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32화
지오바니 알디니(Giovanni Aldini)는 1800년대에 유명해진 과학자다.
해부실험 도중, 개구리의 다리가 전기에 의해 경련하는 것에 매료된 그는 공개적으로 사형 당한 시체를 되살리는 실험을 자행함으로서 유명해졌다.
단순히 전기 충격으로 죽은 인간을 되살릴 수 있다고 믿은 그가 광기의 과학자로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디니는 톨비아 내에서도 ‘꽝’ 취급 받는 이였다.
남성 화신, 게다가 추레한 노인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저들 눈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했으나...
성능만을 바라보는 유저들에게도 눈 밖에 난 녀석이었다.
그것은 비단 알디니 뿐만 아니라, ‘미치광이’ 타이틀이 붙은 과학자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왜 삼 성급 화신으로 취급 받는지 의문일 정도니까.’
삼 성급 화신은 일, 이 성급 화신과 달리 어떤 형태로든 이름을 남긴 이들로 이루어진다.
각각 ‘스킬’이라는,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삼 성급의 화신이다.
하지만 미치광이의 칭호가 있다면 말이 다르다.
-그림자 지하 성채에는 미치광이 과학자, 알디니가 숨어 있다.
그 정보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정호를 포함한 기존 유저들은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이미 ‘그림자 지하 성채’를 클리어 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예 새로운 화신이면 모를까. 알디니라니?
이 성급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미치광이 과학자를 얻으려 새로 계정을 만드는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유저는커녕 기존유저들도 빠져나가는 마당에 알디니가 무슨 소용인가.
당연히 정호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줄만 알았다.
'아니...이걸 확인한 놈은 숨겼을 거야.'
정호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내놓았다.
그도 그럴게, 눈앞에 있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디아볼로스의 사체.”
알디니가 남기고 간 ‘디아볼로스의 사체’.
‘비어버린 악마왕의 처소가 처음 열렸을 때, 이거 하나에 천만 원이었던가?’
톨비아 내에서, ‘사체’의 의미는 크다.
쓰러뜨리는 족족 코인으로 변화하는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은 아이템을 드롭 하는 레어 몬스터들과 그렇지 않은 일반 몬스터로 분류된다.
한데,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사체’다.
‘부두술 관련의 화신이 있다면 최고였겠지만.’
알디니의 스킬인 언럭키 언데드로도 충분히 이용가능 했으나, 정통 부두술 화신이라면 더욱 큰 힘을 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사체라는 녀석이다.
하지만 정호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사체이기에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푸우욱-
정호는 망설임 없이, 디아볼로스의 시체에 검을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푸욱- 푸욱-
“아, 아니 지금 뭘 하는 거야...요?”
그런 정호의 행동에 키드가 화들짝 놀라며, 그 행동을 만류하려 했으나.
이내 덜컥- 신형을 멈추어 세웠다.
스윽 스윽-
정호는 디아볼로스의 사체를 뒤집으며 녀석의 심장을 취하고 있었다.
녀석의 커다란 뿔을 도려내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눈알을 뽑아낸다.
‘주인을 잘못 만난 걸지도...’
몸을 오들오들 떨어대는 키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흐흐.”
정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침한 웃음에는 광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1층으로 되돌아온 정호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디아볼로스의 눈] x2
[디아볼로스의 뿔] x2
[데몬하트] x1
하나하나가 고급 재료들로 분류되는 디아볼로스의 전리품들이 품에 가득했던 탓이다.
‘디아볼로스의 심장이라니...’
그 중에서도 정호가 주목한 것은 데몬하트, 디아볼로스의 심장이었다.
[데몬하트]
-호전적인 대악마 디아볼로스의 심장이다.
-5성 이하의 화신을 각성시킬 수 있다.
-각성 확률은 화신의 등급 여부에 따라 나뉜다.
짧고, 굵은 설명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째서 정호가 이곳, ‘그림자 지하 성채’에 왔던가.
종말을 막아내겠다는 대단한 사명감?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영웅심?
웃기는 이야기다.
정호의 목적은 오로지 뽑기를 위한 ‘코인’과 각성을 위한 그 재료의 수급에 있었다.
한데, 고작 1층에서 자신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물건을 얻었다.
입에 걸린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디아볼로스의 눈] - 5성 이하 방어구 강화 재료.
[디아볼로스의 뿔] - 5성 이하 무기 강화 재료.
눈과 뿔 또한, 흡족스럽지 않은가.
