧장 잠이 몰려왔다.
눈만 감으면 20시간은 내리 잘 수 있는 자신이 있을 정도로.
다만, 정호는 그리 하지 않았다.
끼이익-.
기절하기 직전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좀 더 철저히 준비해야 돼.’
다음 공략을 위한 대비다.
이번은 한정된 자원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욕심 덕분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것이 값진 결과로 되돌아왔다고는 하나,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직 그림자 지하 성채는 많이 존재했다.
거기서 좀 더 많은 코인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서야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마당이다.
‘각성과 뽑기.’
그 해결책은 이미 손에 들어왔다.
단 한 번의 던전으로 벌어들인 코인은 지금까지 얻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본래 가지고 있었던, ‘작은 뿔 고블린’을 쓰러뜨려 모은 970코인.
2층의 아귀와 라바들을 몰살시키고 얻어낸 3,500코인.
중간 보스 아피스를 잡고서 1,000코인.
니네체르가 남기고 간 1,500코인.
공헌도 보상으로 6,554코인.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10,000코인.
최초 토벌 보상으로 2,000코인.
높은 공헌도 보상으로 500코인.
도합이 무려 24,524코인.
“...이건 놀랍군.”
그야말로 ‘헉’소리가 나오는 양이다.
이만한 코인은 정호가 톨비아를 즐길 때에도 날을 잡고서 질러댔던 숫자나 다름없었다.
‘단 한 번에 이 정도면...’
정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상상했다.
아직 한국에만 하더라도 많은 양의 던전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모조리 코인을 싹쓸이 할 수 있다면.
“아. 이럼 안 되지.”
고개를 뒤흔들었다.
그림자 지하 성채는 지구를 침공하는 종말의 주체다.
그런 녀석들을 코인으로 보다니, 잠시간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코인을 얻는 것도 한정적이야.’
애당초 이것은 정호가 ‘최초 클리어’라는 업적을 달성함으로써 얻어낸 산물이다.
다시 한 번 이렇듯 많은 코인을 얻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막대한 양의 코인을 쥐고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이 정도라면...’
삼 성의 화신이 나올 확률은 1%.
합성을 제외하고, 뽑기로만 생각했을 때에도 그 기댓값은 9천 코인 남짓이다.
그렇다면 사 성의 화신은 무리라고 생각하더라도.
삼 성 화신을 최소한 두 마리는 뽑을 수 있다는 말.
‘지금 가장 원하는 건 역시 검 화신이지.’
강신용 화신.
유능한 용병의 120%의 동기화율은 충분히 그 값을 해주고 있었으나, 그 한계가 명확했다.
겨우 이 성에 불과한 녀석을 바꿔주긴 해야 했다.
설사 검을 쓰는 화신이 뜨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보스 전용의 화신이라도 좋지.’
키드는 영약을 투자한 만큼의 제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총을 사용하는, ‘사냥’에 특화된 케이스다.
보스전에 특화된 화신이 있다면, 그것을 바꾸어서 소환하는 방식의 전투도 생각해봄직 했다.
“각성도...있었지.”
정호는 비릿한 웃음을 내지었다.
선택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뽑기가 아무리 망한다 하더라도, 다음 수단이 있다는 것은 절로 가슴을 편안하게 해주는 원인이었다.
정호는 손에 쥔 새까만 구슬을 바라보았다.
[호루스의 그림자] x2
-그림자 지하 성채의 왕, 니네체르가 품고 있던 신앙체.
-3성 이하의 화신을 각성시킬 수 있다.
-각성 확률은 화신의 등급 여부에 따라 나뉜다.
(1성 : 100%, 2성 : 60%, 3성 : 30%)
물론, 이것도 실패할 수 있다.
[데몬하트]
-호전적인 대악마 디아볼로스의 심장이다.
-5성 이하의 화신을 각성시킬 수 있다.
-각성 확률은 화신의 등급 여부에 따라 나뉜다.
(1성 : 100%, 2성 : 100%, 3성 100%, 4성 80%, 5성 30%)
하지만 마지막에 마지막.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데몬하트였으나.
