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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31화 (32/144)

# 31화

# 31화

디아볼로스는 최상위 악마에 해당하는 녀석이다.

정호가 제아무리 강신을 시켰다고 한들, 능력치 그 자체가 차이 나는 디아볼로스에게 공격을 성공시키리란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파아아악!

하지만 기이하게도.

너무도 손쉽게 정호의 공격이 디아볼로스의 몸에 틀어박혔다.

‘단단하네.’

온 힘을 다한 일격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몸에는 생채기만 생겼을 뿐이었으나, 그리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애당초 닿을 리 없는 공격이 들어먹었다는 것부터가 정호의 확신을 더더욱 굳건히 만들고 있었으니까.

카아아앙! 카아앙!

정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디아볼로스의 다리에 생겨나는 상처들.

하지만 피 따위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녀석은 고통에 찬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그, 그만두어라.

당황한 목소리로 정호를 저지하려 했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움직여 보던가.”

그에 정호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녀석을 비아냥댈 뿐.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 놈이!

결국 디아볼로스에게서 분노에 찬 일갈이 터져 나왔다.

꿈쩍도 하지 않던 녀석의 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릉, 쿠릉.

거대한 몸체의 디아볼로스가 움직이자, 내부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정호를 낚아채려는 듯,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린 녀석이 손을 쭈욱 내뻗었다.

후우우웅-.

한데, 기묘하게도 녀석의 손이 정호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정호가 피한 것이 아니다.

녀석의 손은 마치 정호를 일부러 피해나가기라도 하듯, 헛손질을 해댔다.

파아아악! 파악!

계속된 공격에도 정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디아볼로스의 다리를 공략해 나갈 뿐이었다.

-이익...!

오히려 달아오른 것은 디아볼로스 쪽이었다.

쿠우웅! 쿠웅!

다급해진 탓일까.

이제는 아예 정호를 향해 주먹을 내뻗는 디아볼로스.

커다란 주먹은 바닥에 내찍을 때마다, 거대한 울림과 함께 바닥을 완전히 부숴냈다.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일격들.

“주군...! 위험합니다!”

대기명령 탓에 정호의 전투를 지켜만 보고 있던 서서조차도 만류할 정도로 위험한 공격들이었다.

“대기!”

하지만 닿지 않는다.

제아무리 강렬한 일격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법이다.

분명 육중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격들은 하나하나가 대단히 치명적이었으나.

그 공격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공격이라면 더더욱.

‘한 박자....아니, 반 박자는 느려.’

디아볼로스의 운동 신경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녀석이 공격을 가하는 순간, 정호가 그 자리를 떠나기만 하면 녀석은 반응하지 못했다.

바닥을 향해 그대로 내리 찍을 뿐.

“커다란 허수아비네. 허수아비야!”

키드의 조롱이 터져 나올 정도로 디아볼로스의 공격은 형편없었다.

콰득! 콰득!

다만 그 방어력만은 예외였다.

분명 정호가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해 상처를 입히고는 있지만, 그것이 치명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걸리겠네.’

서서와 키드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그 시간이 당겨지기는 하겠으나, 정호는 그 생각을 지웠다.

‘아직이야.’

직접 때려보니 알겠다.

서서와 키드가 가담한다하여 녀석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어렵다는 것을.

오히려 어그로가 튀어, 이리저리 저 무지막지한 주먹을 찍어대면 피하기가 곤란해진다.

그럴 바엔 둘의 체력을 안배해두는 편이 낫다.

자신이야 바스타드 소드의 지치지 않는 체력의 효과 덕분에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정호는 아직 ‘조금 빠른 속도의 클리어’라는 목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정호는 검을 고쳐 잡고는 디아볼로스의 육체를 향해 달려 나갔다.

쿠우우우웅!

곧장 내뻗어지는 주먹.

그것은 불과 수 초전 정호가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그 광경에 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쉐에에에엑-.

정호는 아예 녀석의 다리 밑에 찰싹 달라붙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악! 파악! 파악! 파악!

정호의 공격은 가벼워졌다.

온 힘을 내건 일격들은 사라지고, 자잘한 찌르기와 공격이 쉬지 않고 퍼부어졌다.

상처는 깊지 않다.

아니, 이제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이익!

한데, 기이하게도 디아볼로스는 더욱 거센 공격을 내리찍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상처가 생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지만 할 수 있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공격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있었다.

쿠우우웅!

오히려 정호가 붙어 있던 자리에 자신의 발이 있는지도 모르는 듯.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쾅!

