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34화
몬스터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2층의 동굴 속을 걷고 있는 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2700코인 정도 번 줄 알았더니...’
분명 몬스터의 수를 제대로 세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호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지하 2층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몰살시키고서 얻어낸 코인은 무려 3500코인.
몬스터를 쓰러뜨린 수가 단순 계산으로만 700마리에 이르러 있었다.
어째서 그림자 지하 성채가 무자본 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았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흐흐...”
정호는 이미 오 성급 화신을 뽑고 나아가 육 성급 화신을 뽑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특히나 자신이 게임에서 지니고 있었던 포세이돈을 필두로 한 화신들을 떠올릴 때면, 절로 몸이 떨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상상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덜컥.
“도착 한 것 같은데요?”
키드의 말마따나.
지하 3층으로 향하는 문이 정호의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진입합니까?”
“잠깐만.”
정호는 서서와 키드를 멈추어 세우고서,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지하 2층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 결과가 좋게 풀렸을 뿐이지, 정호의 지하 2층은 그야말로 진땀을 빼는 혈투였다.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요단강을 건널 만 했고, 실제로도 그 직전까지 가지 않았던가.
‘지하 3층의 적은 준보스급의 전투.’
그림자 지하 성채는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던전이다.
보스에 도달하기 직전에 마주치는 준 보스, 네임드급과의 전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지하 3층이다.
짤랑-.
정호는 품속의 코인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지하 3층을 쉽게 깨기 위해선 사 성 이상의, 그것도 특수 클래스여야 편한데...’
현재의 전력에서 지하 3층을 손쉽게 공략하기 위한 스펙 업을 위해서는 사 성 이상의, 그것도 ‘탱커’라는 특수 클래스가 필요했다.
상상 속에서야 이, 삼 천을 넘기는 코인들이 오 성급이 되고, 육 성급이 되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한 없이 낮다는 사실을 정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뽑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뱉는 말이었으나.
-던전 내에서 뽑기는 불가합니다.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메시지가 곧장 떠올랐다.
‘이래서 아스텔 시스템이 부럽다니까.’
질투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지하 2층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몰살시켰다.
그렇다면, 아스텔의 유저들이라면 충분한 레벨 업을 통해 강해졌을 터다.
다음으로 향할 때, 그 난이도는 한 없이 낮아진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잠시나마 던전을 이탈해, 뽑기라도 하고 올까 생각했으나, 이내 그 생각을 털어냈다.
어차피 이 정도의 코인으로는 지금 정호의 파티 전력을 끌어 올릴 기댓값이 부족했다.
까득-.
이를 한 차례 갈던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진행한다.”
애당초 지금 이 전력으로 그림자 지하 성채를 정복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럴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괜찮겠습니까?”
“그래.”
정호는 그림자 지하 성채라는 던전이 나타나자마자 그 준비를 했다.
지하 1층에서 방독면을 준비한 것처럼.
지하 3층의 녀석을 위한 준비물 또한 가방 속에 고이 잠들어 있지 않던가.
고민은 길었으나, 결정을 한 그 순간의 정호는 거침이 없었다.
문을 향해 손을 뻗은 정호는 그대로 힘껏 밀어붙였다.
끼이이익-.
그러자 오래된 경첩의 비명과 함께.
화아아아악-!
지하라고는 믿기 어려운 환한 빛이 정호를 맞이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빛으로 나온 탓일까.
절로 눈살을 찌푸리던 정호.
이내, 그 빛에 완전히 익숙해질 무렵.
“...이게 뭐야.”
“...”
키드와 서서가 주변을 바라보며, 질린 듯 고개를 내저었다.
정호 일행이 도착한 장소.
중앙의 흙바닥을 제외하고서는 주변을 빙글, 둘러싸고 있는 계단들.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에는 관중들이 가득 차 있었다.
“키야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케에에에에엑!”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 소리.
수천은 되어 보이는 구울들이 객석을 완전히 채웠다.
그 중앙에서 새빨간 눈을 부라리고 있는 녀석은 거대한 황소였다.
“이, 이봐요 주인. 이건 후퇴하는 게 어떨까요?”
주변에는 많은 수의 구울.