‘다음이 더 기대되는데.’
정호는 입맛을 다셨다.
본래 디아볼로스는 정호의 파티 전력으로는 ‘절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적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다.
하지만 알디니가 사체를 이용하는 방법은 ‘언럭키 언데드’.
부두술의 하위 호환이나 다름없는 그 스킬은 디아볼로스를 고작 2성급의 화신을 강신시킨 정호 홀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다운 그레이드 시켰다.
‘다음은 드래곤이었으면 좋겠어.’
그런 기대가 있었기에 비로소 정호는 알디니를 놓아주었다.
이 같은 고급 재료를 다시 한 번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다짐도 받은 마당이다.
현재로서는 손도 못 댈 녀석을 잔뜩 약화시킨 채로 물어다준다.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그, 이...이제 지하 2층으로 가요?”
“음?”
갑작스레 말을 거는 키드의 목소리에 정호가 정신을 차렸다.
키드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바뀌어,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은 정호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래. 진행해야지.”
그리 말하며 정호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구울들과 달리, 지하 2층의 몬스터들은 코인을 떨어뜨렸으니까.
‘다만, 이대로 무난히 전진 할 수 있을까가 문제인데.’
정호는 흘깃 서서와 키드를 바라보았다.
디아볼로스를 상대할 때, 정호 홀로 나섰던 탓일까.
체력적인 문제는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정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난이도가 대폭 뛴다는 게 문제야.’
구울들은 서서와 키드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하 2층부터는 다르다.
이곳에서부터는 과금러들의 영역.
‘전력은 충분해. 충분하지만...’
서서와 키드의 조합은 좋았다.
현자의 목걸이가 가진 ‘단죄’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 두 개의 속사 스킬은 구울들을 무력화 시키고 쓰러뜨린다.
그것은 지하 2층의 녀석들이라도 큰 피해를 입힐 정도의 화력이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다.
어디까지나 그림자 지하 성채는 ‘파티 던전’이고, 그만큼 많은 수의 적이 출현하니까.
“...”
슬쩍 키드와 서서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만약 키드나 서서가 데몬하트를 집어삼킨다면, 고급 재료답게 높은 확률로 각성할 것이 분명했다.
그에 파티 전력이 급부상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헉.’
황급히 고개를 내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5성 이하라는 것은, 오 성급의 화신도 각성할 수 있다는 증거다.
게임에서조차도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던 데몬하트.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쓰러뜨려야 할 적은 본래라면 디아볼로스다.
'애당초 지금 전력으로 불가능한 수준도 아니니까...'
정호는 마음은 단단히 굳힌 채, 가방 안에 데몬하트를 집어넣었다.
타박, 타박, 타박.
그 때, 먼발치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있었다.
정호는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가져다대고는 몸을 숨겼다.
“생각보다 구울의 수가 적은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말을 하는 것을 보아, 구울은 아니었다.
아스텔 유저들.
한데, 생각보다라니?
대화 내용이 묘했다.
* * *
던전에 진입한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정호.
‘차라리 아스텔 유저들과 합류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로써는 그들이 정호의 힘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홀로 상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가 아닌가.
위험을 무릎 쓰는 것보다야 피 같은 전리품을 나눈다 하더라도 그들과 함께해, 안정성을 기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어지는 목소리에 쏙 들어갔다.
“...제가 이곳에 대해 잘 안다니까요.”
“네가 했다던 그 게임?”
“예. 아주 판박이라니까요.”
쯧.
절로 혀를 차냈다.
최악의 패턴이다.
애당초 톨비아는 똥 게임으로 취급받는 게임이기는 했다.
마지막에야 정호 홀로 톨비아에 남아 있었고, 결국 서비스 종료를 해버리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플레이 해본 유저가 없는 것이 아니다.
타박, 타박, 타박.
발자국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기억하는 만큼의 구울은 안 나왔잖아?”
“그건...그렇지만...”
“나 여기 싫어. 시체 냄새는 이제 토가 나올 것 같아.”
발자국 소리는 모두 합하여 넷.
그 수와 대화 내용.
그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너무도 간단했다.
‘톨비아에 대해 자세히 아는 녀석이 있다.’
정호는 귀를 기울였다.
“유저들 고혈을 빨아먹더니, 아주 개 같은 게임이었어요.”
“얼마나 질렀는데?”
“한 백만 원? 그 정도는 가뿐히 넘겼을 걸요? 그래도 얼마 가진 못했지만...후...”
톨비아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찬 대화.