그나마도 정말 어쩌지 못할 상황이라면, 거리낌 없이 사용할 것이다.
‘자신이 없다.’
정말이지, 망할 자신이 없었다.
강신용 화신 저격에 실패를 해도, 보스전 전용의 화신을 기대할 수 있고.
설사 그것을 실패해도, 합성이 있다.
그조차 망해도 각성이라는 최후의 보루도 있는 마당이다.
“화신 뽑기.”
실로 오랜만에 입에 담는 단어는 절로 정호의 얼굴에 미소를 내지었다.
[1회 화신 뽑기 : 100코인]
[11회 연속 화신 뽑기 : 1,000코인]
[잔여 코인 : 24,524코인]
보는 것만으로 든든하기 짝이 없는 잔여 코인.
“11회 연속 뽑기.”
그 단어를 외치는 정호의 입에는 거침이 없었다.
* * *
슈웅- 슈웅- 슈웅-.
뽑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빵파레는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호는 그리 다급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응, 망해도 돼~.’
평소 같았으면, 자신의 마음을 속이려 하는 말에 불과했겠으나.
지금은 달랐다.
200번을 아득히 넘기는 뽑기 기회는 저격하려는 화신들의 기댓값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확률이라는 것은 제법 정확한 법이다.
제아무리 극악이라 하더라도.
그 시행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결국은 확률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슈우웅- 슈웅- 슈웅-.
일 성과 이 성의 화신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도감작을 일찌감치 채운 일 성에 비해, 제법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 성의 화신들이었지만.
그조차도 착착 진행되어, 비어있는 도감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모든 코인을 소모했을 때에는 이 성의 베이스도 완성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빰빠람-.
과연 확률이라고 할까.
뽑기 횟수가 120회 즈음 도달했을 때, 첫 번째 빵파레가 울렸다.
-막스 보부아르☆☆☆
-힘 : 21 체력 : 11 민첩 : 22 지력 : 57
+스킬
[부두술 - 부두인형]
-손에 쥔 인형으로 상대를 저주하여,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낮춘다.
디버프 관련 화신이었다.
‘그리 맘에 들진 않네.’
키드와 서서에 의해 잔뜩 눈이 높아진 정호의 맘에 들턱이 없다.
평소 같았으면 몸을 부르르 떨며, 분개하면서 발을 쾅쾅 내찍었겠으나.
정호는 상관없다는 듯, 곧장 다음 뽑기로 향했다.
슈웅- 슈웅- 슈우웅-.
뽑기는 쉬지 않고 돌아갔다.
줄어만 가는 코인의 수는 마음이 아프기 마련이지만···.
확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빰빠람-.
그 때, 다시 한 번 울려 퍼지는 빵파레.
‘이번에는 빨리 떴네.’
처음은 120회 째에.
이번에는 고작 84회 째에 떴다.
참으로 확률이라는 것은 정확한 모양이었다.
물론 확인하기 직전, 정호는 작은 기대감을 가졌다.
‘음... 이번에는 떠 주는 게 좋은데.’
적어도, 둘 중 하나쯤은.
저격하던 화신을 뽑는 것이 마음이 편안한 법이었다.
시선을 옮겨, 그 화신을 확인했다.
-스파르타쿠스☆☆☆
-힘 : 50 민첩 : 44 체력 : 60 지능 : 40
“오.”
도감작으로 인해 올라가지 않는 순수한 능력치가 저 정도.
여러모로 모난 곳 없이 커다란 육각형을 그리는 스탯은 정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더군다나···.
+스킬
[검투사의 정신]
-적이 하나라면, 그 능력치가 상승한다.
(능력치는 모든 스탯의 합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130%)
“...됐어!”
정호는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최초의 목적으로 삼았던 보스전 특화의 화신이 떴다.
* * *
스파르타쿠스는 고대 로마의 검투사이자, 당시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노예 전쟁의 지도자다.
자유를 갈망하며 억압에 저항한 전쟁의 역사는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남성형이군.’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호가 뽑기에서 저격하기로 마음먹었던 보스전 전용의 화신이다.
