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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37화 (38/144)

# 37화

# 37화

[니네체르가 쓰러집니다.]

[47번 그림자 지하 성채가 침략에 실패합니다.]

[47번 그림자 지하 성채가 그 모습을 감춥니다.]

[그림자 지하 성채 47]

[공헌도 순위]

1. 과금망겜플레이어 - 970,000점

2. 경현이다 - 7,400점

3. 태호짱 - 6,840점

...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970,000점의 공헌도 보상으로 6,554코인을 지급합니다.

눈을 어지럽히는 수없이 많은 메시지창은 정호가 원하던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그것을 제대로 지켜볼 기력은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정호는 거친 숨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긴장감으로 인해 잔뜩 웅크리고 있던 근육이 풀어지자, 대량의 피가 울컥-하고 터져 나왔다.

휘청-.

덕분에 어지러움과 함께 빈혈을 유발했으나, 정호는 그대로 몸을 바닥에 내던지는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

그림자 지하 성채의 왕, 니네체르.

녀석이 아직 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탓이다.

손끝에서 길게 뻗어 나온 바스타드 소드가 녀석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가쁜 숨도 몰아쉬지 않으며 정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축하하네.”

아니, 아예 말을 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정호는 의문이 가득 담긴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 정호는 니네체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는 고대 이집트의 숭배 대상, 신성한 황소 ‘아피스’.

단순한 돌진 외에는 특별한 패턴도 없는 중간 보스였으나, 그 하나하나가 즉사에 가까운 파괴력을 지닌 녀석이다.

‘설마하니 니네체르에서 발목을 붙잡힐 줄이야.’

녀석은 그림자 지하 성채의 주인이었으나, 그래봐야 언데드를 부리는.

그것도 고작해야 구울에 불과한 ‘저급 네크로맨서’였으니까.

‘위험했어.’

녀석은 그저 전장을 바꾸었을 뿐이다.

자신의 좁디좁은 방에서, 넓은 콜로세움으로.

단지 그것만으로 정호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파괴력을 선사했다.

‘사실상 실패...!’

서서와 키드는 오른편의 니네체르를 쓰러뜨리지 못한 채 역소환 당했다.

한계에 다다른 체력으로, 전위를 잃은 파티의 공격이 닿을 리가 없다.

요행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만약 자신이 다가간 니네체르가 진짜가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터다.

“하아, 하아...!”

순식간에 심장이 덜컥-하고 숨을 옥죄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던전이 자신이 잘 아는, 톨비아의 그림자 지하 성채와 같다고 하여 너무 단순히 생각했다.

분명 근거는 있었다.

그림자 지하 성채의 구조가 같았고, 나타나는 몬스터도 같았으며 심지어는 히든 피스도 찾아냈다.

위기가 몇 번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정호가 생각하는 예상 범주 내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무리 도박이나 다름없는 게임을 즐겼다고는 하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코인 던지기 따위에 걸 생각은 없었다.

“무엇이 그리도 겁이 나나?”

“...뭐?”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도 좋네. 수많은 가신들을 뚫고서 파라오의 머리를 꿰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네.”

미간이 꿰뚫린 주제에 녀석은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자네를 막았던 건 내 가신일세. 충직한 녀석들이지.”

정호는 자신의 발밑에 쓰러진 구울 두 마리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말과는 달리, 여타 구울과 차이점은 없었다.

단순한 저급 언데드다.

“그리 볼 필요는 없네. 내 가신들은 이름이 있는 자가 아니거든.”

정호는 녀석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림자 지하 성채에서 예상 범주를 뛰어넘는 녀석은 니네체르 뿐이었다.

“이름이라면 있을 텐데?”

“물론. 카심과 바르자니라는 좋은 이름이 있네. 내가 하사했지.”

구울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취향은 꽤나 섬뜩하기 짝이 없는, 괴상한 취미였으나.

정호는 말을 아꼈다.

애잔한 녀석의 눈빛은 결코 정신이상자의 그것과는 달랐으니까.

“나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잠깐의 침묵 이후.

녀석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결코 자신의 머리를 꿰뚫은 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자네 덕분에 드디어 아누비스님의 곁으로 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가신들도 마찬가지로 기뻐할 걸세.”

“...”

“너무 늦었다며, 호되게 혼을 내시는 게 아닐지 모르겠어.”

녀석의 눈이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자, 잠깐...!”

정호는 눈동자가 맛이 간 녀석을 다급히 불러 세웠다.

아직 물어볼 것이 많았다.

이토록 자유의사가 확고한 녀석이라면···.

종말이 무엇인지.

침공의 이유는 무엇인지.

톨비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나아가 자신은 어째서 그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

그 의문점 중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런...!”

하지만.

니네체르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녀석의 미간에 꽂아 넣었던 검은 의자에 박혀 있을 뿐이다.

차르륵-.

녀석이 있던 자리에는 꽤나 수북한 양의 코인이 떨어졌다. 최초의 목표로 삼았던 각성 재료 중 하나, ‘호루스의 그림자’도 드롭했다.

“쯧...!”

하지만 정호는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혀를 차냈다.

녀석이 마치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듯 행동했다는 점에 대해 죄책감이나 동정심이 일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따위 집착은 이미 노련한 창병과 유능한 용병의 강신 경험을 통해 버린 지 오래였다.

적은 적일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완전히 실패로군.”

그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자기반성이다.

애당초 아슬아슬하게 솔로 공략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계획했다.

덕분에 정말 목숨을 거는 일이 되어버렸다.

톨비아에 대한 단서도 날려버렸다.

‘차라리, 차라리 정비를 하고 왔다면.’

2층에서 얻어낸 코인을 가지고서, 던전을 나갔더라면.