눈앞에는 거대한 크기를 가진 황소.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일 법한 상황 속, 키드가 앓는 소리를 내며 정호를 바라보았다.
한데, 정호는 묵묵히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며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푸릉, 푸릉.”
파악, 파악-!
황소는 이미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듯, 연신 코를 풀며 땅을 발길질해댔다.
“어, 얼른 돌아가자니까요?”
키드의 재촉.
그것에 정호는 드디어 가방 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그리 말하며, 꺼내는 물건은 키드의 얼굴을 경악에 물들게 만들었다.
펄럭-.
새빨간 천이 한 장.
그것이 바람에 부대끼며, 펄럭였다.
“...장난치는 거지요? 그렇지요?”
되묻는 키드를 향해 정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설마.”
* * *
그림자 지하 성채의 지하 3층에서 맞이하게 되는 거대한 황소, 아피스(Apis).
녀석을 공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강력한 탱커를 바탕으로 돌진을 막아내고서 후위에서 무너뜨리는 정공법이 있었으나.
‘저런 커다란 녀석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아피스는 키만 3m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황소다.
녀석의 돌진을 막아낼 수 있는 탱커란, 어지간한 화신으로는 택도 없다.
처음 게임에서 녀석을 마주한 파티는 그야말로 과금의 늪에 빠졌다.
최소 사 성 이상의 탱커 화신.
그것이 그림자 지하 성채의 최소 조건이 될 정도였으니, 당시 유저들의 여론은 말을 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이후, 무자본의 성지가 된 이유는 당연하게도 다른 공략법이 등장했던 탓이다.
‘아피스는 언데드다.’
언데드의 특징은 고통이라는 감각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그 말인 즉, 아무리 공격을 가한다 하더라도 어그로가 다른 이에게 튈 확률이 적다는 의미다.
게다가 아피스는 황소.
눈앞에서 움직이는 적을 가장 먼저 어그로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만큼이나 최적의 상성이 없다.
‘황소 도약.’
그렇게 나온 것이 황소 도약이라는, 고대 황소 숭배 의식에서 출발한 공략법이다.
물론 ‘진짜 황소 도약’처럼, 황소의 등을 넘어 다니며 곡예를 부린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순히 녀석의 주의를 한 명이 끌고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그 틈을 타 후위의 화신들이 공격하는 것뿐인 단순한 방식.
하지만 그것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피스가 언데드이면서, 황소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공략법이었다.
펄럭.
서서와 키드를 관중석의 코앞까지 밀어낸 정호는 콜로세움의 중앙에서 새빨간 천을 이리저리 펄럭였다.
그 모습은 한 명의 투우사와 다를 것이 없었다.
“푸릉-, 푸릉-.”
아피스에게서 반응은 곧장 왔다.
녀석은 정호를 바라보기 보다는,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려지고 있는 천을 향해 새빨간 눈을 빛내고 있었다.
파악-! 파악-!
두 번의 발돋움.
그 직후, 아피스가 그 육중한 신형을 정호가 펼쳐들고 있는 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아아아아악-!
도대체 저 거대한 몸체에서 이러한 민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녀석은 순식간에 정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크..윽...! 지금!”
다행이라면 녀석이 정호가 아닌 새빨간 천으로 달려들었던 탓에, 간신히 녀석의 돌진을 피해낼 수 있었다.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타탕!
아예 초장부터 전력을 다하라고 일러두었기에 거의 동시에 양 옆에서 스킬, ‘속사’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쿠우우우-!”
과연 정호 파티의 최대 화력이라고 할까.
감각에 둔감한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소리를 내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곧장 돌아가는 시선은 키드의 방향이다.
강력한 화력에 어그로가 튀었다.
“움직이지 마!”
정호는 곧장 키드를 향해 일러두고서 곧장 아피스의 눈앞에 달려들었다.
펄럭-!
“여기야. 여기.”
새빨간 천이 녀석의 시야에서 키드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정호는 서서히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키드와 서서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방향으로 인도했다.
“푸릉-, 푸릉-.”
아피스가 서서히 몸체를 돌려, 정호의 천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됐다...!’
