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36화 (37/144)

# 36화

# 36화

본래 이집트에는 파라오가 죽는다하여 노예나 사용인들을 모조리 생매장시키는, 순장의 문화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것은 기원전 3000년도까지의 이야기.

니네체르는 기원전 28세기의 존재다.

이곳이 녀석의 땅이라면, 언데드를 부리기 위해 필요한 매개체인 사체는 차고 넘친다.

쉐에에에엑-!

애초에 정호에게 있어서 선택권은 없었다.

녀석들을 모조리 쓰러뜨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쓰러지는 족족 다시 일어나는 구울들이 있지 않은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

네 방향으로 찢어진 니네체르 중 진짜를 찾아, 목을 끊어내는 일 밖에 없었다.

“음! 미안하게 되었네.”

무엇이 그토록 미안한 것일까.

두 번째의 니네체르도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코앞에서 그 가증스러운 얼굴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앞으로 한 번...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수십 분에 걸친 전투와 이동은 체력적으로 한계를 맞이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

정호 또한 그것이 한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서서와 키드의 체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기회였다.

‘미친 게임...!’

니네체르를 쓰러뜨리는 이 패턴은 본래 녀석의 방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지금껏 별 생각 없이 지내왔었으나, 이렇듯 콜로세움에서 진행하니 절로 톨비아에 대한 증오가 치밀어 올랐다.

랜덤, 랜덤 부르짖더니 이젠 아예 보스의 패턴도 랜덤이었지 않은가.

‘거리상으로는 반대편이 멀어.’

당연히 오른편의 니네체르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으나.

어차피 한 번의 기회라면 그마저도 의미가 없는 법이다.

오히려 녀석이 그것을 노리고서 반대편에 본체를 두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니네체르는 정호를 향해 목숨을 건 가위바위보를 걸고 있는 셈이었다.

‘앞으로 한 번...!’

1/2. 50프로의 확률.

평소와 같았으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당연히 성공하는 확률이 아니냐며 강행했을 테지만···.

웃음이 흘러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절반의 확률로 죽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서서, 구원대는?”

“한 번 정도라면...가능할 것 같습니다.”

꽤나 긍정적인 대답.

그에 정호는 다짐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서와 키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정면의 니네체르 쪽으로 간다. 너희는 오른쪽으로.”

“위험합니다!”

곧장 서서의 만류가 날아왔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니네체르가 네크로맨서 클래스라 할지라도, 엄연히 보스에 해당한다.

이런 마당에 전력을 분산시킨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게 최선이야.”

하지만 정호 고개를 내저었다.

서서와 키드의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스킬, 구원대의 화신들이라면 자신의 빈자리를 잠시나마 채워줄 것이리라.

고작 오십 프로의 확률에 목숨을 걸 정도로 정호는 위기의식이 결여되어 있지 않았다.

“3...2”

“뭐, 해보죠.”

정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카운트 다운.

그에 키드가 동조하며, 리볼버에 총알을 집어넣었다.

“1...지금!”

타아아아앙-!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키드의 총성.

그와 함께 정호는 신형을 구울의 파도에 내던졌다.

“캬하하하악!”

세 명이서 막아내던 공세를 혼자서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사각지대를 막아줄 동료가 없다는 것과 매한가지다.

앞, 뒤, 옆.

모든 방향에서 일제히 쏟아지는 구울의 공격들.

찌이이익-!

사각 지대에서부터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던 정호의 옷이 찢어지고,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하 1층에서는 그토록 경계했던 구울들의 독이 상처 부위에 흩뿌려진다.

쉐에에엑-!

“...!”

하지만 정호의 입에서는 단 한 줌의 신음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케에에엑-.”

그저 앞에 선 구울들을 썰어대며, 연신 검을 휘둘렀다.

“...”

묵묵히 바라보는 것은 오로지 멀리서 웃음 짓고 있는 니네체르의 머리뿐이었다.

* * *

“도대체 무슨 일이야? 보스가 나타났다니?”

“아무도 없는 거 아니었어?”

정호가 한창 니네체르와의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을 무렵.

지하 2층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은 혼란해하고 있었다.

보스가 일어났다는 의미는 이미 그곳까지 진행한 이가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 말이다.

“우리 밖에 없을 거라며.”

“맞아. 지금 보스 공략 중인 파티가 끝을 내버리면 어떻게 해?”

당연히 그 혼란 속에서 표적이 되는 것은 지하 2층으로의 전진을 필사적으로 막아섰었던 경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경현 또한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경현아. 어떻게 할 거냐. 지금이라도 내려가야 하냐?”

“태호형...”

일행의 리더 격인 태호가 경현을 향해 물어왔다.

“톨비아에서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때는 게임이었지 않냐?”

경현은 태호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돼요. 정말 믿어주세요. 태호형. 그대로 진행하면 개죽음이에요.”

“그래도 말이다...”

태호가 슬쩍 몸을 비켜내자, 일행들의 불만스러운 눈이 경현의 몸 이곳저곳을 찔러댔다.

다시금 몸으로 그 시선을 막은 태호가 말을 이었다.

“네가 그 누구보다 우리 안전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간과하는 게 있다. 우리는 톨비아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분명 태호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제아무리 그림자 지하 성채가 톨비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나.

일행은 아스텔의 상태창을 받은 입장이다.