그렇다면 이보다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갑작스럽게 덜컥 상위 화신을 얻고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각성이라도 하고 왔다면.’

가방 속에 펌프질을 해대는 데몬하트.

그것으로 서서나 키드를 각성시켰다면, 이보다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니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무렵.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자신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설사 되돌린다 하더라도, 정호는 같은 판단을 반복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제아무리 정호가 실패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만은 대성공을 의미하고 있었으니까.

[최초 클리어!]

[그림자 지하 성채를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 상승의 효과를 얻습니다. +10]

[최초 토벌!]

[그림자 지하 성채의 왕, 니네체르를 최초로 토벌하였습니다]

[최초 토벌 보상으로 10,000코인을 지급합니다]

[추가 보상! 호루스의 그림자를 지급합니다]

[보상 받기 Y/N]

[최단 시간 클리어!]

[그림자 지하 성채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클리어 하셨습니다]

[최단 시간 클리어 보상으로 2,000코인을 지급합니다]

[추가 보상! 호루스의 지팡이☆☆☆를 지급합니다]

[보상 받기 Y/N]

[높은 공헌도!]

[파티 내 최고 공헌도에 등극하셨습니다]

[추가 보상 500코인을 지급합니다]

[보상 받기 Y/N]

“...뭐 됐어.”

정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던, 결과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우르르릉-.

니네체르가 쓰러지며, 그림자 지하 성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정호는 잔뜩 피곤해진 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볍군.’

다만 이상하게도.

몸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 * *

우르르릉-!

던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어? 던전이 사라지려나 본데요?”

“얼른, 얼른 나가자고요.”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경현의 파티도 던전이 사라지려는 것을 깨닫고는 곧장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 진짜. 그러니까 제가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했잖아요.”

“공헌도 보니까 혼자 클리어 했던데, 사실 별 것 없었던 거 아니야?”

파티원들은 경현의 곁을 지나가며, 그리 한 마디씩 내뱉고는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오른 이름이 ‘과금망겜플레이어’라는, 랭킹 1위에 등재된 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생한 것에 비해, ‘100코인’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이 낮은 보상을 받은 마당이다.

그들에겐 그저 ‘남을 탓할 구실’이 필요했다.

“경현아. 이번 토벌은 네 실수가 맞다.”

믿었던 태호조차도 경현의 곁을 지나, 그들의 뒤를 따랐다.

“...말도 안 돼.”

하지만 경현에게 떠나는 그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4인 파티 던전, 그림자 지하 성채.

경현은 그곳이 얼마나 악랄한 난이도를 지니고 있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코 현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경현이 돈을 쓰게 만든 구간.

아니, 쓰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구간이다.

아스텔의 상태창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현실에 나타난 ‘작은 뿔 고블린’으로 이미 비교한 마당이다.

지금 랭커라 불리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그림자 지하 성채’를 클리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사 그게 랭킹 1위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출발점을 가졌다.

랭커라 할지라도 그림자 지하 성채가 나타났을 때 겨우 레벨 10레벨보다 높을 뿐이다.

랭킹 1위라 하여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경현은 이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때.

터벅.

파티원이 떠나가고, 조용한 동굴 안.

그곳에 하나의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벅, 터벅.

점차 자신의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헉...!’

경현은 곧장 경각심을 세웠다.

설마 아귀가 다시 나타난 것인가?

클리어하며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크게 놀란 가슴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터벅, 터벅.

새까만 동굴을 뒤로 한 채, 휘청거리며 나타나는 인영이 하나.

“휴우...!”

그제야 경현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 앞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은 곧 랭킹 1위에 등재되고, 그림자 지하 성채를 혼자 클리어한 유저인 ‘과금망겜플레이어’임에 틀림이 없었다.

경현은 마음은 굳게 먹고서, 다가오는 신형을 바라보았다.

터벅, 터벅.

하지만 그 정체를 확인한 경현은 덜컥- 몸이 굳었다.

‘...헉!’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나타난 이는 인간이었으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얼굴 전체를 뒤집어 쓴 방독면.

등 뒤에서 삐죽 튀어나온 거대한 갈 지之자의 뿔이 두 개.

손에는 대검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큰 바스타드 소드가 걸려 있다.

그 덕분일까.

횃불에 의해 그 그림자는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 터벅.

휘청거리듯 걸음을 옮기는 악마는 점차 경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

하지만 경현은 그런 악마가 바로 옆을 지나갈 때까지 한 마디를 하지 못했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레벨은 어떻게 되느냐.

톨비아는 알고 있느냐.

어떻게 혼자서 클리어 했느냐.

그렇게 질문을 잔뜩 내뱉고 싶었지만, 도통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물어야 한다.

지금 묻지 않으면, 영영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밀려왔다.

“...토, 톨비아!”

하지만 튀어나오는 말은 고작해야 한 마디일 뿐이었다.

몸은 이미 굳어, 뒤돌아보지도 못했다.

덜컥-.

하지만 걸음을 멈추어 세우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맞지요? 톨비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확인한 경현은 힘을 내, 다시 한 번 질문을 내던졌다.

그 의미도,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에게서 대답을 받을 수는 있었다.

“···백만 원?”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곰곰이 생각하던 경현은 자신이 그 단어를 입에 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홱-!

잔뜩 굳어있던 몸이 풀리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

이미 그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떠나버린 이후였다.

“겨우 백만 원이라니? 도대체···?”

모두가 떠난 빈 동굴 속에서.

그 말이 무언가 힌트가 될 것이라 생각한 경현의 고민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겨우 백만 원밖에 안 지른 주제에.'

그 말이 단순한 비꼼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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