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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33화 (34/144)

# 33화

# 33화

“...정말 해요?”

“그래.”

“진짜. 진짜 합니다?”

자신이 일전에 실수했던 기억 탓일까.

몇 번이고 되묻는 키드의 말에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벽에 등을 지고서, 키드와 서서를 후위에 둔 채 정호는 숨을 골랐다.

‘설마 내가 게임도 아니고, 현실에서 풀링을 할 줄이야.’

풀링(Pulling)이라 하면, 게임 내에서 몬스터를 끌고 와서 잡는 행위다.

다소 위험한 위치에 있는 적들을 몇 마리씩만 빼와서 전투를 이어나가기 위한 방법.

하지만 정호가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풀링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키드의 총소리로 모든 몬스터를 이쪽으로 모이게 한다.’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었다.

딱 한 사람, 하나의 몬스터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통로.

그곳의 입구를 정호가 지키고서, 뒤에서 키드와 서서가 지원하는 방식.

도망칠 장소 따위는 없다.

안전과는 거리가 먼,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1층에 있을 무렵에, ‘안정성’을 위해 아스텔 유저들과 협동하고자 했던 정호와는 반대되는 위험을 자처하는 행위였다.

‘이게 차라리 나아.’

하나, 정호는 오히려 이 방법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전투에 꼭 한 마리씩만 나올 리도 없고.’

천천히 전진하며, 나타나는 몬스터를 기습하여 소리 없이 처리하는 방법은 분명 안정적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전투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한 마리를 기습하는 동안, 다른 통로에서 자신을 발견한 녀석이 급습할 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는 수 마리의 몬스터들이 모여 있다면 기습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서서나 키드가 전투에 참여하면 몬스터가 모이는 것은 시간문제고.’

동굴은 일자형 통로의 형태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렇다하여 하나의 길로만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는 통로는 어느 방향에서나 적이 올 수 있다.

총소리를 듣고서 양 옆, 뒤에서 찾아온다면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그럴 바엔 아예 모이게 만드는 게 낫지.’

하지만 이곳이라면 다르다.

막혀진 통로.

몬스터 하나가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길목이다.

그 뒤에 얼마나 많은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호가 마주하는 것은 한 마리다.

무조건적인 삼 대 일의 전투.

정호가 쓰러지지 않는다면, 패배할 이유가 없다.

‘바스타드 소드도 있으니까.’

명품 바스타드 소드의 특수 능력, ‘멈추지 않는 체력’은 이미 지하 1층에서 그 성능을 입증했다.

다소 체력이 떨어지는 화신이라고는 하나, 서서와 키드조차 숨을 몰아쉴 때 멀쩡한 것은 자신뿐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애초에 멈추지 않는 체력의 효과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갑니다.”

키드의 시작 신호.

타앙-!

그와 동시에 단 한 발의 총성이 동굴 속에서 터져 나왔다.

타아아아아아----앙---

동굴 벽에 이리저리 부딪쳐, 울려 퍼지는 총성.

그에 잠깐의 침묵이 생기나 싶더니.

두두두두두두두두.

-키에에에에에에--!

-밥! 밥!

-크극! 크극!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발소리가 울려 퍼지며 동굴 안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어!”

“긴장하지 마시고, 대기하십시오.”

혼란스러워하는 키드를 서서가 안정시키는 것을 확인한 정호는 숨을 훅 내뱉었다.

두두두두두두-.

“키아아아악!”

마치 경주라도 하듯,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무리의 몬스터들.

정호는 검을 고쳐 잡고서 입을 열었다.

“전투 준비!”

* * *

“캬아아아악!”

머리를 들이미는 아귀의 대가리.

정호는 녀석의 목을 덥석 잡고는, 그대로 벽에다 휘둘렀다.

“케엑!”

푸우우욱-.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녀석의 복부에 검을 꽂아 넣은 정호는 살짝 고개를 젖혔다.

타아앙-!

촤르르륵-.

젖힌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한 발의 총알과 파초잎.

그것이 그대로 녀석의 머리에 꽂혔다.

스르르륵-.

숨이 끊어진 것인지 아귀의 모습이 흐릿해지나 싶더니 사라졌다.

짤랑 거리며 바닥에 떨어지는 코인들.

그것을 당장이라도 줍고 싶었으나, 정호에게 그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캬아아아악!”

곧장 다음 녀석이 징그러운 얼굴을 들이밀며, 정호를 향해 공격을 가하고 있었던 탓이다.

이번에는 인간의 얼굴을 한 혐오스러운 지렁이, 라바였다.

카앙-!

정호는 곧장 검을 들어, 녀석의 이빨을 막아내고서, 머리를 숙였다.

타앙- 타앙- 타앙-!

촤르르륵! 촤르르륵!

정호의 뒤편에서 쉬지 않고 쏟아지는 총알과 파초잎은 거대한 지렁이, 라바의 몸을 때려댔다.

“캬아아악!”

라바의 형태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조차 끝이 아니다.

죽은 라바의 사체가 사라지는 단 수 초의 시간.

고작 그것이 정호에게 주어진 자그마한 휴식시간이었다.

“후욱.”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정호조차도 숨을 한 차례 몰아쉬었다.

쉬지 않고 몸을 들이미는 몬스터들의 행렬은 정호로써도 질리지 않을 리가 없다.

‘아직은, 아직은 괜찮아.’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호의 몸에 이상은 오지 않았다.

신형을 움직이는데 큰 무리가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키드와 서서는 다를 모양이었다.

“후우, 후우, 후우...”

“이거, 허억. 너무 힘들...허억.”