니네체르와의 전투에서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충분히 이루어진 도감작과 최초 클리어로 얻은 모든 스탯 상승이라는 보상은 아피스와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할 것이 분명했다.
“좋군.”
당장이라도 이 근육질로 가득한, 남성스러운 녀석을 소환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던 정호였으나···.
아직은 아니었다.
슈웅-, 슈웅-, 슈웅-.
애초에 이번 코인은 모조리 화신 뽑기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아직 끝이 나지 않았는데, 확인을 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편하군.’
하지만 마음이 편안한 것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고작 삼 성의 화신에 불과했으나.
다음 던전으로 향할 때에는 전보다 훨씬 편해지리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좋아.’
슈웅- 슈웅- 슈웅-.
뽑기가 돌아간다.
안타까운 소리만이 계속 귀에 들려오고 있었지만, 목적은 이미 달성한 마당이다.
‘음... 누구를 각성시켜야 하지?’
정호의 마음은 이미 뽑기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있었다.
오히려 새롭게 합류할 스파르타쿠스와 기존의 빌리 더 키드.
둘 중 누구에게 ‘호루스의 그림자’라는 각성 재료를 먹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둘 다 각성시킬 수 있다면 더 없이 좋다.
삼 성 이하의 화신을 각성시키는 호루스의 그림자는 두 개를 소유하고 있었다.
각각 하나씩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호루스의 그림자’는 고작해야 파티 던전에 불과한 그림자 지하 성채에서 나오는 재료.
1성 : 100%, 2성 : 60%, 3성 : 30%.
삼 성의 화신이 각성할 확률은 고작해야 30프로 밖에 되지 않았다.
‘범용성은 키드가 더 뛰어난데.’
정호는 키드에게 마음이 쏠렸다.
자신의 속을 썩이긴 했지만, 그래도 오래 함께한 전우이지 않은가.
거기에 ‘1,300코인이나 먹었으니까...’라고 하는, 아까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슈우웅- 슈웅- 슈웅-.
어느새 뽑기는 그 끝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벌써?’
쯧-하며 혀를 찼다.
이미 화신 저격에 성공해 든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그마한 기대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갑작스레 사 성의 화신 정도가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은가.
‘내가 운이 ‘3’이라고 했던가?’
괜히 자신의 스탯을 보여준다던, 삼정전자의 스마트워치가 떠오르는 건 착각일 것이다.
그저, 아스텔의 시스템 상.
크리티컬 확률과 데미지에 영향을 주는 스탯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스탯의 이름이 하필이면 재수 없게 ‘운’이라니.
어감이 이상하지 않은가.
“에이, 씨.”
괜히 탁자 위에 던져 둔 스마트워치를 으깨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그 때.
빰빠람-.
세 번째 빵파레가 터졌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정호는 안도감으로 미소를 내쉬었다.
삼 성의 화신이 뜰 확률은 1%.
총 24번의 11연속 뽑기니, 264번의 시도.
그 중 3번이 울렸으니 자신은 결코 운 ‘3’따위의 남자가 아니다.
‘평균이상이야.’
실로 흐뭇한 결과.
정호는 미소를 내짓고는 시선을 옮겼다.
“...응?”
그런데, 그 화신을 확인한 순간.
정호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누적된 피로에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빵파레가 울렸으니 당연히 삼 성 이상의 화신이다.
사 성의 화신이 나올 확률은 무려 소수점까지 내려가는 확률.
나오지 않으리라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정호는 손가락을 들어, 그 개수를 세어보았다.
별이 하나... 둘... 셋...
“넷...”
사 성의 화신이라면!
근접 화신이라면, 유능한 용병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설사 검을 쓰지 않더라도 120%의 동기화율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을 정도다.
원거리 화신이라면 현자의 목걸이 효과인 ‘단죄’를 지금보다도 더욱 크게 이용해낼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아니고, 탱커와 같은 특수 화신이라면 던전 토벌의 안정성을 크게 높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제 그 정체를 확인해야 할 차례였다.
“...”
한데 이상했다.
정호는 그 이름을 확인하지 않은 채, 여전히 손을 옮기고 있었다.
“...다섯.”
☆☆☆☆☆
별의 숫자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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