그 모습을 본 정호는 확신했다.
녀석의 돌진이 생각보다 빨랐으나, 그렇다고 피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캬아아아악!”
“케에에에엑!”
“케엑! 케엑!”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하압!”
정호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구울은 빠르지 않다.
하지만 그 힘이 결코 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까앙!
검과 살이 맞닿는 소리치고는 꽤나 둔탁한 소리가 그림자 지하 던전 1층에 울렸다.
“큭!”
“태호 형, 맞부딪치면 안 돼요!”
“알고 있어.”
태호의 일행은 족히 넷이나 되는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많은 수의 인원이란, 그 자체로도 힘이 되는 법이다.
쉐에엑-!
“지금이야!”
구울 일격을 피해낸 태호가 소리치자,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캬학!”
하나의 적에 셋 이상이 달라붙어 드잡이를 하는 형태는 분명 비효율적이었으나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지하 1층에서 꽤나 시간이 흘렀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저, 레벨 업 했어요.”
“축하드려요. 아처로 전직하셨다고 하셨죠? 민첩이랑 운 스탯이 상당히 중요하니까 적절히 분배하세요.”
“상처 입으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전직 중에 성직자가 있어서 다행이라니까.”
레벨 업과 전직을 하는 인원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느리지만 안전하게, 착실하게.
RPG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성장에 필요한 토대를 쌓아갔다.
“이제 슬슬 2층으로 내려가도 되지 않아? 벌써 반나절이라고.”
“그러게요. 경험치도 슬슬 안 오르게 됐고.”
하지만 그런 계속된 안정된 승리는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안 돼요. 절대로. 아귀는 우리가 못 잡아요.”
“하지만 경현 학생.”
“절대로. 절대로 안 돼요.”
그것에 경각심을 주는 것은 항상 경현의 역할이었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냐? 클리어 하지 않으면 종말이 온다니 뭐니 했었잖아.”
“정말 알고 있는 거 맞아?”
“애초에 히든 피스니 뭐니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랬다.
‘이런 시발.’
경현은 속으로나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톨비아를 어느 정도 플레이 해 본 경험이 있는 경현은 그림자 지하 성채의 1층과 2층의 난이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였다.
‘틀림없다고. 구울의 수는 적긴 하지만.’
지금 이곳, 지하 1층에서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는 이유도 생각보다 턱 없이 모자란 구울의 수 때문이었다.
“경현아. 2층은 정말로 무리냐?”
“태호 형. 형까지 이럴 꺼에요?”
이제는 일행의 리더나 다름없는 태호까지 경현에게 불만을 이야기했다.
“네 생각보다 구울이 적다고 한 것도 말이다. 혹시 다른 파티가 먼저 진행한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그 파티가 클리어 목적이라면...”
“아뇨. 절대로 아니에요. 애초에 그림자 지하 성채는 인스턴트 던전인걸요. 아니, 설사 다른 파티가 있다고 해도...”
경현은 꽤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했으나, 확신에 가득찬 얼굴이었다.
“아직까지 만나지 않은 걸 보면 이미 죽었을 거에요. 그만큼 1층이랑 2층의 격차는 커요. 구울 열 마리가 아귀 한 마리랑 맞먹으니까.”
이것은 불변의 진리나 다름없었다.
톨비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을 모았다.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클리어 할 수 있도록, 고르고 골라 실력자들을 모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서 들어왔다.
다른 파티가 있다 한들, 성급하게 2층으로 향한 이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아니 이 주는 더 1층에 머물러야 해.’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최단 시간.
그것을 어기고 2층으로 향한 자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절대로 있을 수 없어요. 절대로.”
절대.
경현에게 있어서, 그것은 확신에 어린 외침이었다.
한데 그런 경현의 말과 동시에.
쿠구구구구궁.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숭배 대상 - 아피스가 쓰러졌습니다]
“...뭐, 뭐라고?”
극도로 당황한 경현의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그도 그럴 게.
이 메시지가 나타나는 건 단 한 가지의 경우뿐이었으니까.
[그림자 지하 성채의 왕, 니네체르가 깨어납니다]
“말도 안 돼!”
누군가 보스방에 입장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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