겨우 백만 원? 아직 맛도 못 본 녀석이...
정호는 하마터면 입밖으로 그 소리를 담을 뻔 했다.
“저도 종말이라고 하는데, 튀어나오는 게 그림자 지하 성채라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시련 때와는 다르다.
톨비아를 알고 있는 이들.
종말의 주체는 톨비아란 사실은 이제 기정사실화 되는 마당이다.
정호가 화신을 소환하고, 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타박타박.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정호는 화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한 장소를 가리켰다.
“...진행한다.”
정호의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가리키는 곳은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쯧...”
애초에 정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 * *
그림자 지하 성채의 2층은 구불구불한 동굴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똑, 또옥.
고드름 모양의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동굴 속에서 음산하게 퍼져 나갔다.
화륵, 화르륵.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동굴에는 길목마다 횃불이 놓여있어 어두컴컴하지 않은 점이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움직인다.”
정호는 서서와 키드를 향해 짧게 명령한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우하게 되는 하나의 몬스터.
쪼그려 앉아있는 녀석은 임신이라도 한 듯이 거대한 배를 두들기며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귀...’
지하 2층의 몬스터 중 하나인 아귀(餓鬼)임에 틀림이 없었다.
끝없는 굶주림으로 포악한 성격을 지닌 몬스터.
‘그것도 악마종.’
디아볼로스와 같은 악마종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비록 녀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최하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이긴 했으나.
악마종으로 분류된 순간, 구울과 같은 몬스터의 선상에 둘 수는 없었다.
‘아직 눈치는 못 챈 것 같고.’
꽈악.
정호는 주먹을 내쥐어, 서서와 키드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뒤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타박, 타박.
“배고, 배고..파.”
어눌한 말투로 배고픔을 호소하는 녀석은 아직 정호의 존재를 눈치 채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타박, 사악, 사악.
정호는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서서와 키드의 지원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녀석을 단숨에 끝내야만 했다.
그렇게 정호가 위치한 장소는 녀석의 바로 뒤.
아귀가 뒤를 돌아보기만 한다면, 곧장 전투로 이어질 수 있는 위치였다.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정호의 위치에 서서와 키드 또한 숨을 틀어막고서, 자신들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맛있는 냄새.”
이윽고, 녀석이 정호의 냄새를 맡았는지, 고개를 돌리렸다.
그 순간.
푸우우우욱-.
손에 쥔 바스타드 소드를 녀석의 배에 꽂아 넣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던 배에 검이 꽂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정호는 녀석의 입 안에 손에 쥐고 있던 방독면을 쑤셔 넣었다.
“키-우웅구우욱.”
녀석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아귀가 버둥거리며 팔을 내뻗어댔지만, 이미 검이 쑤셔 박힌 상황에 정호가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푸우욱- 파악- 파악-.
꽂아 넣은 검을 약점인 배에 몇 번이고 쑤셔 넣고 나서야, 사라지는 아귀.
스윽-.
정호는 온몸에 튄 녀석의 피를 대충 닦아 내고서, 일어났다.
얻은 코인은 5코인.
과연 꿈과 희망의 땅, 지하 2층이라고 할까.
고작 한 마리에 얻어낸 코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으, 이래서 내가 총을 좋아한다니깐.”
다가온 키드와 서서를 바라본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이대로 진행한다면, 클리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지하 2층에는 많은 수의 몬스터가 존재한다.
그런 녀석들을 키드와 서서의 지원 없이 나아가기란, 너무도 오래 걸린다는 것이 흠이었다.
‘역시 그 수밖에 없나...?’
후순위로 미루어 두었던 계획 중 하나를 꺼낼 수 밖에 없어 보였다.
화력은 충분했다.
녀석들이 모여 있기만 한다면 말이다.
정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손을 내뻗어, 키드와 서서를 이끌었다.
“저기로 가지.”
“거긴...막다른 길인데요?”
키드가 곧장 의문을 토해냈다.
정호가 가리키는 장소는 조금 멀리 떨어진 통로였다.
한 사람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그것도 그 뒤는 막혀 있는 막다른 통로.
“그러니까 가는 거야.”
모여 있지 않으면, 한 곳에 모이게끔 만들면 되는 일이다.
정호가 벽을 등지고, 입구를 막아서듯 서자.
“좋은 판단입니다.”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서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 설마...”
키드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충분히 몸을 쉬게 만들었으니까. 실수하지 말라고.”
정호가 짠 계획은 꽤나 무식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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