화신을 뽑아, 전투를 하는 톨비아와는 전혀 다른 힘.

같은 잣대로 평하기에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게다가.

“네가 톨비아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우리는 아스텔에서의 경험이 많다. 아스텔에서는 위험에 몸을 던져야 강해진다.”

“...알겠어요.”

기나긴 설득.

그 끝에 결국 경현이 항복했다.

설득에 넘어갔다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신뢰를 잃어버린 마당에, 그가 결단코 안 된다고 말려봐야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가죠. 저도 궁금하니까.”

경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궁금한 건 매한가지였다.

‘도대체 어떤 파티야?’

자신들이 들어온 것은 던전이 나타나고, 고작해야 수 시간 뒤다.

그 단기간 동안 1층과 2층을 돌파하고.

겨우 하루도 되지 않아, 니네체르가 도사리는 보스방까지 갔다는 것은 경현의 예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랭커 파티인가?'

자신보다도 더욱, 톨비아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고.

아스텔에서도 높은 랭킹을 유지하던 이.

그런 이들이 모인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글렀어.’

휴식을 끝내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바라 본 경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고르고 골라, 클리어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모아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스전을 치루고 있을 파티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랐다.

‘반드시 그 공격대에 들어가야 해.’

그림자 지하 성채는 4인 파티 던전이다.

하지만 톨비아의 던전은 대부분이 8인 이상의 공격대 던전.

앞으로 나타날 던전들이 톨비아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았다.

경현은 그들을 따라잡아, 그 엔트리 안에 속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얼른 가시죠.”

“...어? 그래.”

손바닥 뒤집듯,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경현의 모습에 당황하는 태호였다.

* * *

“....세상에.”

일행은 감탄을 흘려댔다.

분명 지하 1층에는 적기는 하나, 구울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지하 2층을.

굽이굽이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 일행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없었던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게요.”

지하 2층부터 등장하는 아귀와 라바들.

그런 놈들이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행은 2층에 도달하고서부터 단 한 번의 전투도 하지 않은 채, 걷기만 했다.

‘...미쳤어.’

경현의 놀라움은 일행의 반응과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2층의 몬스터들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지 알고 있기에.

이러한 비정상적인 깨끗함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 얼른 내려가죠!”

사람들은 다급하게 외치며, 발을 놀렸다.

“안 돼요!”

경현은 그런 사람들을 만류하려 애썼다.

아무리 지금까지 아귀들이 없었다고는 하나, 그것이 앞으로도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여기서 뭉치지 않으면, 아귀를 만났을 때 대응하기가 어렵다.

“비켜, 얼른 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경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멀찌감치 달려 나가고 있었다.

경현은 황급히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려 발을 놀렸다.

부디 도중에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면서 말이다.

하지만 본래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기 마련일까.

“배고...파!”

사람들을 따라가던 경현의 옆에서 녀석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경현의 판단으로는 아직 싸워서는 안 되는 몬스터, 아귀임에 틀림없었다.

“허억!”

따아아악!

경현은 황급히 몸을 눕혀, 한 입에 삼키려 달려드는 아귀의 아가리를 피해내기는 했으나.

그 탓에 무게 중심이 흔들려, 쓰러지고 말았다.

“아...아..아.”

경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게임과는 다르다.

기괴하게 생긴 이 몬스터는 엄연히 현실이며, 곧 목숨이 끊어지는 자신 또한 현실일 것이 분명했다.

“사, 살려줘. 제발! 제발!”

경현은 순식간에 바지를 적시고서, 바닥을 사정없이 기어댔다.

하지만 이미 코앞까지 온 아귀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쩌어어어어억.

입을 크게 벌리는 아귀.

“아아아악!”

경현을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제아무리 각오를 다지고서 던전에 들어왔다고 한들, 눈앞에 닥친 죽음을 두고서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데.

“...”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순간에 이어질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으면 원래 이런 것인가?

잠깐 생각에 잠겼던 경현이었으나.

“경현아!”

멀리서 들려오는 태호의 목소리가 아직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게 만들었다.

살포시 눈을 뜨는 경현.

“어...?”

경현이 눈을 뜬 그곳에는 분명 아귀가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녀석이 우뚝, 멈추어 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내 이 현상을 만들어낸 이유가 눈앞에 떠올랐다.

경현을 구해준 것은 함께 온 동료는 아니었고, 형님처럼 따르던 태호도 아니었다.

[니네체르가 쓰러집니다.]

[47번 그림자 지하 성채가 침략에 실패합니다.]

[47번 그림자 지하 성채가 그 모습을 감춥니다.]

“허억, 허억, 헉.”

경현은 숨을 몰아쉬며, 점차 사라지는 아귀를 바라보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니네체르를 쓰러뜨리러 간 파티가 보스 토벌에 성공한 것이다.

“하악, 하악, 하악.”

완전히 진이 빠져,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한 경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림자 지하 성채 47]

[공헌도 순위]

1. 과금망겜플레이어 - 970,000점

2. 경현이다 - 7,400점

3. 태호짱 - 6,840점

...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7,400점의 공헌도의 보상으로 50코인을 받았습니다.

“하? 하하, 하하하...”

경현은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파티조차 아니었다.

“혼자...고작 혼자서.”

4인 파티 던전.

그림자 지하 성채.

그곳을 클리어 한 것은 고작 한 사람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