정호가 지금까지 한 공격과 비교할 수도 없는 상처가 녀석에 발등에 떨어졌다.

당연히 터져 나와야 할 비명.

-쥐새끼 같은 녀석...!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지.

정호가 있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두 번째 공격.

그조차 녀석의 발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휘청-.

두 발에 큰 상처를 입은 녀석은 육중한 몸을 지탱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이게 무슨?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듯, 당황하는 디아볼로스.

‘확실해.’

정호는 녀석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녀석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움직일 수 있을 뿐, 살아있는 게 아니야.’

디아볼로스는 이미 죽어 있는 사체다.

몸을 움직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결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언데드라고 불릴 수 있는 녀석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쿠우우웅!

정호가 서 있던 곳에서 한참은 떨어진 곳에 내리찍어지는 주먹.

‘여기가 사각지대구나.’

디아볼로스의 시야에서는 분명 보여야 할 정호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공격.

조종하는 놈이 따로 있다는 증거였다.

터엉!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 정호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정호는 곧장 발을 박차고, 녀석의 무릎에 올라탔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곧장 디아볼로스의 목소리로 일갈하는 녀석의 말이 들려왔으나, 신경 쓰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발을 놀려, 녀석의 몸 위를 유린하며 내달렸다.

-이, 이익!

당황한 녀석이 모기를 털어내듯, 손바닥을 펼쳐 정호를 쫓았다.

‘멍청한 놈!’

정호는 히죽 입가를 들어올렸다.

녀석은 디아볼로스의 공격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가볍게 털어내는 그 손바닥에 실린 힘.

콰앙! 쾅!

콰아아아앙!

그것이 자신의 몸을 두들겨 대며 완전히 부숴내고 있었다.

쩌억 쩌억 갈라지는 디아볼로스의 피부.

정호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손을 대기만 하면 부수어 지는 그 균열에 검을 박아 넣는 것뿐이었다.

콰악! 콰악!

파지지지직-.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하는 디아볼로스의 육체.

그 위에서 정호의 시선은 디아볼로스의 뒤편으로 향했다.

“시체놀이는 끝났어.”

정호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얼른 나와. 미치광이.”

쿠웅!

디아볼로스의 거대한 사체가 쓰러졌다.

“이런 젠장!!”

그 뒤편에서 녀석이 튀어나왔다.

* * *

미치광이 과학자.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불리는 그들은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놓은 과학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상식이나 윤리, 도덕성, 가치관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목표와 욕망을 위해 자신의 두뇌를 사용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성적으로나 지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단순한 정신질환자로 보지는 않는다.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나, 비상식적인 욕망을 가지는 이들만이 손에 쥘 수 있는 칭호이기도 하다.

“얼른 나와. 지오바니 알디니.”

이를 테면 1800년대의 과학자, 지오바니 알디니(Giovanni Aldini).

시체에 전류를 흘려보내, 되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미치광이처럼 말이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쓰러진 디아볼로스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은 확실히 정신에 이상이 있어보였다.

“이런 젠장! 네 녀석이 지금 무슨 짓을 한 지 알기나 하는 거야!”

디아볼로스가 쓰러진 이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를 향해 일갈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정신 상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뭐, 그런 설정이었던가?’

개발자가 직접 공개한 히든 피스, ‘알디니’.

녀석은 그림자 지하 성채로 잠입을 시도한 과학자로 설정되어 있다.

되살아난 시체, 언데드가 있는 이곳에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점은 실로 존경할 만한 광기였다.

“내가 이 사체를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네 녀석이 알기나 하냐고...!”

알디니는 정호를 닦달하며 적의로 가득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아이고...아이고...내 새끼...!”

이제는 아예 오열마저 해버리는 알디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디니가 숨어 있다고는 했지만...이건 꽝인가?’

개발자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공개한 히든 피스.

그림자 지하 성채에는 미치광이 과학자, 알디니가 살고 있다고 한 정보를 가지고서, 그 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한 정호였으나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지오바니 알디니☆☆☆

-힘 : 3 민첩 : 3 체력 : 4 지능 : 46

두 눈으로 확인한 녀석의 능력치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이름을 가지고, 객관화된 녀석은 삼 성급의 화신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그 능력치가 형편없다.

‘하급. 아니, 지능 화신임을 감안해도 최하급...’

[언럭키 언데드]

-전류를 일으켜 사체를 조종한다.

┕현재 : 1마리 (지능 46)

*조건

-사체가 부패되면 더 이상 조종할 수 없다.

“...쯧.”