족히 수십을 쓰러뜨렸으나, 아직까지도 그 끝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절로 질린 모습의 키드와 서서는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확실히 무리가 가는 모양이었다.

“서서. 구원대. 다섯 명 전부!”

서서와 키드가 이대로 전투를 지속하다간 뒤에서 총알이 날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호는 곧장 서서에게 구원대를 발동시키길 명령했다.

““주인의 뜻대로.””

서서의 구원대 스킬로 인해 나타나는 다섯의 일 성급 화신.

그것을 확인한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창병이 둘, 궁수가 둘, 농부가 하나였다.

모두 후방에서 지원할 수 있는 형태의 화신들.

“서서와 키드는 잠시간 휴식! 구원대들은 내 뒤에서 몬스터들을 향해 공격!”

정호는 다급히 명령을 내리고는 다음 녀석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푸아학-!

정호는 바스타드 소드를 거세게 내질렀다.

적어도 정호가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 * *

“허어어어억. 허어어억, 허억.”

도대체 몇 시간 동안이나 전투가 지속되었을까.

숨이 넘어갈 듯이 몰아쉬는 정호의 눈빛에는 더 이상 초점 따위는 남아있질 않았다.

그저 눈앞에 나타난 녀석을 거머쥐고, 검을 꽂아넣는.

반복적인 작업이 있을 뿐이다.

타아아앙.

촤르르륵.

그것은 비단 정호의 일만은 아니었다.

서서와 키드의 공격은 눈에 띄게 줄었다.

서 있을 힘도 없는 것인지, 아예 앉아서 지원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547...아니, 548이엇나...’

정호가 세는 수는 쓰러뜨린 몬스터의 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부여잡고,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 또한 바로 이 숫자 덕분이었다.

물론 그 숫자를 세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 당 코인이 5개니까...그럼 2740코인이네...’

코인 계산만큼은 정호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키에에에에엑-!”

체력이 떨어짐에 따라, 당연하게도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시간도 부쩍 늘었다.

카아아앙-!

라바의 사나운 이빨을 검으로 막아낸다.

고개를 젖혀 후방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더 이상의 총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정호는 하는 수 없이 녀석을 발로 밀어내고서, 검을 쑤셔 넣었다.

푸우우우욱-.

“키에에에에! 키에엑!”

고통에 찬 소리와 함께 녀석이 더욱 사납게 정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읍...!”

정호가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쑤셔 넣은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녀석이 쓰러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제발, 제발.’

과연 지하 2층의 몬스터라고 할까.

뚫린 배에서 녹색의 피를 울컥울컥 내보내고 있었으나, 몸부림을 치며 거세게 저항했다.

결국 라바의 아가리가 정호의 눈앞에 마주치는 그 순간.

‘이런...!’

무방비한 정호로써는 죽음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모습.

하지만 정호는 두 눈을 질끈 감기보다는, 고개를 홱 뒤로 젖혔다.

촤르르르륵-!

파팍! 파팍!

“괘, 괜찮으십니까?”

늦지 않게 서서의 지원이 있었던 탓에 위기를 몰아낼 수 있었다.

정호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까닭에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캬아학-.”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는 몬스터.

그것을 희미한 눈동자로 확인한 정호는 검을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한 녀석이 쓰러졌다고 끝이 나지 않을 터.

곧장 나타날 다음 녀석에게 일격을 넣어야만 했다.

후우우웅-.

한데, 검이 허공을 휘저어댔다.

털썩.

있는 힘껏 내뻗은 덕분일까.

정호의 신형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음?”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정호는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소음이란 소음은 다 일으키며, 전투를 지속해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음 몬스터가 없다는 의미.

“하, 하하.”

웃음을 터뜨릴 힘도 없는 것인지, 사뭇 허탈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가 정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예? 끄, 끝났습니까?”

“끝난 모양이군요...”

서서와 키드도 그 상황을 알아차린 것인지, 그 자리에서 기쁨을 표했다.

“하하...”

정호는 바닥에 大자로 누운 채, 지난 일을 상기했다.

모든 몬스터를 한 곳에 모으겠다는 발상으로 시작한 풀링(pulling)은 결국 완수했다.

‘미친 짓이었어.’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깨닫는 데에는 전투가 진행되면서 깨달았다.

마치 끝이 없는 디펜스였다.

‘멈추지 않는 체력’의 특수 능력을 너무 맹신했다.

사람은 육체적인 체력보다도 정신적인 체력 또한 중요한 존재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몬스터들의 행렬.

그것은 정호가 포기를 떠올릴 정도로 압박감을 선사하기까지 했다.

“하하, 하하하.”

하지만 그것은 모두 끝난 일에 불과한 것이다.

지하 2층에 남은 적은 더 이상 없었고.

비록 누워 있기는 했으나, 결국 숨을 쉬고 살아있는 것은 정호였다.

“이런 짓은 다시는 하지 말자고요...!”

키드가 정호를 향해 앓는 소리를 냈다.

“알았다.”

정호 또한 후회하는 일이었기에, 단번에 그 부탁을 승낙하며 몸을 일으켰다.

전투가 끝이 났으면, 전리품을 챙겨야할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모든 몬스터가 남긴 코인들은 한 곳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

그것을 빤히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은 언제 피곤했냐는 듯, 환한 빛이 떠올랐다.

촤르르륵-.

수북히 쌓인 코인들을 쓸어보던 정호가 불현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취소하지. 미안하다.”

곧장 튀어나오는 사과.

“네?”

그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어 오는 키드의 말.

정호는 수북이 쌓인 코인을 손에 거머쥐며,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사과를 곰곰이 씹으며,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던 키드.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린 키드의 얼굴에 경악이 물들었다.

“미안하다.”

정말이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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