그나마 희망을 가지고 스킬을 확인했으나 그 내용조차 형편없었다.

한 마리인 것도 형편없었지만, 조건마저 붙어버리는 제한적인 스킬.

최하급 중에서도 최하급.

지금껏 서서나 키드의 스킬을 보아왔던 정호로써는 만족할 수가 없는 화신이었다.

아니, 이런 존재가 어떻게 디아볼로스를 구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걸 왜 히든 피스라고 숨겨둔 거야?’

이 히든 피스를 답답해서 공개했다던 개발자란 녀석도 어이가 없었다.

'알디니'처럼 미치광이 타이틀을 가진 이들은 인기가 없긴 했다. 그 성능이나 외모는 톨비아의 화신으로써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삼 성치고는 한참 떨어진 스탯과 스킬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역시...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도감작 뿐인가...’

정호는 아쉬움을 삼키고서, 알디니를 향해 다가갔다.

“하아...”

알디니는 오열하는 것을 관둔 것인지, 굽은 허리를 펴고서 정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뭐.”

한데, 알디니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음?”

“이제 어쩌라고. 희대의 걸작인 디아볼로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난 이제 살 의지가 없어.”

철퍼덕.

몸을 아예 큰 대大자로 눕히고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정호를 재촉해댔다.

“죽여라! 지옥에서 네 녀석을 저주해주지!”

고개만 까딱 들어 올리고서 정호를 향해 과학자답지도 않은 협박을 해댄다.

그에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알디니를 얻는 히든 피스가 아니었나?’

두 눈을 부릅뜨고서, 당장이라도 정호를 잡아먹을 듯이 구는 알디니의 모습은 아군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하긴, 녀석이 애지중지하는 사체를 박살내놓았으니...’

이해는 가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도저히 히든 피스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정호가 혼란스러워하며, 쓰러진 디아볼로스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만 날 놓아준다면 네 녀석은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이야. 디아볼로스보다도 더한 괴물을 손에 넣어 반드시 너를 죽여 버리고 말겠어!”

알디니의 한 섞인 목소리가 정호의 머리를 거세게 때렸다.

“뭐라고? 이 새끼가... 지금 당장 죽여줄게!”

“무엄한 소리로군.”

서서와 키드가 그에 발끈하며 달려들려 했다.

특히 키드는 아예 리볼버에 탄알을 장전하고는 녀석의 머리를 조준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정호를 바라보는 꼴이 자신을 어필하는 모양이었다.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네 녀석들이 죽을 테니까!”

“그래 당장 네 아가리에 박아 넣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철컥.

녀석의 아가리에 총을 들이밀고 있는 키드를 향해 정호가 손을 내뻗었다.

“잠깐!”

다행히 키드가 돌발행동을 일으키기 직전에 멈추어 세울 수 있었던 정호는 알디니를 향해 다가갔다.

“얼른 일어나라. 알디니.”

“아니, 주인...!”

갑작스러운 정호의 말에 키드가 돌연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음? 날 살려두려고? 그럼 후회하게 될 텐데.”

알디니 또한 의외라는 듯, 굽은 등을 천천히 일으키며 정호를 바라보았다.

“이런 시체를 몇 마리 데려오든 바뀌는 일은 없을 거다.”

아예 알디니를 향해 충고를 하는 정호.

“특히, 디아볼로스 같은 허접한 녀석이라면 네 녀석이 몇 번을 가져와도 소용없을 거다.”

“...물론이지. 이 따위 디아볼로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을 손에 넣어주마.”

"흥, 나를 찾아낼 수는 있고?"

"못 찾을 것 같으냐? 반드시, 반드시 만나게 될 거야."

"좋아. 가봐도 된다."

크흐흐.

알디니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뒤편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에 서서와 키드가 정호를 향해 황급히 달려왔다.

“위험합니다. 주군. 적은 늘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맞아. 내가 이런 놈들 자주 봐서 아는데, 분명 후회한다니까?”

당장이라도 도망가는 알디니를 죽일 듯이 바라보는 키드와 서서.

“응? 그런 아까운 짓을 왜 해야하지?"

"네? 다, 당연히 죽여야..."

의문스런 대답에 키드가 재차 물어봤으나...

정호의 시선은 이미 알디니를 떠나 있었다.

향하는 곳은 오히려 바닥이다.

이미 사라졌어야 할 디아볼로스의 사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게 진짜였군.’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아니, 그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는 보스급의 몬스터, 디아볼로스.

그 사체를 바라보는 정호의 입가에는 커다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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